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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 ㅣ 한 권으로 읽는 시리즈
이언호 지음 / 큰방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안타깝게도 또 하나 혹평을 가할 책이 생겼다.
아무래도 한국 역사소설계에서 연개소문 부문만큼은 '유현종의 망령'을 벗어날만한 책이 없는 것 같다. 참고논문 및 문헌(요즘은 역사소설 쓸때도 논문처럼 이런 걸 써야 하나 보다. 유행인가?)을 보니 신채호 선생님의「고구려의 대수 · 당 전역」과 유현종, 박혁문이 쓴『연개소문』이 이 책의 주요 골자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나마 논문 하나 인용한 것이 박형표의「연개소문의 서정국책과 대당 전역」이라는 논문인데 대체 어디에 실린 것인지를 모르겠다. 누군지도 모르겠고. 그 밖에 인용한 책을 보니 박영규가 쓴『고구려본기』에다가(정말 주인장이 대놓고 쓰레기라고 표현하는 책은 이 책이 유일한데...소설책 곳곳에 등장하는 지도를 보고 기겁을 했다) 평생교육개발원에서 나온『대인 사상 필승병법』, 김희영이 편저한『이야기 중국사』까지. 저자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황당했다. 역사소설 쓰는데 참고문헌을 기재할 필요는 없지만 이왕 기재할 바에야 뭘 좀 밝혀서 이로울때나 밝히지, 괜히 밝혀서 욕 먹을 바에야 왜 이런걸 밝히냐...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뭐 책을 제대로 읽기도 전에 이 책은 아니다~싶은 마음이 강했다. 책 겉표지를 보면 이런 문구가 있다. '수십만의 대군을 이끌고 침공해온 당태종을 격퇴하고 오히려 북경까지 추격해간 고구려의 영웅 연개소문. 그는 정치를 잘못하거나 패전할 경우 왕을 추방했던 고구려의 전통에 따라 유약한 영류왕과 호족들을 제거하고 오직 고구려가 대륙의 주인이 되기만을 염원했다.' 정말? 한번 저자한테 반문해보고 싶었다. 연개소문이 북경까지 추격했다는 것도 의문이고, 고구려에 저런 전통이 있었나? 싶은 생각도 있고, 정말 연개소문이 고구려가 대륙의 주인이 되기를 염원했는지도 모르겠다. 뭐 하나 제대로 맞아들어가는게 없다. 저자 약력을 보니 원래 영문학 전공이었는데 뒤늦게 중국문학에 심취해서 중국소설을 주로 연구했단다. 책을 읽는 내내 그저 그런 역사소설과 별 차이를 못 느꼈다. 아마도 중국소설을 연구한 부작용(?) 때문인 것 같다.『삼국지연의』가 끼친 폐해(?) 때문에 한국 역사소설이 다 그저그런 작품에 그치고 말았던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지 않은가.
책은 전체적으로 22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12장이 고-수 전쟁을 무대로 하고 있다. 그럼 나머지 10장은? 1차 고-당 전쟁을 끝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정말 연개소문을 다룬 역사소설을 거론할때마다 주인장이 누누히 언급하는 것이지만 왜 연개소문이 고-수 전쟁에서 활약을 하는건지 대체 알 수가 없다. 연개소문이 무슨 불사신도 아니고 거 참. 665년 무렵에 사망한 연개소문이 612년 수 양제의 고구려 침략때 이미 전공을 세웠다면...연개소문은 590년대에 태어나서 거의 80세 가까이 살았단 말인가? 유현종이 처음 설정한 내용 그대로 후대의 모든 작가들이 다 따라하는 작태를 보니 한심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기본적인 골자를 바꿔야지, 기본 줄거리는 다 따오고 거기다가 논문 1편에 책 몇권 더 본 다음에 세부적인 내용 조금 바꾼다고 책이 달라진단 말인가? 그럴려면 대체 왜 책을 내고, 그 책을 내주는 출판사는 또 뭔지 당최 알 수가 없다.
진짜 할말이 없지만 그래도 굳이 몇마디 해보겠다. 전체적인 내용을 보면 그 내용이 유현종과 박혁문의『연개소문』을 요약한 것에 불과해서(주로 유현종) 한마디로 '식상하다.' 그나마 많은 내용을 줄이면서 내용이 더 이상해진 느낌까지 들었다. 마지막은 또 당 태종이 죽음으로써 끝을 맺고 있어서 이 책의 제목이 연개소문인지, 이세민인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대체 어떤 생각을 갖고 이 책을 쓰기 시작했는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연개소문 개인의 심리 상태를 제대로 묘사하지도, 당시 상황을 생동감있게 묘사하지도, 당시의 처절한 전쟁 상황을 다이나믹하게 묘사하지도 않았는데...대체 어떤 것에 주안점을 뒀는지 궁금하다. 그만큼 책을 읽는 내내 별로 감흥도 없고, 뻔히 아는 내용(이미 다른 소설책에 다 나온 내용이니까)만 계속되니까 재미는 당연히 없었고 나중에는 책을 다 읽자~는 의무감마저 희미해져 버렸다.
저자는 당 태종의 죽음이 고구려인의 독화살에 의한 것이다. 황량대가 중국 내지 곳곳에 있다, 중국 내지에 고려(高麗)라는 지명이 있는데 다 연개소문이 점령했던 흔적이다...라는 얘기를 하면서 연개소문 영웅화 작업에 착실하다. 권말에 붙이는 글...이런 걸 차라리 쓰지 말지~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책일 뿐이다. 저자는 분명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하고 싶어서, 고구려의 위대한 역사를 알리고 싶어서 이 책을 쓰고 연개소문을 재조명하려고 했는지는 몰라도 정작 그 결과물은 최악이었다. 오히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픽션으로 봐달라고 호소하는 편이 더 나았다. 어설프게 이런 식으로 글을 쓰면 나중에 이 책을 읽고 잘못된 생각을 품게 될 독자들에게 미안해야만 할 것이다. 왠만하면 이런 혹평 잘 가하지 않는데, 이 책은 정말로 아니다. 한번 읽어볼만 하다~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저자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책 다시는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