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퍼슨
크리스틴 루페니언 지음, 하윤숙 옮김 / 비채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왜 샀을까? 표지가 야해서 산 건 분명히 아니다. 추리할 수 있는 건, ① 출판사 ‘비채’에서 나온 괜찮은 책을 몇 권 읽고,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특색있는 책을 내는 회사라고 생각했던 점, ② 어떻게 이 책까지 서핑했더니 마침 독자 리뷰가 괜찮았다는 점, 그리고 결정적으로 ③ 알라딘의 쿠폰을 사용하기 위해 헌책 한 권은 사야 했던 점이 딱 맞아 떨어졌을 것이다.
  82년생 김지영 씨보다는 나이가 약간 적을 거 같은 작가 크리스틴 루페니언은 한국어판 서문을 통해 자신의 대표작 <캣퍼슨>이 어떻게 스타덤에 올랐는지 자기 자랑을 약간 하면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잡담 비슷하게 말을 이어간다. 2017년 12월에 <뉴요커>에 발표하고 트위터에서 입소문이 나는 바람에 수백만 명이 읽고, 토론하고 하여튼 장안의 화제가 되었으며, 작가의 친구 가운데 한 명이 일본에 갈 일이 있었는데 일본인들도 기차 안에서 <캣퍼슨>에 관해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는 얘기까지 적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이 책에서 보게 될 몇몇 작품은 21세기의 데이트에 관한 사실주의적인 묘사를 담고 있”단다. 그리고 나는 이어지는 문장들을, 서문을 읽을 당시, 너무나도 가볍게 읽고 지나갔다. “당신에게 익숙하게 읽힐 작품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이 그렇지 않은 작품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당신이 모든 이야기 속에서 뭔가 진실이라고 느껴지는 것―더러는 느낌일 수도 있고, 이미지나 농담, 단 한 줄의 대화일 수도 있을 것이다―을 발견하게 되기를 희망한다.”
  그리스틴이 마음을 담아 쓴 서문을, 책을 읽은 후에 다시 훑어보니, “뭔가 진실이라고 느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되기를 희망한다.”는 것이, 자신의 작품 속엔 독자는 발견할 수 없을지라도 적어도 하나 이상의 진실이 담겨(숨겨) 있다는 말로 읽혔으며, 결과적으로 나는 보물찾기에 성공하지 못한 서툰 독자였는데, 이 순간 정이현이라는 우리 소설가를 머리에 떠올렸으니, 왜 그런고 하면, 그의 장편 <너는 모른다>의 발문에서 “진심을 다해 썼고 세상에 내놓는다. 그게 다다.”고 심지어 책의 띠지에까지 써놓은 적이 있고, 그걸 읽은 나는 독후감에 이렇게 쓴 적이 있기 때문이다. “진심을 다해 쓰지 않는 작가가 있어? 세 명만 꼽아보시라. 누가 있나.” 마찬가지로 크리스틴 루페니안의 한국어판 서문에 대하여도 이렇게 묻고 싶다.
  “자기 작품 속에 진실이라고 느껴지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작가가 있다면 두 명만 대보시라. 누가 있나.”

 

  물론 표제작인 <캣퍼슨> 하나만 읽었을 때는 공감할 수 있었다. 나름대로 재밌고, 웃기기도 했다. 깔끔하게 미소 지으며 끝을 볼 수는 없었어도.
  아, 의문 하나. 이 작품의 영어 제목은 <Cat Person>이건만 우리말 제목은 왜 <캣 퍼슨> 대신 <캣퍼슨>으로 했을까? 별 것 가지고 지랄한다 생각하지 마시고, ‘cat person’은 “고양이를 좋아하거나 키우는 사람”이라고 책 소개에 쓰여 있는데, 우리말 ‘캣퍼슨’은 배트맨과 함께 복면 쓰고 고담의 밤을 지배하는 캣우먼의 서방 같잖아? (우먼woman, 퍼슨person으로 젠더를 구분한 건 악의적 고의가 아니다.)
  이 단편은 서른네 살 먹은 백인 인텔리겐치아처럼 보이는 뚱보 남자와 스무 살 먹은 대학생 사이에서 발생한 끌림과 발전, 사랑으로 오해하고, 젊은 여성 마고가 자신의 의지로, 고이 숙소까지 모셔다드리겠다는 친절 대신 그와 성적 접촉을 유도해, 이 과정에서 남자한테 정나미가 떨어져 이별하기까지, 짧은 연애와 사랑과 잠자리와 이별 얘기다. 무척 솔직한.
  먼저 스무 살 대학생 마고의 성적 특이성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로버트가 일곱 번째 잠자리 파트너로 등록될 예정이니, 하이틴 시절에 섹스란 것이 어떤 건지 궁금해 했고, 급기야 그것을 경험해보기로 작정을 한다. 상대방은 2년 동안 사귄 남자친구. 남친과 몇 달에 걸친 깊은 토론을 하고, 산부인과를 방문해 전문의의 상담과 조언을 거친 후, 엄마, 친엄마 맞다, 엄마와 겁날 만큼 어색하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의미 있는 대화를 거쳐, 엄마가 조식을 포함해 깔끔한 숙소를 예약해주고, 급기야 드디어 딱지를 뗀 아침엔 호텔 프론트에 엄마가 보낸 “내 딸, 딱지 뗀 거 축하해!” 기념 카드까지 받았다는 거 아니냐. 정작 마고는 쓰라려 죽겠는데 말이야.
  이런 마고가 로버트 소유의 생각 이상으로 깨끗한 집으로 가서, 자발적으로 로버트의 깔끔한 침대에 오르며 스스로 판타지의 황홀경에 빠진다. 이 아름다운 여자를 봐, 완벽해, 몸매도, 모든 것이, 겨우 스무 살이야, 피부에 흠 하나 없어, 로버트가 자신을 이렇게 보고 있을 거라고 상상해가며. 그런데 여기에 로버트가 찬물을 한 바가지 뿌려버린다.
  “전에 해본 적 있어?”
  이 지점에서 독자들은 갈릴 것이다.
  ① 서른네 살의 남자는 스무 살의 마고가 혹시 아직 경험이 없다면 더욱 조심해서, 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섹스가 좋기는커녕 쓰라리기만 한 경험을 하지 않게 배려를 하려 물었다. 그래 처음부터 조심스레 터치하지 않았느냐.
  ② 웃기지 마라. 로버트는 그냥 썅노무새끼다. 해봤다는 얘길 듣자마자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온갖 집을 다 하지 않느냐.
  이건 전적으로 독자 마음이다. 어떻게 해석하든지. 하여튼, 마고는 침대 위에 앉아 있고, 로버트가 허리띠를 풀고 바지를 내려 벗다가, 아직 풀리지 않은 신발끈을 풀기 위해 몸을 굽히는 순간, 털에 가려진 물렁하고 불룩한 배가 아래로 축 늘어뜨려지는 게 눈에 들어온다. 이 상황이 도래하자, 마고는 속으로, 싫다, 싫어!를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러나 먼저 얌전하게 에스코트해서 집에 데려다주겠다는 로버트의 발동을 건 건 마고 자신이라 그냥 눈을 질끈 감고 선반 위에 있던 위스키를 꿀꺽 한 모금 삼켜버린다. 딱 그림이 그려지시지?
  이후 한심한 베드씬이 벌어지고, 새벽 세시에 마고가 주장해서 로버트가 기숙사까지 차를 태워 데려다주고, 한 번의 관계로 정이 뚝 떨어진 마고가 로버트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이야기.

 

  이거 한 작품이라면 크게 공감하지는 않더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을 텐데 다른 단편들은, 저자가 한국어판 서문에 얘기했다시피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 괴기스럽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제 막 습작 시대를 벗어난 좀 덜 익은 단편들을 읽는 듯하기도 했다. 아, 이런 느낌이 물론 <캣퍼슨>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작품에 적용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왜 우리 작가들 대신 번역한 외국 문학을 읽느냐 하는 걸 말하는 것이 좋겠다. 우리 작가들이 쓴 우리 문학은 아직 검증이 안 된 것들이 많다. 즉, 분명히 문학의 보석들이 있겠지만 많고 많은 원석 속에서 그것들을 찾는 데는 이제 내가 책을 읽을 시간과 돈이 별로 많지 않다. 반면에 번역서는 대체적으로 시간의 검증을 받았거나, 신간이라고 하더라도 출판사 편집자의 필터를 통해 수준 이상의 작품이라서 한국어판이 나왔을 확률이 높다고 믿어서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책은 내 기대에서 벗어났다. 여기서 말하는 나의 ‘기대’는 나의 ‘기호’와 상당히 유사한 단어이니, 《캣퍼슨》을 재미있게 공감하면서 읽으신 분께선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 참 오랫만에 내돈내산을 다 읽지도 않고 덮어버렸다. 부언하건데, 작품의 품질을 별개로 하고, 나와 이 책이 맞지 않았을 뿐이라서 그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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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6-21 09: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이 책 처음 나왔을 땐 궁금함에 보관함에 담아두었는데, 그 이후로 궁금함이 가시더라고요. 그래서 살포시 보관함에서도 뺐는데, 이 포스팅 보니 후회는 없을 거 같습니다.

Falstaff 2021-06-21 09:38   좋아요 5 | URL
ㅋㅋㅋ 이런 댓글 읽고 다음과 같이 답글 쓰는 것이 이렇게 뜻깊을 줄은 몰랐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ㅋㅋㅋㅋ

다락방 2021-06-21 10:08   좋아요 3 | URL
저는 이 책이 안궁금했는데 폴스타프 님 리뷰보고 앞으로도 관심을 안갖는 걸로 하겠습니다. ㅎㅎ

Falstaff 2021-06-21 10:10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뭐라 드릴 말씀이 읎네요. ㅋㅋㅋㅋ

새파랑 2021-06-21 0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돈내산을 중간에 덮는건 정말 천재지변이 아니면 쉽지 않을턴데 ㅜㅜ 역시 표지에 낚이면 안되겠군요 ㅎㅎ

Falstaff 2021-06-21 09:46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글쎄 표지에 낚은 건 절대 아니라니까요!

잠자냥 2021-06-21 09:54   좋아요 1 | URL
저도 사실 폴스타프 님이 표지 때문에 샀다고 생각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6-21 10:04   좋아요 1 | URL
택배 풀고 표지를 보는 순간, 비슷한 말씀들을 틀림없이 허실 거란 직감이.....ㅋㅋ

coolcat329 2021-06-21 11: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이 이 책을 올리셔서 조금 의외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게 청소년의 성을 그린 청소년 소설이라고 제멋대로 생각, 게다가 전혀 관심이 안 간 책이었거든요. 근데 어른 책이고 단편이군요.
저는 표지에 낚이신건 아니라는 주장 믿습니다! ㅋㅋㅋ

Falstaff 2021-06-21 12:12   좋아요 2 | URL
흑흑... 고맙습니다. 쿨캣님 밖에 읎습니다. ㅠㅠ
완전히 제 생각만으로 말씀드리면, 도서관 가셔서 보여도 고르지 마세요. ;;;

얄라알라 2021-06-21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at person이란 단어는 catwoman이나 catmom 등. cat 돌봄자(?)들을 여성화시키는 표현과 좀 다르네요. 표지 보고, 저 역시 혹했습니다만 ‘내돈내산‘ 평 내려주신 Falstaff님의 조언을 따르기로 합니다^^

Falstaff 2021-06-21 13:08   좋아요 1 | URL
글쎄 제 말씀이 그거 아닙니까. 원래 제목이 cat person 인데 왜 우리말 제목을 캣(떼고)퍼슨이 아니라 그냥 ‘캣퍼슨‘으로 띄어쓰기를 안 하느냐는 거 말입죠.
ㅎㅎㅎ 좋은 선택하신 겁니다.

초란공 2021-06-21 13: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성인이 되고 한참 후에(그렇다고 철이 든건 아니지만요) 책을 읽기시작한 경우라서 유명작가의 작품이 와닿지않으면 그냥 제가 아직 작품의 진가를 파악하기에 부족하구나 생각합니다. 어떤 작가는 소설은 마음에 드는 데, 에세이는 도무지 적응이 안되고, 또 다른 작가는 에세이가 아주 마음에 들어서 소설도 읽어보면...저의 안목이 부족함을 탓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소심한 저는 마음에 든 책에 대해서만 주로 글을 올리니 대체로 칭찬만 하게 되네요. 개인적으로 ‘사지 말아야 할 책‘ 메뉴를 만들어볼까 싶기도 하구요. ㅋㅋ 알라딘과 출판사측의 항의로 활동정지 되는건 아닐까 싶습니다^^ 근데 개인적인 기호이니 어쩌겠습니까? ^^
=> 다시 생각해보니 제가 감히 ‘사지 말아야할 책‘을 정하고 강요하는듯한 것이 작절하지 않아보이고, 좀 더 소심하게 가야겠네요. ‘사지 않았으면 하는 책‘ 정도랄까요? ㅋㅋㅋ

Falstaff 2021-06-21 14:07   좋아요 5 | URL
아휴.... 마음에 드는 것만 읽기에도 시간과 돈이 부족한 게 현대인입니다.
굳이 적응이 되지도 않는 책을 붙잡고 참선, 면벽기도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러시다가 나중에 사리 나옵니다. 안목이 부족한 경우는 세상에 아예 있지도 않습니다. 지깟 것들이 해봐야 시, 소설, 요즘에 바람부는 희곡 밖에 더 됩니까. 마음에 안 드시는 거 있으면, 아놔 나 이거 싫어, 하셔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진짭니다. ㅋㅋㅋㅋ

심지어 저는 이런 페이퍼, ˝지루하고 지루했던 불후의 명작 Top 10˝을 썼었는데 이달의 페이퍼로 선정돼 상금도 받았는 걸요. ㅋㅋㅋㅋㅋ https://blog.aladin.co.kr/729554277/11922276

자랑은 아니지만 다시 한 번 크게 외쳐볼까요? 이거 진심입니다.
난, 괴테가 싫다!!!!!!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1-06-21 14:18   좋아요 3 | URL
나도 괴테가 싫다!! (아, 쿨캣 님 지적대로 폴스타프 님하고 또 같이 다니고 있네요 ㅋㅋㅋㅋㅋㅋ)

syo 2021-06-21 14: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표지네..... 표지야.....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

Falstaff 2021-06-21 14:54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 저 띠지를 벗기면 더 야해요!

잠자냥 2021-06-21 15:07   좋아요 3 | URL
어머나... 오늘 알라디너 여럿 오프라인 서점 출동하겠네요. 뭔가 이 띠지 벗기고 유심히 보다가 살짝 자리 뜨는 사람들 많겠구먼...(일단 저부터 출동!)

얄라알라 2021-06-22 09: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댓글 읽다가 아침부터 커피뿜을 뻔했어요 ㅋ

Falstaff 2021-06-22 09:43   좋아요 0 | URL
ㅎㅎㅎ 알라디너 수준이 대개 이 정돕니다. ㅋㅋㅋㅋㅋ

- 2023-05-14 2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걸드문트님! 저도 이 책 중반부에서 더 읽지 말까 생각하다가… <좋은 남자>는 읽어보자 싶어서 걍 다 읽었거든요. 후반부로 갈 수록 괜찮더라고요. 다 읽고 나니 작가가 가진 어떤 시선도 보이고.
리뷰 잘 읽습니다. 덜 익은 단편들이라는 말에 매우 공감합니다.

Falstaff 2023-05-15 06:14   좋아요 1 | URL
앗, 뒤쪽 단편들은 괜찮군요. 에휴. 그저 참아야 하는데.... 어디 있는지 찾기도 힘들고... ㅎㅎㅎ 고맙습니다. 눈에 띄면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 2023-05-15 09:33   좋아요 1 | URL
아니오~ ㅋㅋ 걸드문트님은 다른 좋은 거 읽고 더 재미난거 써두시면 나중에 제가 쫓아와서 또 다른 좋은 재밌는 리뷰 읽을게요!
방금 안 사실인데 <캣 퍼슨>의 경우도 문제가 좀 있었나 봅니다. 작가가 남의 사생활을 썼다는 군요?
작가란 무엇인가… 킁… 소설이란 무엇인가…흐음..
 
밤불의 딸들
야 지야시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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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지야시의 데뷔작. 2016년에, 미국 국적의 작가로 처음 책을 출간한 가장 훌륭한 장편소설이나 단편 소설집에게 수여하는 펜-헤밍웨이 상을 받은 책. 즉 이 책으로 2016년을 빛낸 최우수 신인상을 받았다고 생각하시면 맞는다. 원제목은 <Homegoing>.
  특히 작가의 첫 작품이라면, 작가의 바이오그래피가 중요할 수도 있다. 지야시도 그렇다. 야 지야시 Yaa Gyasi는 1989년에 아프리카 가나, 옛 아샨티 왕국의 중요한 지역이었던 맘퐁에서 나중에 앨라배마 대학의 불어 교수를 하는 콰쿠 지야시와, 간호사 혹은 보조간호사 소피아 지야시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1991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와 일리노어와 테네시를 거쳐 열 살부터 앨라배마 헌츠빌에 정착한다. 남자형제들과 더불어 이민 가족들이 흔히 그렇듯이 ‘수줍은 아이’로 성장했고, 그림슨 고등학교에 다니던 열일곱 살 때 토니 모리슨이 장편 <솔로몬의 노래>를 읽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을 한다.
  성인이 된 2009년 야 지야시는 이민 후 처음으로 조국 가나를 방문한다. 방문 기간 동안의 경험이 결정적으로 <밤불의 딸들>을 쓰는 동력으로 작용, 이후 7년간의 작업을 통해 펜-헤밍웨이 상을 수상하게 될 <Homegoing: 집으로>를 탄생시킨다. 그리하여 당연히 작품 속에 작가의 정체성이 상당히 녹아 있다. 아프리카 안에서의 지리적 배경은 아샨티 왕국 중심지 판틀랜드와 노예무역의 상징이었던 황금해안에 지어진 케이프코스트 성이다. 시기적으로는 1760년대 초부터 2010년대까지 약 250~260년가량을 다루고 있으며, 특히 작품의 결말 부분에 등장하는 주인공 마조리는,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유학 온 아버지와 직업까지 똑같은 어머니, 대학의 전공과목, 가나를 방문하는 일, 심지어 생긴 모습까지 작가 야 지야시와 비슷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어떤 독자도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건, 이제 시간이 좀 지나서 정확한 기억인지 가물거리긴 하는데, 아마 영국사회 속의 흑인여성에 대하여 쓰고 싶었다던 버나딘 에바리스토의 작품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에서 누가 누구에게 권한 작품 목록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밤불의 딸들>은 여성주의 문학은 아니고, 식민과 흑인 소설이다.
  작품은 최초의 ‘마메’라고 하는 큰 어머니에서 시작한다. 이이에게서 시작한 고귀한 혈통이 둘 있어서 하나는 동부아프리카의 황금해안에 터를 잡고, 다른 하나는 노예수송선을 타고 도착한 미국에서 노예의 신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이들을 포함해 7대에 거친 두 가문의 이야기로, 짧지만 엄연히 대하소설의 플롯을 거의 완벽하게 지니고 있다. 두 가문의 7대, 모두 14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독립적 단편, 즉 연작소설로 읽어도 좋은 터. 그러나 7대의 순서는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하리라.
  고귀한 가문의 큰 어머니 마메. 그러나 책을 읽을 독자를 위해 노예 출신의 마메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자.
  그리하여 독후감을 시작해야 하는 인물은 에피아 오처. 아샨티 왕국의 중심지였다고 주장하는 익명의 큰 마을 판틀랜드에는 그때까진 생각도 하지 못할 큰 불이 나 연기와 열기에 휩쓸려 에피아의 아버지 코비 오처는 이 와중에 가장 중요한 재산인 얌 일곱 그루를 잃어버리는 큰 손실을 당한다. 참경을 허망하게 바라보는 코비 오처는 “맹렬하게 타오르다가 달아난 불에 대한 기억이 자신을, 자식들을, 그리고 가문의 혈통이 이어지는 한 자식들의 자식들까지 영원히 따라다니며 괴롭”히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 장면이 상당히 앞쪽에 등장하는 바람에 나를 포함한 독자들은 이게 의미심장한 문장이라는 것을 절감하지 못하다가 나중에, 책을 읽은 후 독후감을 쓰기 위해 다시 책갈피를 들출 때가 되어야 아, 이랬었구나, 알아채게 된다.
  재난의 현장에도 생명은 언제나 발아하는 것. 화재의 현장에서 에피아 오처가 태어난다. 그러나 모든 것을 태워 바싹 말려버리는 불의 잔재는 코비 오처의 첫 번째 아내 바바의 젖을 말려버려 에피아는 둘째 아내의 젖을 먹으며 숨을 이어간다. 에피아가 세 살이 된 여름에 바바는 통통한 아들 피피를 출산한다. 이를 기해 바바는 갑자기 사납게 변해 에피아가 작은 실수를 저질렀을 뿐인데도 심하게 구타를 하기 시작한다. 이를 본 코비는 화가 나 바바를 구타하고, 바바는 더 성질이 나 또다시 에피아를 구타하는 악순환의 연속. 에피아의 몸에 난 흉터들이 바로 자신의 역사가 된다.
  바바가 에피아에게 강요하기를, 초경이 비치면 비밀로 하라는 것. 아샨티 족은 초경이 없으면 결혼을 하지 못한다. 키가 크고 아보카도 씨앗 같은 색깔의 추장 후계자 아비쿠가 아무리 두 번째 아내로 에피아를 원해도, 태어날 때 불의 저주를 받아 생명의 씨앗이 없어져 경도 또한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을 당해, 결국 에피아는 선불 신붓값 30 파운드와 매달 25 실링 상당의 교환 가능한 상품이라는 당시 최고 가격으로 케이프코스트 성의 나이 많은 영국인 총독과 결혼을 하기에 이른다. 바바가 에피아에게 전해주는 것은 황금빛이 나는 검은 돌. 자기가 줄 수 있는 최고의 것이어서 늘 몸에 가지고 있으라는 당부와 함께.
  케이프코스트의 총독 제임스 콜린스는 에피아와의 사이에 아들 퀘이를 낳고, 어린 것을 키우는데 재미를 느끼다가 영국으로 보내 교육을 받게 한 직후 숨을 거둔다. 퀘이는 다시 가나로 돌아오고, 케이프코스트에 정착을 원했으나 다시 외갓집 판틀랜드로 발령이 나 이 가문을 이어간다. 이후 마조리를 낳은 야우까지. 야우는 유학을 간 미국 땅에서 마조리를 낳고, 아이를 낳으면 아이의 신체 일부를 보내라는 어머니 아쿠아의 부탁대로 21세기의 후손 마조리의 탯줄을 판틀랜드로 보낸다.

 

  또 다른 불의 딸은 에시. 케이프코스트 성의 여자용 지하 감옥에서 열다섯 번째 생일을 맞는 기구한 팔자의 여성. 건장한 몸매에 어여쁜 생김생김으로 얌 60개의 신붓값이란 조건에 쾨시 은누로와 결혼예정이었다. 아샨티 왕국의 심장부의 작은 마을 출생으로 대인 콰메 아사레의 딸. 아버지는 추장은 아니지만 아샨티 왕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전사로 25세에 다섯 아내와의 사이에 열 명의 자식을 두었던 인물. 아들들은 어리지만 거친 씨름꾼들이고, 딸들은 하나같이 미녀였다.
  어느날 북쪽에서 아비쿠 추장의 부족들이 밤에 기습을 해왔고 피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포로로 잡은 에시를 비롯한 이들 부족들을 전부 영국인들에게 노예로 팔아버린다. 이때 어머니 바바불은 에시가 포로로 잡히기 전에 황금빛이 도는 검은 돌을 꼭 간직하라고 에시에게 전해주지만, 도망하다 야자나무 꼭대기에 숨은 에시를 기어이 찾아내기에 이르렀던 것. 그러나 에시는 케이프코스트의 여자 감옥에서도 이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입에 넣고 삼켜버리기까지 한다. 결국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분뇨의 엉망진창에서 돌을 찾을 새도 없이 갑작스레 배에 태워져 죽음의 항해길에 오르게 되지만. 이렇게 다시는 오지 못할 바닷길을 건너는 에시.
  여자 지하 감옥에서 모든 여자들이 보는 와중에 술 취한 영국군인에게 강간을 당한 에시는 최고 전사의 핏줄을 이어받은 강철 같은 체질로 임신한 상태에서도 지옥 같은 항해를 견뎌내고 미국에 도착해 딸 네스를 낳는다. 에시로부터 자유를 향한 영혼을 물려받은 네스는 길잡이 여인 아쿠를 따라 아들 코조를 품에 안고 남편 샘과 함께 노예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북쪽으로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뒤를 쫓는 사냥개의 후각을 이기지 못해 아들 코조를 아쿠에게 넘겨 달아나게 하고는 자신과 남편 샘은 주인에게 잡혀 등짝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채찍 형을 당한다.
  이렇게 에시의 후손은 미국 땅에서 노예해방을 맞고, 극심한 인종차별과 강제노역을 당하고, 마약중독자도 됐다가, 스탠퍼드에서 사회학 박사과정을 밟는 마커스까지 7대가 이어진다. 고국 가나에서 불의 징벌을 받은 후예 마조리와, 6단 나무 침상에 켜켜이 쌓여 지옥 같은 대서양을 건너온 노예의 후예로 물, 특히 바다에 대한 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마커스는, 21세기의 어느 날, 모든 독자의 바람대로 서로 만난다. 그리고 함께 가나를 여행하며, 물과 불은 필연적으로 서로 화해 또는 맺힌 공포증이나 저주를 풀어내며 대단원을 맞는다.

 

  이 책은 결말을 위한 작업이 아니다. 서사적인 소설 형식이 그러하듯 스토리가 포함한 당대의 장면과 이슈를 문학적 처리하여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다. 현재의 미국에 주소지를 둔 흑인들이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하는 것. 이를 위해서 작가 지야시의 아버지가 프랑스어를 전공한 것과 달리 마조리의 아버지는 「역사」를 전공하기 위하여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늦은 유학길에 오르는 것으로 설정했을지도 모른다. 흑인들은 그렇게 천국에서 추방되어 노예생활을 했고, 해방은 맞았으나 여전한 차별로 고통 받는다고 주장한다.
  흑인 입장에서는 정당하고 슬픈 이야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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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6-18 13:4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 모든 건 큰 여성 ‘마메‘로부터 시작합니다. 근데 마메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으며 앞쪽에 나온다는 게 조금 걸렸습니다. 어떻게 하면 마메 이야기를 하지 않고 독후감을 쓸까를 생각하다보니 재미가 덜해졌습니다.
- 역시 제일 큰 문제는 권력입니다. Black is matter. 입니다만 미국 내에서 흑인들의 권력을 생각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흑인들이 아시아 사람들보다 우월한 건 체격과 주먹 뿐입니다. 감히 백인한텐 빤히 쳐다보지도 못하면서 왜소한 아시아 사람을 우습게 아는 흑인들이 요샌 어째 힘센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사람들 째려보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그래서 별점 하나 깎아 네 개 줄까 하다가, 흑인 역사 몇백 년을 한 권에 축약한 밀도 높은 작품에 무식한 칼질을 하는 거 같아서 그냥 내비뒀습니다.
- 이이가 <초월왕국 Transcendent Kingdom>이란 새 작품을 2020년에 냈다는데 번역본이 얼른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잠자냥 2021-06-18 14:2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 책 별 다섯 개입니까? 전 이 책 출간되었을 때 소개 살짝 보고는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하고 너무 비슷한 거 아니야? 하고 패스했거든요. 으흠.... 그런데 이 작품은 여성주의보다는 ‘식민과 흑인 소설‘에 더 방점이 있다는 말씀이군요. 알겠습니다. 접수.

Falstaff 2021-06-18 14:40   좋아요 5 | URL
옙. 250년 이상의 세월, 열네 명 집중탐구. 이게 겨우 450여 쪽에 담겨 있으니 얼마나 속도감이 있겠습니까.
앞으로 이런 책이 더 나올지 모르겠는데, 굳이 이런 책 쓸 필요없는 세상이 주욱,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많이 기대하지는 마시고요. ㅋㅋㅋ

새파랑 2021-06-18 15: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폴스타프님 별 다섯개라니 ㅋ 고문이군요~!! 담을까 말까... Homegoing 하니까 케니지의 Going home이 떠오르네요 ㅎㅎ

Falstaff 2021-06-18 15:22   좋아요 3 | URL
좋은 책입니다. 크게 기대하지는 마시고요. 새삼스레 무슨 주장 같은 거 없습니다. 그냥 흑인들이 거쳐온 이야기니까요. ㅎㅎㅎ 결정은 새파랑 님께서 하시는 걸로.

coolcat329 2021-06-19 13: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책이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에 나오나요? 윽 기억이 안나네요 ㅠ
근데 긴 세월 여러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에바리스토 소설과 구성이 비슷하네요.
좋은 책은 읽어봐야죠~😚

잠자냥 2021-06-19 18:01   좋아요 1 | URL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에 나오는 건 아니고요, 책 소개를 보니까 구성이나 주제가 비슷할 거 같아서 저는 페스했었거든요. 근데 조금 다른가 봅니다!

Falstaff 2021-06-19 20:25   좋아요 0 | URL
저도 기억이 안 나요. 어디서 책 소개를 보고 산 건 맞는데 그게 <소녀,...>인 것 같긴 한데 자신하진 못하겠습니다.
옙. 에바리스토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재미있어요. 근데 자신있게 읽어보시라 권할 정도는 또 아닌 것도 같고 뭐 그렇습니다. ^^;;;

잠자냥 2021-06-19 18: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 님 현재 알라딘에서 대(?) 유행 중인 르네쌍수 사진 한 번만 올려주세요. 소주 두 병 걸치고 찍은 걸로요! ㅋㅋㅋㅋ

Falstaff 2021-06-19 20:22   좋아요 0 | URL
ㅋㅋㅋ 사진 찍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말입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해봤는데, 너무 끔찍해서 도무지 올리지 못하겠어요. 흑흑,..

잠자냥 2021-06-19 22:31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적대적 상황에서의 생존 메커니즘 알마 인코그니타
올리비아 로젠탈 지음, 한국화 옮김 / 알마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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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올리비아 로젠탈을 검색해보니 별로 자료가 없다. 1965년 파리 출생 뱀띠 소설가이자 교육자로 지금 8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고 있으며, 많고 많은 학생 중에서 한국에서 유학을 와 기특하게 프랑스 말로 소설을 써 책까지 낸 ‘한국화’라는 제자가 그의 작품 여럿 가운데 <적대적 상황에서의 생존 메커니즘>을 골라 번역 출간하고 싶다는 기특한 제의를 수락해, ‘한국어판 서문’을 써주기도 한 사람이다.
  번역본이 없어 로젠탈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지는 못해도, 일단 제목들을 보면 참 독특하다. 책의 앞날개에 적혀 있는 걸 따왔다. <모든 여자는 에일리언이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순록들은 무엇을 할까>, <우리는 사라지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고양이과 동물들은 나를 좋아한다>. 등등. 이런 독특한 제목들과는 어울리지만 로젠탈의 어법이 독자에게 친근한 건 아니다. 이이는 자신이 쓴 한국어판 서문에서 말하기를, 자신의 작품세계가 한국의 독자에게 낯설게 느껴질 것이라 한다. 또한 십여 년 전부터 로젠탈은 특정 주제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작업을 해 왔다고 하며, 이 책도 마찬가지인데, 이번에는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이 대상이었다고 한다. 임사체험을 한문으로 쓰면 臨死體驗이고, 영어로 하면 near-death experience다. 1970년대 레이몬드 무다 2세와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등에 의하여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말로 쉽게 얘기하면, 그냥, 죽었다 깬 사람들이다. 우리가 아는 가장 유명한 임사체험을 한 인물 두 명을 고르자면,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의 해리 포터와, <미션 임파서블> 몇 편인지는 모르겠지만 위기탈출을 위해 스스로 전기 감전사하고 곧바로 연인에 의한 심폐소생술로 살아나는 톰 크루즈, 이단 헌트다.
  이단 헌트는 어떤 경험을 했는지 관객들이 알 도리가 없지만, <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에서 해리가 숨을 거두자 아주 환한,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빛의 터널을 따라 천국으로 올라가는 장면이 나온다. 기억하시지? 실제로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은 빛의 터널이나 천국까지는 모르겠으되, 다른 편으로 넘어가는 경이적인 여행인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게 결코 비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평범하고 때론 유쾌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한다. 로젠탈은 서문에서 결론으로 말하기를, 이 책은 모든 의미에서 다시 살아온 자들에 대한 이야기로 독립된 다섯 개의 단편으로 만들었단다.
  그런데 정말? 그건 책을 끝까지 꼼꼼하게 읽어야 알 수 있다. 포스트 모던 작품은 비록 서문에 작가가 나서서 직접 뭐라고 설명을 깔아두었다 하더라도 그걸 그대로 믿고, 이해해주고, 섭취할 필요는 없다. 다섯 편이 독립된 단편, 이라고 할 수도 있으며, 마치 독립된 악장樂章movement처럼 개별적으로 떨어져 있으나, 마지막 다섯 번째 작품 <귀환>에서는 앞의 이야기들이 다시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교향곡 적인 형태를 취한다고 해도 그렇게 많이 틀린 이야기는 아닐 듯하다. 실제로 진짜 임사체험의 장면은 두 번째 <집에서>와 네 번째 <내 친구들>에만 나오고, 세 번째 <추격>은 일반적인 죽음, 사람이 죽어서 무화無化하는 과정, 이미 짐 크레이스의 작품 <그리고 죽음>을 통해 상세하게 이야기된 바 있어서 별로 와 닿지 않는 요약본이며, 마지막 <귀환>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한 문장이 몇 페이지에 달해 오히려 독자에게 혼돈만을 초래했던 길고 긴 문장들이었다.

 

  그럴 듯한 작품은 제일 앞에 실린 <도주>였다. 물론 내 의견일 뿐이다.
  일천한 아마추어 독자에 불과한 내가 이렇게 말한다면 시건방진 이야기겠지만, <도주>는 어느 정도 독서력歷이 있어서, 작품의 재미를 휘발시킨 드라이한 글을 읽을 수 있을 정도가 돼야 적당하겠다. 이렇게 써 놓으니까, 그럼 나는? 하는 의문이 든다. 좋다, 교만일지언정 솔직히 말해,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제대로 읽지는 못했을 듯하다. 하긴 포스트 모던 작품을 세상에 누가 있어서, “제대로” 읽겠는가. 그랬다 쳐도 그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도주>의 화자 ‘나’에 대하여 독자가 알 수 있는 건, 한 여성과 함께 도망을 치다가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고 판단해, 비축식량 조금을 주고 도로 한 쪽 구석에 버리고 떠난 남자라는 것. 직업이 군인인지, 경찰인지, 범죄자인지, 테러리스트인지, 아니면 그냥 민간인인데 전쟁 중이라 적대국 군대에 쫓기는 것인지 아무런 힌트도 없다. 그저 쫓긴다. ‘나’는 여자를 버린 날을 기준으로 해서 날짜를 세기 시작한다. 그날부터 마흔 번째 되는 날까지 ‘나’의 행적을 기록한 것인데 중간 중간에 임사체험에 대한 경험담 등이 삽화처럼 서술되어 있다.

 

  <도주> 속에 임사체험에 관한 서술들.
  쥐를 대상으로 실험을 한 결과, 심장이 멈추어도 뇌는 대략 30초 정도 기능을 하고, 이 사이에 놀랍고도 극단적인 규모로 (뇌와) 신경계와의 상호작용이 증가함.
  ② 토니 R.이 코마상태였을 때의 느낌이 현실과 그렇게 다르지 않았다고 증언함.
  ③ 어떤 임사 환자들은 외부에서 자신의 몸을 봤다고 진술했으며, 자신을 수술하는 의사가 쓰던 수술 기구등도 봤다 함. 이런 육체 분리 현상은 죽음의 위험에 대한 반응이라는 가설이 있음. 자아의 분할된 두 개의 개체 가운데 하나는 자신을 경계태세로 유지하고, 다른 하나는 자신을 타자 화함.
  ④ 심폐소생술을 시행해 되살아난 사람 가운데 오직 6 퍼센트만 임사체험을 경험함.
  ⑤ 비비안 R.은 잠들면 안 된다는 꿈을 꾸며 잠에 저항함. 수면은 정보(기억)를 삭제함.
  ⑥ 엘사 V.는 깊은 수면 상태로 몇 시간, 몇 주, 몇 달을 보냈지만 주변에 대한 의식이 확실하게 사라지지는 않았음.

 

  <도주>에서 ‘나’는 아무와도 마주치치 않는다. 여자를 버리고 다섯째 날에 폐허로 변한 마을을 발견하고 하루를 관찰하느라 보낸 다음날 마을로 들어가 은신처를 만든다. ‘나’에게 확실한 유일한 것은 누군가 나를 발견하면 처벌할 것이고 그건 아주 끔찍하리라 하는 일. 그렇다고 ‘나’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추호의 힌트도 없다. 끝날 때까지도 그렇다.
  ‘나’는 폐허 마을에서 스무날을 견디고 만일 죽어야 한다면 길 위에서 죽겠다고 마음을 먹어 다음 날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자신을 이곳으로 이끈 오솔길을 발견하고, 철길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한다. 기진한 몸으로 고원에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내고 골짜기에서 열흘을 보낸 ‘나’는 몸이 무감각해진 것을 알아내고 이제는 몸에서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고, 자살을 염두에 두기 시작한다. 서른세 번째 날에는 ‘나’가 버린 여자가 떠오르고 그녀의 두려움이 보이고 ‘나’ 역시 두렵다.
  드디어 마흔 번째 날. ‘나’는 떠나고, 동풍을 타고, 진흙을 몸에 바르고, 나아가다가 규칙적으로 뛰면서 오래 버틴다. 저 멀리 부족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고 그들 중 한 명이 ‘나’에게 접근하더니, 나를 둘러싼 원들이 점점 작아진다. 삶은 불규칙적이고 느리고, 부드럽고, 희미한 모험으로 바뀌는데, 나의 부재 동안에도 일들은 계속 되는 것을 알면서, 외진 골짜기로의 홀로 여행과 도주는 이쯤에서 끝나거나 중단되는 걸로 마무리 한다.
  이게 뭘까. ‘나’ 역시 삶과 죽음의 유사 사망 상태에 있다가 다시 이편으로 돌아서는 모습.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당연히 아니겠지만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그럼 된 거 아냐?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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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6-17 09:5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전반적으로 무서울것 같은데 <도주>는 꼭 읽어보고싶네요!
키퍼 서덜랜드랑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유혹의 선>도 의대생들의 의도적인 임사체험을 하고 조금 다른 경우지만 <어웨이크>란 영화에선 전신마취중 각성인데 이것도 실제 경우가 많다네요. 소설 <타나토노트>도 생각납니다^^*

Falstaff 2021-06-17 10:12   좋아요 5 | URL
아, 임사체험을 다룬 것이 많군요!
전 진짜로 죽기 전까진 절대로 임사체험을 경험하지 못하기 바랍니다. ㅎㅎㅎ

근데 무섭지 않아요. 건조해서 읽기가 좀 불편하고 그런데 별로 권하고 싶지는 않답니다. 죽는 장면의 압권은 제가 자주 인용하는 헨리 제임스의 <여인의 초상>에서 주인공 이사벨 아처가 병이 깊은 이모부에게 문병을 가서, 이모부 님, 얼른 쾌차하셔야지요, 위안을 하려 하자, 이모부가 하는 말이었습니다.
˝싫다. 그럼 나중에 진짜 죽을 때 또 이만큼 고통스러울 거 아니냐.˝

그 책이 이거보다 훨 재미납니다. 그거 읽으셔요. 헨리 제임스 가운데 젤 재미나요!!

청아 2021-06-17 10:18   좋아요 2 | URL
아! 냉큼 다시 담겠습니다(최상단으로)ㅋㅋㅋㅋ

다락방 2021-06-17 11:2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읽은 미스테리 소설 가운데 의대생들이 죽었다 깨어나는 실험 하고 그러다가 못깨어나서 살인이 된 그런 게 있었는데요. 아 그게 뭐였더라.

생각나면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그럼 이만.

청아 2021-06-17 11:50   좋아요 4 | URL
<플랫라이너>아닌가요? <유혹의 선>리메이크 한 영화예요ㅋㅋㅋ아 소설이군요^^;

Falstaff 2021-06-17 12:18   좋아요 4 | URL
아, 그런 소설이 있었군요! 미미 님 댓글 보면 영화로도 만들었고요. ㅋㅋㅋ 그것도 몰랐습니다.
한 번 찾아봐야겠습니다.

다락방 2021-06-17 13:10   좋아요 2 | URL
아니에요 의대생 부분이 정확하지는 않은데(의대생은 아닐 수 있어요) 그거 아닌 것 같아요. 아 근데 기억이 안나네요 ㅜㅜ 저는 북유럽 소설이라고 기억하고 있는데요 ㅜㅜ
 
과테말라 엘 소코로 - 5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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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커피 맛은 ˝여유˝에 있다. 일요일부터 고소해 맛나게 즐겼다. 오늘은 좀 빨리 출근하느라 밥 먹고 숭늉 삼아 후루룩 쩝쩝, 바쁘게 들이켰더니, 이건 뭐 물 탄 소주 맛이다. 역시 기호품은 여유있게 폼잡고 차근히 즐기는게 제일 맛나게 마시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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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1-06-16 17: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맞아요~~편한 마음으로 그 순간을 느껴야 맛이 좋아요. 커피도 급하게 마시면 배아프더라구요.

Falstaff 2021-06-16 19:44   좋아요 1 | URL
그죠, 그죠! ㅋㅋㅋㅋ
 
이해할 차례이다 민음의 시 266
권박 지음 / 민음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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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박. 원래 이름은 권민자. 1983년생이 어디 가서 제 이름은 권민자라고 해요, 라고 말하는 것이 마치 2021년에 스무 살 먹은 미국 아가씨가 대고모나 작은 할머니 이름도 아니고 말이지, 어디 가서, I'm Dorothy, 라고 하는 것처럼 심히 쪽팔려, 탁, 창씨創氏와 더불어 개명改名을 하려 했다. 시절이 21세기. 창씨는 1940년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어서, 21세기에도 주로 여성주의자들이, 환경운동가 출신 민주당 국회의원 ‘양이원영’ 같은 이가 대표적으로, 아버지 성 바로 뒤에 어머니 성을 합해 창씨를 하곤 했는데, 여성주의에 관심이 많은 권민자도 마찬가지로 엄마의 성씨를 뒤에 이어 만든 '권박'을 앞에 놓고, 이름을 뭘로 할까, 궁리하다가, 그냥 ‘권박’으로만 했단다. 지금은 장가들어 아이 아범이 된 내 큰아이가 고등학교 시절에 중국에서 온 아가씨와 연애를 한 적이 있었는데, 아가씨 아버지가 중국인 등씨고, 어머니가 남쪽 한국인 류씨라서, 아버지가 아이의 이름을 ‘등류’라 지었다고 했다. 그래 나한텐 권박이란 이름이 하나도 낯설지 않게 읽혔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떤 이유로 권박의 시집을 골랐느냐 하면, 요즘 출간되는 시집의 파편화된 단어와 개별성, 낯설고 기괴한 시어가 끔찍할 정도로 피곤하여, 이런 시들을 피할 목적으로 언뜻 떠오른 아이디어가 무엇이었는가 하면, 우리나라 현대 참여시의 대표자 가운데 한 명인 김수영, 이 시인의 이름을 딴 문학상을 탄 시집, 또는 시인이 낸 것이라면 그래도 조금은 이해할 수준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김수영 정도면 깊게 공감을 주며, 무엇보다 독자들에게 최고 난도의720도 회전 옆차기 같은 공격을 퍼붓지는 않을 터이니까. 딱 이런 이유 하나로 구입했다. 나도 미쳤지. 그렇게 생각했다면 우선 한 권 사 읽어보고 다음을 기약해야 할 터인데, 김수영 문학상을 받은 적이 있는 안태운이란 시인의 시집을 또 한 권 사놓고 다음 주 화요일에 독후감을 올릴 예정이니, 미치진 않았다 해도 제 정신은 아닌 듯싶다.
  하여튼 이런 과정을 거쳐 권박의 《이해할 차례이다》를 읽은 감상은, 오죽했으면 이이의 이름 지은 내력이 낯설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했겠는가를 염두에 두시면 되겠다. 바로 어저께 정유정의 엽기 발랄한 잔혹 무비 <7년의 밤>을 읽고 독후감을 쓴 다음에 또 《이해할 차례이다》를 읽으니 쉬운 얘기로, 돌겠다, 미치겠다, 까무러치겠다, 사까닥질 하겠다. 예를 들어, <안토르포파지 (anthropophagy)>라는 시의 일부를 인용한다. ‘유사有史 및/또는 선사先史’라는 뜻을 갖고 있는 전문용어 anthrophophagy는 ‘안트로포파지’라고 읽어야할 듯한데, 하여튼 시인은 ‘안토르포파지’라고 우리말 제목을 썼다.

 


  설탕으로 만든 해골과 두개골을 갉아먹으며 당신은 내 귀에 대고 속삭였지. 모피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고양이에게 고양이 고기를 준 파리의 어느 모피상 이야기, 들어 본 적 있니?

 

           *

 

  당신은 내 넓적다리와 가슴과 뇌장을 식초에 뿌려 먹을 거라고 한다.
  당신의 사람인 나는 내 눈동자와 혀와 불안과 고루와 절망과 심장을 잠 속에 넣었다.

 

  고양이를 낳는 태몽을 꾼 다음 날의 나는 손톱 같은 시간처럼 녹아내렸다.
  그 시간 안에서 당신은 할퀴고 물어뜯는 소문이고 나는 어찌할 줄 모르는 소문이다.

 

  (중략)

 

  나치의 수용소 안에서 어떤 수감자가 어떤 수감자의 인육을 먹을 때의 표정을 당신과 나의 관계라고 볼 수도 있겠다. 나치의 눈을 피해 어떤 수감자의 뼈와 피부를 파헤치는 어떤 수감자의 피골이 상접한 알몸이 당신과 내가 나눈 사랑의 모습이기도 하다. 가시철조망에 걸려 있는 시체 같은 태몽이 나를 붙였다.  (후략 110~111쪽)

 

 

  당연히 모든 시가 이렇지는 않다. 권박의 트레이드마크는 페미니즘이라고 한다. 김수영 문학상을 받은 직후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당시의 남성과의 대결이나 남성혐오, 과격한 적대적 페미니즘과는 다른 페미니즘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시집을 읽어보면 주로 앞쪽에 배치된 시들을 중심으로 권박 특유의 여성주의적 시가 보인다. 이이는 페미니즘, 주로 빅토리아 시대 이전/이후 소설가, 시인들과 관련된 것들로 시작하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자신이 지금 어떤 시대, 대상에 관하여 노래하고 있는지 독자에게 알릴 필요가 있었고, 이를 위해 시인이 채택한 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길고 긴 주석이다. 이렇게 길고 긴 주석은 평론집에서도 읽은 적이 없을 듯하다. 그래 차마 인용할 수 없어 문명의 이기,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 보여드리고자 하니, 시 한 편을 위한 주석을 구경하며 우리 함께 놀라보자.

 

 

   이렇게 열두 쪽이 시 한 편에 관한 주석이다. 그럼 시는 어떻게 생겼느냐고? ‘기상관측소’, ‘공동체의 (미)완성’, ‘비극 : 형평성의 탄생’, ‘거절 : 세련된 방식의 삿대질’, ‘그러니까, 왜, 나는 없는 이름입니까?’, ‘피의 책’이란 여섯 개의 소단위로 이루어진 일곱 쪽에 이르는 시로 제목을 <마구마구 피뢰침>이라 했다. 이걸 다 인용할 수는 없고 처음 두 단위만 옮겨보기로 하자.

 


  마구마구 피뢰침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고드윈 셸리(들)에게

 

  기상관측소

 


  이번에는 기상관측소입니까?
  기상관측소는 신의 의도를 기록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벼락을 꽉 붙잡고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짜깁기한 197개의 심장에, 나의 뇌를 피뢰침 삼아, 다시 벼락을 덧대어, 처음의 흉측함과 만난다면, 흉측함의 흉측함으로써,

 

  묻겠습니다.
  “아직도 공동체의 완성은 보호받는 여자인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동체의 (미)완성

 


  천사는 집 안에만 있어야 하는데
  악마도 입 안에만 있어야 했는데

 

  집 안에 있는 천사는 왜 집 밖으로 나가면 천사가 아니게 되는 겁니까?
  집 안에 있는 악마는 왜 집 밖으로 나가면 더 끔찍한 악마가 되는 겁니까?

 

  형평성이 탄생했습니다.  (후략)


  주석을 읽지 않고도 이 시가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 감이 잡히시나? 나는 아니었다. 주석을 읽고 나서야 아, 이런 얘기구나, 라고 즉각 알긴 하겠는데, 그러면 뭐 하러 시를 쓰나. 차라리 논문을 쓰지. 라는 생각도 아주 조금은 들었다. 하긴 시도 진화를 한다. 그걸 내가 따라가지 못했을 뿐. 나 같은 둔한 독자를 위해 좀 친절한 시인들도 아직 있기는 하지만 권박은 아닌 거 같다. 김수영 문학상도 마찬가지고. 아이고, 참 시 읽기, 더 솔직하게 말하면, 시 읽어주기 힘들다. 더는 못 읽겠다. 오늘 현재 책꽂이에 꽂혀 내 눈길을 기다리고 있는 시집만 다 읽으면, 나도 내게 맞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시들만 읽겠다.
  시인들이여, 잘났다. 내가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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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2021-06-15 10: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야말로 시 한편에 대한 주석이 산문 수준이네요!!

Falstaff 2021-06-15 10:46   좋아요 6 | URL
19세기 이전의 여성 작가들, 메리 셸리 모녀 부터 브론테 세자매,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 및 이후 여성 작가들까지, 당시의 여성 차별, 교육을 당한 것을 망라합니다. 새로운 것을 알 수도 있지만 본문에도 썼다시피 (조금도 비꼬는 말이 아니고요) 차라리 논문, 아니면 적어도 산문이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시의 주석 대신에 말입죠.
이러니 시를 잘 모르고 그저 애정으로 시 좀 읽어볼까, 하는 독자의 입장에서 배겨낼 도리가 있었겠습니까. 흑흑흑.....

새파랑 2021-06-15 11: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시라면 뭔가 배경지식이나 해설 없이 읽고 나서 뭔가 느껴지는거라 생각했는데 ㅎㅎ 감정의 압축적 표현? ㅋ 뮌가 다양성 측면에서는 괜찮다고 생각은 듭니다^^ 다만 저에게는 어렵게 보이네요 ㅜㅜ

Falstaff 2021-06-15 11:28   좋아요 5 | URL
ㅋㅋㅋ 바로 위에 ˝기상관측소˝는 메리 셸리가 쓴 <프랑켄슈타인> 분위기가 팍 납니다. 권박은 벼락의 전기자극이 만들어낸 흉측함, 괴물 프랑켄슈타인이 아니라 메리 셸리라는 ‘여자‘ 소설가, 모든 것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여자였던 것입지요.
시라는 장르는 급격하게 전문화된 거 같습니다. 에구, 모르겠습니다, 저도요. ㅋㅋㅋ

hnine 2021-06-15 18: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해골과 두개골은 같은 말 아닌가요?
인용하신 첫 싯구는 광우병을 비유한 것 같아보이네요.
난해하지만 동시에 관심도 가요.

Falstaff 2021-06-15 20:26   좋아요 2 | URL
뭐 해골하고 두개골.... 복수형 아니겠습니까. 설탕으로 만든 바가지 두 개 말입지요.
시가 길어서 전문을 인용하지 못했는데, 광우병은 아닌 걸로 읽었습니다. 광우병, 구제역, 조류독감, 이 비슷한 동네는 원로 김혜순이 이미 꽉 잡고 있어서 감히 새까만 후배가 숟가락 올리기가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비겁하다! 모르겠다고 얘기한다....고 짱돌 던지셔도 뭐 어떻하겠습니까. 맞아야지요. ㅎㅎㅎ)
아, 전 계속 뇌 굴리다가 다 소진되어 이젠 기브-업, 입니다. 에휴....

coolcat329 2021-06-15 18: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시가 정말 어렵습니다. 저는 교과서 시도 천천히 읽어야 조금 와닿는 수준인데 정말 무슨 말인지 어렵네요.

Falstaff 2021-06-15 20:27   좋아요 3 | URL
ㅋㅋㅋ 그러면 저처럼 각오를 하시면 됩니다.
니들이 시인밖에 더 되냐! 잘 먹고 잘 살아라! 난 안 읽겠다!
이게 독자의 유일한 권력인데 포기하시면 안 됩니다. ^^

붕붕툐툐 2021-06-16 00: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 한편을 위한 주석을 사진으로 올리신 목적대로 저도 아주 많이 놀랐습니다~;;;;;;
전 패쓰! 할게욧!ㅎㅎ

Falstaff 2021-06-16 07:37   좋아요 2 | URL
ㅋㅋㅋ 저는 놀라다가, 놀라다가, 자빠졌답니다.
전 당분간, 사 놓은 거 다 읽고요, 완전 패쓰~ 할 겁니다.
씨... 읽(어 주)나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