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로파 벨라돈나
예니 에르펜베크 지음, 박민수.김은정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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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르펜베크는 서늘하다. 한겨울 산길을 혼자 차를 운전해 간다. 이리저리 굽이길이 많아 속도를 내는 건 자살행위와 비슷하다. 짧은 오르막과 짧은 내리막이 연속되더니 이번에는 한참 올라간다. 경사가 완만해지는가 했더니 그 자리가 곧바로 내리막을 시작하는 곳이었다. 달이 훤했던 것 같지만 숲이 깊어 달빛이 닿지 않아 상향등을 켜도 제대로 보이는 게 없다. 갑작스러운 회전 길. 그나마 완만한 우회전이라 그저 가던 대로 간다. 그러다 도로 오른쪽에 허연 물체가, 흰 옷을 입은 여성이 있는 것처럼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사납게 와락 달려들 것 같다. 얼른 속도를 내 지나치며 슬쩍 보니까, 비닐 하우스에서 찢어져 나온 비닐의 제법 큰 조각이었다. 급하게 물체를, 흰 옷 입은 여성(처럼 보였던 것)을 피하려다 하마터면 작지 않은 사고를 낼 뻔했다.

  이런 경험은 한 번씩 해봤을 터. 이 책을 읽은 감상하고 비슷하다. 그렇게 서늘하다.


  열 개의 단편소설을 실은 소설집. 짧은 해설까지 150쪽의 부담없는 분량이지만 절판이다. 도서관에도 없다. 지난 달에 에르펜베크의 장편소설 <모든 저녁이 저물 때>를 하도 인상 깊게 읽어 그날로 헌책방 뒤져 2년 만에 내돈내산했다.

  이이의 이름 Jenny Erpenbeck를 우리말로 “제니 에르펜베크”라고 썼으면 지금 절판된 구간이고, 신간은 “예니 에르펜베크”라 쓴다. 안 그러겠지만 혹시 헛갈릴까봐 짚고 간다.

  이 책으로 이제 예니 에르펜베크의 우리말 번역 단행본은 다 읽는다. 나머지 작품들도 빨리 번역해 나왔으면 좋겠다.


  표제작 <아트로파 벨라돈나>는 식물의 학명이다. 사람들은 그저 아름다운 여인, 벨라돈나belladonna라고 부른다. 가지과 식물이라 가지 비슷한 열매를 맺는다. 왜 “아름다운 여인”이냐 하면 열매에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독소가 있어서 열매를 먹으면 공동이 확장되어 눈이 크게 보여서 더 예뻐 보이는 것처럼 느낀다. 당연히 많이 먹으면 일시적인 시각장애를 일으키고 더 많이 먹으면 위험하고, 그래도 더 많이, 더 많이 꾸역꾸역 먹으면 다른 모든 음식물처럼 배 터져 죽는다.

  나는 오빠가 좋다. 오빠? 정확하게 말하면 엄마와 가장 친한 친구아줌마의 아들이다. 이른바 엄친아. 생일이 조금 빨라 편의상 오빠라 한다. 그냥 ‘형제’ 개념이다. Bruder. 어려서부터 서로 알고 살았다. 온갖 스토리가 다 있다. 한 싱크대에서 한 엄마(또는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가 두 아이를 목욕시킨 것부터 시작해 늘 같이 놀고, 밥 먹고, 가끔 다투기도 했지만 아주, 아주 가끔 다투었고, 같은 초등학교를 졸업했으며, 같은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쳤다. 그러면서 오빠가 진짜 형제Bruder 같은 순간도 있었으나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남매사이에서는 결코 느끼지 못할 야릇한 페로몬을 방사하기 시작했다. 엄마들은 모르는.

  아이들이 점점 커져 이제 하이틴이 되었을 때, 우연히 캠핑 이야기가 나왔고, 엄마와 엄마의 친구 아줌마는 나와 오빠, 단 둘이서 국경 넘어 캠핑 가는 것을 허락했다. 이제는 성접촉의 권리를 인정한 모양이다. 동네에서 가까운 국경 역에서 만나기로 한 둘. 가보니 오빠는 벌써 나와 있다. 둘은 국경을 넘었다. 캠핑장에 도착했고, 텐트를 치고, 숲에 밤이 와 잠을 잔다는 명목으로 텐트 안에 들어와 각자 자기 슬리핑백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별의 별 생각이 다 든다. 이제부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물론 반 아이들의 경험담을 충분하게 들어서 구체적인 순서도 알고 있기는 하지만 정말 두 사람이 그런 절차와 이상한 방법으로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건 직접 해봐야 아는 걸까? 하여간 명목상 둘은 잠을 자는 상태를 시작했다. 결코 잠들지 않은 잠자는 상황. 시간이 갈수록 잠은 오히려 저 바깥 쪽으로 물러가기만 한다. 그러나 오빠와 나 사이의 아주 좁은 공간에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두꺼운 장벽이 쌓이는 것 같다. 오빠 역시 숨소리만 간간히 낼 뿐 깨어 있다는 조금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오빠도 내가 말짱한 정신으로 깨 있다고 여기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게 날이 밝았다. 흔히들 말하는대로 손만 잡고 잔 것도 아니고, 손도 안 잡고 그냥 잤다. 그런데 오빠가 이상하다. 탁, 보니 열이 펄펄 끓는다. 우리한테는 휴대전화도 없다. 그래 다른 캠프에 가서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구조요청을 했고, 엄마의 친구 아줌마가 차를 몰고 우리를 데리러 왔다. 그렇게 잘 하면 딱지를 뗄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갔다. 나는 여전히 오빠를 사랑한다.

  몇 주가 지나고, 엄마는 도무지 언짢은 소식을 들려준다. 오빠한테 애인이 생겼다는 거다. 말도 안 돼. 근데 말이 되는 것 같다. 들은 말로 찢어진 셔츠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다니건만 그렇게도 예쁘단다. 찢어진 옷 사이로 보이는 속살도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보인다니 모르긴해도 포스가 남다른가 보다. 엄마 심부름으로 엄마 친구 아줌마 집에 갔을 때, 오빠는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오빠 방에는 오빠 말고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오빠의 애인도 있다고, 아줌마가 말해주었을 때는 속상했다.

  두 가족이 함께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는데, 입구에 엄마 친구 아줌마와 오빠, 오빠의 애인이 서서 우리를 기다렸다. 오빠의 애인이 참 예뻤다. 나도 못난 축은 아니지만 오빠의 애인하고는 비교하기 민망하다. 엄마는 오빠네 가족을 집으로 불러 저녁 한 끼를 먹기로 했다. 당연히 오빠의 애인도 오겠지.

  그녀도 왔다. 우리집은 숲에 면했고, 일정 구간은 우리 땅이다. 그녀와 나는 저녁을 먹기 전에 숲으로 들어갔다. 야생 블랙베리와 사과를 따 먹어보라고 했다. 맛있게 잘 먹는다. 살구도 따 주었더니 역시 잘 먹고 씨앗만 툭 뱉는다. 나는 더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 그녀에게 벨라돈나를 하나 따 주고 먹어보라 했다. 특별한 맛은 없지만 먹었다. 분명히 먹었다. 나는 벨라돈나를 따고, 따고, 또 따서 치마 가득 건네준다. 다 먹으라고. 다 처먹고 죽어버리라고.


  <아트로파 벨라돈나>가 제일 재미있지는 않다. 독일 여성 작가들이 단편소설을 참 매력적으로 쓴다. 일찍이 내가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한 유디트 헤르만도 있다. 예니 에르펜베크도 헤르만하고 비슷한 분위기의 전혀 다른 내용의 단편을 쓴다.

  근데 아쉬운 건, 이 책의 역자가 두 명이라는 거. 박민수와 김은정.

  누가 감히 이들의 독일어 실력을 입에 올리랴. 그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작품이 다 균일하게, 즉 비슷한 품질로 읽히지 않는다. <A>는 원래 작가의 문장이 그런지 역자의 번역문, 즉 우리말이 그런지 여간해 읽히지 않아 나로 하여금 버벅거리게 만든다. <B>는 그렇지 않고 매끄럽다. 분명히 에르펜베크 또는 두 명의 역자, 아니면 독자, 이렇게 네 명 가운데 한 명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기도 할까? 어쨌거나 참 맵씨있는 작품 모두를 즐기지 못한 것은 아쉽다.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뭐. 내 탓이겠지.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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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의 불편함
마리커 뤼카스 레이네펠트 지음, 김지현(아밀) 옮김 / 비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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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년생 네덜란드 작가의 데뷔작. 이이는 데뷔작으로 부커-인터내셔널 상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남부 노르트브라반트 주의 독실한(것처럼 보이는) 개혁파 개신교 농가에서 태어나 자랐다. 네덜란드어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려 했다가 시, 소설을 쓰는 전업작가의 길을 선택해 중도에 때려 치웠다고 위키피디아-영어판에 나온다. 소년 같은 외모와 성격을 가져 논바이너리를 선언했단다.

  그날 저녁의 불편함? 나는 이 책을 읽는 게 불편했다. 원래 네덜란드 사람이 좀 우울하다. 많은 사람한테 사랑받는 화가 고흐의 초기작품에 그의 조국인 네덜란드를 배경으로 하는 게 많은데 <감자를 먹는 사람들> 같이 좀 음울한 분위기의 색상과 피사체, 그게 사람이 됐든 물체가 됐든 간에 하여간 우울하다. 이 책은 화자인 주인공 ‘나’ 야스 뮐데르가 사춘기에 접어들기 바로 전 시기까지의 소년기의 한 시절, 2~3년 간을 시간적 공간으로 하고 있으나, 야스가 처절하게 앓고 있는 변비처럼 답답하고, 뭔가 마음에 걸려 묵지근하고, 간혹 콱콱 얹힌다. 그러니 데뷔작이면서 다른 문학상도 아니고 부커-인터내셔널 상을 받았다고 덥석 미끼 물지 마시고 잘 생각해보시라. 아하, 그러고보니 부커-인터내셔널은 이것처럼 좀 그로테스크한 작품을 좋아하나비여? 고기 안 먹겠다는 딸 입을 억지로 벌리고 탕수육 한 조각을 쑤셔 넣는 아빠 같은 거.


  이야기의 시작은 화자 야스가 열 살 때 크리스마스 이틀 전에 벌어진다. 야스는 좀 더딘 아이였다. 학교 담임도 이 아이에 대한 희망을 버린 듯했다. 하긴, 시계보는 법을 익히는 데만 1년이 걸렸으니 사실 야스 본인도 할 말이 별로 없기는 하다. 숫자만 나왔다 하면 정신 헷갈리는 걸 어떻게 하느냐고.

  이 뮐데르가家로 말할 것 같으면, 작가 레이네펠트네 가족보다 훨씬 더 진지한 개혁파 개신교 집안으로 부모, 특히 아버지가 권장하는 책은 딱 한 권, 성경 가운데서도 특정 파 판 성경이 유일했다. 당연히 일요일이면 가족 모두 잘 차려 입고 교회에 가서 예배를 했고, 거의 모든 일상에 성경”말씀”은 인용했다. 이건 가족 모두 마찬가지다.

  부모는 순서대로 아들-아들-딸-딸을 두었는데 각각 맛히스, 오버, 야스, 하나라는 이름을 붙였다. 큰오빠 맛히스. 맛히스? 거 참 재미난 이름일세. 이렇게 휙 넘어갔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마티스”를 굳이 “맛히스”라고 우리말로 쓴 거 같다. 역자 ‘아밀’이 좀 재미난 사람이긴 하다. 맛히스. 맛히스. 그것 참.

  하여간 맛히스 오빠가 야스를 잘 돌보았던 모양이다. 야스가 제일 좋아하는 가족 구성원이 맛히스 오빠였으니. 큰 키에 힘도 보통이 아니라서 농사와 목축을 업으로 하는 집에서 벌써부터 제 몫을 단단히, 단단한 수준을 너머 대단히 단단하게 한 몫 하고 있었다. 언필칭 집안의 기둥감. 공부도 제법 하는 것 같고 무엇보다 이 지역에서 스케이트에 관한 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지에 올랐다. 이번에도 친구 두어 명과 함께 동네 스케이트 시합에 나갈 예정이다. 호수에서 벌어지는 20마일짜리 경주가 출전 종목. 우승자에게는 겨자를 넣은 소 젖통 스튜 한 그릇과 올해 연도인 ‘2000’이 박인 금도금 메달을 준다.

  맛히스가 야스한테 말한다. “오늘은 호수 건너편으로 갈 거야. 쉿, 이건 비밀이다.” 하고는 야스만 보면 늘 짓는 다정한 미소.

  “나도 가고 싶어.”

  맛히스가 말한다. “네가 더 크면 데려가줄게.”

  이 대화를 읽는 순간, 독자는 짐작한다. 뭔가 큼지막한 게 있겠군. 호수에서. 특히 호수 건너편 쪽에서. 어쨌든 오빠는 야스한테 손인사를 하고 몸을 돌려 호수로 가고, 이날 손인사의 기억은 두고두고 되풀이해 떠올릴 것이란다. 그것 봐, 내 뭐랬어.


  여기서 하나 더.

  야스는 토끼를 키운다. 이름도 있는데 뭐 소개할 정도는 아니고, 하여간 자기를 두고 혼자 스케이트를 타러 간 오빠가 좀 밉다. 나한테 허용되는 스케이트 얼음은 축사 뒤편의 좁은 두엄 배수로뿐. 열살 나이가 애매해서 그렇다. 호수로 가기엔 어리고, 두엄 배수로 가기엔 쪽팔리고.

  야스의 토끼가 클 만큼 컸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식탁에 오를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 대신 올릴 칠면조도 없으니 야스는 불안하다. 내 토끼, 내 토끼. 그래서 하느님한테 기도한다.

  “하느님, 내 토끼 대신 맛히스 오빠를 데려가시면 안 될깝쇼?”

  그래, 소설에서 불길한 소원은 언제나 이루어지는 법. 맛히스 오빠는 스케이트를 타다가 압도적인 속도로 추격집단과 까마득한 차이가 날 정도로 선두를 질주했으면, 평소 화물선이 다녀 빙질이 무른 호수 건너편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야스의 소원대로 된 거지만 야스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 맛히스 오빠는 다음날 찬 시신으로 돌아왔고, 엄마는 옆집 린 아주머니에게 우리집 크리스마스 트리를 좀 없애 달라고 부탁해 그렇게 했고, 대가로 시장에서 산 바삭바삭한 크리스마스 비스킷 전부와 라이스 푸딩, 아빠가 정육점에서 사온 고기, 그걸 묶은 80미터짜리 실뭉치까지 모두 옆집에 주어버렸다.

  야스는 말한다. 이때부터 공허가 시작되었다고. 맛히스 오빠의 죽음 때문이 아니라 냄비와 텅 빈 샐러드 통 속에 담긴 채 떠나가버린 이틀 간의 크리스마스 때문에.

  오크 관에 담긴 오빠를 보며 동생 하나가 속으로 말한다. 함부로 입 밖에 낼 수는 없다.

  “자, 이만하면 됐어. 장난 그만 쳐, 오빠.”

  청바지와 평소에 제일 좋아했던 스웨터를 입은 채 오크 관 속에 담긴 오빠는 그렇게 묻혔다.


  가족의 상실은 남은 자에게 당연히 상처를 줄 수밖에 없다. 이 집도 그랬다. 특히 부모에게. 보통 자식을 잃은 부부는 자주 거칠게 싸우고 많은 부부는 이혼을 선택한다. 자식 상실 책임을 서로에게 지우려 손톱을 세우다가, 갑자기 자기 잘못인 것 같은 진짜 고통의 시간을 서로가 위안해줄 여유가 없어서.

  이 가정에는 남은 삼남매가 있어 부모가 갈라서진 못해도 이후 야스-하나가 보기에 일체의 피부 접촉도 없고 부모간 “짝짓기”도 없다. 엄마는 밥도 제대로 먹지 않는 것처럼 보여 날이 갈수록 여위기만 한다. 그리고 주인공 야스와 남은 오빠, 맛히스 오빠하고 비교하면 체격과 힘은 보잘것없지만 성격이 거친 오버 오빠의 주변에 자잘한 죽음이 생긴다. 야스가 열살 때부터 중학교 1학년 시절까지.

  오빠가 키우던 기니피그도 죽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죽여서 냄새가 나기 전까지 오빠 방에 숨겼다가 묻었다. 그것을 필두로 하여간 많은 동물이 죽는다. 이 죽음들에 오버 오빠와 야스가 개입되어 있다.

  야스는 지독한 변비로 고생한다. 아빠가 야스를 엎드린 상태에서 엉덩이를 들라 하고, 야스의 항문에 초록색 비누 조각을 굵은 손가락으로 집어넣는다. 네덜란드의 민간요법인 모양이다. 그래도 여간해 똥은 나오지 않는다. 그건 여기까지만 하자.

  죽음과 배변, 사춘기를 앞둔 시기에 맞게 짝짓기와 2차 성징의 발현 등에 관한 관심. 이 모든 것이 맛히스 오빠를 상실한 가족을 덮치는데, 어쩌면 이보다 더 엄청난 시련까지 몰려온다.

  구제역.

  집에서 신경 써야 하는 가장 우선순위. 수백 두에 이르는 소들을 일시에 집단 살처분해야 하는 참담을 당해야 한다. 그렇게 당했다. 오버 오빠는 항의의 표시로 송아지 한 마리를 나무에 거꾸로 매달아버렸다. 그러나 방역원들은 모른 척 소의 머리에 충격총을 쏘고 죽었거나 덜 죽었거나를 가리지 않고 트럭에 싣고 떠났다. 세상이 무너진 거 같았겠지.

  죽음, 죽음, 죽음은 또다른 죽음을 부르고, 또다른 죽음은 대규모 살상을 불렀다.

  과하게 우울하다. 죽음과 변비라니.

  흠. 이렇게 써야 부커상을 받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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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상반기엔 몸이 한 번 훅 간 것 같더군요. 그래서 술을 좀 줄였습니다. 술을 줄였더니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시간이 너무 남아 돌아요. 덕분에 책을 더 읽게 되더군요. 

  틀림없이 권여선의 책은 오늘 다 읽을 것이니까, 올해 상반기 까지 모두 142권, 4만8천7백 페이지를 읽게 됩니다. 읽다보니 연초에 마음먹은 대로 두꺼운 책을 제법 많이 읽었습니다. 

  부러워하지 마세요. 생업이 있잖습니까. 위 표는 생업이 끝나 이제 가진 거라고는 여유밖에 없는 사람의 취미생활 내력일 뿐입니다. 오늘은 또 반 년을 지운 기념으로 술 한 잔 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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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2026-06-30 05: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기다렸어요.

Falstaff 2026-06-30 06:40   좋아요 1 | URL
에쿠... 이걸 기다리시는 분도 계셔요? ㅋㅋㅋ

페넬로페 2026-06-30 07: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우리에겐 책이 있다네~~
눈과 허리 보호하시면서 책 읽으세요.
후반기도 기대하겠습니다.

Falstaff 2026-06-30 16:05   좋아요 1 | URL
아휴, 말씀 맞습니다. 요즘엔 눈도 눈이지만 허리가 이게 장난이 아니러다고요. 뭐 다들 이렇게 사는 거죠. ㅎㅎ

다락방 2026-06-30 0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어마어마하네요, 폴스타프 님!!

Falstaff 2026-06-30 16:05   좋아요 0 | URL
백수가 할 줄 아는 게 하나밖에 없어서 말입죠. ^^;;

꼬마요정 2026-06-30 09: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멋져요!! ㅎㅎ

Falstaff 2026-06-30 16:05   좋아요 1 | URL
에휴, 안 멋있습니다. ㅎㅎ

닷슈 2026-06-30 1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야 대단합니다 저는 연간 100권 정도가 다입니다

Falstaff 2026-06-30 16:06   좋아요 1 | URL
아주 정상적으로 사시는 겁니다!! 사회생활 하면서 백 권도 대단해요!!

자목련 2026-06-30 1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대단한 목록입니다!
술 한 잔, 그 곁에는 또 어떤 책이 있을까요?

Falstaff 2026-06-30 16:08   좋아요 1 | URL
음.. 지금 네미롭스키, 전욱진, 킨케이드, 그리고 제니퍼 이건이 있군요. ㅎㅎㅎ 오늘 얼른 집에 와서 돼지고기 고추장 찌개 끓이라는 마눌 연통이 와서 맛있게 쐬주 한 병 깠습니다. 얼큰하네요. 제가 마시는 쐬주는 25도짜리랍니다. ㅎㅎㅎ

blueyonder 2026-06-30 1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책을 어떻게 하루에 한 권씩 읽으시지요? 저는 시간이 많아도 안 될 것 같습니다. 책, 거기에 가끔씩 술, 멋지시네요!

Falstaff 2026-06-30 16:09   좋아요 1 | URL
하는 일 없는 연금생활자는 가능하더라고요. 이런 거 결코 자랑 아니더라고요. ㅎㅎ

hnine 2026-06-30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었던 책 다시 읽어보고 싶을 때는 없으신가요?

Falstaff 2026-06-30 16:13   좋아요 0 | URL
지난 반기에도 소포클레스 전집하고 황동규는 다시 읽은 책인데요.... 마음 속에 남은 책을 다시 읽는 것도 시간이 많이 남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지, 아직 못 읽은 책이 그렇게 많은데 왜 이미 읽은 책을 읽겠습니까. 그간 못 읽은 책 읽는 게 훨씬 좋을 듯해서 말입죠.

딸기홀릭 2026-06-30 14: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부럽습니다

Falstaff 2026-06-30 16:13   좋아요 0 | URL
ㅋㅋㅋ 부러울 것도 없고, 부러워도 하지 마세요. ^^

coolcat329 2026-06-30 17: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 일하실 때 독서량도 저 같은 사람에겐 완전 넘사벽이었어요. 살 빼신 것만 봐도 정말 한다면 하는 분! 대단하세요. 👍

Falstaff 2026-06-30 21:23   좋아요 1 | URL
고마우신 쿨캣님, 옛 일을 다 기억하시네요.
그냥 어떻게 살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지 뭐 별 거 없었습니다만... 운동화 몇 켤레만 가지고 살 빼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ㅋㅋㅋ 꼭 이렇게, 아직도 잘난 척을 해야 직성이 풀리니 이걸 어쩝니까. ㅋㅋㅋ

독서괭 2026-06-30 2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목록입니다!! 은퇴했다고 누가 다 이렇게 부지런히 살 수 있나요. 전 맨날 빈둥댈 것 같은데 ㅎㅎ

잠자냥 2026-06-30 23:44   좋아요 0 | URL
응 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6-06-30 23:4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머얏!!

잠자냥 2026-06-30 23:53   좋아요 1 | URL
빈둥괭 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6-07-01 03:49   좋아요 1 | URL
안 그러실 겁니다. ㅎㅎㅎ

얄리얄리 2026-07-01 16: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럽습니다. ㅎㅎ
저는 생계전선에서 물러나더라도 이렇게 읽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구만요. 그래도 상상만으로도 하루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습니다~

Falstaff 2026-07-01 18:21   좋아요 0 | URL
충분히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일 안 하니까 새 세상이 열리는 것 같더라고요!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6-07-01 1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폴백작님 같은 삶이 워너비입니다...일 안 하고 책보고 독후감만 쓰고 싶음...멀었네요 흑흑

Falstaff 2026-07-01 21:12   좋아요 1 | URL
ㅎㅎ 은퇴하면 정말 좋아요. 그래도 집안 일은 좀 해야 합니다. 황태미역국, 돼지고기 고추장찌개, 간장 제육볶음, 들깨 머윗대 볶음 같은 것도 하고, 청소기도 돌리고 ㅋㅋㅋ 나머지는 걍 책 읽고, 술 마시고, 졸리면 아무때나 자고... 신선이 따로 없답니다.
 
겨우 존재하는 인간 ㅣ Endless 3
정영문 지음 / &(앤드)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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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영문은 <어떤 작위의 세계>로 처음 읽었고, 책을 놓자마자 이이의 다른 작품도 찾아봐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작가. 그래서 2년 후에 소설집 《검은 이야기 사슬》을 사 읽었다. 이후 늘 기억은 하고 있었는데 어찌 더 찾지 않았던 이. 1996년에 장편 <겨우 존재하는 인간>으로 등단했다면, 데뷔 때부터 나하고는 인연이 그리 가깝지 않았을 사람이다. 1996년이면 국제통화기금발 외환위기 바로 전, 나라 전체가 국제화, 세계화 광풍에 휩싸여 흥청망청하던 때지만 정작 회사원들은 쥐꼬리 만한 추가근무수당 받으며, 때로는 그것도 없이 간혹 회식 한 번으로 만족한 척하면서, 밤 열 시까지 하는 일도 없으면서 사무실에서 퇴근도 하지 못하고 빌빌거릴 때였는데, 그렇다고 구석에 짱박혀 책을 읽을 수도 없었으니 정영문이라는 앞으로 대단할 작가가 데뷔를 했는지 어땠는지 알 게 뭐람, 하던 시절.

  하여간 <어떤 작위의 세계>와 《검은 이야기 사슬》을 읽었으면 운 좋게도 (아직 절판되지 않은) 정영문의 최고 유명작, 한무숙문학상, 동인문학상, 대상문학상을 받았으면 그냥 유명작이라고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하여간 찾아 읽을 수 있는 유명작은 다 읽은 셈이어서 그랬을까?


  이제 이이가 혈기방장하던 스물여덟 살 때 발표한 데뷔작, 장편소설 <겨우 존재하는 인간>을 읽었다. 여태 절판상태로 있다가 출판사를 바꾸어 다시 출간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 읽은 책인데, 나도 참, 2024년 7월에 출간한 걸 여태 몰랐다.

  작품의 화자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니’. 작품이 세상에 나왔을 때 작가의 나이가 스물여덟 살이었으니 주인공 ‘나’는 스물여섯에서 일곱 정도의 젊은 사내로 봐도 좋겠다. 남자의 경우 스물여섯에서 일곱이면 대학을 막 졸업해 어디 취직을 했거나, 쉬고 있거나, 고등학교 졸업 후 군대를 갔다 와서 2~3년차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보통일 터. 그러니 아직 삶에 익숙하다고 보기는 힘들 때였을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20대 중후반부터 우리나라 법원에서 (판사가 아니라 법정 서기 신분으로) 평생 일하다 정년퇴직 후 뇌졸중과 치매를 앓고 있고, 어머니는 당시의 어머니들이 거의 다 그랬듯이 전업주부였고, 지금(1995~96년)은 병자 남편을 수발하는 요양보호사 겸 가정주부이다. 내가 굳이 괄호를 치고 1995년~96년을 강조한 건, 책을 읽는 시각을 지금 기준이 아니라 당시 기준으로 읽어도 꽤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발견하지는 못했는데 ‘나’의 전 직업은 교사였다. 그러다가 자신이 뜻한 바가 있어서는 아니고, 그저 매일 똑같은 생활을 하는 게 염증이 나고 권태스러워서 학교를 때려치운 후, 그동안 번 돈으로 다세대주택 하나를 전세로 얻었든지, 어차피 오늘 내일 하는 아버지의 돈을 엄마가 뒤로 빼 주어 샀든지, 작은 연립주택에 살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돈벌이를 하지 않으니 먹고사니즘은 전적으로 엄마가 보내주는 후원금에 의지한다.

  후원금으로 그치지 않고 당시 어머니들처럼 한달에 한두 번 정도 아들 사는 연립주택에 찾아와 지저분한 수준을 넘어 더러운 아들 집구석을 깔끔하게 대청소해주고, 이젠 먹지 않아 안 해오지만 전에는 온갖 반찬거리도 바리바리 싸 냉장고에 차곡차곡 담아주고는 했다. 당연히 여간해 갈아입지 않아 뻣뻣하게 풀먹인 듯한 팬티 등 속옷 일습도 깨끗하게 빨아 빨래걸이에 널기까지 해주었다.


  자식의 문제는 거의 대부분 부모한테 원인이 있다. ‘나’는 어릴 때 학교 성적이 조금 좋았던 듯하다. 그래서 판사가 아닌 법원서기였던 아버지는 아들이 법원서기가 아니라 판사 신분의 법원 공무원으로 평생 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날이면 날마다 김칫국물을 벌컥벌컥 마셨겠지. 하지만 ‘나’는 공부보다 예능쪽, 이를테면 피아노 연주 같은 것에 더 관심이 있었고 재능도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보기에 아들이 미국의 저 유명한 문필가 커트 보니것의 경구:

  “부모를 미치게 하고 싶은데 게이가 될 용기가 없다면 예술계로 진출하라!”

  이 말 대로 예술을 하기로 결심하려는 것 같아 피아노 레슨을 단칼에 중단시켰으며, 그래서 ‘나’는 이후 살면서 잘 하는 게 하나도 없게 되었으니, 세상에 남은 건 그저 따분한 일과 지루한 일과, 뭐 둘 다 비슷한 말이기는 하지만 조금 더 고급스럽게 말하자면 권태뿐이었다.

  그리하여 ‘나’의 비행이 싹트는 계기가 되었을까?

  ‘나’가 세상에 나온 기념으로 아버지가 직접 심은 등나무 줄기도 제법 튼실해진 ‘나’의 나이 열네 살 때, 아버지와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등나무의 밑둥을 잘라버리고 그 위에다 휘발유를 들이부어 등나무를 기어이 말려 죽인 일이 있다. 막 극성의 사춘기를 달리고 있던 ‘나’는 이 의식을 행함으로 사실상 부모와의 끈, 저 예전 탯줄로 이어지기 시작한 지긋지긋한 끈을 딱 잘라버렸을 지도 모른다.


  하여간 어찌어찌 대학을 졸업하고, 평론가 김경수가 쓴 해설에 의하면 잠깐 학교에서 교사로 지내다가 때려치운 이후에 ‘나’는 도심에 새로 조성된 시립공원의 한쪽 구석의 벤치에 앉아 있다. 6월의 아침.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위자의 삶과 권태. 그러나 노숙인으로 대표하는 다른 무위자들과 다른 것은 언제나 엄마가 금전적으로 지원을 해 주어 크지 않은 연립주택에서 나쁘지 않은 먹을 거리로 배를 채우며, 꾀죄죄하지 않은 의복을 걸치고 산다. 다만 하는 게 없을 뿐. 이때 “하는 게 없다”는 건 다분히 독자 같은 보통의 사람이 보는 시각이요, 겨우 존재하는 사색과 권태와 우울과 절망의 대가인 ‘나’의 눈에는 참 여러가지 현상이 눈에 보인다. ‘나’ 자신부터 그렇지. 여름 아침에 무료하게 따사로운 기분과 평화를 느끼는 기분. 이게 살아있다는 것. 얼마나 순수한 은총인가 말이지. 근데 한편으로, 굳이 ‘나’한테까지 은총의 빛을 이렇게 아낌없이 쏟아줄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 하는 마음도 든다.

  사물은, ‘나’말고 보통의 인간은 찬란하다.

  일요일 아침이었던 모양이지? ‘나’ 앞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 두 여자 아이. 틀림없이 ‘나’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그러나 같은 장소에서 존재한다. 가까운 곳에서 종달새 울음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에는 비둘기들이 후두염 환자들이 내는 목소리 같은 방자한 울음소리를 내며 ‘나’를 두렵게 한다. 비둘기는 ‘나’를 두렵게 하는 얼마 안 되는 것들 가운데 하나다. 이렇게 ‘나’는 지나가는 사람과, 공원에 오기 전에 본 아스팔트 도로 중앙선 근처에서 메마른 피와 엉겨붙은 털뭉치로 존재하는 한 시절 살았던 포유동물에 관해 생각하고, 줄을 맞춰 뭔가를 잔뜩 지고 바쁘게 이동하는 개미떼를 관찰한다. 절반이 잘렸지만 그래도 살겠다고 흙을 향해 기어가 기어이 굴을 파고 들어가는 모습과 파인 굴의 흔적을 오래도록 관찰한다.

  이 가운데 제일 지면을 많이 차지하는 것이, 거지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거지는 아닐 것 같은, 거지는 아니겠지만 거지일 수 있을 것 같은, 원숭이를 닮은 남자. 이들의 대화랄까, 관계랄까, 하여간 약하디 약한 연대는 하지 즈음부터 시작해 겨울이 공원을 할퀼 때까지 이어진다.  ‘나’는 며칠 전에 본 아스팔트의 털뭉치처럼, 거리로 달려나가 아스팔트 위로 몸을 던져 기어코 몸이 짓물러터져 형체도 알아보기 힘든 것으로 만들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누르고 살지만, 자신도 결코 그러지 않을 것임을 안다.

  틱. 방아쇠 당긴 소리. 한 번 이렇게 말했으니 ‘나’는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이렇게 죽이고 싶은 작가의 마음. 언젠가는 이루어질지니.


  어느새 밤이 되고, 집에 가는 길에 식료품점에 뭔가 먹거리를 사들고 집에 간다. 옥상. ‘나’는 한번도 하늘을 날고 싶은 소망을 갖지 않았다. 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자유의 상징이 아니었다. 날아봤자 언젠가는 날개를 접고 다시 하강해야 하는데, 지상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하늘을 날기 시작했을 때보다 더 막강한 권태일 것이 분명하니. 그러나 날리고 싶은 건 있다.

  엄마가 왔다. 이번에도 먼지가 잔뜩 낀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그동안 벗어놓기만 했지 한 번도 빨래하지 않은 천 뭉치들을 주워 세탁기에 돌린 다음에 펴 걸고, 베란다에서 유일하게 만났던 C로부터 선물받은 나팔꽃에 물을 준다.

  ‘나’는 엄마를 뒤에서 꽉 껴안으려 엄마한테 간다. 사랑하는 엄마. 그녀를 꽉 껴안아서, 힘껏, 비실비실한 ‘나’가 얼마나 세게 껴안을 수 있을 지 모르지만 가능한대로 제일 세게 껴안고 싶다. 그리고 사랑하는 엄마, 그녀를 번쩍 들어 3층 연립주택 베란다 창문 밖으로 시멘트 포장길에 내던지고 싶은 충동.

  당신들 때문이다. 당신들이 외아들 하나를 향해 저질렀던 구질구질한 사랑, 상한 음식 같은 사랑, 넝마 같은 사랑. ‘나’를 짓누르며 혐오감에 북받치게 하면서도 어쨌든 참아내게 했던 것. ‘나’의 넋을 빼놓는 질긴 음모와 견딜 수 없는 포만감을 강요하던 것들.

  초인종이 울린다. 이 연립주택 3층 꼭대기 집에 찾아올 사람은 단 한 명이다. ‘나’는 문을 열고 말한다.

  “누구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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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7-01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넷인데… 상반기 결산 목록에선 빨간 표시입니다. 왜죠?!?! 그 간극이 궁금.

Falstaff 2026-07-01 03:55   좋아요 0 | URL
빨간글자인데 별 넷, 이거 말고도 많아요.
어메이징 브루클린, 헤르쉬트07769, 맛, 에메랄드 시티, 뜨거운 피, 기억은 가시 히읗은 황토, 월영시장, 노스탈지어 등등.
차마 별 다섯 개 하지는 못했지만 마음에 딱 들은 작품이란 뜻 아니겠습니까.

잠자냥 2026-07-01 09:24   좋아요 0 | URL
그런 거였군요. 목록 보고 빨간 표시하신 것 중에 그런 책들이 종종 있어서 겸사겸사 여쭤봤습니다. 저는 그냥 제가 좋으면 5별 주는 터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노스탈지아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80
미르체아 커르터레스쿠 지음, 한성숙 옮김 / 민음사 / 2026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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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르터레스쿠의 소설집 《멜랑콜리아》가 2019년 작품이다. 그걸 먼저 읽고 흥미롭기는 한데 소년/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의 수사가, 그러니까 (청)소년이 쓰는 단어/문장치고 수식이 너무 과해 조금 얹혔었다. 그럼에도 이이의 주인공들이 사물과 공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독특해서 작가의 이름 하나는 확실하게 기억해 두었다. 기억하기를 잘했지.

  이번에 민음사 세계문학시리즈 480번으로 미르체아 커르터레스쿠의 1989년 작품, 작가가 서른세 살 때 <꿈>이라는 제목으로 루마니아 아카데미 상을 받은 작품이 책방에 나왔다.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곧바로 희망도서 신청해 읽었다. 다른 독자들 한테도 《멜랑콜리아》가 낯설었던 모양이다. 내가 사는 도시의 여러 도서관을 통틀어 내 책상에 놓인 <노스탈지아>. 딱 한 권이다.


  아, 이이가 젊은 시절에는 이랬구나.

  이게 책을 읽은 첫번째 소감이다. 《멜랑콜리아》도 서로 약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는 단편을 모은 책이다. <노스탈지아>도 마찬가지. 다섯 편의 개별적인 작품으로 되어 있는데 이걸 퉁쳐서 한 편의 장편소설이라고 해야 하는지, 《멜랑콜리아》와 마찬가지로 소설집이라고 해야 하는지 함부로 단언할 수 없다. 그냥 소설책이어서 독자는 읽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주장하고 싶은 책. <노스탈지아>도 《멜랑콜리아》처럼 한 권으로 묶어 나왔다고 한다. 원래는 1989년에 《잠》이라는 제목의 소설집으로 발표하여 루마니아 아카데미 상을 받았는데 잔인한 장면묘사와 아슬아슬한 성적 표현 때문에 검열 과정에서 심각한 훼손을 입었다가, 1993년에 <노스탈지아>라고 간판을 바꿔 달고 재출간했다고 작가 연보에 나온다. 그러니까 크게 필요하지 않지만 굳이 분명하기 바란다면 <노스탈지아> 역시 소설집이라고 해야 옳을 듯하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이 <잠>. 그래서 다섯 작품 모두 꿈이 나온다. 희망사항을 일컫는 꿈이 아니라, 자면서 뇌활동의 결과로 뭔가 보이고 들리는 것으로 이루어진 유성sound 영상. 그래서 네 번째 작품이자 가장 긴 분량인 <REM>의 “REM”이 가리키는 것이 잠잘 때 뇌의 활동이 활발해져 눈알이 빠르게 운동하며 Rapid Eye Movement 꿈을 꾸는 단계를 뜻한다.

  현대소설에서 작가와 독자가 가장 기피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꿈 이야기하는 것. 그럼에도 커르터레스쿠가 꿈꾸는 행위와 꿈 이야기를 갖고 나타났을 때는 뭔가 보여줄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근데 문제는 꿈도 꿈 꾼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니, 나 같은 범부들이야 수염 허연 조상님이 나와 숫자 여섯 개를 불러주어 혹시 로또라도 맞을까 김칫국물 벌컥벌컥 들이켠 이야기나 하겠지만, 현대 루마니아 문학계의 큰 별이라 일컫는 커르터레스쿠 같은 장인이 꿈 이야기를 했다 하면 이거야말로 독자가 꿈 해몽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을 수준의 그 무엇이냐, 그래, 초현실주의적的이고, 보르헤스적이며, 오비디우스적이다. 쉽게 말하자면 대략난감이며 오리무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책 좀 읽은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하려 하니, 루마니아 검열당국이 지적한 아슬아슬한 성적 묘사가 깜찍하게 재미있어서는 아니고, 도무지 끝간 데 없는 장황한 묘사가 간혹 사람의 복장을 뒤집어 놓기는 하지만, 일관된 긴 어둠의 통로와 이어지는 지하의 제법 큰 공간에서 펼치는 큰 구라, 동유럽 작가들의 전매특허이기도 한 거대한 묵시록적 이야기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동유럽, 나아가 전 유럽에 지하 땅굴로만 이어진 특별한 통로가 있어서 저 마드리드부터 모스크바, 베오그라드, 베이징까지 도무지 못 가는 장소가 없다는 이야기가 없던 건 아니다. 문학과지성사에서 내는 대산세계문학총서 99번, 두샨 코바체비치가 쓴 <옛날 옛적에 한 나라가 있었지>에 자세하게 나오니까 관심있는 분들은 참고하시라. 그러나 코바체비치의 지하 땅굴은 광범위한 지하망과 생존을 위한 땅굴이었던 반면, 커르터레스쿠는 의식의 밑바닥에 있는 과거의 죽음과 밀접하니, 지난 금요일에 업로드한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작품 <슬픔의 물리학>에 등장하는 미궁 속 미노타우로스의 거처와 비슷하다. 흠. 코바체비치(구 유고슬라비아), 커드러레스쿠(루마니아), 고스포디노프(불가리아) 전부 동유럽 작가. 우연은 아닐 거 같다. 작가가 자기 마음대로 글을 쓰지 못했던 옛 독재시절의 길고 괴로웠던 시간의 터널과 무관하지 않을 거 같다는 내 의견이 조금 과한 해석일지도 모르긴 하지만.


  독후감에서는 다섯 편의 이야기 가운데 제일 앞에 배치해 “프롤로그” 역할을 하는 <룰렛 승부사>만 소개하겠다. 분량도 제일 짧다.

  룰렛. 도박장에서 스테인레스 금속 구슬이 뱅뱅 뚜르르르 굴러가다가 작은 박스에 쏙 들어가면 번호나 색깔에 돈을 건 숱한 사람들의 탄성과 비명이 터지는 룰렛. 그거 아니다. <룰렛 승부사>의 룰렛은 영화 <디어헌터>, 크리스토퍼 월켄이 베트콩의 포로수용소에서 자기 관자놀이에 권총을 발사하는 장면, 그것을 말한다.

  화자는 약 60년간 글 쓰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노인. 룰렛 승부사는 그의 친구다. 실존했던 사람이라는데 당연히 허구. 하여간 그 친구 아드리안은 곤충을 여러 조각으로 잘라 버리고, 지저귀는 새들을 돌로 쳐 죽이는 거친 아이였다가, 발작적 분노의 순간을 겪으며 성적 욕망이 왕성한 청소년을 거쳐, 강간과 강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성인 죄수로 악당의 3단계를 차근차근 밟은 전형적인 범죄자였다. 화자 제레누스 차이트블룸이 아드리안이 점차 악마화하는 과정을 숨가쁘게 따라가면서 그걸 글, 일종의 보고서로 쓴 것이 <룰렛 승부사>이다. 거친 아드리안은 힘 없는 찌질이 제레누스를 한 번도 때리지 않고 오히려 그런 위기에서 구해주어 특별한 관계를 지녔다고 생각했는데, 소설가와 범죄자가 제대로는 어울리지 못 하는 것이 당연해 오랜 세월 동안 서로 마주치지 못했다.

  제레누스가 쓴 책이 제법 많이 팔려, 팔려도 너무 많이 팔려 이제 돈 걱정을 하지 않고 살아도 되는 시절이 왔고, 그래서 결혼에 성공할 수 있었으며, 어여 쁜 아내 자랑도 할 겸 시내 고급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하러 들렀더니, 그곳에서 화려한 만찬을 차려놓고 세 명의 사업가와 함께, 의자에 거의 누웠다고 해도 좋을 만큼 멋대로 앉아 있는, 잘 차려 입은 아드리안을 만나 다시 관계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이 순간에 제레누스는 알아차렸다. 내 술고래 범죄자 친구 아드리안과 룰렛 승부사는 동시에 태어난 검은 쌍둥이라는 것을. 독자가 이 문장을 읽을 때는 모른다. 검은 쌍둥이. 쌍둥이 자리, 6월에 태어난 아이들은 나중에 다른 작품에서 또 나온다는 걸. 이 장면부터 아드리안이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오직 승부사라고만 할 예정이라는 것도.


  사업가들과 승부사는 ‘나’ 제레누스의 눈이 안 보이게 검은 천으로 가리고 어느 건물의 지하로 들어간다. 길고 어둡고 지저분한 좁은 통로를 거쳐 나중에 옛 코냑 공장의 작업장이라는 것이 알려질 제법 넓은 지하에는 별다른 인테리어 없이 그저 술통 비슷한 것과 열에서 열다섯 정도의 잘 차려 입은 사람들 가운데 반 정도가 앉을 수 있는 등받이 없는 의자 정도가 있을 뿐이었다.

  시간이 좀 흐르자 남루하기 짝이 없는 옷으로 갈아입은 술고래 친구가 등장하고, 이미 관중 또는 돈을 걸 신사 숙녀들한테 검증을 받은 리볼버 권총과 반질반질 윤이 나는 총알 하나를 보여준 후견인이 총과 총알을 들고 앞으로 나선다. 곧바로 탄창에 총알을 넣고 한 바퀴 차르르르 돌린 후에 권총을 승부사에게 건네면, 벌써 통 위에 올라선 승부사는 극도의 공포에 질린 얼굴표정을 하고 자기 관자놀이에 총구를 댄 채 바들바들 떨다가, 눈을 꽉 감고 방아쇠를 당긴다.

  “딸깍.”

  총알은 발사되지 않았다. 피와 살점과 뇌수의 흔적이 잔뜩 묻은 회벽에 한 번 더 피와 살점과 뇌수와 뼈조각을 보태면 돈을 건 관중들이 따는 거고, 아니면 승부사와 후견인이 돈을 번다. 생존할 확률은 5/6. 그러면 아무도 여섯 번을 생존할 수 없다. 라고 작가는 주장한다. 아니다. 살 확률은 5/6. 여섯 번 내리 살 확률은 (5/6)^6. 내가 계산해드리지. 33.490%. 여섯 번 방아쇠를 당겨도 살 확률은 1/3이 넘는다. 책에서는 네 번 이상 생존한 사람은 없다고 한다.

  연이어 생존에 성공해 큰 돈을 번 승부사는 하도 많이 죽음과 직면해 더 이상 실제로 살 마음이 없는지, 이제 스스로 후견인을 겸하면서 마음대로 도박 룰을 정한다. 그리하여 권총 탄창에 실탄 두 발을 넣고 방아쇠를 당기고, 세 발, 네 발, 다섯 발을 넣고 쏴도, 안 죽는다.

  결국 여섯 발을 다 넣을 테니 돈을 걸라고 하는 승부사. 어떻게 됐을까? 당연히 안 죽겠지? 그렇다. 만장하신 신사 숙녀를 모시고 과거 어느때보다 큰 돈을 건 부쿠레슈티의 도박사들. 잔뜩 흥분한 상태에서 리볼버를 머리통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아이쿠, 부루레슈티에, 그만 다른 곳도 아니고 부쿠레슈티에 큰 지진이 나서 승부사가 딛고 선 통이 흔들, 총이 머리통 위를 살짝 지나가버린다.

  왜 안 죽었을까? 세번째 실린 작품 <쌍둥이 자리>에서 (p.269)쌍둥이자리 사람들은 스스로 몰입하고 만족한다는데 이거하고 관계가 있을까,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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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6-06-29 0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하나 깐 건 작품 탓이 아니라 내가 소양이 부족해 작품을 제대로 알아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해하지도 못했으면서도 그냥 팍 만점을 부르짖기 남세스러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