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가 정말 오래 간다. 삼한사온도 옛말인가 보다.
얼음이 채 녹지 않은 정오 무렵 둘째를 임신한 K가 놀러왔다. 7개월인데 직접 운전을 하고 온다길래 노심초사 했는데 잘 찾아왔고 건강해 보였다.
미리 데워놓은 육수에 만두와 떡을 넣고 보글보글 끓여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상에 올린 반찬이 배추김치와 물김치 뿐이었는데 K는 참 맛있게도 먹었다. 영달이를 가졌던 이맘때를 돌아보니 입덧도 멎고 이것저것 잘 먹던 시기였던 것 같다.
밥을 먹고 나서 찬찬히 안색을 살피니 분명 근심이 있다. 정신 멀쩡한 사람치고 걱정거리 한두 가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그래도 아기 가진 사람인데 싶어 마음이 안 좋았다.
사람 속은 다 똑같은데 언제까지 너그러운 시늉 하며 살 수는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너는 그럴만한 능력이 되니까, 정작 말은 이렇게 나왔다. 어느만치 맞는 얘기지만 사람의 능력도 한계가 있는 법. 더욱이 둘째를 낳으면 고달파질텐데. 나는 별로 위로가 되지 못했다.
밥 할 때 섞어 먹으라고 발아현미를 한 봉지 들려보내고 나서야 만두 빚은 것도 좀 보낼 걸, 물김치라도 싸줄 걸, 뒤늦게 동동거렸다. 통화할 때만 해도 K는 아들, 딸을 연이어 낳게 된 행복한 어미의 목소리였다. 그 느낌 그대로를 기대했는데 얼굴에 어린 그늘이 뜻밖이어서 나도 허둥지둥 어쩔 줄 몰랐던 것 같다.
오래 전부터 내게는 늘 언니 같은 친구였기에 그런 구도에 익숙해져 시의적절한 위안은 커녕 상념만 더해서 보낸 것은 아닌가 싶다. 있을 때 잘하면 되는데 꼭 보내고 나서야 목구멍의 가시를 손가락으로 후벼파는 사람처럼 끙끙댄다.
봄에는 뭐가 맛있나. 전에 봄동을 넣고 끓인 추어탕이 참 맛있었는데 엄마한테 솜씨를 좀 빌려볼까. 미나리와 양배추를 넣은 상큼한 물김치도 입맛 당기는 데엔 그만일 것 같기도. 예정일은 5월이란다. 파릇파릇 클로버가 무성한 봄날의 토끼띠 아이. 상상만 해도 예쁘다. 순산을 기원하며 아이를 만나기 전 맛난 것이라도 준비해서 K를 한번 더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