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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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가 필요한 해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문학동네.


  새해가 되었고 심지어 황금돼지해임에도 지난 해의 푸쿠가 새해로 넘어왔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남들은 새해 희망과 설렘의 카운트다운을 하는 한해의 마지막 날, 이제 새해를 두시간여 앞두고 불행을 선고받는다면 나도 모르게 푸쿠를 떠올리게 된다. 새해에 생각하는 단어치고는 참, 참으로 희망적이다! 

  계속된 불운에 대해 생각한다. 어떤 원인이 있을 거라고. 차라리 저주라고 할지도 모를 그 어떤 것이 있어주어야만 불행에 대해 수용하든 맞서든 할 수 있다. 명명을 한 후에야 대상이 명확해진다. 푸쿠. ‘우리는 그후로 줄곧 그 염병할 저주 속에 살고 있다.’

  한 해를 울음으로 마감하고 울음으로 시작한 이들에게…. 사파! 사파! 사파!


산토도밍고에는 제독의 이름을 언급하거나 들었을 때, 아니면 푸쿠가 수많은 대가리 중에 하나를 곧추세웠을 때 내 주위에 재앙이 똬리를 트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나와 가족을 안전하게 지켜줄 유일하고 확실한 역주문이 있어. 그다지 놀랍지 않게도 그것 역시 한 단어야. (대개 집게손가락을 열심히 포개면서 내뱉는) 한 단어.

사파.


  와오! 이런 주인공을 본 적 없다. 실로 미안하지만 황금돼지해에 딱 떠올려지는 그 몸매의 소유자. 110kg 거구에 사교성과 운동신경은 없는 ‘덕후’ 감성 가득한 도미니카계 흑인 오스카 와오. 그의 덕후 기질은 만화, 영화, 게임, SF와 판타지 소설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하여 무척 바쁠 것 같은데도 언제나 사랑을 꿈꾸는 사랑에 고픈 오스카 와오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사랑이 동시만 아니었더라도 한명만을 선택해야 함으로써 모두를 잃는 비극은 없었을 테다. 사랑, 이라 이름하며 동정을 떼는 것이 실천이자 당연한 것인 오스카에게 누구도 다가오지 않는 이 불행의 근원은 오스카의 누나 롤라, 어머니 벨리시아, 할아버지 아벨라르를 비롯한 데 레온 가족 삼대에서 이어진 저주, 푸쿠 때문이다.

  오스카의 불행으로 볼 때 가볍고 코믹스럽게 느껴지는 푸쿠는 어머니 벨리시아와 할아버지 아벨라르의 이야기 속에서 결코 가볍지 않음이 드러난다. 그 잔인성과 폭력성, 끈질긴 푸쿠의 면면을, 그로 인한 고통스러운 삶을 견딘 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도미니카에서 건너온 오스카의 가족에게 여전히 끈질기게 붙어 진행중인 푸쿠 또한 도미니카산이다. 그리고 우리의 역사도 경험하였듯이 독재자만이 가장 강력한 폭력성과 잔인성을 지속적으로 가질 수 있다. 도미니카에서는 실존인물로서 트루히요가 그런 역할을 담당했다. 작가는 도미니카에서 푸쿠 탄생의 역사인 독재자의 트루히요의 31년의 활약과 함께 오스카 가족에게 닥친 모든 비극적인 서사를 유머와 풍자를 담아 들려준다.

  오스카가 빠져 있는 세계, <혹성 탈출>을 비롯한 SF판타지는 오히려 트루히요의 세계보다 아름답다. 그럴 지도 모른다. 누나 롤라는 사춘기면 으레 찾아오는 그런 반항과 방황의 기질로 변화를 찾아 헤매지만 오스카에 대한 사랑만큼은 굳건히, 흔들리지 않으며 가족의 몰락과 거듭되는 배신에 이민자로서의 힘겨운 삶, 거기에 암까지 얻은 쉴틈없는 푸쿠의 저주에도 어머니 벨리시아 역시 오스카를 사랑하고 사랑해준다. 그렇기에 오스카가 여전히 사랑을 꿈꿀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인생이란 그런 거다. 아무리 열심히 내 행복을 모아봤자 아무것도 아닌 듯 쓸려가 버린다. 누군가 나한테 묻는다면, 난 세상에 저주 따윈 없다고 대답하겠다. 삶이 있을 뿐. 그걸로 충분하다고.

어떤 이들은 저주라고 말하겠지.

 난 삶이라고 말하겠다. 삶이라고.


  거듭 삶이라 강조하는 롤라처럼 푸쿠가 아니었던 걸까. 푸쿠의 마력에서 뻗어나지 못하고 푸쿠에 잡혀 버렸지만 오스카의 할아버지가, 어머니가, 누나가 푸쿠에 쉬이 동조했던 것은 아니다. 어떻든 저항은 이어졌다. 그 저항이 푸쿠를 중첩하였을지언정. 오스카 또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생 일대의 사랑을 눈앞에 두고서 푸쿠가 찾아와 사랑과 목숨 중 선택을 강요한다면 오스카는 무엇을 가리킬까. 오스카에겐 이미 그런 선택의 순간이 주어진 것이 푸쿠가 아닐 지도 모르겠다. 오스카의 사랑, 동정 떼기를 코믹하게 엮어 나가는 이 이야기의 과정이, 결말이 권력이란 것이 개인의 삶 하나하나에 관여하여 영향력을 미치고 있음을 처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주저하게 되는 것도 더 나아가게 하는 것도 사랑, 전진하는 사랑을 위해 필요한 것은 그리하여 끊임없이, 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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