고구려 남진정책 연구 - 임진강에서 금강까지
백종오 지음 / 서경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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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에 2권의 책을 읽었으니 하나는 앞에 소개한『의식과 전쟁』이었고 또 하나가 바로 이 책이었다. 저자는 최근에 박사과정이 통과된 사람으로서 선배가 기와에 대한 석사논문을 준비 중이어서 마침 저자의 박사논문을 볼 기회가 있었다. 현재 고구려 '고고학'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가 그렇게 많지 않은데 저자가 이번에 기와를 주제로 고구려 고고학 박사학위를 받음으로써 고구려사 연구에 있어 또 하나의 획이 그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암튼,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이번에 책이 나왔다 하여 겸사겸사 책을 챙겨보게 되었다. 하지만 반응은 영~같은 과 후배랑 같이 책을 구입해서 같이 보기 시작했는데 둘 다 똑같은 반응이 나와서 역시 이 책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예전에 경기도 박물관에서 고구려에 대해서 특별전을 한 적이 있었다. 이 게시판 67번 글에 그때 열린 특별전과 학회를 갔다와서 남긴 후기가 있는데 그때에도 언급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특별전 도록이었다. 경기도권의 고구려 보루군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다 해 놓고 있었으며 경기도에 남아있는 고구려 관련 설화 등도 적고 있어 공부하는데 있어 좋은 자료들을 제공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도록이 비매품이어서 못 사고, 물어봤더니 저자와 아는 사람이냐고~묻는 것이었다. 당연히 모른다고 했고, 나중에 선배가 안다고 해서 선배한테 구해달라고 했는데 뭐 아직껏 깜깜 무소식이다. 암튼, 이건 여담이니 넘어가고 문제는 그때 그 도록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도록의 내용과 이 책의 내용이 거의 비슷하다는 사실이었다.

후배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역시 반응은 같았고, 기대하던 고구려 '남진정책'에 대한 연구가 아닌 단순한 보루군에 대한 설명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현재까지 나왔던 보루 관련 연구성과들을 총정리한 연구사를 보는 것이지, 어떤 개인적인 연구가 있었다고 볼 수는 없었다. 아마 이건 책의 전체적인 목차를 살펴본다면 더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1. 머리말

    ㄱ. 남한지역 고구려 유적 조사 현황

    ㄴ. 남한지역 고구려 유적 현황

2. 고구려 남진정책의 역사적 배경

    ㄱ.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ㄴ. 체제정비와 영토확장

    ㄷ. 군사적 배경

3. 임진강 · 양주 일대의 고구려 유적

   ㄱ. 임진강 유역의 고구려 유적

   ㄴ. 양주분지 일대의 고구려 유적

4. 한강 · 금강유역의 고구려 유적

    ㄱ. 한강유역의 고구려 유적

    ㄴ. 금강유역의 고구려 유적

5. 남한지역 고구려 성곽의 특징

    ㄱ. 고구려 성곽의 일반적 특징

    ㄴ. 임진강유역 고구려 성곽의 구조와 특징

    ㄷ. 한강유역 고구려 성곽의 구조와 특징

    ㄹ. 고구려 성곽 출토 유물과 그 성격

6. 유적을 통해 본 남진정책

    ㄱ. 유역별 관방체계

    ㄴ. 하천로와 성곽배치

7. 맺는 말 - 과제와 전망

    ㄱ. 관방유적의 특성 파악

    ㄴ. 고구려 유물의 인식 범위

    ㄷ. 성곽 구조의 비교 연구

    ㄹ. 고구려의 지방지배방식

목차는 대개 이러한데 전체적인 분량에서 봤을때 저자가 제목에서 언급했던 고구려의 남진정책에 대한 부분은 6장과 7장 부분에 집중되어 있었고 그 분량은 303~329페이지까지 채 30페이지도 안 되는 정도였다. 책을 주욱 읽어내면서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구입하지 못한 주인장 본인을 탓할 수 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1장은 그렇다치고 2장 부분은 고구려 남진정책의 역사적 배경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지만 그것과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었으며 단순히 고구려사를 개괄한 정도에 불과하였기 때문에 쓸떼없는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거기다가 3~5장,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61~302페이지까지의 내용은 대동소이한데다가 기존 특별전 도록에 있는 내용과 큰 차이가 없었다.

이래서 고고학자가 글을 쓰는 것은 한계가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유적이나 유물을 소개하면 그것을 설명하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그것을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해석을 할 필요가 있는데 매일 조사보고서만 쓰다보니 이런 추론의 과정에 약한 것이 고고학자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이 딱 그러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고구려 보루군과 경기도 일대의 관방체계에 대한 고고자료를 총정리한 것은 보기 좋았다. 하지만 그렇다면 책의 제목을『고구려의 남진정책 연구』라고 했다면 보다 거시적인 안목에서 각 유적과 유물들을 언급했어야만 했었다.

이를 위해 문헌의 인용은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당시의 전투나 전쟁 상황에 대한 설명 역시 거의 없었다. 단순히 그 자리에 고구려 성과 보루가 있었다. 그리고 각 성과 보루는 위치상으로 어떤 연계성이 있었다. 이로 미루어 봤을때 이들은 도하를 막고, 주변 조망이 쉽고, 교통로를 확보하는 등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로 끝맺음을 맺고 있는 것이다. 당시 한강일대를 둘러싼 삼국의 치열한 각축전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이나, 당시 전투 양상이나 전략 · 전술 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었던 것이다. 소위 한강에서의 쟁탈전을 인식할때 의문이 드는 것은 당시 한강 쟁탈전을 한국전쟁의 고지전과 비슷하게 연결을 시킨다는 사실이다. 일정한 방어 라인을 형성하고 그 고지를 점령하면서 전략적인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거점을 차지하는 식의 고지전 말이다. 그리고 이를 그대로 휴전선과 연결시켜 지금 우리의 대치 상황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주인장 개인적으로 이해가 가질 않는다.

당시 한강 일대는 지금처럼 인구 1천만이 넘는 대도시가 밀집해있는 국가의 중심지가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의 임진강 일대와 같은 군사 지역(Millitery Zone)으로서 인구가 밀집하지 못 하고 전쟁의 참화로 인해 경제기반으로서의 제 기능을 다하지 못 하던 지역이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그렇게 봤을때 그 지역에 있던 각종 보루와 성들은 지금까지의 고고학자들이 하는 연구만으로 해석해서는 안 될 것이다. 주인장은 전방에 있었기 때문에 전방 GP와 GOP에서 근무하는 장병들의 생활이나 훈련상황, 작전현황 등에 대해서 어느정도 알고 있는데 이는 비단 주인장 뿐만 아니라 전방에서 근무했던 대부분의 예비역들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생활을 상기한다면, 그리고 그 생활을 오늘날의 고구려 보루군에 대입시킨다면 분명 지금과는 다른 해석을 해야 한다고 느낄 것이다. 군사 접경 지역, 그것도 삼국이 똑같이 치열하게 대립했던 군사 접경 지역에 설치된 고구려 보루군은 보다 심사숙고해서 처리해야 할 부분이다. 아직 보루에 대한 시 · 발굴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각 보루의 편년 또한 수립되지 않았지 않은가? 그런데 과연 보루에 대해 왈가왈부 떠들어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마지막을 펴니 저자가『남녘의 고구려 문화유산』이라는 책을 또 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책 내용을 보니 역시 임진강부터 금강 일대까지의 보루군에 대한 소개로 끝나고 만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째서 고구려 보루를 갖고 할 수 있는 연구가 관방체계를 살펴보는 것 밖에 없단 말인가.

저자는 책 마지막에 맺는 말이라 하여 앞으로의 고구려 보루군을 연구하는데 있어 과제와 전망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는 보루의 국적이 보루의 특성, 방어체계, 보고자의 보고문 충실, 유적 훼손 정도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하면서 앞으로의 가능성과 함께 보다 폭넓은 시각에서 접근하는 연구자세가 필요하다고 적고 있다. 또한 고구려 유물에 대해서도 그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흑룡강성 일대의 보루를 언급하면서 경기지역의 보루군과 많이 비슷하다고만 할뿐, 양자를 비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왜 이런 문제점들을 알면서 정작 본인은 기존 연구성과를 답습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기존 연구는 논문들이고, 자신이 처음으로 단행본을 냈으니 그걸로 일단은 됐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더 나아가 고구려의 지방지배방식을 언급하면서는, 기존의 연구 성과에서 그치지 말고 더 연구를 해야 하며 고구려 지명이 이후 오래도록 사용된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본인은 왜 자신의 연구서적에서 이런 얘기를 하지 않았는지 궁금할 뿐이다.

주인장이 대개 고구려사를 공부하는데 있어 꼽는 텍스트적인 서적들(이 게시판에서 이미 여러번 소개한 바가 있는)은 기존 연구성과를 모아 연구사적으로 정리하는 것 이상으로 하나의 일관된 틀에 맞춰 어떤 주제에 대해 글을 써나간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 과정에서 기존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들을 담은 것들도 다수 있어 기존 학계를 통렬하게 비판하는가 하면, 기존 연구성과를 뛰어넘는 새로운 사실들, 새로운 자료들을 소개하는 것들도 많이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분명 고구려 고고학계에서 나온 거의 최초의 고구려 남진정책에 대한 연구서임에도 불구하고 실망스러움이 한둘이 아니었다.

주인장은 이렇게 현재까지 파악된 고고자료를 설명하는 위주의 서술로는 절대로 도록이나 조사보고서 이상의 글이 쓰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다못해 구의동 보루를 설명할때 만든 신라군의 기습으로 인해 고구려군 전사와 함께 보루의 전소, 그래서 남겨진 무수히 많은 유물들...뭐 이런 식의 시나리오 정도라도 언급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전혀 없는 것이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물론 고고자료로 역사를 해석하는 고고학의 한계가 있긴 하지만 '역사고고학'이라는 특성을 살린다면 여타 문헌이나 금석문을 참고한 연구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럼에도 그런 작업들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은 저자의 자질이나 집필 의도를 탓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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