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라미스 해전 - 세계의 역사를 바꾼 전쟁
배리 스트라우스 지음, 이순호 옮김 / 갈라파고스 / 2006년 1월
평점 :
품절


책 윗 부분에 조그맣게 한줄 써 있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 역사상 살라미스 해전만큼 정신의 힘이 물질의 양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드러난 적은 없었다.  헤겔 -

이 책을 사게 된 이유가 이 글귀 한줄이라면 우스울라나? 솔직히 주인장은 대규모 전쟁이나 세계사적 전환점이 될만한 決戰을 언급할때 한-중-북방이 뒤엉킨 것 말고는 크게 주목하지 않는다. 물론 현재 전쟁사 혹은 군사사 관련 서적에서는 그 반대 현상이 대부분이지만 말이다. 굳이 따지자면 카데쉬 전투나 알렉산더의 동방원정 같은 것은 분명 주목할만 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리스-페르시아 전쟁도 마찬가지고 말이다(이후 언급할 살라미스 해전을 포함해서). 그렇지만 정신의 힘과 물질의 양을 논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따질려면 고-수, 고-당 전쟁은 어떻게 평가해야 옳을지, 그 가치를 가늠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와 맞붙은 페르시아 원정군에 비해 수, 당의 원정군은 그 위력을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정예군이었는데 그런 수, 당과 맞붙었던 고구려를 어디 감히 그리스 (따위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거 봐라~한번 뭔말 해보나 보자!'라는 마음에 이 책을 집어들었다.

그런데 그런 마음가짐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책장을 넘길수록 책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고대 전쟁사의 권위자인데 이 책 한권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고 했다. 책장을 별로 넘기지 않았는데도 과연 그런 대접을 받을만 하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덧붙여 드는 생각은 김용만 선생님의『새로 쓰는 연개소문傳』과 상당히 유사한 내용과 구성으로 이루어진 책이라는 것이었다. 미리 말하지만 단언컨대, 주인장이 아는 한 전쟁사에 대한 책 중에서 이 정도의 Quality를 지닌 책을 주인장은 앞서 언급한『새로 쓰는 연개소문傳』말고는 지금까지 보질 못 했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아니 독특한 장점?이라면) 이 책은 B.C 480년 5~10월까지 벌어진 '제3차 그리스-페르시아 전쟁(크세르크세스의 원정)' 중 9월 25일 한나절 동안 벌어진 '살라미스 전쟁'에 대해서만 서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건 사료의 多少에 따른 결과물이겠지만, 하나의 전투를 갖고 이렇게 생생하게 묘사한 책은 분명 秀作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책 첫장에서 저자는 전쟁의 전체적인 일정을 소개하고 있다. 그 다음에는 해전에서 활약한 삼단노선(직접 제작한 배를 통한 여러 실험 결과 내용도 소개하고 있다. 물론 이 저작물을 위해서 제작된 것은 아니다)에 대해서 기초적인 내용을 제공하고 있다. 뒤이어 살라미스 해전 이후의 상황에 대해 가볍게 소개한 다음 본격적으로 B.C 480년, 전쟁이 벌어지려는 정황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책에서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문헌사료나 고고자료 이외에 아이스킬르소의 희곡이라든가, 다소 전설과 주관적 사상이 주입된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의 저작물을 주요 사료로 삼고 있었다. 즉, 중국식 史書(이건 비교적 정확하고 자세한, 사실에 근거한 기록물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와 고고자료로 점철된 역사책에 익숙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적지 않은 부분이 추정과 정황근거에만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할만한 책이라는 소리가 된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보다 생생하고 인간적인 묘사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즉,  쉽게 보기 힘든 사료에 의존한, 쉽게 보기 힘들 정도로 생생한 묘사가 돋보이는 책이라는 소리다. 암튼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하는 동안 저자는 주인장을 어느새 에게해로 이끌고 있었다.

The Advance (진격)
The Trap (함정)
The Battle (전투)
The Retreat (퇴각)

책의 각 章도 이처럼 운치가 있었다. 아주 당연한 이 4개의 장으로 저자는 살라미스 해전을 거의 완벽하게 재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묘사하고 있었다. 먼저 살라미스 해전에 대해 주인장이 알고 있는 지식이라고는 아테네를 주축으로 하는 그리스 연합군(해군)과 페르시아(연합군)이 좁은 해협에서 싸워 그리스가 승리했고, 전투 결과 페르시아는 그리스에서 손을 뗐으며 델로스 동맹의 맹주가 된 아테네는 覇者가 되었다는 것 정도다. 아마 서양사 시간이나 세계사 시간에도 이 정도를 배우지 않았을까 싶다. 더 배운다면 동양 전제왕권에 대항한 서양 민주주의의 승리와 이후 야기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서막이 발생했다는 것 정도? 암튼 주인장이 기존에 알고 있던 내용이 이 책에 다 나온다. 하지만 보다 더 자세하고 생동감있게 나와있어 읽는 내내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읽었다.

일단 주인장은 테미스토클레스라는 이름은 몇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가 이처럼 대단한 인물인지는 몰랐다. 교활하고 지략이 뛰어났으며 간계에 능한 인물, 아테네 해군력을 창시한 군개혁자이자(아테네는 이등 육군보유국에서 일등 해군보유국으로 탈바꿈했다) 적과 아군을 속여 전쟁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든 대단한 인물이었다. 물론 살라미스 해전에서 직접적으로 그가 미친 영향은 적다 하더라도 분명 그의 혀와 머리를 통해 살라미스 해전이 벌어졌고, 그 전쟁의 승리로 아테네는 영광의 나날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믿음직한 노예 시킨노스를 크세르크세스에게 보내 적과 아군을 속이고, 천문과 지리를 읽어 살라미스라는 최적의 전장에서 적을 맞이한 그리스군은 반나절의 전투로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물론 그가 전쟁이 끝나고 이곳저곳을 떠다니다가 크세르크세스가 죽고 난 이후의 페르시아에서 지방 태수직을 전전하며 호화로운 망명 생활을 했다는 것은 다소 충격이었다. 아니, 그리스라는 나라가 생각했던 이상으로 실리에 매달리는 집단들이라는 것에 적지 않게 놀랐다. 암튼 테미스토클레스의 계략은 마치『삼국지연의』에서 적벽대전을 주물렀던 제갈량을 묘사한 것과 맞먹는 듯 했다. 

게다가 페르시아와 그리스를 넘나들며 저자는 수많은 등장인물을 어색하지 않게 버무려서 표현하고 있었다. 분명 사료 비판이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될만한 부분에서 저자는 날카로운 직관력으로 당시의 정황을 정확하게 짚어내려고 노력하는 면이 돋보였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전쟁의 실체'를 몇몇 영웅적인 장군의 활약이나 거시적인 전략 · 전술 재현에서 찾으려 하지 않고 삼단노선 밑바닥에서(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혀 모른채) 살갗이 까지도록 노를 저어대는 노예나 갑판 위에서 죽을 힘을 다해 적과 싸우는 수병에게서 찾으려 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묘사가 가능했기에 하나의 전투로도 400쪽이 넘는 책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런 부분은 소설에 가까운 영역일수도 있지만 저자는 분명히 주석을 달아 이 모든 서술이 고고자료 혹은 미술자료 등에서 얻어진 정보의 재해석임을 명시해놓고 있었다. 이런 부분에까지 치밀하게 신경쓴 책은 분명 지금까지 없었던 것 같다. 이러한 묘사는 독자가 살라미스 해전을 TV로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만큼 생동감 있게 이뤄졌는데 이 모든 서술이 한나절동안의 일을 묘사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때마다 놀라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정말 '전쟁터에서 그 찰나의 순간, 엄청난 일들이 벌어졌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책장을 거듭 넘기다보면 어느새 전투는 막바지에 치닫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아미니아스의 명령으로 그리스 삼단노선의 충각이 페니키아 함선을 들이받았을때부터 시작된 전투는 페니키아 함대의 몰락과 함께 크세르크세스의 공포에 떠밀려 전진하려는 자와 후퇴하려는 자의 혼돈 속에 계속되어 결국 결판이 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영화 300에서 표현했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뒤에서는 채찍질을 하며 전진을 외치지만 앞에서는 스파르타군의 창날에 떠밀려 오히려 후퇴를 거듭하는 그런 장면들 말이다. 어쨌든, 당시의 전투에 대해서 우리가 너무나도 자세하게 알아갈 때쯤, 저자는 독자를 또 한번 놀라게 한다. 전투가 끝난 후 크세르크세스에 대한 묘사(혹은 그 이후 페르시아에 대한 묘사)에서 주인장은 전혀 몰랐던 사실들을 하나하나 알아갔다.

저자는 페르시아군이 그리스군에게 패한 이유로 3가지를 꼽았다. 무리한 상태에서 노잡이들을 혹사시켜 전투에 임했던 점, 전투 중 지휘관들이 사망하여 전열 유지에 혼란이 있었던 점(민주주의 사회가 아닌 페르시아였기에 지휘관의 죽음은 곧 전장의 혼란으로 이어짐), 지형이 페르시아군에게 불리한 점 이렇게 3가지를. 그리고 전후 24시간도 안 돼 크세르크세스는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는데 저자는 여기에서도 3가지 실수가 있었음을 지적한다. 저자는 살라미스 해전 직후 크세르크세스가 아직 막강한 대규모 병력이 남아있음에도 후퇴를 결정한 것에 대해 오히려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페르시아는 그리스와 달리 국경이 장대한 제국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페르시아는 여전히 금은보화로 그리스를 회유할 수 있으리라 여겼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페르시아의 어설픈 외교는 결국 아테네와 스파르타(그리스 최강의 두 군사도시)가 힘을 합치게 하는 결과만 초래했다. 아테네를 공격하여 협박한다는 것이 오히려 아테네로 하여금 '내가 페르시아와 손 잡기 전에 나와 손잡자'에 대한 대답을 스파르타가 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둘째로 그는 마르도니우스에게 병력의 지휘권을 맡겨 그리스에 잔류시켰지만 그는 페르시아의 정예기병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B.C 479년 플라타이아 전투에서 전사해버리고 말았다. 마지마으로 페르시아는 살라미스 해전 이후 해군을 재건하지 못 했고(안 한 듯 싶다) 오히려 지상군에 주력하고 말았다(마치 고구려가 거듭된 고-당 전쟁으로 지상군에 대한 상곽 방어체제를 강화했던 것처럼 말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책장을 넘기던 주인장은 에필로그 부분에서 눈을 떼질 못 했다.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는 분명 그리스 원정에서 실패했다. 살라미스 해전에서 대패했고 말이다. 하지만 그는 왕중의 왕으로서 헬레스폰토스 해협에 다리를 놓고, 그의 기치 아래 수평선을 까맣게 물들일 정도의 대병력을 모집하기도 했으며,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왕을 테르모필라이에서 꺾었다. 그 다음엔 아테네를 점령해 유린하고 도주하지 않았던 주민들은 노예로 만들었으며 트라키아에서 코린트 지협까지 전 지역에 조공을 요구한 뒤 아나톨리아로 당당히 돌아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실책으로 살라미스 해전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머리를 세게 한대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 테르모필라이에서 레오니다스 왕이 소수의 병력으로 페르시아 대군을 상대로 분전했지만 결국 방어선은 뚫렸으며 아테네는 점령당해 신전은 부서지고 생산기반은 모두 파괴되었다. 크세르크세스는 단지 살라미스 해전에서 '부하 장교들의 실수로' 패한 것 뿐이었다. 페르시아인들은 분명 그렇게 생각하며 크세르크세스를 위대한 왕으로 찬양했을 것이다. 같은 전쟁을 두고 이런 상반된 평가가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 아테네는 오히려 델로스 동맹을 만들어 제국적 민주주의를 완성시키고 말았다. 페르시아 대신 아테네가 제국으로 부상했던 것이다. 페리클레스라는 걸출한 지도자의 지휘 아래 말이다. 여기까지 보면 과연 이 전쟁의 승자는 누구란 말인가? 아테네? 그리스? 과연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결국 그리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돌입했고 그리스인들은 차라리 이민족(페르시아)의 침입이 더 낫다고 울부짖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럼 왜 살라미스 해전이 중요하단 말인가. 별거 없지 않은가. 저자는 불과 두 세대만에 세계 최초의 민주주의를 만들어냈던 아테네가 다시 세계 최초의 제국적 민주주의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살라미스 해전에서 패해 그리스가 모두 페르시아 제국에 지배당한다 하여도 이탈리아의 그리스 식민지들은 독자적인 문명을 영위했을 것이라고 분명히 적고 있다. 살라미스 해전의 승리로 아테네는 교활함과 탐욕이라는 유혹에 빠졌고 그 덕에 한세기 이상이나 민주제와 제국이라는 사상이 그리스 안에서 충돌하게 된다. 자유의 이상을 지키지 못한 아테네 덕분에 헤로도토스, 투기디데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아리스토파네스 같은 비평가들이 세상에 났으며, 이후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등장해 서양 정치철학의 토대를 닦을 수 있었다. 민주주의와 민주주의의 오점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바로 살라미스 해전의 진정한 유산이라고 저자는 단호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살라미스 해전을 고대의 가장 위대한 전쟁이자 가장 위대한 해전이 되게 하는 궁극적 이유인 셈이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민주주의와 제국주의를 동시에 경험하게 된 아테네인들. 델로스 동맹은 80년도 못 갔지만 페르시아 제국은 그로부터 150년 가량을 버텨냈다(알렉산더가 등장하기 전까지). 아테네는 결국 제국을 추앙했다가 몰락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오늘날의 서양 사상체계가 파생되었다. 좋든 싫든간에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 페르시아 제국이 남긴 사상적인 유산은 그리스가 남긴 것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이 모든 것이 살라미스 해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진정 정신의 힘이 물질의 양을 압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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