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씩씩한 남자 만들기 - 한국의 이상적 남성성의 역사를 파헤치다
박노자 지음 / 푸른역사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대한민국이라는 곳에서 살다보면 가끔식 들어보는-그래도 근래에는 좀 듣는 경우가 적어진 것 같지만 그건 나에게 그런 소리를 할만한 사적인 친밀감이 형성되어 있지 않아서 일 것이다-소리가 군대를 다녀와야지 사람이 된다는 소리다. 개인적으로 면제가 된 경우이기도 해서 별로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였다(그 이유 외에도 그냥 상당히 거슬렸다. 군대 다녀와서 이상한 걸 배워와서 사람이 요상하게 되는 경우는 봤어도 완전한 인간이 되는 경우는 잘 못봤다).
그냥 박정희 시절 이후에 형성된 병영국가의 일례를 보여주는 사례로만 생각을 했었는데, 본서를 읽으면서 그 연원은 알게 되었다. 1890년대 이전의 조선에서는 양반의 남성성과 상것들의 남성성이 존재했는데, 양반의 것은 유교적인 지향성을 가진 왕조의 지배층 답게 자제력이나 예의감각 그리고 도리에 어긋나는 일에 대해 비분강개할 줄 아는 '강인한 정신'의 보유자로서의 남성이었다. 그렇다고 폭력적인 행위를 해야될 필요는 없었다. 반면, 상놈의 남성성은 양반과는 다른 주먹다짐을 곧잘 할 정도로 거칠고 용맹스러움, 성적인 능력이 강조되는 등의 이미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상것들에게도 노련한 사회성과 신중함, 유교 도덕에 의해 자제는 필요한 것이었다. 일례로 김구의 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김구의 아버지는 거의 매달 한 번씩은 부정하고 오만한 이웃들을 반 죽을 반큼 주먹으로 때려주었다고 한다. 그러는 동시에 정기적인 선물로 향리들의 비위를 잘 맞추기도 했다고 하며, 중대한 문제를 부딪쳤을때 대체로 유교적 덕목을 곧이곧대로 따랐다고 한다. 그리고 청년 안중근은 전통적 한문교육보다는 사격, 사냥에 열정을 쏟았다고 하고 16세때 동학운동 진압에 적극 참여하기도 하였다 한다. 이런 거친 남성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에게 공손하게 대하지 않는 기생들을 때리기도 하였다는데, 기생들과의 관계를 즐기면서도 그들에게 훌룡한 남자와 결혼하고 도덕의 길을 따르라고 자신의 유교적 체면을 유지하려 한 것이라고 저자는 본다. 그만큼 상것의 남성성은 복잡했다.
이렇게 두 가지의 남성성이 유지되고 있는 가운데, 열강의 위협[특히 일본]에 직면하면서 그 두 가지 지향은 새로운 남성성의 이미지로 수렴되었다. 그것은 군대와 운동장에서 단련되고 규율된, 애국적이고 튼튼한 신체를 가졌으며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목숨을 버릴 수 있는 헌신적 정신의 소유자로의 남성성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남성성은 <독립신문>을 시작으로 <대한매일신보>,<제국신문><황성신문>등의 매체를 통해서 운동장에서 경기를 통해서 규율화되었으며 튼튼한 체력을 가진 신체로 만드는 것을 강조하면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풍전등화의 상황에 놓여있는 조선왕조, 대한제국의 신민 혹은 국민의 국난 극복을 위해서 였다.
뭐 이렇게 본다면 군대를 간다는 것은 강인한 신체로 변모하기에 필요한 곳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런 이야기('남자는 모름지기 군대를 다녀와야 인간이 된다')가 나온 것일 수도 있다고 보인다. 물론 이것은 내가 비약해서 생각한 것이기는 하지만. 사회적으로 고분고분한 인간(질서에 순응하는 규율화된 몸을 가진 인간)을 길러내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지금와서는 일반적으로는 사라진 남성성이긴 하다. 지금 현재는 거친 남성성보다는 학력, 재력을 우선으로 본다. 그렇지만 기업에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데, 신압 사원 연수로 해병대 캠프로 가는 경우등을 말할 수 있겠다. 저자는 말대로 최장시간의 노동시간을 버티기 위한 체력단련의 의미일 수도 있고, 고분고분한 인간을 만들기(강조하기)위한 것일 수도 있겠다.
참 이해가 안가더라. 뭐하는 짓이야? 하는 생각이 항상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