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현대, 개념으로 읽다
이경구 외 지음,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기획 / 푸른역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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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세상에 대한 인식은 개념으로 가능하다. 요즈음 들어서 그 사실을 직시하게 되어서 나름 그 개념들을 명확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개념사 관련 책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의 근현대, 개념으로 읽다>는 6개의 개념어들로 한국의 근현대의 살피고 있다. 제목 그대로다. 일반적으로(??혹은 나만?) 기대하는 개념어에 대한 정의 용법, 그러한 것들이 시대에 따라 어떠한 이유로 바뀌게 되었지는지에 대한 설명등의 형식으로 쓰여진 건 두 꼭지 정도다(<<이용후생>,<<철학>>) 나머지는 앞에 두 편의 글보다는 그 개념어가 당시의 조선인에게 어떻게 받아들여 졌고 혹은 획득하려고 했는지 보여주는데에 주력한다.

 

 내가 뭘 기대했는지 생각보다는 재미있게 읽지는 못했다. 몇 가지 조금 더 확실하게 알게 된 것중 하나는3.1운동 이후로 복벽주의나 보황주의가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거기 까지 이르게 된 과정이다.

 

 <공화제>란 용어가 처음 소개된 것은 1884년 1월 30일자의 <한성순보>였고, 그 외에 미발표 글인 유길준의 <세계대세론>에서도 소개 되었다고 한다. 이른 시기 부터 그러한 정체를 알고 있긴 했지만, 당시에는 입헌군주국에 당시 조선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입헌군주제도 당장 실현하다고 보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 후에 갑오개혁을 통해서 비로소 군민공치를 실험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당시 고종은 강하게 반발한 모양이다. 그러다가 을미사변과 아관파천에 연이어 터지면서 개화파의 정권은 무너졌다. 이후 1898년에 군주권을 제한하고 국민주권론을 제기하던 독립협회의 회원들이 잠시나마 당시 중추원에 참여하게 되나, 망명중이던 박영효와 미국 국적의 서재필등을 각원으로 추천한 것을 두고 시비거리를 만들어 결국 강제 해산시켜버렸다. 1899년에는 전제군주제의 나라임을 선언하는 <대한국국제>를 반포하였다.

 

1905년~1910년 사이에는 헌정연구회에서는 입헌군주제를,  1907년에 안창호에 의해 결성된 <신민회>에 이르러서는 공화제를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1911년 중국에서의 신해혁명을 통해서는 공화제에 대한 열망과 희망이 더욱더 커진 것 같다.  그러다 세계대전 이후에 다시 입헌군주제로 물러선 상하이를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세력이 1917년 4월 미국이 참전을 선언하여 세계대전의 정세가 크게 바뀌자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자 하였고 그래서 나온 것이 <대동단결선언>이다. 

 

 이와 같은 <대동단결선언>은 '주권상속의 대의'('구한국의 최후의 날이 곧 시한국 최초의 날'이며, '제권의 소멸의 때가 곧 민권 발생의 때' 라는 이유로 '우리 한국은 처음부터 한인의 한국이였으므로, 한인만이 서로 주권을 수수할 수 있으며, 한인이 아닌자에 주권을 양여한 것은 무효이며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와 '대동단결의 원칙' 제의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비록 이 선언은 국내외에 널리 송달은 되었지만,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들은 관망하는 자세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선언은 '복벽주의'와 '보황주의'를 청산하여 '국민주권론'을 확고히 하였다. 3.1운동 당시에도 정부수립이 필요함을 느끼고 다양한 정부안이 나왔지만, 모두 공화제를 지향하는 바였다.  국내외의 독립운동 진영이 <대동단결선언>에 공감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를 통해서 3.1운동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으로 의견이 모아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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