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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진화론 - 우리는 왜 불완전한가
사라시나 이사오 지음, 황혜숙 옮김 / 까치 / 2020년 10월
평점 :
<폭발적 진화>와 같은 저자로, 책 컨셉은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폭발적 진화는 진화의 기적에 방점을 두었다면 이 책에서는 '잔혹함'에 집중한다. 진화론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분명히 한 것이 있다.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는 것. 어떤 목표점을 두고 달리기 경쟁하는 식이 아니란 것이다.
그렇기에 진화는 누더기 같은 이상한 신체를 만들어 버린다.
사람이 이족보행을 하게 되면서 이점도 있었지만, 심장에는 상당한 무리를 주게 되었다. 심장는 발끝부터 머리까지 산소를 보내기 위해 2개의 방과 2개의 실을 만들었다. 그런데 정작 심장세포에는 산소 공급이 어떻게 되는 가? 그건 심장동맥에 의해 이루어지며, 그것은 대동맥에서 갈라진 이후 심장 표면으로 뻗어 나가 월계관 처럼 심장을 둘러싼다고 한다. 격한 운동을 하게 될때 숨이 차는 이유는 심장이 수축될때는 심장동맥도 압박을 받기 때문이란다. 또한 아기를 출산할때 난산을 하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런 류의 책을 읽다보면 인간이 진화 정점이라는 말은 엄청난 오산임을 분명히 알 수 있게 된다. 저자가 계속 강조하는 바와 같이 진화하는 생물은 그 당시 환경에 적응을 잘 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인식에 또 하나 교정을 해줄만 한 사살은. 인류가 침팬지와 700만년 전에 갈라 졌다고 하는데, 그 기간 보다 훨씬 오래전에 등장한 공조상을 보니 인간형의 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침팬지가 진화를 한 셈이다. 하지만 더 상위의 버젼으로 업그레이드 된 것은 아니다. 그냥 환경에 맞춰 변화한 것일뿐.
그리고 책의 말미에 왜 책의 제목이 잔혹한 진화론으로 지었는지 알 수 있다. 바로 생명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죽음이 전제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자연선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한 개체가 오래 살아서는 가능할 수 없다. 결국 대를 이어가며 변이가 축적되어야 가능하기에... 그리고 또 하나 강조하는 것. 생존경쟁이라는 단어에 대한 이미지. 경쟁에 방점을 둔 나머지 생존을 둘러싸고 치열한 전쟁을 연상하나, 사실은 그것은 아니다.
그냥 다만 살아갈뿐이다.
미생물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잔혹한 순간이기도 하지만, 가장 빛나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