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키메라의 제국 서울대 인문 강의 시리즈 1
구범진 지음 / 민음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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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버드 중국사 : 청>을 읽으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중국사 가운데 특히 청나라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  솔직히 왕조국가였던 조선에 대한 애정은 없으나, 민족적 감정을 먼 과거로 쉽게 소급 하는 습성 탓인지  조선의 왕인 인조가 겪었던 치욕을  나 역시도 치욕으로 느끼었기에 그런 것일까?  그렇기는 하지만 인조과 조정의 대신들에게 느끼는 분노가 더 크다. 


 이 책은 일반대중에게 청나라를 소개할 목적으로 쓰여진 것이라 어렵다거나 하지는 않다.  본격적인 연구서도 아니고, 상정한 독자들도 일반대중으로 소개하여서  다소 간략하다,


재미있게 생각한 것은 누르하치의 아들 홍타이지가 다이칭 구룬을 선포할 수 있었던 것은 기세는 예전만 못하나 몽골 제국의 정통을 계승하고 대칸의 권위를 보유한 차하르의 릭단 칸을 제압하여, '대원전국'의 옥새을 얻게 되는 것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몽골문제에 많이 민감했었던 모양이다. 준가르에 대한 전쟁도 그런 탓이 큰 것일까.  얼마전 책을 정리하면서 사두었던 <중국의 서진>도 정리했는데, 조만간 다시 구입해서 읽어야 겠다(청의 유라시아 정복사를 다룬 저서다,)


 이런 몽골문제(준가르)는. 이전의 중화제국과는 다르게 러시아와 대등한 지위에서 조약을 맺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네르친스크-카흐타 조약) 흥미롭게도 이 조약은 한문-한어로된 문서는 없다. 저자의 설명은 몽골문제는 한인의 순례권 밖에 있기에 그렇다는데,  청 제국이 이전의 중화제국이 아닌 세계제국으로서 가지게 된 특성(청 제국의 황제는 문수보살이나 이슬람의 보호자 등의 여러 가면을 가지고 있었던 것)에 기인한 것도 같다.   그리고,  한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청 제국이 내우외환으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쳐했던 19세기에서 이르서였다.  이전에는 격리정책과 본속주의로 엄격하게 구분하였다.  건륭제는 만주족의 생활방식을 잊지 말 것을 많이 강조하기도 했다고 한다. 

 

아, 그리고 청 제국이 서양열강의 침탈로 서양열강의 세계관을 접하면서 그것을 고스란히 조선과 몽골문제에도 적용했는데, 거기에는 청제국의 위기에 처하게 되면서 한인관료가 자리를 잡은 것도 한 몫한다고 보았다. ("청 제국의 내정과 마찬가지로 한인 관료가 청제나라의 대조선 정책을 주도하기 시작하였고, 이를 배경으로 한인 지식인들의 뿌리깊은 화이사상이 '만국공법'의 논리와 묘한 형태로 결합하는 현상이 일어났다,"(p237))


마지막에 책을 끝내며 저자는 근래에 중국이 역대 정사의 계보를 잇는 <청사>편찬사업을 벌이고 있다고 하며, 한 중국학자의 글을 인용하며 끝낸다. 그것은 황제치배체제가 성립된 이래 지속되었던 꿈을 허상으로나 실제로나 이루기 위해 했던 노력의 반복이 되는 내용이었다.,.. 끔찍하다. 정치적 목적에 부합하기 위한 역사학.


 어떤 사학자의 묘비명에 적혀 있다던 문구가 생각났다. 


"민족에 대한 사랑과 진리에 대한 믿음은 둘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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