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러스크로노스
윤해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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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어둠

코러스크로노스, 윤해서 저, 문학과지성사, 2017.2.24.


  테 포케레케레,라 말하는 아프리카 원시부족의 존재가 궁금해진다. 그 부족은 아프리카의 어디쯤에 살고 있을까. 하고많은 말 중에 ‘테 포케레케레’를 전한 것인지, 그곳의 말을 ‘얻은’ 작가는 이 말만을 각인하고 왔는지를 알아야 할 것 같다. 마치 소설의 모든 문장들이 그 부족의 언어인 것처럼 이질적이게 느껴지는 글들. 테 포케레케레, 미지의 어둠. 모든 문문장이 미지, 낯선 나라의 언어를 마주한 듯하다. 부족원들은 열심히 말하고 손짓하지만 그들의 얼굴을 쳐다보고 뜻을 유추하지만 아직은 명확히 소통하지 못할 서로의 언어. 그리하야 소설의 문장은 음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코러스크로노스. 시간합창. 소설 속에서는 어느 골목에 위치한 건축물의 이름이지만 무한한 공간이자 상상의 공간에 가깝다. 이곳에 들어서면 시간은 잊어먹게 되지만 시간을 의식하게 된다. 현실감이 떨어지는 시간에 대한 인식만이 남아 미래의 공간이 아니라 오래 전의 시간을 여행하고 있는 듯한, 문명과 떨어져 있는 듯한 생각에 빠진다. 미래가 아닌 과거의 시공간에 머무른다 함은 완전한 미지와는 또 다르다. 그 실체를 경험해보지 못하였을 뿐 수많은 문자와 이미지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시간과 공간이다. 하지만 그곳에 서서는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알고 있다’는 것이 허구임을 알게 된다. 익숙한 것에 기대어 의미를 읽어내고 표현한다 한들, 알 수 없는 것들이 흘러오고 흘러나오고 그리하여 내뿜을 수 있는 말들은 의미조차 지니는지 알 수 없는 음률들. 그리고 이미지. 그럼에도 그 세계에는 여지없이 폭력이, 죽음이, 독재가, 지진이, 테러가, 위기가, 존재했다. 그토록 어딘지 모를 곳을 돌고 돌고 돌고 돌아서 들어갔음에도.


    때마침 얼음의 얼굴에 어른거리는 물그림자.

    불행한 사람들이 꿈꾸는 방식.

    여행.

    죽은 붕어가 세상을 뜬다.

    말로의 말로. 죽은 붕어가 물에 뜬다.

    그래서, 그러므로, 그리고, 그러나, 그런데.

    모든 접속 부사들 속에 ‘그’

    내가 속해 있어.

    나는 말로의 말로. 문장과 문장을 연결한다. 문단과 문단을 연결한다. 부채와 부채를. 부재와 부재를. 이 도시의 말로. 나는 당신과 당신 사이에. 문장과 문장 사이에 잇닿아 있다.

    말로의 말로.


  언어의 묘미를 한껏 살려 결국 언어의 한계를 느끼게 한다. 소설이라는 장르가 가진 익숙한 언어를, 구조를 작가는 해체하고 작가가 준 몇 개의 단어에 의지해 문장을 생성하여 독자는 의미를 읽는다. 한없이 시간으로 들어가지만 시차에 부딪친 듯 어지럽고 몽롱해진다. 아직 아프리카 원시부족의 말들을 다, 헤아리지 못했다.


말이란 결국 환멸입니다. 많은 경우 환멸이죠. 그렇지만 그 환멸의 힘으로 밀고 가는 삶도 있는 겁니다. 환멸에 떠밀리는 시간도 있는 거죠. 우리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말을 많이 하고 삽니까. 우리가 얼마나 안 해도 될 말을 많이 하고 삽니까. 동생은 안 해도 될 말을 오래 하고 있었다. 동생은 말로, 끝없는 말로 자신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뱉어지자마자 사라지는 말로. 동생은 존재했다.

     

  이렇게 갈라진 언어로 이 죽음의 시간을, 공포의 시간을, 우울의 시간을 위로할 수 있을까. 뜻을 알 수 없는 노래로 의성어로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까. 동일한 언어를 사용함에도 말이 가닿지 못하는 시간들을 되돌려, 이렇게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를 건네며 그 속에 표정을 담고 그저 음률을 담아 시간을 흘러가는 것도 좋으련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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