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야 미친다 - 조선 지식인의 내면읽기
정민 지음 / 푸른역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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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Ⅰ. 머리말

  소위 유학자들이라고 통칭하는 조선시대 지식인들에 대해서 평자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호감을 갖고 있는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조선이라는 나라한테까지도 호감을 갖고 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자국의 역사 중 어느 것은 좋아하고, 어느 것은 싫어하는 행위 자체가 상당히 치졸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랴. 조선사에서 사대주의적이고, 소중화주의적이고, 힘이 없는 약자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것이므로 조선사에 대해 쉬이 호감이 가지 않는 것을.

  이성계라고 하는 강골의 무인에 의해 역성혁명이 일어나 고려를 뒤엎고 등장한 조선은 분명 그 군주만큼이나 신생국이 갖고 있는 생동감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생동감을 쓸 줄 몰라 그저 명에 대한 사대에 전심전력을 다하게 되니, 수만 마리의 말을 명에 갖다 바쳐 국력을 깎아먹은 것부터 시작해서 명이 뱃길을 금하니 이후 사행길은 전부 발이 부르트도록(그 발이 사람발이든, 동물의 발이든) 걸어서만 이뤄진 나라가 바로 조선이 아닌가.

  군주와 국가의 힘이 약함을 조상들 덕으로 어떻게 해보려는 요행에 무수히 많은 선조들을 신격화하여 그에 대한 제사로 국력을 낭비할지언정, 명의 억압과 잘나빠진 성리학자들의 주장에 휘둘려 하늘에 대한 제사는 지내지 않았던 조선이요, 편협될지언정 부질없는 것은 필요 없다는 식으로 억불숭유하여 사상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아 일종의 사상 통제를 강하게 가했던 나라가 바로 조선이었다.

  조선이 건국되기 1,500년 이전에 이미 서양의 플라톤이라는 사람이『국가(Politeia)』라는 책을 쓰면서 이상국가의 실현을 위해서는, 진정한 학문이며 인생지도의 지침, 인간형성의 힘으로서의 철학으로 국가지배가 통일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철인정치(哲人政治)를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플라톤의 이상 국가는 동 ․ 서양을 통틀어 쉽게 등장하지 않았고 굳이 언급한다면 조선이 가장 적합한 사례일 것이다. 하지만 플라톤의 이상 국가 자체가 문제가 있는 만큼, 조선이라는 나라에는 문제가 많이 있었다.

  중국사상 가장 약한 왕조를 흔히 송(宋)에 비유하듯이 평자는 한국사상 가장 약한 왕조는 조선(朝鮮)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송은 당대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이었기 때문에 송의 경제력은 동아시아 전체의 경제활동에 있어 중요한 요소였지만, 조선은 당대 국제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국제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던 미비한 존재였다. 그러면서도 대마도의 사신이 찾아와 조선왕을 황제 대하듯이 깍듯이 모시자 기분 좋아 엄청난 하사품을 내리며 자기만족을 해야만 했던 나라가 바로 조선이었다.

  철저한 사대주의 정책을 펼치면서 성리학의 실현이 지상 최대의 과제였던 나라이면서도 내심으로는 허황된 꿈을 꾸던 나라, 그런 조선에 대해서 평자가 유일하게 자랑하고픈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심오한 성리학의 세계일 것이다. 유교의 본고장이 아니면서도 이미 당대 동아시아에서 성리학의 본질과 핵심을 꿰뚫고 가장 잘 이해하고 있던 나라는 바로 명이 아닌 조선이었다. 그런 자부심 속에서 소중화(小中華) 사상이 발현되어 현실감각을 잊어버린 채 청(淸)에 대항하는 우를 범하기는 했지만 조선의 성리학과 학문적 성과는 세계사에 내놓아도 될 정도의 자랑이라고 본다.

  평자가 가장 처음 조선시대를 다시 보게 되었던 것은 송자라고 불리던 송시열이 조선왕조 500년에 끼친 영향이 엄청났었다는 사실이었고, 또 하나가 바로 조선후기 유학자들의 삶에 대해 알게 되면서부터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이미 간서치(看書痴), 즉 책만 읽는 바보 이덕무에 대한 산문집을 보면서 조선시대 유학자들에 대한 생각을 달리한 바 있었다. 조선의 몰락을 성리학에서 찾을 수 있으면서도 조선의 발전을 성리학에서 찾을 수 있는 모순은, 바로 이들 유학자들에 대해서 올바르게 알지 못하면 풀 수 없는 과제라고 생각하면서 약간의 서평을 쓸까 한다.

        Ⅱ. 책의 구성과 시각

  책은 전체적으로 조선후기 몇몇 유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테마별로 정리해서 싣고 있다. 목차를 본다면 다음과 같다.

         1. 벽癖에 들린 사람들
                미쳐야 미친다
                굶어 죽은 천재를 아시오?
                독서광 이야기
                지리산의 물고기
                송곳으로 귀를 찌르다
                그가 죽자 조선은 한 사람을 잃었다
 
         2. 맛난 만남
                이런 집을 그려주게
                산자고새의 노래
                어떤 사제간
                삶을 바꾼 만남
                실내악이 있는 풍경
                돈 좀 꿔주게
                노을치마에 써준 글
      
         3. 일상 속의 깨달음
                연기 속의 깨달음
                그림자놀이
                천하의 지극한 문장
                신선의 꿈과 깨달음의 길
                세검정 구경하는 법
        
  한양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저자는 평소 자신이 공부하던 몇몇 조선 후기 산문에 대해 이미 책을 낸 바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일련의 집필과정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면 될 듯싶다. 특히 불광불급(不狂不及), 즉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 한다는 주제 아래 언뜻 보면 천재(天才)이고, 언뜻 보면 기인(奇人)이라 불릴 수 있는 인물들을 한데 모아놨기 때문에 조선후기 유학자들의 전체적인 학풍이나 사상적인 면을 알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저자는 첫 번째 테마로 벽(癖), 즉 일종의 마니아적인 인물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미쳐야 미친다, 라고 하는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관통하는 주제에 가장 잘 맞는 내용들이 실려 있다. 그러면서 그는『벽전소사(癖顚小史)』라고 하는 명말청초의 저서에서 나온 유옹(劉邕)이라는 인물을 언급하고 있다. 그는 부스럼 딱지를 잘 먹는 벽, 즉 창가벽(瘡痂癖)이 있던 인물인데 생각만 해도 메스꺼울 정도다. 저자는 이 책에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벽’이며 그 벽이야말로 18세기 지식인을 읽는 코드라고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유옹을 언급하며 그런 변태적이고 엽기적인 벽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뜻을 내보이고 있다.

  저자는 어쩌면 뭔가 하나에 미쳐 그 분야에서 최고로 칭해질 만큼의 마니아적 경향을 보였던 조선 후기 지식인들을 언급하면서 오늘날 지식인들에 대한 경고와 귀감의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실제 저자가 언급하는 이런 인물들은 최근에야 일반인들이 주목할 정도로 그동안 무관심했던 것이 사실이며 실제로 천재적인 능력과 뭔가 한 가지 분야에서 보여준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었음에도 세상에서 괴리된 채, 사회에 수용되지 못한 인물들이 많았다. 성리학이라고 하는 사상적 틀 안에 갇힌 채 그 재능을 썩혀둔 셈이다. 그리고 조선 후기 지식인들의 그런 천재성을 수용하지 못한 조선은 근대화의 이행이 늦어져 오늘날 후손들에게 뼈아픈 일제강점기라는 역사를 전해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두 번째 테마는 ‘맛난 만남’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다. 얼핏 발음하면 앞단어와 뒷단어는 큰 차이가 없다. 그러면서도 만남이라는 제재를 맛나다는 미감(味感)으로 표현한 것 또한 감칠나다. 그는 조선 후기 지식인들이 주고받았던 편지나 산문, 시를 통해 그들만의 정신적 공유를 언급하고 있는데 그로 인해 인연과 만남이라는 것이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소중하고 또 가치 있는 것인지 언급하는 것 또한 빼먹지 않고 있다.

  아마도 첫 번째 내용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다 보니 다소 조선 후기 지식인들에 대한 일면만 보게끔 할 가능성이 있어 두 번째 테마에서 이런 소재를 선택한 것이 아닐까 싶다. 두 번째 테마까지 지나치면, 조선 후기 지식인들이 어떤 한 분야에 있어 천재라고 불릴 정도의 수준에 있었고 그만큼 일반인들과 달리 다소 특이한 생활을 했다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런 그들이 얼마나 인간적이며 정감 있고 운치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었으며 학문을 단지 앎에서 만족하고 끝나는 것이 아닌 실천했던 인물들인지를 알게 해 준다. 조선 후기 지식인들은 벽이 있을지언정, 진정으로 지성인(知性人)이 되고자 했던 인물이며, 그 안에서 삶의 여유를 찾았던 인물들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 테마로 넘어오면 일상 속의 깨달음을 언급하는데 이는 첫 번째와 두 번째 테마를 읽으면서 궁금했던 부분을 해소해준다. 즉, ‘어떻게 마니아였던 그들이 삶의 운치와 인생의 본질을 꿰뚫을 수 있었을까?’에 대한 답이 마지막에 놓여있다. 연기를 통해서 깨달음을 얻은 이옥과 박지원의 소품산문, 그림자를 통해서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앎을 얻었던 이덕무와 정약용의 산문, 이상한 방식으로 기행문을 씀으로써 천하의 지극한 문장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던 홍길주, 유학자의 생각으로 보기 힘들 정도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글을 썼던 허균, 정약용의 유기(遊記)를 통해서 남들과 다른 관점과 생각을 갖고 있던 것까지, 어느 것 하나 평범한 것이 하나도 없다.

  저자가 말하고 있듯이 고수는 확실히 다르다. 그들의 눈은 남들이 다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들을 단번에 읽어낸다. 즉, 핵심을 한 번에 찌르는 촌철살인(寸鐵殺人)하면서도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지극한 수준까지 이르렀기 때문에 비범한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렇게 세 가지 테마로 준비한 몇몇 인물에 대해서 알아가다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정말 이런 사람들이 조선 후기에 그렇게 많았단 말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중국의 명사나 위인은 많이 알면서도 조선의 이런 훌륭한 조상님들에 대해서는 모르고 지냈던 것이 한없이 죄스럽게 된다. 그렇기에 이런 분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수용하지 못 했던 조선사회가 더욱더 안타까운 것이다.

        Ⅲ. 비평

  이 책에 대해서 비평을 한다고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 책에 대한 평자의 느낌을 적는 것 이상으로 나오기는 힘들 것이다. 이미 조선 후기 지식인들에 대해 무한한 존경심과 경외심을 지니고 있는 터에, 더 이상 무슨 말이 나올 것이며 그 말들이 얼마나 객관적이고 냉정하겠는가.

  첫 번째 테마를 보면 천문학자 김영, 독서광 김득신과 이덕무를 비롯해 박제가와 노긍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평자는 과거 몇몇 역사기록에서 희대의 천재과학자 김영이라는 인물이 있음을 알고 관련 자료들을 찾아본 바 있다. 또한 이덕무에 대해서는 이미 다른 책을 통해서 접한 바 있기 때문에 그 인물에 대해서는 한없는 존경심을 품고 있는 터였고『북학의』를 통해 박제가라는 인물이 서양의 마키아벨리에 비견될 정도의 혁신적인 개혁가였음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더 주목되는 인물이 노긍이라는 사람이었다. 우선 그 이름을 처음 들어봤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지만 이가환이라는 인물이 노긍을 두고 ‘그가 태어나 우리나라는 한 사람을 얻었고, 그가 죽자 우리나라가 한 사람을 잃었다’고 평한 부분이 이채로웠다. 실제로 그는 관직에 나가 정치를 했던 인물이 아니라 홍봉한이라는 사람의 문객으로 수십 년간 살았던 사람이다. 그리고 과거 시험장에서는 답안지를 팔아 선비의 기풍을 무너뜨렸다고 하여 귀양살이까지 했던 인물이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장에서도 커닝을 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시험 답안지를 대필하던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이 책을 보면서 처음 알았다.

  그런데 이가환은 왜? 저자가 소개한 그의 글을 보면 하나같이 수천 년 세상을 살아본 신선이 인간사는 부질없다는 투로 쓴 것들이다. 그런 사람에게 과거가 무슨 소용이며, 현세의 영욕과 부귀영화가 다 무엇이었겠는가. 그러니 막돌이라고 하는 자신의 노비가 죽자 거침없이 제문을 지어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노비에게 제문을 지어준 것도 충격이지만 그 내용이 어찌나 애절한지 진심을 다해서 썼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가환은 역대 뛰어난 인재들을 비유하면서 노긍을 높이 평가했음에도 그는 세상에 수용되지 못한 천재였기에 결국에는 과거 시험을 대필했다는, 선비로서는 치명적인 죄목을 안고 귀양을 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극히 인간적이면서도 현명했던 노긍, 첫 번째 테마에서 두 번째 테마로 넘어가는 마지막 부분에 노긍을 실었던 것이 우연인지, 의도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절했다고 생각하며 두 번째 테마로 넘어가겠다.

  두 번째 테마에서 가장 눈여겨 본 부분은 ‘삶을 바꾼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정약용과 강진 시설 제자인 황상에 대한 부분이었다. 강진으로 유배된 정약용을 두고 천주쟁이라고 그 지역 사람들이 꺼려하던 터에 15살의 황상은 서울에서 유명한 선생님이 오셨다는 말에 거침없이 찾아가 공부 가르쳐주기를 청했다. 머리가 나쁘고 앞뒤가 꼭 막혔고 분별력도 없다고 하면서 자신을 소개한 순박한 시골 청년은 주눅이 든 채, 정약용 앞에 나섰고, 그런 황상에게 정약용은 첫째도 부지런함, 둘째도 부지런함, 셋째로 부지런함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용기를 복돋아준다.

  정약용의 이런 가르침을 황상은 평생 동안 잊지 않았으며 61년이 지나 76살이 되었을 무렵에는 스승과 자신의 첫 만남을 기억하며「임술기(壬戌記)」란 글을 썼다. 자신이 76살이 된 지금까지 스승이 남겨주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뼈에 새겨 자나 깨나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삶을 살아왔노라고 눈물겹게 고백하는 그의 글을 보고 있노라면 사제 간의 애틋한 사랑과 존경이 어느 정도까지 달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후 정약용이 병중에 있던 때, 쉰이 넘어간 옛 제자는 스승이 계시는 곳으로 직접 찾아가 문안을 드릴 정도로 열성을 다 하였으며 정약용이 세상을 뜨자 스승의 10주기를 맞아 다시 그 집안을 방문할 정도의 예를 다 하였다.

  아버지의 제자가 이처럼 잊지 않고 집을 방문하자 그 아들 정학연은 신을 거꾸로 신고 마당으로 뛰어 내려갈 정도로 황상을 반겼다. 이제 황상은 얼굴은 검게 그을렸고 발은 부르튼 예순에 다다른 늙은이였으니 정학연이 그런 황상을 붙잡고 울지 않았으면, 그게 더 이상했을 것이다. 그리고 황상의 손에는 아버지가 준 부채가 있었고, 그 아들은 거기에 시를 써서 두 집안 간에 계를 맺어 이제부터 자손 대대로 함께 할 것을 다짐했다고 한다. 정학연이 66살, 황상이 61살 때의 일이니 정약용이 가르쳐준 부지런해라는 조언이 순박한 시골 청년의 인생을 뒤바꿔놓은 셈이었다. 그리고 그 인생은 후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면서 사세지간의 인연이 어느 정도까지 이를 수 있는지 전해주고 있다.

  세 번째 테마에서는 대부분이 좋은 글들이어서 딱히 뭐가 좋았다, 라고 꼬집기 힘들 정도였는데 굳이 언급한다면『연경(烟經)』이라는 책을 쓸 정도로 골초였던 이옥이 연기를 두고 송광사의 행문 사미에 나눈 대화가 가슴에 와 닿았고, 독특한 기행문을 써서 글이란 어떤 것인지 알려준 홍길주의 기행문이 여운에 남는다.

  먼저 이옥의 경우는 그가 불교의 연기설(緣起說)을 연기(煙氣)에 빗대어 행문 사미에 불교적 사상에 대해 논쟁하는 내용이 절묘한지라 놀랐다. 그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이옥이 유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불교에 이토록 정통하다는 것이 신기했었다. 물론 이덕무의 경우에도 역사, 정치, 군사, 경제, 사회, 사상 그 어느 분야에서 빠지는 법 없이 박학다식했었기에 유학자들이 성리학 이외에 대해 정통하다 해도 신기할 것은 없겠지만 이옥이 대화한 상대가 불가에 입문한 행문 사미라는 점에서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연기설과 담배 연기, 향의 연기를 비교하면서 행문 사미를 옴짝달싹 못하게 몰아치는 대목을 보면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일반적으로 기독교는 1년, 도교는 5~6년만 공부해도 알 수 있지만 불교는 20년을 넘게 공부해도 그 본질을 꿰뚫기가 어렵다는 말을 할 정도로 불교가 이룩한 종교로서의 사상적 체계는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불교적 사상에 대해서 일부분이지만 자신이 마니아적으로 매달린 담배를 통해서 해석해낸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만 많이 쌓여서 될 부분은 아닐 것이다.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옥은 결국 행문 사미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지금까지 얻은 깨달음이 잘못되었다고 고백하게끔 만들 정도였으니 어찌 이옥이 대단하지 않으리오.

  게다가 홍길주는 ‘문장은 다만 책 읽는 데 있지 않다. 독서는 단지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산천운물(山川雲物)과 조수초목(鳥獸草木)의 볼거리 및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들이 모두 독서다’라고 하면서 정말 그 깊이를 알기 힘들 정도의 독서관을 역설한 인물이다. 저자 역시 2년째 대학원 제자들과 홍길주의 수필을 공부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 생각의 깊이와 너비에 감탄한다고 하면서 그의 생각은 언제나 신선하다고 평하고 있다.

  저자는『수여방필(睡餘放筆)』이라는 글에서 홍길주가 쓴 제목도 없는 여행기를 발췌해서 책에 실었다. 그러면서 세상에 어떻게 글쓰기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지 놀라면서 글을 읽고 안절부절 어쩌지 못하다가 원문을 정리했다고 한다. 대체 어떤 글이었기에 이토록 저자가 놀랐는지 궁금해서 들여다본바, 정말로 폐부를 찌르는 무엇인가를 전해주는 글이었다. 전체적인 내용은 홍길주 삼형제가 함께 했던 두 차례의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여행에 대한 이야기인데 성동격서(城東擊西)라는 표현이 이런 글에 어울릴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홍길주는 여행기를 쓰면서 다소 지루할 수도 있는 문장에 긴장감을 주기 위해 같은 것 같으면서도 같지 않고, 다르면서도 다르지 않아야 함을 강조하고 글의 말미에는 여운을, 글의 중간 중간에는 파란과 복선에 대해서 설명해놓고 있다. 모두 여행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중심으로 말이다. 이처럼 아주 같다고 해도 안 되고, 같지 않다고 해도 또한 안 되는 것이야말로 ‘천하의 지극한 문장’이라고 설명하는 과정이 여행을 통해서 드러나게 되고 보는 이로 하여금 홍길주 역시 그런 식으로 이 여행기를 썼음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정말 천재는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지 적절하게 알려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Ⅳ. 맺음말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천재(天才)’, ‘기인(奇人)’ 당시 지식인들은 이런 말을 듣고 싶어 했을까? 혹은 이런 말을 들으면서 살았을까? 아니면 이덕무처럼 스스로를 ‘간서치(看書痴)’라 할 만큼 겸손하면서도 사회에 저항적이었을까? 모를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들이 평자 같은 범인이 함부로 언급할 정도로 뛰어난 인물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전혀 우리와 상관없는, 우리와는 다른 삶을 살았던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아님을 명심해야만 할 것이다.

  다만, 조선 후기, 그들을 수용할 포용력과 능력이 없던 사회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일반인과 다른 괴리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것뿐이다. 그 당시, 파격이고 혁신이고 세상을 뒤엎을만한 혁명적인 사고방식으로 취급받으며 위험하게 여겨지던 것들이 지금 보면 얼마나 선구적이며 보는 이로 하여금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하는가.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벽(癖)이라는 겉포장에 둘러싸여 특이하게 취급받고, 또 수용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평자가 조선사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고, 조선사에 대해 긍정적은 커녕, 객관적으로 평가를 내리기도 힘든 상태에서 조선 후기 지식인들의 삶에 대해 논하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모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의 삶은 당시에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지금 후손들의 눈에는 굉장히 진실되고 매순간 노력하고 긴장하면서 나태해지지 않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평생 학문을 연구하고 학문을 실천하고 지식이 아닌 지성을 향해 전진했던 조선의 성리학자들. 그런 그들의 삶에 대해 잘 묘사하고 있는 이 책은 하나의 산수화처럼 보는 이로 하여금 잔잔한 여유와 만족감을 주는 동시에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기풍을 뿜어내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끝으로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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