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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대 사행으로 본 동아시아 국제관계 ㅣ 동북아역사 자료총서 116
윤유숙 엮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20년 11월
평점 :
책은 머리말에 “‘전통시대에 사행 혹은 사신은 특정 권력 혹은 국가 간의 관계설정을 물론 그 관계를 가시적으로 수행하고 확인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또한 전근대 동아시아 세계에서 사행은 충돌이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외교교섭, 무역, 의례수행, 문화 교류와 전파, 사람의 이주등을 동반하는 행위이므로, 국제 사회에서 국가 간 혹은 국가와 지역 권련간 관계의 유형과 변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열쇠이다. 우리가 사행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여기에 있다.”라고 하며 책의 주요한 의의를 설명한다. 한명의 저자로 이루어 진 것인 저와 같은 의의로 7개의 논문이 구성되어 있다. 그때문에 완결성은 없으며, 편차가 좀 있다.
책 중에서 흥미로운 논문은 첫번째 논문인 <고대 동아시아의 다원적 국제관계와 맹약 ‘조공-맹약‘체제의 가능성>이다. 시론격의 글이지만, 가장 흥미로웠다. 전근대 동아시아 세계를 설명하는 체계적 이론으로는 책봉체제론, 조공체제론이 있다. 이 둘은 어디까지나 중국 중심적이고 동아시아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지역과 국가의 주체성이 그려지지 않는 다는 바핀이 있다. 중국을 제외한 다른 주변국들 간의 관계는 그려지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리고 책봉체제론과 조공체제론은 당대 동아시아내 역학 관계에 따라 실질과 형식에 많은 괴리를 만들어 냈다는 점 역시 바핀을 받고 있는 한 부분이다. 가령 책봉체제론으로는 중국을 중심으로 동쪽에 있는 지역들(한국, 일본, 류큐, 베트남 등)은 상대적으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서북방의 지역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책봉이라 하면 실질적으고 형싱적으로 할 것 없이 상하관계를 설정하는 것인데 서북강의 지역에는 거의 대등한 관계를 맺어 왔다. 당의 이세민은 중국의 황제로 오름과 동시에 유목민족의 맹주의 호칭이 ’천가한‘를 칭호를 받았다. 이는 중국의 황제를 정점으로 한 책봉체제론 또는 조공체제론으로는 포섭되지 않는 현상이 있다 하겠다.
이런 점을 들어 저자는 조공-맹약체제론을 주장한다. 시론적인 성격의 글인 만큼 서북방의 유목민족과 중국의 관계, 한반도 내에 고구려와 신라,백제의 관계, 한반도와 일본 과의 관계등에서 조공-맹약의 예를 찾아 나열한다. 거기서 하나의 특징점을 도출하는데, 맹약의 경우 ’제도화된 관계를 맺지 않으나 양자의 화호를 도모하고 당면한 현안들을 해결하는 목적으로‘ 실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맹약은 서로간의 우위를 획정 짓고 복속의 형태인 조공이 있기도 하였다. 조공-맹약체제론이 완전히 책봉체제론/조공체제론을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보완적인 형태로 설명이 가능 할 것 같다. 중국과 서북방 지역의 관계가 그러하며 중국을 제외한 동아시아시 구성원들간의 관계가 그러하다.
두 번째 논문인 <청말 중국의 베트남 사태에 대한 인식과 대응:>도 마찬가지다. 간략하게 흥미롸웠던 지점이라 하면 그들의 조공관계에 있는 이들을 울타리라 칭하고 중국이 직접적인 위험이 없는 선에서만 간섭을 했다는 점이다. 만약 프랑스가 하노이 남쪽만을 세력권으로 만들고 활동 했다면 청나라는 여전히 무심 했을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목표가 단순히 베트남만이 아님을 알았을때 그들은 행동에 나섰다. 임진전쟁때의. 명일간의 강화시도 역시 그러한 사고방식이다.
전역의 맹약을 다룬 세 번째 논문은 전연의 맹약에 대한 사건의 개요를 충분히 알게 되었으나, 그것뿐이지 굳이 하나 글을 더 얹을 필요가 있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구명되지 않느 사실이 있었나? 난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전연의 맹약에서 어떤 점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인지도 뚜렷하게 알수가 없었다. 주장의 대체는 끄덕일 수 있긴 한데 그래서 어떤식으로 중요한 교훈을 얻는 다는 것인지? 그 지점에서 상당히 불만족스러웠다.
네 번째 논문인 <16세기 후반 조일관계와 대일사행>은 그냥 논문을 쓰기 위해 쓰여진 논문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마지막 일곱번째 논문인 <18세기 후반 쓰시마 간사재판의 조선행 겅토>의 경우 내 관심사에서 조금 떨어져 있기도 하고 지엽적인 부분이 있어서 흥미가 다소 떨어졌다.
다섯번째 논문, 여섯번째 논문의 조선대의 중국과의 관계를 그리고 있는데, 다섯 번째 논문인 <조선 사신의 명 북경;관광‘,. 외교적 의미와 관광소회>가 제법 흥미로웠다. 중국의 사행을 관광의 측면에서 바라본 내용이다. 상당히 흥미로웠다. 여섯 번째 논문인 ㅡ<“중화는 소중화와 다르다” 황재의 연행록에 나타난 18세기 중반 중화인식의 단면>은 영조대에 사신으로 간 황재의 연행록을 통하여 당대 조선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중화인식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흥미로웠다. 뭐 흥미와 동시에 이 멍청한 미친놈들을 봤나 싶은 생각을 하며 이들과 현대인인 나와의 간극이 이만큼 큼을 느끼기도 하였고.... 일이십년간에도 큰 간극을 느끼는데 하물며 기백년이면...
전반적으로는 만족감을 느끼진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