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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는 안정제
김동영.김병수 지음 / 달 / 2015년 11월
평점 :

김동영의 첫 책이었던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거야'에서 절망과 외로움, 쓸쓸함의 감정을 많이 느꼈었다. 그리고 그는 말했었다. 한결같은 사람, 당신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런 그가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고 7년이란 시간동안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김동영과 그의 주치의 김병수가 들려주는 이야기. 7년간 진료실에서 드러내지 못했던 진솔한 이야기를 바로 '당신이라는 안정제'에서 들려준다. 의학도서도 아니고 질병치료기는 더더욱 아니다. 서로 대화하듯, 상담하듯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책을 읽기 시작한 건 꽤 됐는데 마무리하기까지 참 오래도 걸렸다. 자꾸 마음을 건드려서 빠르게 읽어내기가 어려웠다. 어떤 사람은 가볍게 읽기 좋다고 하는데 나는 한 장 한 장 천천히 읽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모든 상황이 내게만 유난히 거대하게 다가온다. p.187 d
나만 힘들고, 나만 불행하고, 나만 고통스럽다고 느끼던 때가 있었다. 어릴 때부터 심술궂고 질투쟁이에 늘 비교당하는 (미모의) 동생때문에 피해의식, 못난이 컴플렉스 속에 살았다. 자신감에 차 있는 듯 보였지만 마음 속에 비어있었고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어쩌지 못해 많이도 아팠었다. 심리상담은 받지 않았지만 대학 때부터 많은 심리에세이, 심리학 책(쥐뿔도 모르면서 몇 권 읽었다고 아는체 하던 시절이 있었다;)을 읽어가면서 내 마음이 병들어있다고 느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마음의 아픔을 조금은 알기에 오랜 시간 고통과 불안 속에 살고 있는 김동영의 모습이 자꾸만 내게 투영되는 듯 했다. 7년간 겪었던 모든 고통과 불안을 토해내듯(엄청나게 솔직하게!) 써내려간 김동영의 글이 아프게 읽혔다.
나를 가장 화나게 만드는 건 바로 내 자신이다. p.299d
그렇다. 나를 가장 화나게 하는 건 바로 내 자신이라는 사실. 지금 내가 김동영인지, 김병수의 환지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지경이다. 이렇게까지 이입할 정도는 아닌데도 나는 그렇게 김병수와의 상담 속으로, 김동영의 고통속으로 깊숙이 들어가고 있었다. 김병수라는 의사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TV출연도 하고 책도 냈다고 하는데 전혀 몰랐다. 차라리 잘됐다. 나는 이 책에서 김동영에 공감하고 김병수에게 커다란 위로를 받았으니까. 진료실은 아니지만 야외 진료실이 차려진 것만 같은 기분이다. 나는 이래서 책이 좋다. 책이 주는 위로가 좋다. 2016년이 시작된지 이제 한 달. 이 책은 올해의 책 중 나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성숙해지지 않는다고 자신을 탓할 필요 없다. 인간은 어차피 모두 불량품이다. 나이가 든다고 불량이 고쳐지는 법도 없다. 그래도, 우리는 그러저럭 잘 살아가게 마련이다. p.39 b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멀쩡한 것처럼 보여도 그 속을 한 꺼풀 벗겨놓으면, 약한 부분, 흠짓난 부분, 모난 부분, 병든 부분을 누구나 갖고 있게 마련입니다. 겉으로 보면 건강하고 정신적으로 성숙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속속들이 알아가다보면 ‘그 사람도 나와 별반 다를 것이 없네’라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그 사람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삶의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p.159 b
삶이 막 헝클어져 있을 때, 컴퓨터처럼 껏다가 다시 켤 수 있으면 어떨까, 하고 상상할 때가 있다. 제대로 거절하지 못해서 이런저런 약속들이 쌓여갈 때. 내 입으로 차마 못하겠다고 하지 못해서 원하지도 않은 일을 맡게 될 때. 꼴도 보기 싫은 사람을 봐야만 할 때. 할 일은 쌓여 있는데, 몸도 마음도 따라주지 않을 때. 그렇지만, 이 모든 것에 대해서 “더이상 못하겠다”고 선포할 용기도 나지 않을 때. 삶에서 나만 쏙 빠져나와서 어디에 숨어 있다가 파도가 잠잠해진 뒤에 짜잔 하고 나타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도 한다. 용기가 없고, 책임지기 싫고, 껄끄러운 일들을 내 손으로 처리하기 싫고, 그래서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마음의 짐들은 쌓여가는데, 그 마음이 무거워 꼼짝할 수 없고 그냥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을 때, 그럴 때가 있다. p.171 b
당당하게 맞서라고, 괴로워도 참아보라고, 견디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어느 책 제목처럼 미움받을 용기를 가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상처받고 괴로울 때는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드는 것, 이게 보통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 당당하게 맞서 싸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의욕도 없고 그럴 기분도 나지 않아 그냥 피해버리는 것. 주저하지 않고 용기 내어 부딪혀가며 견뎌내고 싶지만, 이미 닳을 대로 닳아버린 마음에 더 상처받으면 무너질 것 같아 도망가고 싶어지는 것. 강건한 마음으로 세상의 스트레스를 받아내고 극복하는 것보다 회피하고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에 더 가깝지 않을까.
사람들은 모두 확인받고 싶어한다. 내가 잘 살고 있는지, 나의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내가 손을 내밀었을 때,내 손을 놓지 않고 꼭 잡고 있어줄 사람이 있기를 바란다. 힘들 때마다 그런 사람이 나를 외면하지 않고 받아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이런 바람들을 눈으로, 손으로 직접 확인받고 싶을 때가 있다. 마음이 약해지고 지쳤을 때, 가슴에 온기가 사라졌을 때, 이런 마음은 더 커진다. p.174 b
사람들은 모두 마음 속에 아픈 구석이 있는 것이다. '알고 보면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하더라', '겉은 화려해도 알고보니 다 힘들더라' 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 요즘이다. 나만 힘들고 아픈 게 아니고 다들 힘들고 아프다고 해서 내 아픔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누군가 말했지만 나는 완벽히 사라지진 않더라도 반창고같이 붙여주는 위로가 분명 힘이 된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줄 수 있는 누군가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혼자서 이겨내지 못한다고 나약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과한 다정함과 친절한 멘트가 아니라 담담하지만 따뜻함이 느껴지는, 그런 마음을 전해지는 김병수의 글이 좋다.
진정한 자유는, 혼자가 아니라 나 아닌 누군가와 함께할 줄 아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평화는, 혼자가 아니라 사랑과 우정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묶여 있지 않음으로가 아니라 묶여 있으므로 자유를 느낄 수 있고, 혼자보다 둘이 되어야 평화로워질 수 있는 존재다. 혼자보다 좋은 둘이 아니라, 반드시 둘 이상이 함께 가야만 하는 길이 우리 삶이다. p.321 b
내 삶 속에서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누리는 내가 되기를 바라게 된다.
(김동영의 행복을 절로 바라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는 모든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안정제가 되는 책이기를.
하리
분명 이 세상은 불안정하고 그 위에 살고 있는 우리들도 불안하다. 역사적인 큰 사건이든 아주 사소한 사건이든 어떤 계기를 통해 우리는 변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괜찮을 거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단지 우리는 너무 연약할 뿐이다. 이 세계에서. 그리고 우리 인생에서. p.95 d
내 인생이 결국 행복하게 막을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내 가슴이 큰 파도를 몰로 오는 바다이기보다 잔잔한 강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어깨가 아무나 오르기 힘든 산보단 나지막한 언덕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온기가 누군가를 덥혀주는 이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p.163
마음에서 불안을 몰아내고,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된다고 해서 나라는 사람이 더 완벽해지지도 않을 겁니다. 완벽이란 아무런 결점없이, 하나의 약함도 남기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모두 품어 머금은 상태이니까요. p.269 b
삶이란 것이 계획한 대로 흘러가는 것도 아니고, 의도한 것과는 다른 일들이 항상 생기고, 오히려 예상하지 못한 곳에 정답이 있을 때가 많았다. 내 삶이란 것이(계획이나 의도가 아니라)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왔던지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매수간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미래라는 시간을 향해 꿈을 투사하는 것보다 지금 눈앞에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맞다고 믿고 있다. 미래를 향한 바람을 앞으로 던져본들 그대로 이루어지는 법은 없다. 미래라는 것은 `어쩌다` 라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연들이 모여 완성되는 것이니까. p.288 b
어쩌면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척하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단순히 참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을 다 드러내지 않고 괜찮은 척하며 그럴듯하게 자기 모습을 유지하는 기술을 배워가는 것이 우리 삶일지도 모르고. p.293 b
여전히 아버지와 누나들 그리고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 빠지지 않는 말은 "밥은 먹고 다니니?"이다, 아마 그 말은 내가 지금보다 나이가 더 들고 내가 가족을 만들어도 영원히 듣게 될 말일 것이다. 그 말의 다른 뜻은 ‘사랑한다’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당산도 "밥은 먹고 다니죠?" p.29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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