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녀의 탄생 돌베개 한국학총서 11
강명관 지음 / 돌베개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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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란 무엇인가? 현재의 20대에게는 약간은 생소한 단어일 것이다.  20대에 속해 있는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굳이 이 ‘열녀’의 용어가 이용된다면, 어떤 커플의 여성파트너가 상대방 남성파트너에게 어떠한 닭살스런(?) 일을 했을 때, 약간은 시샘의 맥락에서 쓰이고는 한 것 같다.  그만큼 20대에게는 그 ‘열녀’란 단어가 구세대적인 냄새를 풍긴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 ‘열녀’에 담긴 남성에 대한 여성의 성적불평들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다.  이 열녀의 탄생은 조선 500년간 지속적으로 국가-남성이 주도해온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난한 과정을 거쳐 온 것이 금방 사라질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열녀’란 왜? 그리고 누가 만들어 낸 것일까?  사실 물을 필요도 없는 물음이다. 이전에도 남성 위주의 사회인건 분명했지만, 남녀의 차별이 엄격한 사회가 만들어 진 것은 신유학, 즉 성리학이 들어오면서 부터다. 그 성리학을 진리로 받아들인 사대부들이 조선의 건국을 주도하면서 이미 여성들의 운명은 결정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건국세력이 된 사대부는 이 땅에 삼강오륜을 세우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결국 수직적 위계질서의 형성을 의미하는 것이다(대의가 있겠지만, 그냥 단순화 시켜 말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서 보면 결국 ‘열’이란 윤리는 남성에 대한 여성의 성적종속성을 강화하려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성적종속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국가-남성들은 어떠한 일을 해나갔는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법과 제도, 사회적 관습을 하나하나 고쳐나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재가금지였다. 

성종 때 제정된 이 법은 정말 악랄했다. 재가하였던 이의 후손들은 관직에 나아가는 것이 어려워 진 것이다. 이제 단순히 재가의 문제가 여성 본인의 문제만은 아니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성종이 했던 말이 가관이다. “굶어죽는 것은 작은 일이고 절의를 지키는 것은 큰일 이”라고 한 것이다.  이건은 수신전은 다시 부활시키자는 것에 대한 대답이었다. 이러한 법,제도,사회관습적 형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여성 스스로가 의식화 하지 않으면 힘든 이였기 때문에,  텍스트의 편집과, 출판, 유통과정을 통해서 여성들의 대뇌에 의식화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소학>,<삼강행실도-열녀편>, <내훈>등이다. 소학은 사실 남성(양반)들의 스스로를 의식화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 중 열녀의 탄생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삼강행실도-열녀편>이였다.  조선전기에 집중적인 간행과 언해본 등의 간행으로 민간에 널리 퍼트렸다.  이러한 <열녀전>에 들어 있는 이야기는 물론 남성(양반)들의 의도가 담긴 편집물이었다.  유향의 <열녀전>,<고금열녀전>을 비롯한 각종 단대사에서 보인 열녀전들을 편집 한 것인데, 그 열녀전에 담긴 것 중 지적인 열녀의 이야기는 의도적으로 제하고 편집 한 것이다.  대부분의 내용은 열녀의 탄생에는 죽음이 있다는 것이다.  여성 본인의 성적 종속성의 실현이 위기에 빠지거나, 그럴 가능성이 보일 때 열녀는 죽음을 택한다.

 

이 얼마나 비윤리적인 것인가? 어쨌거나, 조선 초기에는 그러한 죽음을 보다는 수절을 하거나, 신체훼손(이라고 하더라도 주로 머리카락을 자르는 정도), 남편의 유교적 장의를 지내는 등의 열녀 탄생의 사례가 많았지만,  임병양란을 통해서 열녀는 급증했다.  자신의 성적종속성의 지속할 수 없는 위기, 그럴 가능성에 대비해 수많은 여성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해갔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정려가 세워지자, 열녀에 대한 이야기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임병양란을 통해서 열녀 이데올로기에 대한 강화가 오히려 이루어 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조선후기에 이르러서는 죽음이 주를 이루게 되는데, 정말 끔찍하다.  저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할고는 예사였다. 그리고 ‘열’의 윤리가 어떤 것에도 앞선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이야기인가?... 그리고 국가-남성들은 이들을 찬미했다.  즉, 죽음을 장려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것을 성리학의 나라에서 펼쳐지는 일이라고 볼 수 있는가?... 아무리 한계가 있다손 치더라도 죽음을 장려하고 찬미한 것은 인륜에 기대어 볼 때 절대로 어떠한 의미를 부여 할 수 없는 것이다. 

 

위에 적어 내려간 내용이 이 책의 전부는 당연히 아니다.  그냥 내가 읽으며 충격을 받고, 흥분했던 부분을 써내려간 것뿐이다. 오해하면 안 된다(바로 아래 제대로 된 리뷰가 있으니 말 안 해도 상관은 없겠지만;;;) 이 책은 800쪽에 이르지만, 그중 300여 쪽은 주석이다. 이 책의 엄밀함은 의심 할 수 없으리라. 다만 그 엄밀함에 비해서는 약간은 성급한 결론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후기에 보자니, 그 부분에 대한 후속의 연구를 약속(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건가?)하고 있으니, 다음을 기대해 본다.

 

그리고 가독성 역시 뛰어나니 모르는 것은 건너뛸 수밖에 없더라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나 역시 2주일 만에 읽었으니, 읽는 재미도 있다. 권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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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10-30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녀라,이 덕분에 조선시대 죽은 미망인이 한두분이 아니죠? 열녀문을 하사 받으면 그 가문에 큰 혜택이 있어 가문 차원에서 은밀히 죽였다고 하더군요ㅜ.ㅜ

가넷 2011-10-30 23:15   좋아요 0 | URL
이 책에서는 그런 부분은 이야기 하고 있지는 않지만, 조선 후기의 추세로 봐서는 분명히 강요로 스스로 목숨을 끓은 경우도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아마 정려되면 요역이나 조세등에 면제를 받았다고 하니까요. 정확히 어느정도까지인지 모르지만).

도올이 말했던 것처럼 조선의 왕과 사대부는 위기를 이런 윤리적 통치의 강화를 통해 해결을 하려 한 것을 보면 한심하죠. 조선이 500년을 버텼던 그 긍정적인 부분을 인정해야겠지만서도, 조선이란 나라를 좋게는 봐줄 수가 없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