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문화론 이기백 한국사학논집 11
이기백 지음 / 일조각 / 2002년 10월
평점 :
절판


 이기백 선생의 전통문화에 대해 발표한 글들을 모았다.  그런데 약 3분의 1은 제목과는 동떨어진 내용을 다룬 것이다. 처음에 구입하고 나서는 선생의 다른 저작에 비해서는 관심이 덜했다. 습관적으로 구입을 한 이유도 있고.  어제 무엇을 읽을까 고민하던 차에 집어 들었는데 즐겁게 읽었다.


 기본적으로 발표한 지면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입장은 전통문화란 무조건적으로 계승해야 할 것도 아니고, 인습으로 규정, 거부해야 할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계승되어야 할 전통문화란 한국사의 전진을 가져다 준 것이어야 한다 말한다.  무술신앙의 경우에는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계승해야 할 전통문화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보존은 되어야 할 것이라 말한다. 가령 선사시대와 고조선 대에는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무술신앙이 당시 시대적인 상황에 필요한 것 이었기 때문에 역사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으나,  여타 외래 종교와 다르게 체계적으로 남겨진 것이 없어 연구가 난망 하지만, 대신 현대의 무술신앙을 참고 해야 할 필요로 보존이 필요할 수 있다는 취지로 적고 있다.  그러나 계승할만한 가치가 없다고 한 것은 지금의 무술신앙이 역사적 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한다기 보다는 개개인의 이기적인 욕망에 복무하고자 하는데 있다고 하였다.  대체적으로 동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무속인의 입장에서는 그렇지는 않겠지만.  가십거리로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항상 무속인 본인의 주장일뿐이라고 경고 비슷한 무구를 넣기는 하지만.), 무속인이 예능에 나와 사람이 길흉화복을 점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개인적으로 마땅치는 않다. 


<족보와 현대사회>에서는 족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발표한 시기(1999년 2월)를 보아서는 상당히 유효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 글에서 88년도에 한 50대의 재력가가 딸을 결혼 시키려는데, 상대방의 집에서 족보를 요구하여 당황해 족보 전문 출판사를 운영하는 사장에게 찾아가  명문가의 족보에 자신의 일가를 넣어줄 것을 요구 했다는 일화를 읽을 수 있었는데,  요즘에는 이런 경향이야 없겠지만, 그때는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며 놀랐다. 


<삼국시대 불교 수용의 실제>를 읽으면서는 일인학자 중에 불교 하사설 이라 하여 삼국시대에 불교가 수용 된 것은 당시 종주국의 하사로 된 것이라 하는 이론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문화, 종교등은 수용자 적극적인 수용의지가 있어야만 가능 한것인데, 하사라는 형식으로 가능하다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니 신기했다.  저자는 마지막 맺는말에서 이런 이야기로 많은 지면을 소비했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설을 주장하는 이가 학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그랬다고 적고 있다.  뭐하는 사람인지.  아마 순수한 학문적 궁구라기 보다는 다른 의도 혹은 편견에 따라 주장된 기괴한 설이 아닌가 싶다.   해당 글의 내용은 대략적으로 불교수용을 전후하여 교육기관의 설립, 율령의 제정, 대외발전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필요에 의한 적극적인 수용의지가 있었기에 수용이 가능했다고 설명한다. 사실 이러한 설명으로는 조금 납득이 되지 않는 면은 있는데,  불교하사설이라는 설의 기본적인 전제 자체가 너무 황당하다 보니 크게 느껴지지 않는 부분이다. 


<한국 고대의 동성불혼>을 읽고는 참 묘했다.  세월의 흔적이 많이 느껴지는 글이기 때문이다.(참고로 1996년에 발표된 글이다.) 이 글은 족외혼이라는 법을 어겼을때의 처벌에 대한 기존의 견해에 인접학문의 결과(비교사학의 방법)를 참고하여 수정을 가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전의 저자나 다른 학자들의 견해로는   삼국지 동이전의 부여전에 기록된 :


"남녀가 간음을 하거나 부인이 투기를 하면 모두 죽였다. 특히 투기를 미워하여 이미 죽이고는 그 시체를 나라 남쪽의 산 위에 두어 썩고 문드러지기에 이르렀다."


라는 글에서 남녀가 간음을 하거나 부인이 투기를 하면 모두죽였다고 하였지만, 당시 시대(가부장제적인 가족제도를 생각하면)를 생각해보면 여자쪽에게만 처벌이 가해졌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말리노프스키가 트로브리안드 섬의 원주민에 대한 현장보고를 읽고 수정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16세가량의 원주민 청년이 이모의 딸고 성적교섭을 맺었으나 처음에는 조용히 넘어갔지만, 그 여자와 결혼하기를 원하는 연적이 이 사실을 퍼뜨리자 청년이 궁지에 몰리고  결국 높은 야자수 위에 올라가 자살을 행했다는 내용이라 한다. 납득이 가기는 하나, 역시 여성에게 비대칭적인 결과가 많이 있지 않았을까 싶긴 하다.



<한국 고대의 축제와 재판>이란 글을 책 내에서도 가장 분량이 많고, 흥미진진하다.  역시 삼국지 부여전에 나온 부여의 영고라는 축제에 대한 글에서 시작한다. :


"은 정원에 하늘에 제사지냈는데, 온 나라 사람들이 크게 모여 연일 마시고 먹고, 노래부르고 춤추니, 이름하여 영고라 했다. 이때에 형옥을 단하고 죄수를 풀어 주었다."


여기서 단형옥에 대한 상반되게 갈리는 의견이 있는데,  한쪽은 '단'이 재판을 뜻하는 것이라 하였고, 다른 쪽은 형옥을 중단한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저자는 '단'이 재판을 의미하는 것이라 보고 단이 중국 사서에서 쓰이는 용례를 살피고, 축제일에 재판의 유습등을 찾아 비교하였는데,  조선시대 여러 지역에서 정월에 모의재판와 같은 놀이를 하는 하는 경우가 있었다 하였고,  다른 민족에서의 축제일 재판의 예도 같이 나열하며 단형옥이 재판을 뜻하는 것임을 논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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