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제8회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
백수린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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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빌라에 갇혀

2018 제8회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 문학과지성사, 2018.


  몇몇 작가는 다른 작품집에서 본 단편이 수록되어 있고 몇몇 처음 보는 작가가 있다. 문지문학상 작품집에서 본 소설은 다른 문학상 작품집에서 본 소설들의 흐름과 두드러지게 다른 파노라마를 그린다. 대체적으로 한두 편 정도인데 문지문학상은 절반 이상이다. 작가들의 인터뷰가 실려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돋운다.

  열한편의 단편이 이 계절의 소설로서 계절로 나뉘어 있는데 계절의 느낌을 담았나, 계절과의 연관성이 무언가 생각했더니 단지 매 계절마다 출판사에서 작품을 뽑는 이름이었다. 아무튼 계절이랑은 상관없었다. 사촌동생이 작품집 제목을 보더니 ‘여름의 빌라, 제목이 좋다’라고 했다. 평범한 제목이자, 일상의 말인데 어떤 면에서 좋다라고 느끼는지 궁금했다. 묻질 못해서 답을 못 들었지만, 그냥 막연하게 여름의 빌라라는 제목을 반복해 본다. 이 작품집에서 유난히 걸리던 지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한부분이 걸리자 좀체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해버린 감정이 여름의 빌라에 있었다.

  문지문학상은 수상작은 백수린 작가의 「여름의 빌라」. 서간체로 써내려간 소설은 주아가 스무살에 만난 독일인 노부부를 삼십대에 다시 만나 남편과 함께 캄보디아에서 여름휴가를 보냈던 시간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노부부와 주아의 오랜 우정이 한순간 깨어져버리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순간을 경험하는 것은 주아 자신의 눈일까. 남편 지호의 눈일까.


레오니를 제외한 우리 넷이 나란히 앉아 발마사지를 받던 밤. 나는 나의 피부색이 당신의 피부색보다 어둡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어요. 그리고 나의 피부색은 내 발을 정성스레 닦아주던 젊은 안마사의 피부색보다는 밝았지요. 나는 그 사실에 대해서 그날밤 골똘히 생각합니다. 앳된 마사지사는 무릎을 꿇고 우리의 발을 박하와 레몬으로 정성껏 문질렀습니다. 한국에서였다면, 마사지를 해주는 사람이 한국인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불편한 마음이 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자 나는 그 후로 승합차를 타고 가며 보는 풍경들, 허름한 집들이나 오토바이를 개조해 만든 툭툭 같은 것들을 보는 일이 괴로워지기 시작합니다. 


  이 소설에서 주아가 갑자기 인식하는 ‘인종’에 대한 의식과 그에 대한 지호의 적대적인 감정은 상당히 불편하다. 한스가 캄보디아 사람들의 낙천적인 삶과 천성을 경이롭다고 할 때 지호는 캄보디아의 가난을 이야기하며, 독일인의 자격을 따지며 격렬한 반응을 보인다. 지호는 평소 윤리와 실존을 떠들던 베레나가 보기엔 ‘반듯한 도덕관념’을 지닌 사람이다. 하지만 내겐 ‘삐딱한 도덕관념’으로 느껴지는 이 모든 행동과 말들은 단지 지호뿐만 아니라 주아에게서도 느껴진다. 지극히 관념적인 도식을 한국의 젊은 부부는 가지고 있다.

  캄보디아 마사지사로 인해 인식된 피부색의 차이로 거리감과 불편함을 느끼는 주아는 한국이었다면, 한국인이었다면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았을 것이라 말한다. 캄보디아 마사지사가 그들에게 마사지를 하는 일은 자본의 일이지 인종의 일이 아니다. 가난한 나라 캄보디아, 그곳에 사는 캄보디아인 모두는 가난하고 불행한 인종으로 분류하는 지호와 주아에겐 캄보디아 보다는 한국이 한국보다는 독일이 더 우위에 있는 나라이며 국민으로 인식되는 모양이다. 그러면서 독일인이라는 것, 전범 국가의 국민이기에 한스 부부를 현재의 가해자로 인식해버린다.


폭력에 대해 비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은 폭력 이외의 수단을 갖지 못한 자들뿐이라고.


  폭력에 대한 지호의 말이 얼마나 허황되게 들리는가. 그렇게 지호와 주아라는 개인이 한스 부부에게 개인적으로 가하는 잔인한 폭력의 말은 폭력에 대한 관념적 인식에 골몰하는 지호의 의식에 환멸을 느끼게 한다. 한국에서 마사지를 받았다면 지호는 계급의식으로 인해 반듯한 도덕관념에 의해 힘들어 할까.


당신은 우리가 함께 타프롬 사원을 걸었던 날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난 2016년 12월 이후 당신은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쉽게 폭력 앞에 소멸되는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다고요. 하지만, 주아. 당신은 그렇게 덧붙였습니다. 긴 세월의 폭력 탓에 무너져 내린 사원의 잔해 위로 거대한 뿌리를 내린 채 수백 년 동안 자라고 있다는 나무. 그 나무를 보면서 나는 결국 세계를 지속하게 하는 것은 폭력과 증오가 아니라 삶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한스부부가 캄보디아인의 삶을 여유와 낙천으로 보며 동경화한 건 테러 피해자로서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솔한 감정의 발로였다. 이 지극히 관념적인 도식 속에서 언뜻 비장하고 비판적이며 자신의 생각의 틀에 맞추어 사고하는 지호에게서 룸펜의 모습이 떠오른다. 세상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그 끈끈한 지호의 지배적 사고에 답답함을 느끼게 되는 것, 그런 시각으로 지호가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무심히도 상처를 주고 있는지를 ‘반듯한 도덕관념’의 소유자는 알까. 자기 세뇌에 빠진 채 머리로만 인식하다 보면 얼마나 많은 것을 잘못보고 판단할 수 있는지 느끼게 된다.

  노부부가 캄보디아 마을에서 느낀 그 감정이 어떻게 연유한 것인지를 알게 될 때 국가와 인종에 대한 일반적인 도식으로 에워싸면서 개인, 타인의 삶에 대해 얼마나 몰이해하고 있는지 자신의 기준에 맞추어 타인을 바라보는지를 생각하며 끝끝내 불편하게 자리한 지호가 주아가 걸려서 나가지 않는다. 내게 있는 그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여름의 빌라에 갇혀 최근 소설에서 보지 못한 다른 스타일의 소설들에는 덜 눈이 갔다. 한참을 지호에게 소모적인 감정을 발산하고 났으니 선을 지우고 다른 아이를 받아들인 레오니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빌라에 갇힌 이 마음을 풀어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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