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중고정치사연구 경인한국학연구총서 58
김덕원 지음 / 경인문화사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김덕원 저, <신라중고정치사연구>를 읽고 있다.   약 한달 전에 읽었던 이정숙 저,<신라중고기정치사회 연구>와는 다르게 진지왕계, 그러니까 태종무열왕의 즉위까지의 사륜계의 정치양상을 살피고 있다. 그 시기는 572년부터 654년이고 중고기의 절반 이상에 해당되는 시기다.  이정숙의 저서를 읽고 나서 사륜계에 대한 궁금증으로 선택하게된 저서인데, 동륜계-진평왕을 중심으로 보는 것과는 다른 면모를 볼 수 있다는 면에서 흥미롭다. 

 

 그런데 아무래도 본 연구가 사륜계의 정치활동에 중점을 보다 보니, 일정한 한계점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고대사의 사료부족이 하나의 한계점일텐데, 특히 진지왕은 4년만에 폐위 당하여서 이렇다할 사료가 없는 것으로 안다. 그 탓에 본 연구방법에서 '적극적인' 자세로 해석을 한다고 하였는데, 그 탓에 과대해석이라 느끼는 부분,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기에 무리가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된다.

 

 우선, 삼국유사의 도화녀-비형랑 설화에 남겨진 진지왕의 폐위 이유로 내세워진 '정난황음'이라는 것을 재검토해보아야 한다는 것인데, 도화녀의 설화에서 어떻게 진지왕의 현명한 판단력이라는 특징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것이 진지왕의 즉위와 함께 정국운영에서라던지 조력자(세력)이었던 거칠부와 김무력을 대체할 수 있는 세력(사량부 혹은 그에 대변되는 어떤 세력)을 구하고자 했던 것이라는 상징성을 제하고 생각해보면, 그것은 단순히 여인을 농락하고 잘 되지 않자 물러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진자사와 미시랑의 이야기에서 진지왕의 지혜를 볼 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도화녀 설화의 해석과는 다르게 그렇게 해석해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과도한 해석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그 외에 흥미로운 해석들도 있다. 그 중 하나로 진지왕의 즉위에 거칠부가 도움을 준 것은 범내물왕계의 귀족연립정권으로의 복귀라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한 것이다. 삼국사기에 진지왕대의 기록을 보면 대부분이 축성과 백제와의 전쟁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그것은  신라가 진흥왕대에 이르러 한강유역을 확보하면서, 고구려와 백제 양쪽에서 파상적인 공세를 감내해야하는 상황에 따른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거칠부는 어린 백정보다는  동륜의 죽음 이후에 가장 유력한 왕위계승자 중에서 가장 연장자인 사륜이 왕위에 오르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당시 신라의 영토보전이라는 현실이 거칠부가 진지왕을 선택한 이유가 되며, 범내물왕계 귀족연합체제로 돌리기 위하였다는 것은, 거칠부가 진흥왕대 혁혁한 군공을 세운 것을 생각하면 다소 어폐가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거기다 진지왕 즉위 당시에도 70대의 고령이었는데, 그럴 의지가 있었을 까 하는 것이며, 거기다 만약 진지왕의 즉위에 왕권약화와 범내물왕계 귀족연합체제의 이행이라는 목적이 있었다면, 그에 해당되는 진골귀족들이 동참했을 것인데, 같이 내물왕계 가계집단의 대표로서 정치에 참여했다고 추정되는 '노리부'라는 인물은 진평왕의 즉위에 관여하였으므로, 거칠부의 목적에 거기에 있었다면, 이렇게 정치적 지향이 달라 질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저자의 생각인 듯 하다. 

 

 그런데,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르게 생각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된다.  거칠부 본인이 진흥왕대에서 군공을 세우면서 통일 전의 신라에서 최대판도를 이루게 되었다는 점과, 왕권약화를 위해서 정당성이 다소 결여되어 있는 진지왕을 즉위 시키는 것이 어떻게 함께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인지?   그리고 고령일지라도 권력에 대한 욕심에는 끝이 없다는 점을 보면, 나이를 이유로 대기에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물론, 책에서 그렇게 강조한건 아니였지만. 그리고 왕계내에서도 정치적 성향을 달리하는 분지화가 이루어지는데, 범내물왕계 가계집단 내에서인들 그런 입장이 나뉘어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런 거칠부가 범내물왕계 귀족연합체제로의 복귀를 위해 [진지왕을]즉위시킨 것이 아니라는 해석 하에서 진지왕의 폐위를 동륜계과 사륜계의 대립으로 파악하였고,  동륜과 사륜를 포함하는 왕실과 범내물왕계의 귀족이라는 대립항으로 보는 연구를 비판하면서,  "부자-형제-친족간의 정치적인 갈등이 궁극적으로 왕위(권)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권력의 속성을 간과한 것으로 생각된다." 라고 하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몇가지 단어만 바꾸면 똑같은 지적을 할 수가 있게 된다.  범내물왕계 귀족세력이란 것도 단 하나의 동일한 정치적 입장만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범내물왕계 귀족연합체제'라는 목표는 같지만, 그 정도나 방법에 대해서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