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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차례이다 ㅣ 민음의 시 266
권박 지음 / 민음사 / 2019년 12월
평점 :
권박. 원래 이름은 권민자. 1983년생이 어디 가서 제 이름은 권민자라고 해요, 라고 말하는 것이 마치 2021년에 스무 살 먹은 미국 아가씨가 대고모나 작은 할머니 이름도 아니고 말이지, 어디 가서, I'm Dorothy, 라고 하는 것처럼 심히 쪽팔려, 탁, 창씨創氏와 더불어 개명改名을 하려 했다. 시절이 21세기. 창씨는 1940년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어서, 21세기에도 주로 여성주의자들이, 환경운동가 출신 민주당 국회의원 ‘양이원영’ 같은 이가 대표적으로, 아버지 성 바로 뒤에 어머니 성을 합해 창씨를 하곤 했는데, 여성주의에 관심이 많은 권민자도 마찬가지로 엄마의 성씨를 뒤에 이어 만든 '권박'을 앞에 놓고, 이름을 뭘로 할까, 궁리하다가, 그냥 ‘권박’으로만 했단다. 지금은 장가들어 아이 아범이 된 내 큰아이가 고등학교 시절에 중국에서 온 아가씨와 연애를 한 적이 있었는데, 아가씨 아버지가 중국인 등씨고, 어머니가 남쪽 한국인 류씨라서, 아버지가 아이의 이름을 ‘등류’라 지었다고 했다. 그래 나한텐 권박이란 이름이 하나도 낯설지 않게 읽혔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떤 이유로 권박의 시집을 골랐느냐 하면, 요즘 출간되는 시집의 파편화된 단어와 개별성, 낯설고 기괴한 시어가 끔찍할 정도로 피곤하여, 이런 시들을 피할 목적으로 언뜻 떠오른 아이디어가 무엇이었는가 하면, 우리나라 현대 참여시의 대표자 가운데 한 명인 김수영, 이 시인의 이름을 딴 문학상을 탄 시집, 또는 시인이 낸 것이라면 그래도 조금은 이해할 수준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김수영 정도면 깊게 공감을 주며, 무엇보다 독자들에게 최고 난도의720도 회전 옆차기 같은 공격을 퍼붓지는 않을 터이니까. 딱 이런 이유 하나로 구입했다. 나도 미쳤지. 그렇게 생각했다면 우선 한 권 사 읽어보고 다음을 기약해야 할 터인데, 김수영 문학상을 받은 적이 있는 안태운이란 시인의 시집을 또 한 권 사놓고 다음 주 화요일에 독후감을 올릴 예정이니, 미치진 않았다 해도 제 정신은 아닌 듯싶다.
하여튼 이런 과정을 거쳐 권박의 《이해할 차례이다》를 읽은 감상은, 오죽했으면 이이의 이름 지은 내력이 낯설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했겠는가를 염두에 두시면 되겠다. 바로 어저께 정유정의 엽기 발랄한 잔혹 무비 <7년의 밤>을 읽고 독후감을 쓴 다음에 또 《이해할 차례이다》를 읽으니 쉬운 얘기로, 돌겠다, 미치겠다, 까무러치겠다, 사까닥질 하겠다. 예를 들어, <안토르포파지 (anthropophagy)>라는 시의 일부를 인용한다. ‘유사有史 및/또는 선사先史’라는 뜻을 갖고 있는 전문용어 anthrophophagy는 ‘안트로포파지’라고 읽어야할 듯한데, 하여튼 시인은 ‘안토르포파지’라고 우리말 제목을 썼다.
설탕으로 만든 해골과 두개골을 갉아먹으며 당신은 내 귀에 대고 속삭였지. 모피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고양이에게 고양이 고기를 준 파리의 어느 모피상 이야기, 들어 본 적 있니?
*
당신은 내 넓적다리와 가슴과 뇌장을 식초에 뿌려 먹을 거라고 한다.
당신의 사람인 나는 내 눈동자와 혀와 불안과 고루와 절망과 심장을 잠 속에 넣었다.
고양이를 낳는 태몽을 꾼 다음 날의 나는 손톱 같은 시간처럼 녹아내렸다.
그 시간 안에서 당신은 할퀴고 물어뜯는 소문이고 나는 어찌할 줄 모르는 소문이다.
(중략)
나치의 수용소 안에서 어떤 수감자가 어떤 수감자의 인육을 먹을 때의 표정을 당신과 나의 관계라고 볼 수도 있겠다. 나치의 눈을 피해 어떤 수감자의 뼈와 피부를 파헤치는 어떤 수감자의 피골이 상접한 알몸이 당신과 내가 나눈 사랑의 모습이기도 하다. 가시철조망에 걸려 있는 시체 같은 태몽이 나를 붙였다. (후략 110~111쪽)
당연히 모든 시가 이렇지는 않다. 권박의 트레이드마크는 페미니즘이라고 한다. 김수영 문학상을 받은 직후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당시의 남성과의 대결이나 남성혐오, 과격한 적대적 페미니즘과는 다른 페미니즘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시집을 읽어보면 주로 앞쪽에 배치된 시들을 중심으로 권박 특유의 여성주의적 시가 보인다. 이이는 페미니즘, 주로 빅토리아 시대 이전/이후 소설가, 시인들과 관련된 것들로 시작하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자신이 지금 어떤 시대, 대상에 관하여 노래하고 있는지 독자에게 알릴 필요가 있었고, 이를 위해 시인이 채택한 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길고 긴 주석이다. 이렇게 길고 긴 주석은 평론집에서도 읽은 적이 없을 듯하다. 그래 차마 인용할 수 없어 문명의 이기,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 보여드리고자 하니, 시 한 편을 위한 주석을 구경하며 우리 함께 놀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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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열두 쪽이 시 한 편에 관한 주석이다. 그럼 시는 어떻게 생겼느냐고? ‘기상관측소’, ‘공동체의 (미)완성’, ‘비극 : 형평성의 탄생’, ‘거절 : 세련된 방식의 삿대질’, ‘그러니까, 왜, 나는 없는 이름입니까?’, ‘피의 책’이란 여섯 개의 소단위로 이루어진 일곱 쪽에 이르는 시로 제목을 <마구마구 피뢰침>이라 했다. 이걸 다 인용할 수는 없고 처음 두 단위만 옮겨보기로 하자.
마구마구 피뢰침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고드윈 셸리(들)에게
기상관측소
이번에는 기상관측소입니까?
기상관측소는 신의 의도를 기록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벼락을 꽉 붙잡고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짜깁기한 197개의 심장에, 나의 뇌를 피뢰침 삼아, 다시 벼락을 덧대어, 처음의 흉측함과 만난다면, 흉측함의 흉측함으로써,
묻겠습니다.
“아직도 공동체의 완성은 보호받는 여자인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동체의 (미)완성
천사는 집 안에만 있어야 하는데
악마도 입 안에만 있어야 했는데
집 안에 있는 천사는 왜 집 밖으로 나가면 천사가 아니게 되는 겁니까?
집 안에 있는 악마는 왜 집 밖으로 나가면 더 끔찍한 악마가 되는 겁니까?
형평성이 탄생했습니다. (후략)
주석을 읽지 않고도 이 시가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 감이 잡히시나? 나는 아니었다. 주석을 읽고 나서야 아, 이런 얘기구나, 라고 즉각 알긴 하겠는데, 그러면 뭐 하러 시를 쓰나. 차라리 논문을 쓰지. 라는 생각도 아주 조금은 들었다. 하긴 시도 진화를 한다. 그걸 내가 따라가지 못했을 뿐. 나 같은 둔한 독자를 위해 좀 친절한 시인들도 아직 있기는 하지만 권박은 아닌 거 같다. 김수영 문학상도 마찬가지고. 아이고, 참 시 읽기, 더 솔직하게 말하면, 시 읽어주기 힘들다. 더는 못 읽겠다. 오늘 현재 책꽂이에 꽂혀 내 눈길을 기다리고 있는 시집만 다 읽으면, 나도 내게 맞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시들만 읽겠다.
시인들이여, 잘났다. 내가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