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습관일까 성격일까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김금희, 창비, 2014.


  그런 날이 있다. 한없이 센티멘털해지는. 때론 습관같고 때론 성격같은 그런. 센티멘털이란 한없이 축축 처지는 느낌이 들게도 하지만 무아지경으로 밝은 감정이 들게도 한다. 절대로 주위의 상황과는 상관없는.

 『너무 한낮의 연애』김금희 작가의 등단작이 수록된 첫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은 이런 인물들의 등장한다. 화자는 항상 나이며 2~30대로 주위의 상황을 관찰하며 그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기본적인 정서는 ‘센티멘털’. 급기야 등장인물이 말하고 만다.

 “제 나이 때마다 할 일이 있는데 감상적으로 굴지 마라.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이지.”

  이 단어에 ‘하루 이틀’이 붙음으로써 ‘나’는 ‘뺨을 한 대 올려붙이듯’ ‘가시 같은’ 느낌을 받지만 그 말은 ‘센티멘털’한 삶을 청산할 정도의 움직임을 줄 수 있는 말이었을까. 어느 때에 그 말은 쑥, 훅, 들어오는 비수같지만 센티멘털에 푸욱 푹 담겨진 어떤 삶들이 쉽게 벗어날 수 있는 감도는 아닌 듯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만큼 이들은 무력한 삶에 최적화되어 있는 듯이 보인다. 그것은 정말 습관일까, 성격일까.

  이십대의 삶은 취업과 연애가 최대 목표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것이 이십대 그리고 삼십대의 삶에서 중요하다고 일찍이 누가 정해놓았기에 그것에 도달치 못한 삶들은 쉬이 센티멘털해 질 수밖에 없는 건지. 소설 속 배경은 딱히 지금이 아니다. 과거에서부터 이어져 축적된 환경이 목표를 성취하는데 장애가 되곤 한다. IMF와 정년보다 이른 퇴직한 부모님은 그의 자녀 세대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부모들 세대에 만든 빚이 자녀에게 전이되고 막막한 가정환경 속에서 이상적인 목표를 생각하기엔 막연해지기도 한다. 어떤 아버지는 루팽처럼 집을 나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어떤 아버지는 과하게 사업을 벌이며 어떤 아버지는 오래도록 병원에 누워 있다. 그래서 그들의 아이들도 방황하고 안정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이 도시는 참 묘해서 어느날은 영원히 서울 시민으로 살 수 있을 듯하다가도 월급이 밀리거나 생활비가 떨어져가면 완강히 내쳐지는 느낌이 들었다. 파도의 반대 방향으로 헤엄치는 것처럼, 물살을 세차게 가르면 가를수록 무언가가 나를 저만치 내보냈다. 혹은 인파를 헤치며 무언가에 쫓겨 달아나는 느낌이기도 했다. 그렇게 개미굴처럼 이어진 서울의 골목을 내달리다보면 용케 내 이름으로 된 주소를 갖기도 하고, 나만큼이나 우왕좌왕하는 남자들과 연애도 하는 거였다. - 「릴리」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속 ‘나’는 어쩌면 지나친 낙관론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스물한살 재수생인데다가 임신을 한 상황에서 ‘나’는 현재의 내 삶에 대한 인식보다 함께 임대주택에 살고 있는 인물들의 삶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소설속 등장인물들은 항상 ‘나’의 상황과 병렬적으로 가족이든 타인이든 누군가의 삶을 겹쳐 놓는다. 그들의 삶은 형태는 다를 지라도 공통의 분모로 이야기하자면 상처와 난제에 몰린 삶이다. ‘나’의 상황은 타인의 상황에 빗대어 그 경중이 달라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타인의 삶을 통해서 내 삶도 보편적인 일상이라는 듯이 무심한, 그저 지켜보기만 하는 이 어조. 그럼에도 센티멘털은 잔뜩 묻혀져 있는.


신호가 다시 들어왔지만 발을 떼지는 않았다. 아직 시간은 남아 있고, 지금은 그걸로 충분했다.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혹시 그것은 자신감일까. 시간이 남아 있음을 아는 2~30대의 여유. 중년이라면 노년이라면 다르게 읽혀질 세상에 대한 시각. 그것은 곧 극복할 의지를 가질 시간을 만들어 내리라는 말과 같은 것일까. 그들만의 나침반은 따로 있다는, 길을 헤쳐나갈 도구가 있다는 그런 자신감. 그렇다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솟아나는 그러한 문제해결방식은 습관일까, 성격일까.


사실이기야 하겠지만 뭐랄까, 아버지 말은 철 지난 유행어처럼 핀트가 안맞는 느낌이었다. 아버지가 항로에서 자꾸 벗어나는 건 좌표를 읽지 못해서가 아니라 너무 낡은 나침반을 쥔 탓이 아닐까. -「장글숲을 헤쳐서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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