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전'. 제목만 봐도 전쟁영화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포스터를 보면 한국전쟁에 대한 영화라는 것도 쉽게 알 수 있다.
휴전선을 따라 지겹게 지도에서 한줌 정도 되는 땅뙤기를 빼앗기 위해 싸우는 고지전. 한국전쟁을 통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 것이 바로 고지전이다. 우리나라에서 한국전쟁을 다룬 몇몇 영화가 있지만(최근에 개봉한 영화로는 <포화 속으로>나 <적과의 동침>이 있겠다), 영화 속에서 고지전에 대해 묘사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일단 소재부터 독특했다.
거기다가 전쟁의 시간적 배경 또한 아주 독특하다.
전쟁 초반을 다룬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시점을 다룬 것도 아니다.
이 영화는 전쟁이 끝나가는 시점, 그것도 휴전협정에 조인이 된 다음부터 치열한 고지전을 그리고 있다.
영화에 대한 대략의 줄거리는 다음에서 검색한 것을 그대로 옮겨본다(클릭).내용은 대강 이러하다. 애록고지는 가상의 공간인데(감독이 Korea를 뒤집어서 aero-K라고 했단다. 머리 좋은데? ^^), 일단 동부전선의 실제 상황과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뭐 전쟁 중이기에 나이 어린 청년이 대위가 되고, 이등병에서 중위로 특진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조금 과장된 측면도 있다. 암튼, 그런 특진 과정이 중요한 것은 아니니깐 생략하도록 하겠다. 일단 영화를 보면서 필자가 감상 포인트로 삼았던 몇 군데를 언급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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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2월, 휴전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는 가운데 교착전이 한창인 동부전선 최전방 애록고지에서 전사한 중대장의 시신에서 아군의 총알이 발견된다. 상부에서는 이번 사건을 적과의 내통과 관련되어 있다고 의심하고 방첩대 중위 ‘강은표’(신하균)에게 동부전선으로 가 조사하라는 임무를 내린다. 애록고지로 향한 은표는 그 곳에서 죽은 줄 알았던 친구 ‘김수혁’(고수)을 만나게 된다. 유약한 학생이었던 ‘수혁’은 2년 사이에 이등병에서 중위로 특진해 악어중대의 실질적 리더가 되어 있고, 그가 함께하는 악어중대는 명성과 달리 춥다고 북한 군복을 덧입는 모습을 보이고 갓 스무 살이 된 어린 청년이 대위로 부대를 이끄는 등 뭔가 미심쩍다.
살아 돌아온 친구, 의심스러운 악어중대. 이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은표와 수혁은 고지 탈환 작전에 투입된다. 그러나 신임 중대장의 무리한 작전으로 엄청난 위기에 처하게 되고 악어중대의 어리지만 베테랑인 대위 신일영(이제훈)과 중위 수혁의 단독 작전으로 위기를 모면한 채 후퇴한다. 사사건건 자신의 의견에 반기를 들고 단독 행동을 하는 악어중대원들을 못 마땅해 하던 중대장은 중화군과의 함화공작 전투를 벌이던 중 자신의 명령에 불복종하는 중사 오기영(류승수)에게 사살위협을 가하고 그 순간, 수혁은 망설임 없이 중대장을 쏴 버린다. 눈 앞에서 벌어진 상관의 죽음, 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은폐하는 그들과 무표정한 수혁. 순식간에 하나가 된 중대 전체에 은표는 당혹감을 느낀다.
사라진 지난 2년, 그에게... 그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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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쟁의 본질을 그려냄
영화 초반부 북한군에게 사로잡힌 강은표는 북한군 장교 현정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너네들이 왜 지는지 알아? 너네들은 왜 싸우는지를 모르고 보기 때문이야~" 라고.
그렇게 영화는 초반부에 한국전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의문점을 던진다. 이후 풀려난 강은표는 인간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빨리 휴전이 되길 바라는 베테랑 군인으로 거듭난다. 그리고 강은표는 거기에서 죽은 줄로만 알았던 절친 김수혁을 만나는데, 수혁의 계급은 사병이 아닌 중위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또한 김수혁은 더 이상 전쟁에 두려워하며 벌벌 떨던 이등병이 아니었으며, 애록고지 전투를 담당하는 악어중대의 실질적인 리더가 된 상태였다. 그런데 알고보니 악어중대 간부와 몇몇 군인이 북한군과 내통(?)하고 있음이 밝혀지게 된다. 실상은 이렇다. 악어중대 부대원들은 어차피 고지를 서로서로 점령하는 마당에 보급품이나 각종 물자를 다 옮길 필요가 뭐 있냐? 싶어서 놔두고 갔다가 북한군이 이를 몽땅 가져간 사실을 알게 되었고, 훗날 그 구덩이를 통해 서로 먹을 것도 놓고, 편지도 전해주고 했던 것이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시공간적 배경을 좀 옮겨왔다고나 할까?
암튼 이를 두고 강은표 대위는 딜레마에 빠진다. 알고 봤더니 어리바리한 중대장이 오면 악어중대는 알아서 그를 제거하고,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투쟁해왔던 것이다. 오직 삶. 삶에 집착하는 악어중대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심, 상관에 대한 절대적인 상명하복 등은 일반 부대와는 조금 다르게 느껴지고 있었다. 필자는 어떻게 보면 이게 전쟁의 본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강은표 대위처럼, 국가를 위해, 휴전을 위해, 무의미한 죽음을 방지하기 위해, 大意를 지키기 위해 전쟁을 수행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개중에는 전쟁이 끝나갈 시점, 자신의 전공과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전쟁터로 왔다가 김수혁 중위에게 머리에 총 맞고 죽는 어리바리한 유재호 대위같은 사람도 있었을테고. 그렇지만 대다수의 군인들은 악어중대원들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전쟁이 다 무에 소용이냐? 그냥 죽지 않고 살아가고, 맡은 바 임무만 수행하면 돼지. 거기에서 북한군 옷을 입든, 북한군이 주고 간 술을 마시든, 북한군과 편지 및 사진을 주고 받든 그게 무슨 소용인가?
<웰 컴 투 동막골>이나 <꿈은 이루어진다>에서는 남한군과 북한군과의 만남이 다소 코믹스러운 소재로 그려지고 있지만, 여기에서는 충분히 가능성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어 더욱더 현실성이 부각되었다. 안 그래도 얼마전 공동경비구역 JSA와 같은 일이 실제 전방에서 벌어졌음을 확인한 기사(클릭)가 나기도 하지 않았는가. 단순히 <태극기 휘날리며> 혹은 <포화 속으로>에서처럼 영웅적인 주인공의 활약상만을 강조하지도 않고, 앞서 언급한 영화에서처럼 한국전쟁 및 그 이후의 분단상황을 코믹하게 그려내고 있지만도 않아서 그 점이 깊게 와닿았다.
2. 현실감있는 전장과 캐릭터 묘사
솔직히 이 영화 전체 분량에서 실제 전투씬은 그리 비중이 높지 않다(실제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실 것이다. 고지전이라 하면 말 그대로 구릉 정상부를 향해 미친듯이 돌격해서 적의 진지를 빼앗는 장면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 장면이 그리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고지전'이라는 제목에 걸맞는 분위기가 많이 나는 것이 사실이다.
사면부에 늘어서 있는 군막사들, 참호 속의 모습, 나이는 어린데 대위 계급장을 달고 있고 약(무슨 약인지 까먹었다)을 무절제하게 복용하면서 고통을 느끼지 못 하는 악어중대장. 평소에는 철없이 웃고 놀다가 전투에 돌입하면 진지하게 작전에 임하는 부대원들. '2초'가 여자라는 것을 알고 죽이지 못하는 강은표 대위. 전장에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싸우는 부대원들. 정전협정 후 12시간동안 한뼘이라도 더 차지해야 한다고 하면서 다그치는 연대장.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작전을 고집하는 펜대 굴려 진급한 중대장. '2초'라고 하는 스나이퍼의 존재(그간 한국전쟁 영화에서 스나이퍼에 대한 묘사는 너무 없었다) 등등.
군사훈련과 실제 전투가 영화의 태반을 차지하는 <실미도>라든가, 형제의 헤어짐과 상봉을 내내 대규모 전쟁과 함께 그려낸 <태극기 휘날리며> 등과는 많이 다른 스타일의 영화였다. 특히 전장 속의 인물 심리 묘사(개인적으로는 신임 중대장의 말도 안 되는 작전지시에 흥분하며 반박하는 신일영 대위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가 뛰어났는데, 이는 각 배우들이 그만큼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충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신하균과 고수의 극 중 대립(?)은 마치 <유령>에서 최민수와 정우성이 보여준 대립과 비슷한 느낌이 나기도 했다(물론 그보다는 긴장감이 덜 했지만. 그렇기에 여기에서는 결국 둘이 화해한다). 다양한 캐릭터의 배우와 적절한 대립구도는 각 배우들의 열연과 맞물려 영화 전체를 이끌어가는 큰 힘으로 작용했다(그리고 그런 면에서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7광구>는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이상 두가지 관전 포인트로 인해 필자는 영화를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다.
소재의 특이성부터 시작해서, 현실감있는 묘사, 기존 영화와는 많이 다른 시각으로 한국전쟁을 바라본 영화, 고지전. 관객수는 필자의 기대나 생각만큼 많이 모이지 않았지만 분명 잘 만들어진 멋진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번쯤 더 보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