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초에 본 한국 영화다. 개봉한지 2주 정도 지난 뒤에 봤던 것 같다.
원래 한국 영화는 유료 시사회를 보든가, 개봉 당일 혹은 개방한지 2~3일 내로 보는 편인데, 2주 정도 지나고 봤다는 건 그만큼 이 영화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된다. 주제도 그렇고, 내용도 그렇고 그닥 극장에서 볼 필요가 있을까~싶기도 했지만, 영화를 보러 갈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제외된 영화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보긴 봤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뭐 나쁘지 않네~였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을 지금껏 주욱 봐왔지만 우와! 재밌다! 라고 딱 느낄만한 것들이 많지는 않았다. 그냥 본 영화들이 많았다. 물론 봤을때 재미가 있다, 없다는 단순한 평가기준에 맞춰봐서 왠만한 영화들은 재밌다~정도로 분류가 가능했던 것도 사실이고. 암튼, 이 영화는 김기덕 감독이 3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라고 해서 연신 크게 광고를 때린 기억이 난다. 주제가 주제인만큼, 모든 배우들이 노개런티로 출연을 결정하기도 했고, 영화의 모든 스탭진들이 투자를 해서 만든 영화인만큼 영화 제작 당시 모든 사람들이 열과 성을 다해 제작한 영화임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그대로 뭐 윤계상과 김규리가 파격 연기 변신을 했다고 보기는 힘들었고, 김규리가 전라 열연 화제를 했다고 크게 대서특필할 필요는 없었을 것 같다.
암튼 영화 얘기를 약간 하자면...
영화의 스토리는 간단하다. 풍산(영화 속에선 이름이 없는 걸로 나온 듯 한데, 암튼 다음 영화 정보를 보니 '풍산' 역이라고 나와 있어서 일단 이렇게 가겠다)은 북한과 남한을 3시간만에 다녀올 수 있는(왕복 3시간인지, 편도 3시간인지 영화 속에서는 좀 애매모호하게 나오는 것 같다) 남한 내 유일한 연락책이다(헐리웃 영화 <트랜스포터>의 많이 변형된 한국 버전이라면 좀 오바일까? 암튼~). 그는 북한의 귀중품을 밀반출하는 일(물론 그게 뭔지 일일히 확인하지는 않지만)도 하고, 북한의 어린아이를 남으로 실어오는 역할도 하며, 남-북간에 못 만나는 이산가족들의 사진이나 비디오 등을 연결해주면 일반 사람들의 연락책 역할을 꾸준히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예기치 않은 일이 터진다. 국정원에서 풍산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에게 현재 남쪽에 망명 중인 북한 고위관리의 情人을 남으로 데려와 달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설마 설마 하다가 딱 하니 풍산이 미션 컴플리트! 를 하자, 떡 하니 그를 제거하려고 하고, 풍산에게 오히려 국정원이 당한다. 그와 동시에 북에서는 남으로 망명한 북한 고위관리를 없애기 위한 팀을 파견하고, 그 와중에 풍산은 북, 남 모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끊임없이 풍산에게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라는 질문을 하면서 북, 남은 그를 고문 혹은 압박하고, 그 과정에서 풍산은 인옥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결론은 Bad 엔딩이다! 북한의 고위 관리도 죽고, 인옥도 죽고, 종래에는 풍산도 죽는다. 그렇게 이야기는 마무리한다.
이 역시 별 4개 다 주면 좀 아깝고, 별 3개 반 정도를 주고 싶지만 암튼~
몇가지 부분에서 필자의 생각을 한번 적어보겠다.
1. 민감한 주제를 잘 풀어낸 영화
남-북 간의 이념 대립과 분단이라는 주제는 영화에서 극과 극으로 다루는 주제 같다. 일단, 6.25 전쟁 및 각종 폭탄테러 등 분단 상황을 대규모 블록버스터의 스타일로 풀어내는 전쟁-액션 영화들이 있겠고(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태풍, 고지전 등), 이처럼 남-북 간의 이념 대립에 주목해 몇몇 사람들의 심리나 활동상을 그려낸 다소 미시적인 시각의 영화들이 있는 것 같다(공동경비구역 JSA, 꿈은 이루어진다, 웰컴 투 동막골, 적과의 동침 등). 그렇게 봤을때 이번 영화는 영화 후반부에 코믹스러운 장면들(인옥을 죽이고 풍산의 삶을 엉망으로 만든 남-북한의 국정원 직원 및 암살단을 한방에 몰아넣고 무기를 하나씩 넣어주는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현재 남-북이 어떤 상황인지, 그 안에서 여러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지 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끊임없이 풍산에게 '너의 정체가 뭐냐!? 너 북이야, 남이야?!'를 강요하는 남-북한의 악당(?)들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우리들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하는 생각이 떠오르게 된다. 북이야, 남이야가 아직도 중요한가? 북한 사람이나 남한 사람이나 다 한민족이고, 윗대가리들의 정치적 선택 때문에 오늘날 이렇게 분단이 되어 있는데...정작 아랫 사람들을 그렇게 족치듯 옭아매고 통제하면서 그들에게 어느 편이냐! 를 묻고 강요하는 것이 참 재밌었다. 그러면서 풍산은 끝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자신이 누구이며, 어느 편인지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게 참 멋진 반전인 것 같다. 이렇게 감독은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에게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같다. 성분(?)이 확실한 주변인들을 두고, 그 사이에 성분(?)이 불분명한 풍산을 놓고 여러 인간 군상들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사이에는 젊은 요원(이름 모른다)과 인옥이라고 하는 중간자적 입장에서 양측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그런 인적 관계를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 '자아~이제 어떻게 되나 보자~'하는 것이 마지막 장면에서 절정에 치닫는 것이고.
그렇기에 오히려 독특했던 영화 같고(여타 영화처럼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이 좋거나 나쁘다, 혹은 남-북은 무조건 하나니깐 우리 다 같이 잘 살아보자~와 같은 스타일이 아니었다), 남-북의 민감한 상황을 영화에 은유적으로 잘 그려냈다는 느낌이 들었다(최근에 북한에서 금강산 일대의 재산권을 놓고 강제성을 부여한다는 기사를 봤다. 그러면서 북한은 여전히 군사도발을 감행하고 있고, 북측 정치권은 변화를 모색하고 있고, 남쪽에서는 북측의 수해에 지원하기 위해 국민의 혈세를 동원하려고 하고 있고...암튼 남-북한은 단순한 분단국가 이상을 넘어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 놓여있는데 이 영화는 그러한 상황을 잘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2. 상상의 스토리라서 허구가 너무 심하다?
아무리 특수훈련을 고도로 받은 정예라 하더라도 서울에서 평양까지 3시간만에 주파할 수는 없다. 당연히 이건 말이 안 되는 허구다. 거기다가 물건을 갖고 오는 것과 사람을 데리고 오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그렇기에 영화에서 이런 허구가 들어간 부분이 많은 것을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나? 아니면 일일히 지적하면서 비현실적이라 여겨야 하나?
먼저 북한의 국보급 불상을 풍산이 가져오게 되고, 이것을 남한 내에서 유통시키려는 일당이 사로잡혀 풍산에 대한 이야기가 국정원까지 올라간다. 여기에서! 풍산이 지금껏 여러번 남-북을 오고 가면서 유통시킨 물품이 많았을텐데 왜 하필 이런 식의 설정으로 그의 존재가 국정원에 알려져야 하나? 또한, 풍산은 집도 잘 갖추지 않고, 무슨 골방같은 곳에 살면서 벌어온 돈을 쌓아놓고 쓰지도 않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그가 아주 최신 설비로 무장하거나 그것으로 무얼 이루려는 것도 없는 사람이다. 당연히 그런 위험한 일을 하면서도 신분 노출에 대한 보호가 전혀 없었던 것인데, 저렇게 허술하게 그의 존재가 노출된다는 설정은 조금 억지스러웠다. 물론 그의 정체가 남이냐, 북이냐, 과거에 뭐 했던 놈이냐, 지금 뭐하는 놈이냐...등을 철저하게 비밀에 감춰 그를 통해 우리의 정체성까지도 고민하게 만드는 것은 좋았지만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은 정해져 있었어야 하는게 아니었나 싶다.
아이를 데리고 넘어오는 설정은 그렇다 쳐도 다 큰 성인 여성을 데리고 넘어온다니. 그것도 압록강 넘어 중국으로 가는게 아니라 남쪽 휴전선을 넘어서...중간에 지뢰가 터짐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지를 않나, 아주 난리도 아니다. 또한 남쪽 휴전선을 넘을 때에는 군인에게 사로잡힌 인옥을 풍산이 직접 빼내오기도 한다. 휴전선 부근에 주둔하는 남-북한군이 일반인 하나 어쩌질 못 하고 있으니 조금 어이가 없다는 생각도 해 본다. 이왕 남-북을 오가는 스페셜한 연락책이라면, 좀 더 프로페셜널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어땠는가 싶다. 물론 그런 것에 집중한다면 아무래도 영화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것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남쪽으로 망명한 고위 관리에 대한 경호라든가, 신변 확보 부분 역시 어색하다. 영화 속에 나오는 망명한 고위 관리는 거의 황장엽 급의 거물처럼 그려지고 있던데,(내가 알고 있는 거 다 말하면 서울은 불바다야! 뭐 이런 식의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의 情人이 북한에서 고이 살아있었던 것도 신기하고, 고위 관리에 대한 대접 또한 허술했다. 길거리를 가다가 총알 세례를 받는 장면이라니...쯧쯧. 너무 인옥에 대한 집착이라든가, 질투에만 눈이 먼 사람처럼 그려지는 것 같아서 그 점이 좀 안타까웠다. 물론 나중에는 회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끝이 나지만, 비현실적인 내용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또한, 약간 어이가 없었던 장면은 또 있었는데, 바로 북측 암살팀에 사로잡힌 풍산과 인옥이 그 절대절명의 순간에서도 서로 묶여 있는 몸으로 한데 엉켜 슬픈(?) 키스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이걸 보면서 2가지 생각을 했다. 지금 굳이 저 장면이 필요한가? 아니면 굳이 저 장면을 넣은 제작진의 의도는 무엇인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걸 단순히 어이없어~왜 갑자기 저래? 라고 하면서 욕하고 말 것이 아니라, 뭔가 숨은 뜻을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너무 생뚱맞아서). 그래서 필자가 내린 결론은...어차피 비현실적인 설정과 내용이기에 차라리 은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더 비현실적인 내용을 집어넣은 것은 아닐까? 하고. 그 키스는 단순히 두 남녀의 욕정을 묘사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 키스로 인해서 북에서 내려왔지만 정체성이 북인지, 남인지 불분명한 '인옥'과 남에서 살지만 북에 너무 자주 왔다갔다해서 그 정체성이 불분명한 '풍산'이 하나가 되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으며, 이는 곧 남-북이 지금도 서로 모순된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관계성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대립하고 있는 것(서로를 인정하면서도 인정하지 않는 뭐 이상한 관계? ^^;)과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끝내 그 두 사람을 죽음이 갈라놓게 되고...뭔가 암시하는 내용들이 많았던 것 같았다.
뭐 이 2가지 정도만 언급하겠다.
전체적으로 제작진이 함축적인 내용, 상징적인 의미를 많이 집어넣어 영화를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다보니 내용이나 소재 자체가 신선하면서도 허구인 경우가 많았고, 또 그 허구의 내용이 공감되면서도 이해가 되는 그런 영화였다. 우리나라이기에 나올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도 들었고, 이런 식의 내용을 좀 더 현실적인 분위기로 풀어내면 어떨까 싶기도 했다(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나온 내용이 당시에는 에이~라고 할만했지만 그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는 신문 기사를 본 적이 있다(클릭). 이처럼 남-북간의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조금만 더 현실적으로 접근해도 재밌는 이야기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최근에 본 한국 영화 중 가장 의미있는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덧글 1. 그나저나 '오다기리 조'가 여기에서 북한군 1역을 했다는데...나중에 다시 봐야겠다! 대체 어디서?! 왜??
덧글 2. 풍산개 관객수를 보니, 개봉 4일만에 28만명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25만명)을 돌파했지만 이후 68만 5천명을 기점으로 죽죽 줄어든 것 같았다. 아마 해리포터나 이후 필자가 쓸 대형 블록버스터의 등장 때문일 것이다. 김기덕 감독이 '한국 영화계에 고하는 김기덕 감독의 외침'이라는 성명서를 이틀 연속 냈다고 하지만 결국 관객들의 외면을 받은 것일까? 개인적으로 흥미있게 봤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의 성적이 그리 나쁘다거나 좋다거나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노 코멘트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