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불의 딸들
야 지야시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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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지야시의 데뷔작. 2016년에, 미국 국적의 작가로 처음 책을 출간한 가장 훌륭한 장편소설이나 단편 소설집에게 수여하는 펜-헤밍웨이 상을 받은 책. 즉 이 책으로 2016년을 빛낸 최우수 신인상을 받았다고 생각하시면 맞는다. 원제목은 <Homegoing>.
  특히 작가의 첫 작품이라면, 작가의 바이오그래피가 중요할 수도 있다. 지야시도 그렇다. 야 지야시 Yaa Gyasi는 1989년에 아프리카 가나, 옛 아샨티 왕국의 중요한 지역이었던 맘퐁에서 나중에 앨라배마 대학의 불어 교수를 하는 콰쿠 지야시와, 간호사 혹은 보조간호사 소피아 지야시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1991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와 일리노어와 테네시를 거쳐 열 살부터 앨라배마 헌츠빌에 정착한다. 남자형제들과 더불어 이민 가족들이 흔히 그렇듯이 ‘수줍은 아이’로 성장했고, 그림슨 고등학교에 다니던 열일곱 살 때 토니 모리슨이 장편 <솔로몬의 노래>를 읽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을 한다.
  성인이 된 2009년 야 지야시는 이민 후 처음으로 조국 가나를 방문한다. 방문 기간 동안의 경험이 결정적으로 <밤불의 딸들>을 쓰는 동력으로 작용, 이후 7년간의 작업을 통해 펜-헤밍웨이 상을 수상하게 될 <Homegoing: 집으로>를 탄생시킨다. 그리하여 당연히 작품 속에 작가의 정체성이 상당히 녹아 있다. 아프리카 안에서의 지리적 배경은 아샨티 왕국 중심지 판틀랜드와 노예무역의 상징이었던 황금해안에 지어진 케이프코스트 성이다. 시기적으로는 1760년대 초부터 2010년대까지 약 250~260년가량을 다루고 있으며, 특히 작품의 결말 부분에 등장하는 주인공 마조리는,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유학 온 아버지와 직업까지 똑같은 어머니, 대학의 전공과목, 가나를 방문하는 일, 심지어 생긴 모습까지 작가 야 지야시와 비슷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어떤 독자도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건, 이제 시간이 좀 지나서 정확한 기억인지 가물거리긴 하는데, 아마 영국사회 속의 흑인여성에 대하여 쓰고 싶었다던 버나딘 에바리스토의 작품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에서 누가 누구에게 권한 작품 목록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밤불의 딸들>은 여성주의 문학은 아니고, 식민과 흑인 소설이다.
  작품은 최초의 ‘마메’라고 하는 큰 어머니에서 시작한다. 이이에게서 시작한 고귀한 혈통이 둘 있어서 하나는 동부아프리카의 황금해안에 터를 잡고, 다른 하나는 노예수송선을 타고 도착한 미국에서 노예의 신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이들을 포함해 7대에 거친 두 가문의 이야기로, 짧지만 엄연히 대하소설의 플롯을 거의 완벽하게 지니고 있다. 두 가문의 7대, 모두 14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독립적 단편, 즉 연작소설로 읽어도 좋은 터. 그러나 7대의 순서는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하리라.
  고귀한 가문의 큰 어머니 마메. 그러나 책을 읽을 독자를 위해 노예 출신의 마메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자.
  그리하여 독후감을 시작해야 하는 인물은 에피아 오처. 아샨티 왕국의 중심지였다고 주장하는 익명의 큰 마을 판틀랜드에는 그때까진 생각도 하지 못할 큰 불이 나 연기와 열기에 휩쓸려 에피아의 아버지 코비 오처는 이 와중에 가장 중요한 재산인 얌 일곱 그루를 잃어버리는 큰 손실을 당한다. 참경을 허망하게 바라보는 코비 오처는 “맹렬하게 타오르다가 달아난 불에 대한 기억이 자신을, 자식들을, 그리고 가문의 혈통이 이어지는 한 자식들의 자식들까지 영원히 따라다니며 괴롭”히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 장면이 상당히 앞쪽에 등장하는 바람에 나를 포함한 독자들은 이게 의미심장한 문장이라는 것을 절감하지 못하다가 나중에, 책을 읽은 후 독후감을 쓰기 위해 다시 책갈피를 들출 때가 되어야 아, 이랬었구나, 알아채게 된다.
  재난의 현장에도 생명은 언제나 발아하는 것. 화재의 현장에서 에피아 오처가 태어난다. 그러나 모든 것을 태워 바싹 말려버리는 불의 잔재는 코비 오처의 첫 번째 아내 바바의 젖을 말려버려 에피아는 둘째 아내의 젖을 먹으며 숨을 이어간다. 에피아가 세 살이 된 여름에 바바는 통통한 아들 피피를 출산한다. 이를 기해 바바는 갑자기 사납게 변해 에피아가 작은 실수를 저질렀을 뿐인데도 심하게 구타를 하기 시작한다. 이를 본 코비는 화가 나 바바를 구타하고, 바바는 더 성질이 나 또다시 에피아를 구타하는 악순환의 연속. 에피아의 몸에 난 흉터들이 바로 자신의 역사가 된다.
  바바가 에피아에게 강요하기를, 초경이 비치면 비밀로 하라는 것. 아샨티 족은 초경이 없으면 결혼을 하지 못한다. 키가 크고 아보카도 씨앗 같은 색깔의 추장 후계자 아비쿠가 아무리 두 번째 아내로 에피아를 원해도, 태어날 때 불의 저주를 받아 생명의 씨앗이 없어져 경도 또한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을 당해, 결국 에피아는 선불 신붓값 30 파운드와 매달 25 실링 상당의 교환 가능한 상품이라는 당시 최고 가격으로 케이프코스트 성의 나이 많은 영국인 총독과 결혼을 하기에 이른다. 바바가 에피아에게 전해주는 것은 황금빛이 나는 검은 돌. 자기가 줄 수 있는 최고의 것이어서 늘 몸에 가지고 있으라는 당부와 함께.
  케이프코스트의 총독 제임스 콜린스는 에피아와의 사이에 아들 퀘이를 낳고, 어린 것을 키우는데 재미를 느끼다가 영국으로 보내 교육을 받게 한 직후 숨을 거둔다. 퀘이는 다시 가나로 돌아오고, 케이프코스트에 정착을 원했으나 다시 외갓집 판틀랜드로 발령이 나 이 가문을 이어간다. 이후 마조리를 낳은 야우까지. 야우는 유학을 간 미국 땅에서 마조리를 낳고, 아이를 낳으면 아이의 신체 일부를 보내라는 어머니 아쿠아의 부탁대로 21세기의 후손 마조리의 탯줄을 판틀랜드로 보낸다.

 

  또 다른 불의 딸은 에시. 케이프코스트 성의 여자용 지하 감옥에서 열다섯 번째 생일을 맞는 기구한 팔자의 여성. 건장한 몸매에 어여쁜 생김생김으로 얌 60개의 신붓값이란 조건에 쾨시 은누로와 결혼예정이었다. 아샨티 왕국의 심장부의 작은 마을 출생으로 대인 콰메 아사레의 딸. 아버지는 추장은 아니지만 아샨티 왕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전사로 25세에 다섯 아내와의 사이에 열 명의 자식을 두었던 인물. 아들들은 어리지만 거친 씨름꾼들이고, 딸들은 하나같이 미녀였다.
  어느날 북쪽에서 아비쿠 추장의 부족들이 밤에 기습을 해왔고 피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포로로 잡은 에시를 비롯한 이들 부족들을 전부 영국인들에게 노예로 팔아버린다. 이때 어머니 바바불은 에시가 포로로 잡히기 전에 황금빛이 도는 검은 돌을 꼭 간직하라고 에시에게 전해주지만, 도망하다 야자나무 꼭대기에 숨은 에시를 기어이 찾아내기에 이르렀던 것. 그러나 에시는 케이프코스트의 여자 감옥에서도 이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입에 넣고 삼켜버리기까지 한다. 결국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분뇨의 엉망진창에서 돌을 찾을 새도 없이 갑작스레 배에 태워져 죽음의 항해길에 오르게 되지만. 이렇게 다시는 오지 못할 바닷길을 건너는 에시.
  여자 지하 감옥에서 모든 여자들이 보는 와중에 술 취한 영국군인에게 강간을 당한 에시는 최고 전사의 핏줄을 이어받은 강철 같은 체질로 임신한 상태에서도 지옥 같은 항해를 견뎌내고 미국에 도착해 딸 네스를 낳는다. 에시로부터 자유를 향한 영혼을 물려받은 네스는 길잡이 여인 아쿠를 따라 아들 코조를 품에 안고 남편 샘과 함께 노예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북쪽으로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뒤를 쫓는 사냥개의 후각을 이기지 못해 아들 코조를 아쿠에게 넘겨 달아나게 하고는 자신과 남편 샘은 주인에게 잡혀 등짝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채찍 형을 당한다.
  이렇게 에시의 후손은 미국 땅에서 노예해방을 맞고, 극심한 인종차별과 강제노역을 당하고, 마약중독자도 됐다가, 스탠퍼드에서 사회학 박사과정을 밟는 마커스까지 7대가 이어진다. 고국 가나에서 불의 징벌을 받은 후예 마조리와, 6단 나무 침상에 켜켜이 쌓여 지옥 같은 대서양을 건너온 노예의 후예로 물, 특히 바다에 대한 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마커스는, 21세기의 어느 날, 모든 독자의 바람대로 서로 만난다. 그리고 함께 가나를 여행하며, 물과 불은 필연적으로 서로 화해 또는 맺힌 공포증이나 저주를 풀어내며 대단원을 맞는다.

 

  이 책은 결말을 위한 작업이 아니다. 서사적인 소설 형식이 그러하듯 스토리가 포함한 당대의 장면과 이슈를 문학적 처리하여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다. 현재의 미국에 주소지를 둔 흑인들이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하는 것. 이를 위해서 작가 지야시의 아버지가 프랑스어를 전공한 것과 달리 마조리의 아버지는 「역사」를 전공하기 위하여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늦은 유학길에 오르는 것으로 설정했을지도 모른다. 흑인들은 그렇게 천국에서 추방되어 노예생활을 했고, 해방은 맞았으나 여전한 차별로 고통 받는다고 주장한다.
  흑인 입장에서는 정당하고 슬픈 이야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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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6-18 13:4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 모든 건 큰 여성 ‘마메‘로부터 시작합니다. 근데 마메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으며 앞쪽에 나온다는 게 조금 걸렸습니다. 어떻게 하면 마메 이야기를 하지 않고 독후감을 쓸까를 생각하다보니 재미가 덜해졌습니다.
- 역시 제일 큰 문제는 권력입니다. Black is matter. 입니다만 미국 내에서 흑인들의 권력을 생각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흑인들이 아시아 사람들보다 우월한 건 체격과 주먹 뿐입니다. 감히 백인한텐 빤히 쳐다보지도 못하면서 왜소한 아시아 사람을 우습게 아는 흑인들이 요샌 어째 힘센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사람들 째려보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그래서 별점 하나 깎아 네 개 줄까 하다가, 흑인 역사 몇백 년을 한 권에 축약한 밀도 높은 작품에 무식한 칼질을 하는 거 같아서 그냥 내비뒀습니다.
- 이이가 <초월왕국 Transcendent Kingdom>이란 새 작품을 2020년에 냈다는데 번역본이 얼른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잠자냥 2021-06-18 14:2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 책 별 다섯 개입니까? 전 이 책 출간되었을 때 소개 살짝 보고는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하고 너무 비슷한 거 아니야? 하고 패스했거든요. 으흠.... 그런데 이 작품은 여성주의보다는 ‘식민과 흑인 소설‘에 더 방점이 있다는 말씀이군요. 알겠습니다. 접수.

Falstaff 2021-06-18 14:40   좋아요 5 | URL
옙. 250년 이상의 세월, 열네 명 집중탐구. 이게 겨우 450여 쪽에 담겨 있으니 얼마나 속도감이 있겠습니까.
앞으로 이런 책이 더 나올지 모르겠는데, 굳이 이런 책 쓸 필요없는 세상이 주욱,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많이 기대하지는 마시고요. ㅋㅋㅋ

새파랑 2021-06-18 15: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폴스타프님 별 다섯개라니 ㅋ 고문이군요~!! 담을까 말까... Homegoing 하니까 케니지의 Going home이 떠오르네요 ㅎㅎ

Falstaff 2021-06-18 15:22   좋아요 3 | URL
좋은 책입니다. 크게 기대하지는 마시고요. 새삼스레 무슨 주장 같은 거 없습니다. 그냥 흑인들이 거쳐온 이야기니까요. ㅎㅎㅎ 결정은 새파랑 님께서 하시는 걸로.

coolcat329 2021-06-19 13: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책이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에 나오나요? 윽 기억이 안나네요 ㅠ
근데 긴 세월 여러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에바리스토 소설과 구성이 비슷하네요.
좋은 책은 읽어봐야죠~😚

잠자냥 2021-06-19 18:01   좋아요 1 | URL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에 나오는 건 아니고요, 책 소개를 보니까 구성이나 주제가 비슷할 거 같아서 저는 페스했었거든요. 근데 조금 다른가 봅니다!

Falstaff 2021-06-19 20:25   좋아요 0 | URL
저도 기억이 안 나요. 어디서 책 소개를 보고 산 건 맞는데 그게 <소녀,...>인 것 같긴 한데 자신하진 못하겠습니다.
옙. 에바리스토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재미있어요. 근데 자신있게 읽어보시라 권할 정도는 또 아닌 것도 같고 뭐 그렇습니다. ^^;;;

잠자냥 2021-06-19 18: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 님 현재 알라딘에서 대(?) 유행 중인 르네쌍수 사진 한 번만 올려주세요. 소주 두 병 걸치고 찍은 걸로요! ㅋㅋㅋㅋ

Falstaff 2021-06-19 20:22   좋아요 0 | URL
ㅋㅋㅋ 사진 찍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말입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해봤는데, 너무 끔찍해서 도무지 올리지 못하겠어요. 흑흑,..

잠자냥 2021-06-19 22:31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