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사회학
전상인 지음 / 민음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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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 그리고 편


편의점 사회학, 전상인 저, 민음사, 2014.


  2018년 6월 22일자 중앙일보는 [강남엔 112개, 도봉엔 1개···한국점령 스타벅스의 비밀]이란 기사를 실었다. 소위 ‘문화를 판다’는 스타벅스의 전략이 한국시장에 ‘먹히며’ 승승장구하며 영업이익 증가는 물론 신규 매장 또한 줄을 있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서울의 스타벅스 매장수가 미국 맨해튼을 포함한 뉴욕시 5개구 전체 매장수보다 100개가 많다고 한다.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인 스타벅스가 파는 문화라는 게 ‘소비’에 초점 맞춰진 자본주의의 문화 그 이상의 특별한 게 있는가 생각되지만, 한정판 스타벅스 아이템을 사기 위해 밤새 줄짓고 스타벅스 매장만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보지 못하는 스타벅스의 ‘매력’이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 또한 적지 않게 스타벅스 매장을 이용했는데 그것은 언제나 ‘눈에 잘 띄었기에’ 그랬다. 어쨌든, 이 기사는 편의점의 출발지인 미국과 최대 발흥지라는 일본을 제치고 인구 대비 편의점이 가장 많은 나라 한국을 떠올리게 한다. 완전한 스타벅스 공화국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편의점 사회학』에서 보는 모습과 닮았다.

  전상인 교수는 『편의점 사회학』에서 우리나라에 편의점이 성행하는 현상에 관해 설명했다. 놀랍게도 편의점은 울릉도, 백령도, 마라도, 금강산, 개성공단, 구치소에도 입점되었고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것 이상의 영역을 확보해가고 있다. 각종 공과금 수납 서비스, 민원서류 발급 등의 공공서비스 이외에도 아동 안전 지킴이와 같은 치안 영역이나 독거 노인 보호・관리라는 사회 복지 부문에까지 진출하고 있다. 이처럼 편의점이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것 이상의 기능을 확장하려는 이유는 뭘까. 

  저자는 일상에서 편의점을 편리하게, 부담없이, 시시때때로 이용하는 상황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우리는 편의점에서 무엇을 사고, 왜 사는가. 저자는 “오늘날 우리는 편의점에 의해 ‘소비하는 인간’으로 만들어지고 길들여지는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필요에 의해서 편의점을 찾는 것이 아니라 편의점에 의해서 필요가 생기는 논리 구조”이며 편의점은 소비는 “무언가 고상한 행위를 하고 있다”라는 문화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도록 만드는 영업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편의점에서는 점원과 손님의 물건 거래 이외에 인간적인 교류는 없다. 하지만 이 기계적인 무관심이 도시적 심성에 부합하는데 일명 ‘무관심의 배려’라고 표현한다. 편의점이 가지는 편리성, 깨끗함의 속성에 특별히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다양한 상품을 구비하고 있는 편의점이긴 하지만 ‘푸드몰’인듯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음식 판매가 증가하고 있다. 나라 전체가 ‘먹방’ 프로그램이 대세이기도 하지만 ‘편의점 푸드점화’ 현상은 사회 양극화 때문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88만원 세대의 밥집이 편의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인데, 경제적 약자들이 편의점 이용률이 증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편의점은 눈에 띄게 띄지 않게 ‘을’을 낳는 공간이다. 알바생의 일터로 자리잡아 열악한 임금노동의 ‘을’이 되게끔 하고, 가맹점주는 본사의 횡포를 감내하는 ‘을’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그렇다면 편의점을 애용하는 소비자는 ‘갑’인가. 편의점 계산기는 상품 바코드를 찍은 뒤 ‘객층키’를 누른다고 한다. 이것은 손님의 계층을 확인하는 것으로 손님이 연령과 성별에 따라 구매하는 상품에 대한 정보가 입력된다고 한다. 자신도 모르게 편의점에서는 개인 정보가 수집당하고 있는 것이다. 익히 알다시피 점유율 빅3 편의점 본사는 대기업이다. 결국 편의점을 움직이는 힘은 자본주의 세계 체제, 혹은 신자유주의다. 앞서 지적했듯 ‘소비당하고’ 있다는 사실, 다시 말해 소비가 조작되거나 유도되고 있다는 점도 생각해봐야 한다.

 

이쯤 되면 우리는 ‘편의점 사회학’의 또 다른 임무를 각성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편의점 스스로 주장하는 ‘편의성’의 의미 혹은 ‘편리성’의 본질을 묻는 일이다. 편의점이 사람들 소비주의 사회에 길들이는 데 편리하고, 편의점이 사람들을 자본주의 세계 체제에 편입시키는 데 편리하며, 편의점이 신자유주의 유목화 시대에 사람들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데 편리하고, 사회 양극화에도 불구하고 편의점이 사람들에게 일상의 행복을 제공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데 편리하다면, 이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편의이고, 무엇을 위한 편리인가? 편의점의 ‘불편한 진실’은 이제 더 이상 모르는 척하거나 감출 수 없는 우리 시대의 첨단 화두로 인식될 필요가 있다.


  현실에서 편의점을 사용할 때면 이런 생각은 잊어먹는다. 편리함에 취할 뿐. 사건이 터진 공간으로의 편의점이 나오면 그제야 불편한 편의점을 인식한다. 스타벅스도 마찬가지다. 스타벅스에 대한 수많은 논란이 있다 한들 언제나 빛나는 스타벅스일 뿐이다. 영역을 구분하지 않고 확장되는 편의점의 ‘노력’을 편리로 수긍했지만 이 책으로 생각해보지 못한 편의점의 역기능에 대해서 생각해볼 기회였다. 편의점도 스타벅스도 이용하지만 뭔지 모르게 찜찜함을 달고 있는 것, 이것이 저자가 지적한 이유 때문이었을까. ‘편의점’이 가리키는 사회의 모습이 슬프게 흘러가는 문화가 되지 않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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