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마당에 빨래를 너는 할머니 곁에서 콩코물로 동글동글 뭉쳐준 주먹밥을 먹던 어린 날의 내가 보였다.
연탄불 위에서 탄내 섞여 보글거리던 고등어찜도 생각났다.
남편이 문득 내가 다녔던 학교와 고향 집터를 보고 싶다고 했다.
교문에 들어서자 시골 중학교의 아담한 교목이 정겹고 예쁘다며 감탄했다.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배드민턴을 쳤던 공터를 가리키며 향수에 젖었다.
구세군 교회당을 지나, 저 언덕만 넘으면, 저 고개 하나 지나면, 그렇게 좁고 거친 시골길을 엉금거리며 달렸는데 포크레인이 둥근 산을 밀어내고 있었다.
대나무숲 아래, 밤나무숲을 바라보고 있던 우리집은 없었다.
이미 부모님과 오빠로부터 몇년 전에 들은 얘기다.
그런데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을까.
하필이면 산과 터가 붉은 흙을 드러내며 깎여나가고 있는 정경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네비게이션 화면조차 부옇고 황망했다.
문명이 찾지 못하는 곳. 기계로 감지할 수 없는 그곳이 내가 자란 땅이다.
집 뒤 숲에는 까치가 삼층으로 집을 짓고 집 앞 숲에는 밤나무와 밤버섯이 풍성했다.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 나는 내내 말이 없었다.
남편은 장모님이 정말 대단하시다는 말만 거듭했다.
이제 고향엔 할머니도, 우리집도 없다.
날은 흐렸고 고향의 봄은 스산했다.
그럼에도 그때 그곳은 영원한 내 마음의 엘도라도.
변함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