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정치사 연구 - 국가형성과 지배체제의 변천을 중심으로
노중국 지음 / 일조각 / 198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신라는 아무래도 그 존속기간을 봤을때 사료적인면에 있어서는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서는 많을 수 밖에 없으며, 그 탓에 그와 관련된 연구서도 많은 듯하다.  그리고, 고구려는 동북공정에 의해서 다소 대중적인[그것이 어떤 의미로든]책들도 쉽게 접하기 좋은 듯한데, 백제사나 가야사같은 경우에는 그러지 못한 것 같다.  물론 한국고대사 자체가 사료부족으로 공백이 많다지만. 

 

 본 책은 제목과 같이 백제의 정치전개과정을 연구대상으로 잡고 있다. 기본적인 연구방법은 분해론을 택하고 있는데,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을 모두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냥 그대로 취신해버리지 않으며, 중국 사서인 삼국지 위서동이전을 교차검증하며 읽는다는 것이다.  즉, "삼국지 동이전의 내용을 단계화하고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분해하여 재정리하면 양 사서의 내용은 상호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보완관계의 자료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하나 백제사를 보는데, 참고가 될만한 것은 일본서기가 있을테지만, 워낙에 윤색이 심한 것으로 유명한지라, 특히 백제와 관련해서는 임나일본부설, 즉 남부지역의 통치라는 틀에서 바라보고 있어 좀 유념해서 보아야한다고 말했다. 일본인사학자들도 이런 틀에서 살펴보았다. 

 

 여튼, 그런 연구방법을 통해서, 백제의 정치 전개과정을 살펴보는데, 참 흥미로웠다.  마지막에 통치제도와 관련한 장에서는 완전히 집중력을 잃어버리고 말았고, 읽고 나서 [워낙에 힘들었던지]기억이 텅텅 빈듯 하다.  그냥 큰 줄기를 적어본다.

 

 백제는, 고구려의 유이민이 세운 나라로, 아마도 세력 내에서 권력다툼에서 밀려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의 건국설화로 시조형제설화가 있는데,  백제의 건국자인 온조와 그의 형인 비류가 같이 내려가다, 비류는 그를 따르는 이들과 현재의 인천, 미추홀에 자리잡았고, 온조는 한강하류에 자리잡았고, 후에 비류를 따르는 세력은 온조에게 다시 귀부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어떤 집단이 연맹을 형성하는데 정당화 하기 위한 것으로 보았다. 남하시기나 길도 달리하는 것으로 추측되며, 미추홀세력도 만만치 않았기에 이런 시조형제설화과 살아남아 전승되지 않았냐는 것이다. 어쨋든, 미추홀세력과 연맹관계에 들어가면서 자국의 명칭을 백제로 개칭하기도 하고, 웅천책을 세우면서 그 자신감을 드러낸다. 그러다가, 마한의 맹주국인 당시의 목지국을 정벌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후대에 시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소급부회한 것으로 보았다. 실지로 목지국을 정벌한 것은 247년대에 목지국이 중국군현과의 오해로 전쟁을 벌이다가 패배하면서, 약해진 그 틈에 목지국을 정벌하였는데, 그것이 고이왕대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한을 대체적으로 정복한 때는 근초고왕대로 보고있다.  그리고 왕계와 관련하여서는 초기에는 부여씨와 해씨가 번갈아서 왕위를 계승한 것으로 보는데, 고이왕대 이르러서 부여씨의 왕위독점을 이루었고, 그 이후에는 부여씨 내에서 직계-방계와 관련하여 왕위계승권 분립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유독 백제의 왕위계승과 관련하여 신라의 하대와 같은 현상이 많아 보인 듯 했다. 그리고, 왜 아신왕이 유독 불쌍하게 사람들이 이야기 하였는지도 알게되었다.  기껏 숙부때문에 숨어지내다가 왕위에 올랐더니, 당시 담덕, 광개토왕에게 대판 깨지게 된다.  개로왕대에 이르러서는 왕도 태자도 한성이 탈탈 털리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여튼 건국과정에 대한 이해는 이정도로 일단락되고, 솔직히 나머지는 단편적인 사실들만 가지고 있고 체계가 당연히 잡히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소득이라면, 아 이런 식으로 사료비판을 거쳐서 연구를 하는 구나.. 하는 견식을 얻었다는 것? 노태돈 교수의 고구려사 연구를 잠시 보고 느낀 것이지만, 그건 일독까지도 못해봐서... 여튼 나중에 다시 읽고 싶다. 일단 다음 책으로 넘어가는게 좋을 듯하다. 내게는 좀 많이 버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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