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책 읽는 여자
크리스틴 페레플뢰리 지음, 최정수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북크로싱


지하철에서 책읽는 여자, 크리스틴 페레플뢰리, 현대문학, 2018.


  책과 함께 모험을 떠나고 싶은 마음은 폭염에는 쓱, 사라지는 모양이다. 지하철이나 기차를 타고서 출발역에서 종착역까지 책 한권을 읽고 돌아오는 여정을 생각해보기도 했으나 폭염이란 움직이지 않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가득차게 하면서 책을 읽어도 머릿속에 남겨두지 않도록 한다. 집과 직장을 오가는 생활을 하다가 출근 시간 두 정거장이나 먼저 내려 다른 곳으로 가면서 새로운 일과 맞닥뜨리게 되는 주인공 쥘리에르처럼 평소와는 다른 패턴으로 움직이면, 겪어보지 않은 새로운 일을 만날 수 있을까.

  쥘리에르가 일상적인 패턴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는, 아니 두 정거장이나 먼저 내려 평소와는 다른 출근길을 선택함으로써 맞닥뜨린 세계는 지각, 질책이라는 현실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이 아니라 ‘책 전달자’라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는 곳이다. 지하철에서 졸음 끝에 꾸는 꿈이라도 마냥 희한한 꿈이겠거니 싶은 이 몽상과도 같은 세계는 ‘무한 도서협회’다. 한가득 쌓인 책을 정리하고 있는 남자 솔리망은 사람들에게 알맞은 책을 전달시켜주는 책 전달자의 역할과 활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달자는 책을 자연이나 기차 안에 되는대로 놓아둬서는 안 됩니다. 책들이 독자를 찾으려면 우연에 맡겨서는 안돼요. 그 사람이 책에 독자를 골라줘야 해요. 관찰하고, 더 나아가 어떤 책이 필요한지 감이 올 때까지 독자를 쫓아가야 하죠. 착각하지 마세요, 이건 진짜 일입니다. 우리는 도발하려고, 일시적 변덕 때문에, 혹은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거나 선동하려는 의도로 책을 나눠 주는 게 아닙니다. 정당한 이유 없이 그러지는 않아요. 나와 함께 일하는 훌륭한 전달자들은 큰 공감 능력을 가졌습니다. 상대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어떤 낙담과 원한들이 쌓여 있는지를 느낍니다.

  

  이 공간에서 편안함과 행복을 느낀 쥘리에르는 부동산 사무소로 출근하는 일을 그만둔다. 이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처한 상황과 내면을 관찰하며 그들에게 필요한 위로와 조언을 해줄 책들을 전달하는 책 전달자로서의 삶이 시작된다. 책 전달자라는 역할은 쥘리에르 자신에게는 모험이지만 점점 이 역할을 통해 타인을 도우며, 책 전달자의 의미를 찾아 성장하는 쥘리에르의 여정에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들에게 공감되는 책들이 등장한다. 이 소설의 묘미는 그런 책들에 대한 소개일지도 모르겠다.

  아주 단순하고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만 이 책은 내 인생에서 잊지 못할 책, 내 인생을 바꾼 책을 좀더 스토리를 가미해서 추천하는 서점의 도서목록이다. 조금 더 즐겁게 표현하자면 타인에게 책을 추천할 때 느끼는 쾌감, 희열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무한도서협회는 독서클럽 같았고 책 전달자의 역할은 각각의 회원들 같다. 살아가면서 고민을 겪는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하며 건네는 책, 그것이 그들 삶에 지금 고민에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야기할 때의 누군가도 결국 책 전달자인 것이다.


마침내 나는 두꺼운 책들 속에 모든 질병과 모든 치료제들이 감춰져 있다고 믿게 되었다고, 아니, 그렇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고. 책에서 배신을, 고독을, 살인을, 광기를, 격분을, 다른 사람들의 존재에 대해 말하지 않고도 나에게 뭔가를 강요할 수 있고 내 존재를 망가뜨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만난다고. 때로는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 누군가의 인생을 구원할 수 있다고. 아프리카 소설이나 한국 동화를 읽다가 영혼의 단짝을 만나는 것이 우리 인류가 똑같은 악덕들로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우리가 얼마나 서로 닮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조금이라도 덜 악해지기 위해 이럭저럭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그러기 위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에게 미소 짓고, 서로를 어루만지고, 무엇이 되었든 감사의 표시를 나눌 수 있다고.


  쥘리에르가 느끼는 모든 것을 체험하였기에 사람들은 책을 읽고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타인에게 책을 추천하고 또한 함께 모여 독서클럽을 만들어가는 것일 게다. 북크로싱book-crossing 운동을 벌이기도 하고 말이다. 북크로싱 안내서라고 할 만한 이 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쥘리에르에 쉬이 공감하며 읽게 될 것이다. 직장을 그만두는 쥘리에르의 과감함을 부러워하면서 말이다. 다만 생각보다 책 전달자의 여정은 폭염 중에 읽기에는 아주 단조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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