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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 미래의 역사 ㅣ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17년 5월
평점 :
지금의 사피엔스는 현재를 스스로가 인류세라 칭할 만큼 자신들이 이전 지구에서 그 누구도 넘보지 못했던 전 지구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모든 종에 대한 상위를 확보한 거의 유일한 종이 되었다(물론 개체로서는 미약한 존재일 것이지만). 그것은 다른 종과는 다른 유연한 협력 방식에 있었다. 나와 피를 나눈 가족 또는 친척이거나, 그게 아니지만 친밀한 사이에만 협력 하는 다른 종과는 달리. 신이라는 허구, 국가라는 허구, 돈이란 허구에 대한 믿음이 사피엔스 서로간의 협력을 이끌어 냈다. 천국으로 갈 것이란 믿음으로 기독교도들은 십자군 원정에 죽음의 위험을 안고 출전했다. 돈은 돈임을 믿었기에 그에 근거한 화폐경제가 굴러 갔다.
그리고, 지금 현재의 사피엔스를 있게 만든, 허구의 믿음 중에 인본주의를 제일로 본다. 인본주의는 인간의 경험을 제일로 보는 것으로 초월적인 누군가가 우리에게 인생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의미 부여의 원천이라 한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문제를 해결 한 것도 우리며, 우리의 감정에 귀를 기울리라 하였다. 어떤 광고에서 우리는 고객님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고 하는 것을 볼때가 있는데 그것은 지금 시대가 인간의 감정을 강조하기 때문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생명과학의 발달은 이런 인본주의라는 믿음에 균열을 가하고 있다. 가장 가까운 예로 우리는 알고리즘의 추천으로 내가 원하는 영상이라며 추천을 하며 그것을 보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아무런 의심 없이 나의 취향을 충분히 반영하는 것이라 믿고 계속 추천 알고리듬에 따라 본다면 그것은 개인의 선택이라 할 수 있을까? 마음과 의식이 단순히 생화학적 알고리듬에 불과하고 그것을 조절할 수도 있다는 기술적 진보에 이르면 속된 말로 아스트랄해지기 시작한다.
사피엔스가 걸어온 길은 기아, 역병, 전쟁이라는 이전의 의제를 해결해왔으나, 그것에 대한 논리적 귀결로 결국 스스로를 새로운 차원의 종으로 진화할 수도 있는 갈림길까지 가게 하였다. 그 길은 저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생물학적인 차원의 불평등, 즉 새로운 인류와 기존의 호모사피엔스로 나뉘는 길로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이런 예견이 섬뜩한 것은 지금 우리 사피엔스가 친척들과 다른 동물들을 대한 태도를 보라. 지금의 부의 불평등이 생물학적 차원의 불평등을 낳는다면...
그러한 디스토피아적 예견 보다 뭔가 모를 섬뜩함은 새로운 인류로 도약의 가능성이다. 뭔가 모를 허무함 이라고 해야할까... 하지만 항상 사피엔스의 선택이 길을 만들었던 것처럼 이러한 암울한 디스토피아적 미래사회가 아니라 모두가 건강하고 덜 일하고 느긋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나이브하지만 행복한 미래를 사회를 꿈꿀 수는 없을까?
이미 인공지능의 등장에 따라 여러 직업의 소멸을 예고하고 있기도 하지만 이 책이 예견하는 미래는 나 이후의 세대의 일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고.... 새로운 지평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많아 져야 할건 분명하지만 아직 난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