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지배세력 연구
문동석 지음 / 혜안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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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왕조국가의 정치사를 살필때 주로 왕을 중심으로 그 위상에 따라 살펴보기 마련이다. 하지만 당시 지배체제를 만들고 운영하고 변화하는데 왕과 그 측근세력만이 기여한 것은 아니다 그 외 지배세력들도 그 일익을 담당했던 것이다. 후기에 대성팔족이라 불리는 주요 지배세력의 존재양태를 살피고 있다. 백제사를 읽다 보면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다양한 지배집단들이 나타나고 있어 정리를 했으면 좋겠다 싶었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도 그 이유였다.


백제사의 초반부터 등장하는 유력한 세력은 진씨와 해씨이다.  진씨의 경우 대고구려전에서 많은 역할을 담당했던 것 같다. 아신왕때에는 당시 광개토왕의 공격으로 58성 700촌을 빼앗기고, 왕족을 포함한대신들 10명이 끌려 갔다고 한다. 그에 대한 문책성 인사로 당시 좌장이었던 진무가 병관좌평을 맡게 된다.  아신왕이 죽고나서 왜에 인질로 있던 전지가 왕위 계승을 하러 올때 당시 아신의 동생인 설례가 임시로 국정을 운영 중이던 훈해를 죽이고 왕이 되고자 했는데, 설례지지파에 진씨 세력이 있던 것으로 보았다. 당시 전지를 지지했던 해씨세력은 전지왕과 삼근왕시기에 정국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었지만, 해구의 반란과 그 반란이 진압되면서 다시 진씨 세력이 재등장 하기도 하였다. 


목씨의 경우 근초고왕 가야 원정때 적극 참여하여  대가야정책에 일익을 담당하며 세력기반을 다졌다고 한다.  구이신왕 시기 전횡을 일삼았다고 하는 목만치가 있으며,  웅진천도시에도 문주왕을 목협만치가 보좌하기도 했다.  사씨 세력도 가야원정에서 어느정도 일익을 담당하며 두각을 드러낸 것 같다.  신라와 가야7국을 평정하기 위해 목라근자와 사사노궤가 이끄는 증원군을 보냈었는데, 그때 사사노궤가 사씨다. 이 사씨는 웅진천도 후 가야 지역에 대한 영향을 행사하기 위해 재등장하기도 한다.  광개토왕에게 58성 700초을 빼앗겨 치명적인 물적,인적자원을 잃은 이후 남쪽으로 활로를 찾기 위함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관산성 전투를 전후하여 개별적으로 존재하던 귀족세력이 유력한 8개의 혈족집단을 구성하게 되었고,  6세기 당시에는 22부사제가 설치되어 행정관서체계가 갖추어지면서 관료조직 내에서 사회신분적 측면에서 최고의 귀족을 가리키게 된 것이라 보는데,  솔직히 관산성 전투 이후에 8개의 유력 혈족집단이 어떻게 구성되어 갔다는 건지 이해는 되지 않는다. 


백제의 경우에는 근구수왕 이후 무령왕전까지는 이런저런 사건으로 왕의 교체가 너무 빈번하여 자꾸 사건의 전후가 헷갈라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도 그랬다.  좀 정리가 안된 측면이 크긴 하지만, 내가 원했던 것은 얻기는 했다. 차후에 백체사 관련 연구/교양서적을 읽을때 참고삼아 읽으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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