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눈빛
박솔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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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된 겨울 극장에서


겨울의 눈빛, 박솔뫼, 문학과지성사, 2017-09-25.


  이젠 겨울의 찬기가 가시려는 걸까. 봄 앞에 무력해지는 겨울의 눈빛을 하고 이 한기는 물러갈까. 겨울이란 계절이 지닌 특성이요 정체성임에도 춥다, 춥다, 춥다 외치며 왜 이렇게 추우가 겨울에 진저리 칠 즈음 기온은 달래는 듯 온기를 내었다 다시 얼어붙곤 했다. 벌써 2월의 말이고 3월이 다가오는데 또 한동안은 꽃샘추위가 온기를 잔뜩 덮어버릴 것을 아니까 여전히 겨울 옷 속에 몸을 숨긴다.

  9편의 단편이 담긴 소설집 「겨울의 눈빛」에서 여전히 겨울옷을 둘러쓰고 봄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심리적으로도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봄을 생각하기엔 너무도 어둡고 공허한 공간이 반복되어 나타난다. 특히 부산이란 지명은 반복되어 나타난다. 지리적으로 부산은 겨울에도 온도가 높은 곳임에도 차갑고 매서운 부서지고 무너진 폐허의 공간으로 이 지명은 기억된다. 거듭된 사고를 가진 공간, 사고의 흔적을 머금은 채 새로이 재생되지 않은 공간에서 사람들은 살아간다.

  소설마다 반복적인 사고가 발생하고 그 사고를 보고, 경험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문장 또한 강박적이게 반복되거나 쉼없이 이어진다. 기억을 되살리듯 이야기하듯 이어지는 문장으로 인해 폐허는 정적이지 않은 동력을 지닌 것처럼 느껴진다. 폐허 자체가 생명력을 가진 것처럼. 소설에서 작가가 그리는 사고와 그 사고의 현장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세계는 현실적인 상황과 가상의 상황들이 버무려져 있다. 마치 사물을 눈으로 보고는 있지만 실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사고를 실제와 유리하려는 본능적인 생존인 것도 같다.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그 사고가 일어난 공간을, 폐허의 공간을 떠나지 않고 그 기억들을 지우지 않고 반복적으로 이야기하고, 그리고 있을까. 「어두운 밤을 향해 흔들흔들」에서는 무너진 부산타워를 그리고 그리고 그리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무너진 무수한 부산타워의 조각들을 보고 또 본다. 「우리는 매일 오후에」에서는 ‘나’는 묻고 ‘남자’는 대답한다. 부산에 있는 고리원전에서 사고가 일어났고 그 이전에 일본에서는 지진이 일어났고 원자력발전소 폭발이 일어났고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시스템도 붕괴되었다는 것인데 ‘나’가 이것들을 아는 이유는 ‘남자’에게 묻고 또 물어 대답을 들었기 때문이고 ‘남자’가 그것을 알고 있는 이유는 ‘나’가 끝없이 묻고 또 물었기 때문이다. 「겨울의 눈빛」에선 이런 사고를 담은 영화를 보는 ‘나’가 있다. 그런 사고가 일어난 공간에 남은 이들과 그들의 기억과 상처를 이야기하는 영화지만 ‘나’는 전혀 강렬함이나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나’는 “그때를 기억하고” “그때의 감각을 기억하고” 있기에 화면을 통해 재연된 그것은 ‘나’에게 모멸감만을 안긴다.


내가 아는 누가 또 누구누구가 지금 무얼 하는지를 말하는 것으로 이토록 모멸감이 드는 이유는 무어야. 우리가 개를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으로 이렇게 허무해져야 하는 것은 또 무어야. 마치 태어나서 처음 개를 만져본 사람들처럼. 너는 그렇게 살았구나. 너의 친구는 그리고 또 다른 친구는 그렇게 살고 있구나.


  그렇구나. 그들은 그렇게 살고 있구나. 역시 허무해지는 마음으로 재난이 닥친 공간을 그 공간에서 멀어져 있지 않은 이들을 보게 된다. 충격과 상실로 인해 마음 역시 폐허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너무의 극장」에서 상영되는 연극처럼 기괴스럽다. 제목과 연관되는 내용도 대사도 연기도 없이 그저 관객인줄 알았던 이들이 무대 위로 달려가 배우들을 내리치는 폭력만이 있는 연극. 어느 것이 「너무의 극장」에서 상영되는 이야기가 될까. 무너지고 원전이 터지는 그런 사고들일까, 그 사고의 공간에서 기억을 품고 살아가는 것일까.  「너무의 극장」이 있는 한 그 폭력적인 연극은 계속 상영되는 걸까. ‘나’는 그 기괴한 폭력의 극을 계속 보고 있어야만 할까. 물론 ‘나’는 그것을 기괴하다에서 멈추지 않고 그것에 관해 말하겠다는 의지를 다진다.


부산에는 바다가 있고 부는 바람은 바다 냄새가 나는 바람. 바람에 실려 부산의 목소리가 노랫소리보다 선명하게 들려오는데 부산은 내게 너는 왜 바다 이야기 해운대 이야기 광안리 이야기 그리고 반짝거리는 야경과 그 밖에도 줄줄줄 댈 수 있는 모든 멋진 것들을 말하지 않고 그저 적당한 말들만 그것들을 죽인 이야기만 하는 거야? 왜 나에게 오염된 것들을 버리고 가려는 거야? 부산은 내게 항의하고 나는 알아 알아 다 안다니까 웃으며 부산에 가면 많은 멋진 것들이 있지 바람에 대고 말하며 아직 남은 ‘그저 적당한 말’을 뜯어내 바닥에 내던졌고 그저 적당한 말은 떨어지지 않으려 내 손을 깨물었고 내 손에서는 피가 났고 내 피는 붉었다.


  강박적일 정도로 반복하여 묻고 그리고 기억하는 것은 피폐해진 이들의 마냥 수동적이고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나‘가 이런 다짐을 가지는 순간 그 모든 반복적인 행동들은 폐허를 벗어나기 위한 의지로 기억된다. 누군가는 사고를 잊으라 말하고 누군가는 사고를 잊지 말아달라 말한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잊음을 선택할 문제가 아니니 ’사고‘는 반복되지 않도록 기억하고 문제가 된 것은 해결해나가는 일이다. 그런 메시지를 건조한 겨울의 눈빛은 말한다. 멋진 것들이 있는 것도 그것을 얘기하는 것이 더 좋은 것도 안다. 하지만 해야 할 것이 있음을,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피가 날 정도로 아픈 일이 되지만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아직도 겨울, 여전히 「너무한 극장」에서 너무한 이야기들이 상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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