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더지 고고학
임효재 지음 / 집문당 / 2006년 1월
평점 :
품절


지금까지 원로 고고학자가 쓴 개설적인 내용을 담은 책들이 시중에 적지 않게 나온 편이다. 이미 필자가 서평을 쓴 바 있는 김병모 선생님이나 조유전 선생님을 비롯해서(『한국고고학개설』을 쓴 김원룡 선생님까지 친다면야) 아직 서평을 쓰지 않은 이선복 선생님까지 어떻게 보면 비슷비슷한 내용(혹은 구성)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다르기도 한 책들 말이다. 그렇게 봤을 때 오늘 필자가 서평을 쓰려고 하는『두더지 고고학』은 앞서 소개한 책들보다 조금 재미가 없는 책이라는 얘기를 먼저 하도록 하겠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김병모 선생님의 책처럼 저자(임효재 선생님)가 학문을 처음 시작해서 최근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그 내용이 소개되면서 저자 개인적인 생각이 곁들여져 있는 책으로 볼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조유전 선생님처럼 특정 주제에 따라 자신의 연구 성과를 정리했다는 느낌도 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 차이가 있으며 그 차이점이 이 책의 단점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겠다.

먼저 이 책은 김병모 선생님의 책과 달리 자신의 고고학 연구인생을 전부 소개하지도, 그렇다고 그 안에 자신의 감성을 풍부하게 담지도 않았다. 어찌 보면 저자가 연구를 진행하면서 당시 이슈가 됐던가, 아니면 유명했던 내용들 위주로 소개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며, 물론 저자의 생각이 포함되어 있긴 했지만 어떤 사실에 대한 짧은 코멘트 정도였기 때문에 그다지 심적으로 와 닿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조유전 선생님처럼 아예 한국 선사 ․ 고대사에 대해 특정 주제들에 맞춰 내용을 구성한 것도 아니고 시기적으로 구분한 것도 아니어서 약간 어정쩡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책 안에 도판이 너무 적어서 고고학 관련 개설서 중에서 따분한 편에 속하는 책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저자는 1960년대 대학교 3학년 시절 古 김원룡 교수님을 따라 강원도 춘천에 있는 교동 동굴 유적에서 완형의 빗살무늬토기를 수습하던 흥분된 기억이 엊그제만 같다고 하지만 이 책을 읽은 필자는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 하니 저자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럼 책의 구성과 내용에 대해 차분히 살펴보기로 하겠다. 일단 목차부터 살펴보자. 

1장 태고 밝히는 고고학의 신비
2장 신석기인의 세계
3장 벼농사 전파경로 바꾼 신자료
4장 고인돌 왕국
5장 한강유역의 고대 유적 발굴 성과
6장 일본 열도에 가득 찬 한국 문화의 숨결
7장 베일 벗는 중국 고고 문화
8장 스미스소니언에서 본 박물관의 세계
9장 국제 학술대회의 이모저모

먼저 1장에서 구석기시대 관련된 내용을 말하면서 저자 스스로 고고학을 어떻게 공부하게 됐고, 한국 구석기문화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인정받았는지를 언급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안에 ‘고고학 발굴에서 문제가 되는 여러 요소들’은 왜 들어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건 교재로 쓰이는 아주 딱딱하고 재미없는 고고학 이론서에나 들어가 있을 법한 내용인데 말이다. 물론 어느 정도 학술적인 내용을 가미하고자 한 저자의 의도가 엿보이기는 했지만 그 바람에 이 책의 집필 의도가 학술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것인지, 개설서로서 흥미 위주의 정보 전달을 하려고 했는지 애매모호하게 되어 버렸다. 차라리 발굴 과정과 관련된 도판이나 현장에서의 에피소드를 적절히 섞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신석기시대 이전에 구석기시대에 대한 얘기를 하고자 하셨는데, 이런저런 얘기들이 일관되지 않게 섞이는 바람에 장을 따로 하나 더 만들던가, 아니면 구석기시대 이외의 내용을 좀 줄이든가 했으면 더 나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강유역의 고대 유적 발굴 성과’라는 장도 조금 어정쩡한 느낌의 챕터였다. 저자는 자신의 연구 인생을 나름 시기적으로도 배열하면서 그 중 몇 가지를 묶어서 한국사에서의 시기(구석기-신석기-청동기-삼국시대 혹은 그 이후)와 비슷하게 맞추고자 했던 것 같은데 그러다보니 이런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5장에서는 방이동 ․ 석촌동 고분군 및 몽촌토성(백제), 아차산 일대의 보루(고구려), 아차산성(통일신라)을 소개하고 있어 신라 관련 유적은 아예 없었으며(물론 저자가 관련 유적을 발굴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만), 백제 민락동 유적이나 천안 용원리 고분의 경우 관련 전공자가 아니고서는 그다지 흥미를 갖고 접근하기 어려운 유적들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냥 저자와 관련 있는 유적 중에서 삼국시대 관련된 것의 자료를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을 꼽으라면 필자는 주저 없이 이 부분을 꼽고 싶다.

필자가 오히려 이 책에서 볼만한 부분이라고 여기는 곳은 뒷부분에 몰려있다. 6~9장이 바로 그 부분인데 먼저 6장에서는 저자가 일본에서 한국과 관련된 유물과 유적을 소개하고 있어서 그 점이 재밌었다. 특히 필자가 실견했던 유물과 유적에 대해 언급한 부분들이 많아서 친근하기까지 했다. 그 당시에도 요시노가리 유적에서 확인된 유병식동검과 세형동검, 유리질관옥 등에 대해 한국과의 관계성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과 얘기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국내에도 이러한 대단위 취락을 복원해놓은 유적공원이 하루빨리 조성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말이다(울산 검단리 유적이나 부여 송국리 유적을 복원하려는 계획이 있다고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논의가 진행된 단계인지 궁금하다). 또한 오키나와가 고려~조선시대때 한국과 지속적인 교류를 가졌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오키나와에서 한국계 빗살무늬토기가 나왔다는 것은 금시초문이었다. 물론 신석기시대에도 원양항해가 가능했지만 오키나와까지 갔으리라고는 생각지 못 했기 때문이다.

그밖에 지금은 다소 개방적으로 소개되었지만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깜깜무소식이었던 중국 고고학계에 대한 내용을 소개한 것도 흥미로웠다. 필자가 속한 연구소도 최근에는 중국학자들과의 교류가 활발한데 솔직히 동북공정을 비롯한 중국 내 정치적인 입김이 작용한 학문적 움직임만 아니라면, 중국 고고학계의 연구 성과들은 하나같이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중요한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본다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회가 많이 바뀌긴 했어도 학술적으로 여전히 중국 학계는 높은 벽을 쌓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한국과 일본이 꾸준한 학술교류를 통해 언젠가는 과거 한-일간의 가슴 아픈 역사적 과오에 대해 해결할 발판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과 달리 중국과 한국은 정치적으로 끊임없이 대립해야만 하며 그것이 학문적인 연관성에도 크게 작용할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또한 저자가 직접 참여하거나 관여한 각종 국제 학회 등에 대한 내용은 필자로 하여금 느끼는 것이 많게 하였다. 꾸준한 국제 활동을 통해 저자는 국제학계에서 한국 고고학의 위상을 드높이는데 노력했으며, 실제 한국 고고학계는 그러한 선학들의 노력을 통해 오늘날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북한 학자와의 학제간 교류나, 학회에서 중국 학계를 강도 높게 비판한 내용들은 차후 한국 고고학계가 어떤 장래성을 지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정치색이 강하게 투영된 북한학계지만 중국이나 일본 같은 외세의 역사왜곡에 맞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반자로서 같이 걸어 나가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한국 고고학계는 이제 막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고 있다. 저자가 언급했듯이 아직 학계의 70%는 전통고고학자이며, 10%는 신고고학자인 상황에서(나머지 20%는 중간 입장) 세계 고고학계의 학문적 경향을 따라가는 것은 너무 급진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외국과의 학술적 교류를 행함으로써 꾸준히 그 위상을 높이고 연구의 질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따로 적지 않은 장을 마련해서 이런 내용들을 담고 이런 부분들에 대해 고민한 것은 정말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을 비롯해서 외국 박물관에 비해 우리의 현실은 너무 열악하다~는 내용들이 나왔는데, 이 부분은 크게 공감하지 못 했다. 솔직히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경우만 해도 물론 규모가 거대하고 전시유물도 풍부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마케팅과 박물관 기획 ․ 전시와 관련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을 갔을 때 그 규모에 놀라기는 했지만 전시품의 질적인 면에서는 크게 감흥을 느끼지 못 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가면 또 다른 느낌일 테고 저자가 그 곳에서 연구 활동을 했던 것에 비해 필자는 관람객의 한사람에 불과했으니 이런 감상이 지금 무의미하겠지만 그렇다고 지금 가서 본다고 그때의 생각이 크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

또한 미국, 중국, 일본의 예를 들면서 한국의 박물관 수가 상당히 적다는 점을 문제라고 꼽았지만 박물관의 수보다 질이 어떠한지를 좀 따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도 싶었다. 솔직히 중국의 박물관 역시 최근 동북공정 등을 통해 유적을 개방하고 관람객을 유치하기 위해 잘 꾸며놓은 티가 나지만 시설이나 박물관 운영 시스템 측면에서 볼품없는 것들이 많은 실정이다. 또한 일본이 아무리 깨끗하고 정리가 잘 되어 있는 나라라고 해도 국립박물관은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적고, 지방의 소규모 박물관들은 우리나라와 별반 다를 게 없는데다가 볼만한 것도 별로 없어 크게 와 닿지 않는다. 미국만 해도 박물관 수가 1만개라고는 하나 그 안에 담고 있는 내용물이 어떤지도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여담이지만 <박물관이 살아있다>처럼 관람객이 없어 망해가는 박물관은 세계 어느 나라에 가도 다 있는 것이 아닌가? 어쨌든, 그 나라의 박물관 문화를 보려면 일단 국립박물관이 기준 지표가 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물론 우리나라 박물관이 아직은 유물을 전시하는 창고 같은 느낌을 지울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미국처럼 관광자원으로서, 상품자원으로서의 성격이 더 강할 필요도 없다고 본다. 여러모로 中道를 지키는 것이 가장 적절한 듯싶다.

암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었다. 앞서 필자가 소개했던 책들이 학술적인 내용이나 흥미 위주의 정보들을 적절히 섞어서 구성했다면, 이 책은 저자의 감상이나 정보, 학술적인 내용보다는 저자가 현재 한국 고고학계에서 느끼는 점, 비판하고자 하는 점, 한국 고고학계가 나아가야 할 점 등을 고민하고 정리한 측면이 강한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그리고 그러한 내용들이 모두 신문기사나 박물관 신문 같은 곳에 기사나 칼럼 형식으로 실렸던 것들 역시 우연은 아닐 것이다.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신문 기사를 정리한 듯한 책이지만(내용이 짧고 주제가 간단명료하며 도판이 적다는 점 등등) 일단 구성이 독특하고 현실적인 부분과 연계한 비판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 있으므로 그 점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한번쯤은 그러한 고민을 해봐야 하기 때문에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