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개소문
강무학 지음 / 문예춘추(네모북)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알고보니 저자는 이 책을 먼저 쓰고 그 다음에『광개토대제』를 썼다. 그러면서 SBS 드라마〈연개소문〉을 책으로 읽는다는 광고도 잊지 않고 있다. 이 책이나, 그 책이나 사극 방영과 맞물려 출간된 책이다...라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었다. 대체 누구길래 이렇게 책을 쓸까~하는 생각에 이리저리 검색해보니 역사 관련된 책이나 소설을 꽤 썼음을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이 2권의 책만으로도 저자의 사관(史觀)을 알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얼핏 지나가다가 확인하고 어이가 없었던 사실은 이 책과『광개토대제』의 겉표지가 같다는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무슨 시리즈물이라면 모를까 서로 다른 인물에, 서로 다른 시대를 다룬 서로 다른 책의 겉표지가 왜 같을까? 어이도 없었고, 황당했고...암튼 그런건 신경쓰지 말고 책을 펼쳤다.

저자의 머리말을 주욱 읽어봤다. 저자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많은 참고자료들을 읽어본 것 같았다. 또한 본인 스스로 전쟁 장면도 고대의 병법이나 전술에 의거해서 구성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픽션적인 요소가 없을 수는 없지만 최대한 진실을 묘사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고자 했음을 강조했다. 어느 정도의 안목으로 당시 상황을 봤을까~라는 생각에 겉표지에서 느꼈던 점은 무시하고 다소 기대감을 갖고 책장을 넘겼다. 일단 등장인물들을 주욱 봤는데 이내 애초의 기대감이 부질없는 것임을 느꼈다. 일단, 연개소문을 태대막리지 장군이라고 소개한 점, 막리지라는 직함의 용어 사용에 대한 지식이 미숙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연태조를 동부대인이자 동부총관으로 소개하고 있고 남수북공파의 주장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남수북공이니, 서수남진이니 하는 표현은 당시 고구려의 대전략(大戰略)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정의를 좌무위장군 겸 대막리지라고 소개한 점도 의아했다. 좌무위장군이 고구려 고유의 관직이 아닌데 차라리 사료에 나오는 것처럼 대대로로 등장시키는 것이 나았을 것 같았다. 그리고 고-당 전쟁시 당나라측 장군을 이정이나 이개적(가공의 인물), 이세적 등으로 한정시킨 것도 조금 의아했다. 고-당 전쟁은 몇명의 장군이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맞붙은 전쟁이 아니라 각국이 수십명의 내노라하는 장수들로 하여금 수십만의 대군을 지휘하게 했던 대전이기 떄문이었다. 암튼 등장인물 소개부터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내용상 독특한 점을 꼽자면 기존의 연개소문 관련 역사소설(뭐 대부분 유현종의 아류작들이지만)과 비슷한 내용을 담으면서도 다른 스타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TV 드라마〈연개소문〉에서 연개소문이 어린 시절 김유신 집에서 하인 생활을 하는 것으로 설정해 많은 욕(?)을 먹었고, 유현종이 그의 소설에서 연개소문이 젊었을 적 당으로 건너가 이세민과 그 일당과 친분을 맺는 내용이 나온 것(드라마에도 반영된 내용이지만)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그와 약간 다르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물론 갓쉰동이가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연개소문이 어릴적 사부의 뜻에 따라 신라인 집에서 일부러 하인 생활을 하는 설정을 했다. 당으로 떠나는 내용은 없고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연개소문이 어릴적 타국에서 고생을 하고 돌아온다는 설정은 변하질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마 이는 연개소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사료가 없다는 점, 그에 대해 신채호 선생님이 갓쉰동전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 연개소문이 아버지의 직위를 이어받는 과정이 순탄치 못 했다는 점 때문에 생겨난 일종의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차후 작품에서도 계속 이런 설정을 지속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또 하나 눈여겨볼 부분은 돌궐- 당의 전쟁에서 돌궐의 원병 요청과 맞물린 삼국의 국제정세를 중요한 시대적 배경으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당시 시대적 배경상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기에 이런 소재 선택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젊은 연개소문이 돌궐로 건너가 돌궐병을 이끌고 뛰어난 전략전술로 당군을 궤멸시킨다는 설정은 다소 의아했다. 아마 저자는 연개소문의 젊은 시절에 대한 묘사를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하기 위해서 괜찮은 소재를 선택한 듯 하지만, 잘 활용을 못 한 것 같다. 오히려 연개소문의 젊은 시절에 대한 묘사가 필요했다면 젊은 시절 잦은 전투의 참여나 사냥, 고구려 귀족으로서의 정규교육을 받는 모습 등을 표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기존에 흔히 접했던 연개소문 관련 소설이나 드라마와는 다소 차별성을 둔(두고자 노력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지만) 점은 긍정적으로 봐줄만 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그보다 더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일단, 연개소문이 어느정도 정치적 입지를 획득하기 전까지 고구려 내부적인 정치적 분열이라든가, 연개소문이 고난을 이겨내는 장면 묘사에 주력하고 있어 전체적인 분량에서 연개소문의 활약상이 그닥 많지가 않다. 연개소문이 정권을 잡고 고-당 전쟁을 수행하는 분량은 전체 내용에서 1/3 정도가 채 되지 않는다. 그리고 저자의 초반 장담과는 달리 다소 허술한 용어 사용이나 구성 등이 계속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육화진이니 뭐니 제갈공명이니 뭐니하는 표현도 그렇고,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베고 바로 태대막리지에 올랐다는 설정도 그렇고 저자가 과연 관련 사료들을 제대로 살펴봤을까~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그리고『광개토대제』에서는 더 문제였던 부분(아마 관련 사료가 더 적어서 그랬겠지만), 지극히 중국적인 시각이나 표현 등을 여과없이 썼던 점도 이 책의 가치를 크게 떨어뜨리는 부분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이 책의 메인이라 할 수 있는 고-당 전쟁에 대한 묘사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전략전술은 커녕 당시 전쟁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한 상황에서 쓰여진 글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내용이 엉성했다. 태종의 오른팔과 왼팔로 이세적과 강하왕 이도종만 등장하는 것도 우스웠고 말이다. 당시 당군에는 내노라하는 명장들이 수도없이 많았는데 말이다. 당시 군대의 규모라든가, 편제 등을 자세히 묘사하지 않은 것도 물론이요, 전쟁 묘사에 있어 긴박감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안시성 전투에 대해서도 진부한 내용만을 답습하고 있었고(물론 외굴과 내굴의 흐르는 물을 이용한 수공이라는 설정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한번의 전투로 대번에 쫓겨나는 당 태종에 대한 표현도 우스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주인장이 가장 황당해했던 사실은 연개소문이 당 태종을 쫓아 만리장성을 넘었다는 설정이었다. 당시 연개소문이 당 태종에게 항복 사절을 보내고 전쟁 배상금을 요구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고구려가 중국 내지까지 군대를 이끌고 갔다고 보는 것은 금물이다. 그럼에도 양자를 혼동하는 경향이 큰데 여기에서도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1차 고-당 전쟁이 끝나고 연개소문이 당에 항복 사절을 보내고, 백제와 신라와의 관계도 원만하게 마무리짓고 소설은 끝난다. 마치 이걸로 연개소문에 대한 얘기는 끝났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연개소문의 화려했던 업적과 전공은 소개하고 고구려를 멸망으로 이끌고 갔던 내용은 빼먹은 것이 눈에 빤하게 보였다. 너무 의도적인 것 같아서 말이다. 물론 1권의 책에 다 담을 수 없다는 핑계를 댈 수는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분량에서 연개소문의 젊었을적 내용은 많이 싣고 고-당 전쟁 한차례만 치룬 뒤 서둘러 글을 마무리한 것은 누가 보더라도 의도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촉한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삼국지연의』에서 촉한의 멸망과 함께 이야기를 마무리했던 것처럼 말이다. 암튼 시작에 비해 말만 번지르르하고 허접하게 끝낸 글이었기에 읽으면서 점점 실망감만 커졌던 것 같다.

시대 조류에 휩쓸려 이런 책이 자꾸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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