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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적 상황에서의 생존 메커니즘 ㅣ 알마 인코그니타
올리비아 로젠탈 지음, 한국화 옮김 / 알마 / 2020년 1월
평점 :
작가 올리비아 로젠탈을 검색해보니 별로 자료가 없다. 1965년 파리 출생 뱀띠 소설가이자 교육자로 지금 8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고 있으며, 많고 많은 학생 중에서 한국에서 유학을 와 기특하게 프랑스 말로 소설을 써 책까지 낸 ‘한국화’라는 제자가 그의 작품 여럿 가운데 <적대적 상황에서의 생존 메커니즘>을 골라 번역 출간하고 싶다는 기특한 제의를 수락해, ‘한국어판 서문’을 써주기도 한 사람이다.
번역본이 없어 로젠탈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지는 못해도, 일단 제목들을 보면 참 독특하다. 책의 앞날개에 적혀 있는 걸 따왔다. <모든 여자는 에일리언이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순록들은 무엇을 할까>, <우리는 사라지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고양이과 동물들은 나를 좋아한다>. 등등. 이런 독특한 제목들과는 어울리지만 로젠탈의 어법이 독자에게 친근한 건 아니다. 이이는 자신이 쓴 한국어판 서문에서 말하기를, 자신의 작품세계가 한국의 독자에게 낯설게 느껴질 것이라 한다. 또한 십여 년 전부터 로젠탈은 특정 주제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작업을 해 왔다고 하며, 이 책도 마찬가지인데, 이번에는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이 대상이었다고 한다. 임사체험을 한문으로 쓰면 臨死體驗이고, 영어로 하면 near-death experience다. 1970년대 레이몬드 무다 2세와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등에 의하여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말로 쉽게 얘기하면, 그냥, 죽었다 깬 사람들이다. 우리가 아는 가장 유명한 임사체험을 한 인물 두 명을 고르자면,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의 해리 포터와, <미션 임파서블> 몇 편인지는 모르겠지만 위기탈출을 위해 스스로 전기 감전사하고 곧바로 연인에 의한 심폐소생술로 살아나는 톰 크루즈, 이단 헌트다.
이단 헌트는 어떤 경험을 했는지 관객들이 알 도리가 없지만, <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에서 해리가 숨을 거두자 아주 환한,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빛의 터널을 따라 천국으로 올라가는 장면이 나온다. 기억하시지? 실제로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은 빛의 터널이나 천국까지는 모르겠으되, 다른 편으로 넘어가는 경이적인 여행인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게 결코 비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평범하고 때론 유쾌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한다. 로젠탈은 서문에서 결론으로 말하기를, 이 책은 모든 의미에서 다시 살아온 자들에 대한 이야기로 독립된 다섯 개의 단편으로 만들었단다.
그런데 정말? 그건 책을 끝까지 꼼꼼하게 읽어야 알 수 있다. 포스트 모던 작품은 비록 서문에 작가가 나서서 직접 뭐라고 설명을 깔아두었다 하더라도 그걸 그대로 믿고, 이해해주고, 섭취할 필요는 없다. 다섯 편이 독립된 단편, 이라고 할 수도 있으며, 마치 독립된 악장樂章movement처럼 개별적으로 떨어져 있으나, 마지막 다섯 번째 작품 <귀환>에서는 앞의 이야기들이 다시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교향곡 적인 형태를 취한다고 해도 그렇게 많이 틀린 이야기는 아닐 듯하다. 실제로 진짜 임사체험의 장면은 두 번째 <집에서>와 네 번째 <내 친구들>에만 나오고, 세 번째 <추격>은 일반적인 죽음, 사람이 죽어서 무화無化하는 과정, 이미 짐 크레이스의 작품 <그리고 죽음>을 통해 상세하게 이야기된 바 있어서 별로 와 닿지 않는 요약본이며, 마지막 <귀환>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한 문장이 몇 페이지에 달해 오히려 독자에게 혼돈만을 초래했던 길고 긴 문장들이었다.
그럴 듯한 작품은 제일 앞에 실린 <도주>였다. 물론 내 의견일 뿐이다.
일천한 아마추어 독자에 불과한 내가 이렇게 말한다면 시건방진 이야기겠지만, <도주>는 어느 정도 독서력歷이 있어서, 작품의 재미를 휘발시킨 드라이한 글을 읽을 수 있을 정도가 돼야 적당하겠다. 이렇게 써 놓으니까, 그럼 나는? 하는 의문이 든다. 좋다, 교만일지언정 솔직히 말해,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제대로 읽지는 못했을 듯하다. 하긴 포스트 모던 작품을 세상에 누가 있어서, “제대로” 읽겠는가. 그랬다 쳐도 그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도주>의 화자 ‘나’에 대하여 독자가 알 수 있는 건, 한 여성과 함께 도망을 치다가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고 판단해, 비축식량 조금을 주고 도로 한 쪽 구석에 버리고 떠난 남자라는 것. 직업이 군인인지, 경찰인지, 범죄자인지, 테러리스트인지, 아니면 그냥 민간인인데 전쟁 중이라 적대국 군대에 쫓기는 것인지 아무런 힌트도 없다. 그저 쫓긴다. ‘나’는 여자를 버린 날을 기준으로 해서 날짜를 세기 시작한다. 그날부터 마흔 번째 되는 날까지 ‘나’의 행적을 기록한 것인데 중간 중간에 임사체험에 대한 경험담 등이 삽화처럼 서술되어 있다.
<도주> 속에 임사체험에 관한 서술들.
① 쥐를 대상으로 실험을 한 결과, 심장이 멈추어도 뇌는 대략 30초 정도 기능을 하고, 이 사이에 놀랍고도 극단적인 규모로 (뇌와) 신경계와의 상호작용이 증가함.
② 토니 R.이 코마상태였을 때의 느낌이 현실과 그렇게 다르지 않았다고 증언함.
③ 어떤 임사 환자들은 외부에서 자신의 몸을 봤다고 진술했으며, 자신을 수술하는 의사가 쓰던 수술 기구등도 봤다 함. 이런 육체 분리 현상은 죽음의 위험에 대한 반응이라는 가설이 있음. 자아의 분할된 두 개의 개체 가운데 하나는 자신을 경계태세로 유지하고, 다른 하나는 자신을 타자 화함.
④ 심폐소생술을 시행해 되살아난 사람 가운데 오직 6 퍼센트만 임사체험을 경험함.
⑤ 비비안 R.은 잠들면 안 된다는 꿈을 꾸며 잠에 저항함. 수면은 정보(기억)를 삭제함.
⑥ 엘사 V.는 깊은 수면 상태로 몇 시간, 몇 주, 몇 달을 보냈지만 주변에 대한 의식이 확실하게 사라지지는 않았음.
<도주>에서 ‘나’는 아무와도 마주치치 않는다. 여자를 버리고 다섯째 날에 폐허로 변한 마을을 발견하고 하루를 관찰하느라 보낸 다음날 마을로 들어가 은신처를 만든다. ‘나’에게 확실한 유일한 것은 누군가 나를 발견하면 처벌할 것이고 그건 아주 끔찍하리라 하는 일. 그렇다고 ‘나’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추호의 힌트도 없다. 끝날 때까지도 그렇다.
‘나’는 폐허 마을에서 스무날을 견디고 만일 죽어야 한다면 길 위에서 죽겠다고 마음을 먹어 다음 날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자신을 이곳으로 이끈 오솔길을 발견하고, 철길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한다. 기진한 몸으로 고원에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내고 골짜기에서 열흘을 보낸 ‘나’는 몸이 무감각해진 것을 알아내고 이제는 몸에서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고, 자살을 염두에 두기 시작한다. 서른세 번째 날에는 ‘나’가 버린 여자가 떠오르고 그녀의 두려움이 보이고 ‘나’ 역시 두렵다.
드디어 마흔 번째 날. ‘나’는 떠나고, 동풍을 타고, 진흙을 몸에 바르고, 나아가다가 규칙적으로 뛰면서 오래 버틴다. 저 멀리 부족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고 그들 중 한 명이 ‘나’에게 접근하더니, 나를 둘러싼 원들이 점점 작아진다. 삶은 불규칙적이고 느리고, 부드럽고, 희미한 모험으로 바뀌는데, 나의 부재 동안에도 일들은 계속 되는 것을 알면서, 외진 골짜기로의 홀로 여행과 도주는 이쯤에서 끝나거나 중단되는 걸로 마무리 한다.
이게 뭘까. ‘나’ 역시 삶과 죽음의 유사 사망 상태에 있다가 다시 이편으로 돌아서는 모습.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당연히 아니겠지만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그럼 된 거 아냐?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