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하대 정치사 연구 민족문화 학술총서 54
권영오 지음 / 혜안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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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사에 있어서 가장 활발했었고, 역동적이었던 시기는 한반도의 쟁패를 거머쥔 중대에 해당될 것이다. 물론 좁은 식견에 따른 나의 오산일 수도 있겠지만.

 

 

본 책에 설명에 따르면 <사기>와 <유사>의 신라사 시기구분은 중대 혹은 중고를 구분하기 위하여 상대와 하대 혹은 상고와 하고를 구분한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상대와 하대/상고와 하고에 비해 유난히 짧은 기간을 생각하면 그럴 법도 한 것 같다. 물론 이런 시기구분은 당대 신라인이 그렇게 구분하였음을 증명하는 문헌자료나 금석문 자료는 나온게 없다. 그냥 고려대에 편찬된 <사기>와 <유사>의 편찬자의 사관에 따라 설정된 것일 분이다. 여하튼 그만큼 중대와 중고를 신라사에 있어서 번영의 시기로 주목한 것만은 틀림이 없다. 그런 이유로 신라 하대는 왕위계승쟁탈전이 벌어지면서, 정치적으로도 사회경제적으로도 사회에 누적된 모순을 해결할 역량이 되지 못하고, 그런 힘의 공백을 통해서 성장한 지방 세력들에게 그 땅을 내주어 지역정권으로 전락하였다가, 결국에는 고려에 투항하는 시대로 파악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치열한 왕위계승쟁탈전이 상징하는 정치적 불안정과 왕족 귀족들의 부패, 음란이라는 이미지로 떠오르는 시대가 신라 하대인 것이다.

 

 

 

하지만 본 도서에는 하대에서 무력을 동반한 왕위계승쟁탈전이 벌어진 것은 선덕왕에서부터 흥덕왕 사후 희강왕과 민애왕 그리고 신무왕에 이르는 780년~839년, 59년간이었다. 하대에 해당하는 선덕왕~경순왕까지의 시간이 155년임을 보면, 하대 초기에 일을 가지고 하대 전체를 그러한 인식으로 보는 것은 과도한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신무왕부터는 표면적으로는 왕위계승과 관련하여 무력이 동반한 쟁탈전은 벌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신라 하대를 단순히 羅末로 생각하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다. 그래서 저자는 신라하대를 선덕왕~민애왕 까지를 하대초기로 왕위계승쟁탈시기로, 신무왕에서 진성여왕 2년까지는 하대의 전성기로, 그리고 진성여왕 2년 이후에서 경순왕까지를 쇠퇴기로 삼구분하고 있다.

 

 

 

나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신라의 멸망과 관련하여 진성여왕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많았나 보다. 숙부 김위홍과 사통한 것(실지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차치하고??)과 숙부 위홍의 사후에 미남자를 들여 문란케 하였다는 점을 들어 그런 듯하다. 뭐 사실 지금의 시각으로 보자면, 신라왕실관계라는 것이 참 음란하게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생각해보면 유독 진성왕만을 문제 삼을 것이 무엇이냐는 점도 있거니와(저자는 정황상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신라의 멸망을 너무 강하게 진성왕을 탓으로 돌리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진성왕 3년에 일어났던 농민봉기가 결정적인 멸망의 원인을 제공했다기 보다는, 탄력성을 잃은 당시 신라 지배층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 정도라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신라 지배층의 허약함을 보여준 셈이랄까. 가장 결정적인 것은 견훤의 침입에 따른 경애왕의 자살이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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