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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감 - 대중문화의 정치적 무의식 읽기
김성윤 지음 / 북인더갭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덕후’의 세계에 들어가려는 이들에게



  우선, 덕후감이라니. 언젠가부터 폭발하고 있는 덕후의 세계에 관한 책일까. 이와 같이 생각한 사람들이 있다면 저자에게 제대로 낚였다. 저자는 제목인 덕후감에 대해 ‘독후감’의 고의적 오기이며 ‘덕후의 감'의 줄임말이라 말한다. 조금 늘여 말한다면 덕이 후한 감상문이다. 덕이 후한 감상문이라고 말랑말랑한 글을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저자는 대중문화에 관해서도 거기에서 드러나는 역사적 쟁점에 더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의 덕후감이란 오타쿠 비평이 아니라, 대중문화 속에 투영된 현실의 모습과 소망을 정치경제적적 맥락과 역사적 의미를 더해 분석한 책이다.

  이를 테면 걸그룹의 출현과 함께 튀어나온 삼촌팬의 등장에 소비적으로 보거나 롤리타로 퇴행으로 보는 상황에서 왜 ‘삼촌’인가에 주목한다. 이 삼촌이란 지칭에는 걸그룹 스타에 대한 이성애적 욕망의 금기를 은연중 상기시키고 있는데 실제로 삼촌팬들 중에서는 걸그룹의 노랫말에서처럼 ‘오빠’에 더 열광적이기도 하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럼에도 ‘삼촌’이라는 지칭은 걸그룹에 대한 성적관계와 거리를 유지하려는 가족적 친밀성을 더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전략이 패권주의적 남성성의 사회에서 벗어난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남성성으로까지 이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을 비하했다며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식으로까지 번졌던 박재범 사태가 있다. 명명백백하고 급박하게 여기에 전개된 시선은, 애국주의였다. 한국에 대한 비평에 관대하지 못하며 다시금 대한민국 국민의 애국심과 애국주의가 얼마나 깊고 강한지를 표하는 것으로서 이 모든 것은 논의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과연 애국주의였을까에 의구심을 표한다. 이 사건은 적확하게 보건대 문화적인 차이나 오역의 문제, 또다른 이해가 대립된 사건이었고 애국주의 이전에 ‘평등주의에 대한 요구’가 있다고 말한다. 디워, 유승준, 황우석 등등도 애국주의로 대표되는 사건들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자가 주장하는 바가 들릴 것이다.

   “지배권력으로부터 핍박받는 가상의 마이너리티에 대한 동일시와 ‘다 해 처먹는 꼴불견’에 대한 박탈감과 분노 등은 분명 평등주의적 정서와 일맥상통한다(p139)”라고.

  애국주의와 뗄 수 없는 민족주의에 대해서도 한번 보자. 저자는 숭례문 방화 사건을 예로 든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에서 “민족적 자존심의 붕괴를 투영시켰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사건 전에 민족적 동질성은 붕괴되었고 그것은 관념적이고 상상적이었다. 여기에서 우리가 파악해야 할 것은 국가, 행정당국의 무능력이다. 그리고 이 무능력이 민족-국가라는 신화를 종결시켰다고 말한다. 숭례문 방화 사건은 일견 한 개인의 행동으로 분노와 증오범죄라 하지만 개인의 증오와 분노의 대상을 민족적 상징물로 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배제에 대한 테러이며 소멸되지 않는 이데올로기를 드러내 준다고 말한다.

  혼혈인 하인스 워드의 한국 방문과 이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는 결국 일회적인 것처럼 보인다. 분명 그것을 계기로 다문화주의와 사회통합 논리가 확산되었지만 지금, 많은 사람들이 다문화주의에 대해 피로감과 적대적 감정을 노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 논리는 제대로 ‘먹히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 간과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쩌면 여기에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이 내재하고 있는 것일 지도.

 대중문화가 우리의 정치와 경제, 사회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저자의 대중문화를 읽는 코드는 분명하다. 그는 대중문화를 해리포터의 ‘소망의 거울’에 비유하는데 거울이 주는 환희에서 벗어나 거울과 나의 관계를 직시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며 이를 바라본다. 여기에 분명 정답은 없다. 옳고 그름도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무언가에 대해 논의하는 장이 적다는 것은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다양한 시각이 공존하고 그 시각이 논의 속에서 자유롭게 전개되고 개진될 때 세상은 더욱 발전해 갈 것이다. 문제를 파악하는 눈이 더욱 많아지니까 말이다.

  그런 점에서 정보사회의 발달과 개인 블로그 등의 활성화로 논의의 장은 늘어난 것 같지만 논의다운 논의의 '장'은 옅어진 것 같다. 분명 어떤 방향으로의 이야기, 어떤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통제되고 억압되고 있기도 하고 또한 너무 격해져서 부러 논의를 회피하기도 한다. 오히려 이야기가 생각이 줄어들고 있는 세상이 되고 있다. 누군가의 이야기만, 대체로 언론이겠다 싶지만, 계속 들어야 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우리는 너무나 통제에 짓눌려 있고 소위 '전문가'라는 권위에 짓눌려 있기(물론 전문가에 대한 존중때문이기도 하다만) 때문에 내 '시각'을 떨치지 못한다.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다. 하지만 한번씩 이건 왜 이렇지? 저건 왜 그렇지? 이런 의문을 가지고 궁금해 하고 생각해 보았던 면들을 저자의 글에서 맞닥뜨릴 것이다. 단지 그 의문에서 깊게 들어가지 않았을 뿐일 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세상이 너무나 한편으로만 몰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에 ‘피로감’을 느끼는 경우이다. 어떤 현상이 나타날 때 그것에 대해 분석하고 해석하고 이유를 궁금해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특정한 이데올로기로, 특정한 이익을 대변하여, 특정한 권력에 의해 한쪽으로만 치우지고 당연 그래야 한다고 논의되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에 지극한 피로감과 답답함을 느끼는 이들이여. 누구는 음모론이라 할 지 모르나 어쩌면 명확한 예리함일 수도 있다. 마녀사냥처럼 일순간 특정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논의들 속에 의문을 느낀다면, '어 저건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든다면, 전문가가 그렇다고 다수가 그렇다고 얘기함에도 모호함이 느껴진다면, 한번쯤 만들어보자. 내 식으로의 사회를,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방식을. 그리고 어떻게 발을 떼야 할 지 모르겠다면, 한번 덕후의 감을 느껴봐라. 분명 내가 느꼈던 거야라는 생각에 반가움이 느껴질 것이다. 곧 또다른 이들의 덕후감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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