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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6 : 삼국의 정치와 사회 2 - 백제 ㅣ 한국사 시리즈 6
국사편찬위원회 엮음 / 탐구당 / 2013년 6월
평점 :
이전의 한국사 연구성과를 모아서 70년대에 25권을 낸것과 마찬가지로 90년대 초반에 이전의 연구성과를 체계화 하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자 53권의 거질의 한국사를 내었다. 거의 20년이 되어 가는 책인 만큼 다소 낡은 이론들도 포함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개설서로서는 큰 문제가 없는 듯 하다. 한국 고대사회에 대한 역사서는 여전히 드문 상황에서 좀 더 깊이 있는 내용을 알고자 한다면 좋은 선택일 듯하다(그러고 보니 이 책을 '개설서'라고 명명하는 건 조금은 어려울 듯하기는 하다).
이전에 백제사 개설서와 연구서를 몇권 읽은 바 있어서 큰게 색다로울 것은 없었는데, 다시 이전의 내용을 상기하고, 읽는 도중에 아하! 이렇게 생각될 수 있구나... 라고 하는 몇부분이 있었는데, 미처 메모하지 못하여서 흐트러지고 말았다. 메모하는 습관을 길러야 겠다고 생각된느 부분이다. 여튼 본 책에서는 백제의 기원에서부터 변천과정 대외관계, 정치경제사회 부문에서 고루고루 다루고 있어 어느 책보다도 좋았는데, 특히 재미있게 읽은 것은 '백제의 대외관계' 였다. 이 책에 따르면 중국 왕조와의 공식적인 외교의 시작은 근초고왕때라고 한다. 근초고왕때에 이르러서도 마한의 완전한 정복은 이루지 못했지만, 간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도는 되었던 것 같고, 가야의 진출도 이루어내었고, (한)국사 수업을 받은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듯 근초고왕은 백제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런데 사실 고구려의 '광개토왕'[재미있는 표현으로 깡패군주? ㅎㅎ]에 비하면 정복군주라는 말은 좀 어색하다고 느낀다. 근구수왕은 왕자시절 직접 전쟁에서 지휘를 하기도 하였는데, 근초고왕의 경우에는 직접 지휘한 경우가 얼마나 있었는지 궁금하다. 근구수왕은 장인에게 일반행정 업무를 다 맡기기도 했다고 한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것은 백제의 요서영유설을 다룬 부분이였다. 여기는 유원재 교수가 맡았는데, 느끼는 바에 의하면 상당히 조심히 접근을 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하나하나 두드리면서 다리를 건너는 느낌이랄까. 여튼 나는 대륙백제이야기를 자세히 들은바 없어서 궁금했다. 책에 의하면 요서영유기사가 나온건 건 <송서>에서 부터라고 한다. 그런데 그 외에도 백제 요서영유설이 기록되어 있는 사서는 특이하게도 남조계의 사서이고, 실지로 북조계의 사서에는 이 사실이 나타나지 않다고 한다. 이점에 있어서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사실 이런 사실은 남조보다는 북조에게 있어서 큰 관심거리일 것인데 말이다. 그리고 남조가 고구려나 백제에 모두 낙랑과 결부된 봉책명을 주었다는 것에서 백제와 고구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못하지 않고 있다고 추측한다. 반대로 북조에서는 고구려의 왕에게 요동군개국공고구려왕, 요동군공고구려왕 등을 봉책하여서 낙랑과 대방과 관련된 봉책명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에서 백제와 고구려관에서 남조와 북조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이렇게 남조가 백제에 대한 인식이 낙랑과 대방이 결부되어 있는 점을 들어 요서지방으로 후퇴한 낙랑과 대방군을 보고 백제의 요서영유사실로 남은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백제의 요서영유에 대한 내용이 남조계사서에 국한된 것은 남조에서 전통적인 낙랑 대방의 관념에 의하여 백제관이 분명하지 못한 상태에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5세기 후반 고구려 북위와 적대관계에 있던 남조는 백제국으로 부터 고구려에 대항하기 위한 낙랑 대방의 영유권 주장을 북조에 대항하기 위해 이를 인정함으로써 비롯되었다. 이러한 백제의 낙랑대방에 대한 영유권 주장은 5세기 후반 고구려에 의한 백제의 한강유역 상실로 심화되었다." 라고 이야기 한 부분은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여튼 남조의 백제관이 상당히 실질적이지 못하고 이전 낙랑-대방과 결부되어 있었던 점을 들어서 백제 요서영유설이 실제로 보기에는 어렵지 않은가 추측하는 것은 받아들일만 하다.
**그런데 제본이 안좋다. 오랫동안 보관하면서 읽을 수 있는 상태는 아닌듯 싶다. 고구려편도 비슷한 상태라서 전반적으로 안좋가 싶기도 하고. 양장본은 좀 나았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