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진 낙원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홍경호, 박상배 옮김 / 종합출판범우 / 2021년 3월
평점 :
절판


.

레마르크는 1898년 독일 오스나브뤼크의 로마 가톨릭 가정에서 에리히 파울 레마르크 Erich Paul Remark라는 이름으로 출생했다. 레마르크는 어린 시절부터 책을 제본해 가족들을 부양하는 아버지 페터 프란츠 레마르크 씨를 경원하는 대신 어머니 안나 마리아와 친밀한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나중에 작가가 됐을 때 자신의 가운데 이름을 원래 파울에서 마리아로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성마저 대표작 <서부전선 이상없다>를 발표할 때부터 Remark를 Remarque로 고쳐버렸다. 비록 독일 태생이지만 조상이 프랑스에서 건너온 것 같다. 이 조숙한 소년은 열네 살에 벌써 칸트, 니체, 쇼펜하우어 등을 섭렵했다고 하고, 자료마다 조금 다른데, 책의 연보엔 열여섯 살 때, 인터넷 자료엔 열여덟 살 때인 1917년 6월에 징집되어 서부전선으로 배치되었다가 부상을 입어 야전병원에 입원, 다시 배치 후 곧바로 종전을 맞았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레마르크가 십대 시절에 1차 세계대전에 참전을 했으며, 당시의 경험으로 <서부전선 이상없다>와 <사랑할 때와 죽을 때>를 남겨 위대한 반전 문학을 전승했다는 점이다. 여기에 <개선문>을 보태 소위 ‘3대 레마르크’라고 흔히들 이야기한다.

레마르크의 소설을 거칠게 구분을 하면, <서부전선…>, <사랑할 때와…> 등 실제 전쟁에 참여하는 군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전장battlefield소설과 <개선문>, <리스본의 밤> 같은 망명문학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그늘진 낙원: Schatten im Paradies>도 망명문학이며, 레마르크 가운데 내가 처음 읽은 미국, 특히 뉴욕을 무대로 하는 이주민들의 정처 없는 이방인 신세를 그린 작품이다. 레마르크는 서른한 살이던 1929년에 <서부전선…>를 발표하여 당시 기준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31년에 속편이라 할 수 있는 <귀로>를 간행해 거의 권력을 쥐려고 하는 국가사회주의 당으로부터 반전작가라고, 지금은 본받을 만하지만 당시로 보면 반역자에 가까운 호칭을 얻게 된다. 1932년 나치가 정권을 잡자마자 레마르크는 어쩔 수 없이 스위스로 망명의 길을 떠나고, 1939년에는 독일로부터 국적마저 몰수당한다. 스위스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상태의 무국적자 레마르크는, 하도 많은 이주 피난민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 인심이 야박해진 스위스에서 전쟁 터지기 바로 직전 미국으로 다시 망명을 떠난다. 레마르크는 순서대로 아들-딸-아들-딸 형제 가운데 셋째로 형은 어려서 죽었고, 누나도 당시에 망명을 한 것 같다. 문제는 여동생 엘프리데. 동생은 평범한 재단사로 일하다가 반전 발언을 했다는 죄명으로 1943년에 게슈타포에게 체포된다. 게다가 국가의 적인 반전작가 레마르크의 동생인 것이 알려져 결국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는 최후를 맞는다.

나치의 문화 탄압이라면 소위 말하는 “퇴폐예술”을 빼놓을 수 없다. 원래는 나치 집권시절인 1930년대 초중반부터 1945년까지 그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모더니즘 예술을 일컬었지만 급속도로 반anti애국주의 적이고 친유대 적이며, 기타 나치의 사상과 어긋난 예술작업을 통틀어 “퇴폐”라는 멸칭으로 뒤집어 씌운 것이다. 유대인이 아닌 문학가 쪽에서는 좌파 예술인이라 찍힌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선두로, 독일 반전주의 문학의 첨병인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그리고 1차 세계대전 당시엔 다분히 국가주의자이었을지라도 이후 친유대 경향을 보였다는 죄목으로 노벨 문학상까지 받은 토마스 만도 포함한다. 이들의 책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 보듯 광장에 산처럼 책을 쌓아놓고 불을 싸질러버리는 야만도 서슴지 않았다. 기원전도 아니고 무려 기독 탄생력 2천 년이 가까워올 때. 이때 불탄 많은 책 가운데 베를린 책방에서 수거해온 <서부전선 이상없다>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늘진 낙원>의 주인공 ‘나’는 유대인이 아닌 기자 출신의 독일인으로 나치와 뜻을 달리하는 것이 들통이 나 독일의 집단수용소에 수용되었다가 탈출해 스위스로 월경을 했지만, 정당한 서류가 없다는 이유로 나중에 생각해보면 호텔 같은 감방에서 몇 달을 갇혀 지내다가 벨기에로 추방당한다. 벨기에 역시 나치의 강한 영향권 안에 있어 정부기관에 잡히기만 하면 큰 위험을 당해야 했는데, 브뤼셀 박물관장의 호의에 힘입어 박물관 내 창이 없는 지하에서 2년을 버텨야 했다. ‘나’는 직원 모두 퇴근한 밤에만 지상으로 나와 달빛과 별빛에 의지해 중국의 은, 주, 한나라 청동 제품을 비롯해 서양의 온갖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으며, 이 과정을 통해 작품을 볼 줄 아는 안목을 확장한다. 2년 후 ‘나’는 브뤼셀을 빠져나와 프랑스 국경을 넘지만, 곧바로 체포되어 프랑스 수용소에 수용되고 브뤼셀 박물관장은 ‘나’를 은닉해준 혐의로 체포되어 책이 끝날 때까지 안위를 모르게 된다. 죽었다고 보는 게 마땅하리라. 프랑스 수용소에서도 극적으로 탈출한 ‘나’는 리스본 또는 마르세유를 통해 이미 1933년에 죽은 로버트 로스라는 사람의 여권을 갖고 미국행 상선에 올라 뉴욕에 도착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정착할 수 없어 엘리스 섬에 구속되었다가 3개월 한도로 뉴욕에 머무는 것을 허락받았다. 3개월. 이후 ‘나’는 전시 중인 유럽을 제외한 어느 나라를 향해 미국을 떠나야 하는 처지에서 <그늘진 낙원>은 시작한다.

‘나’는 어쨌거나 미국에서 “로버트 로스”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엘리스 섬에 억류되었을 때 만난 터키인이 뉴욕에 사는 자기 친구의 주소를 일러주었고, 3개월 기한으로 섬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로버트는 주소에 쓰인 ‘로이벤 호텔’로 가서 1917년 러시아 혁명 당시 조국을 떠나 미국으로 온 백계 러시아인 멜리코프를 찾는다. 멜리코프, 나이든 망명객은 미국에 도착한지 벌써 수십년이 지나 호텔에서도 주인 다음의 권위를 누리고 있지만 로버트를 비롯한 이주민들에게 친절하다. 로버트의 신세를 듣는 바로 첫날, 자기 방에 침대를 하나 더 가져다 놓아 ‘나’의 숙식을 해결해주고 보드카도 한 잔 주는 등 온갖 편의를 봐준다. 아직 영어도 서툰 ‘나’ 로버트. 그러나 기자 출신이라 그런지 언어를 빠른 속도로 익혀가며 러시아, 독일, 유대인, 프랑스를 거쳐 브루클린 액센트까지 사용하는 영어로 무장하게 되면서 뉴욕의 이주민 커뮤니티에 빠른 속도로 적응하게 된다. 당연히 사랑 이야기도 등장한다. 프랑스 태생의 망명 백계 러시아 여자 나타샤 페트로브나. 내가 아는 레마르크의 다른 작품 속에도 이 나타샤 페르로브나와 매우 비슷한 인물이 있다. <개선문>의 조앙 마두. 이 여자들의 대책없는 허무라니, 얼마나 매혹적인지. 화려한 모델로 큼지막한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로 장식한 왕관을 쓰고, 고급 모피를 둘렀지만 자신의 것은 하나도 없는 모델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 나타샤 같은 작가라서 그럴까? 같은 망명 소설이라서? 아무러면 어떤가. 오히려 마치 오랜만에 마주친 것 같은 친근함이 들어 좋았는 것을.

그리고 대부분 유대인으로 이루어진 이주민 커뮤니티. 그들은 단지 ‘유럽에서 온 이주민’이라는 것 하나로 자기 민족인 유대인들과 차별을 두지 않고 편의를 봐준다. 일찍 미국으로 건너와 갑부가 된 독일계 유대인은 로버트에게 이주민 기준으로 치면 거금을 빌려주어 체류기간 연장을 위해 변호사를 고용하게 해주고, 파티를 열어 실컷 먹고 남은, 진짜 헝가리 여성 주방장이 요리한 굴라시를 왕창 포장해 가져가게 해주고, 서로의 직장을 알아봐준다.

이렇게 많은 이주민들이 조연으로 등장하니까 이들 모두, 역시 유럽을 떠나 미국으로 흘러 들어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고, 나치의 눈과 손길을 피해 이주해오면서 피할 수 없었던 희생도 있었을 것이며, 작품의 맛을 더해주는 무모한 모험과 모험 과정에서 약간의 코믹한 장면이 있었던 건 당연하다. 이주민들은 몸은 미국, 세계의 수도가 될 뉴욕에 있으나 이들이 누리는 미국이라는 낙원 속에서 절대로 원주민이 될 수 없는 그림자 신세의 이주민들. 그리하여 그들이 보는 뉴욕 속 자신들은 낙원 속의 그림자, Schatten im Paradies일 수밖에. ‘나’ 로버트는 말한다.

“이게 바로 낙원이지. 당신이 좋다면 ‘그늘진 낙원’이라 부르지. 다른 사람들에게도 중요하지만 내겐 더욱 귀중한 모든 것과 격리된 채, 내 편으로 본다면 동면하는 낙원이지. 타의의 방관자의 낙원이야. 나타샤!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만 얘기합시다! 밤과 별, 아직도 우리 내부에 꿈틀거리는 생의 불꽃, 과거의 기억은 그만둡시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과거의 기억은 영원히 그만 둘 수 없다는 것을. 내가 읽은 레마르크 속에서 주인공들은 대체로 우울증을 겪고 있다. 이 증상은 전쟁터 속에서 전쟁에 좌절하는 인물들보다 오히려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와 낯선 곳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던 이주민, 이방인들의 경우가 더 짙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 속의 낯선 한 명. 하지만 어쩌랴. 당신이나 나나 어차피 세상 속의 낯선 한 명일 뿐인 것을. 그대, 아니라고 생각하면, 자리에서 일어나 한 번 뒤돌아보라.

​.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Falstaff 2023-01-07 06: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별점, 네개 반이 없어서... 네개와 다섯개 사이에서 좋은 게 좋은 거란 세상의 원칙에 따라.

새파랑 2023-01-07 08: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님의 별 다섯(반올림해서)은 흔하지 않으니 읽어봐야 겠습니다~!!
레마르크는 출간 순서대로 읽어봐야 겠군요~!! 낙원이라는 제목과 내용도 아주 마음에 듭니다~!!

Falstaff 2023-01-07 09:13   좋아요 2 | URL
원 제목은 ˝낙원 속의 그림자˝ 즉 낙원이 아니라 그림자에 방점이 찍힙니다.
재미있습니다만, 소위 3대 레마르크 만큼 까지 가지는 못하는 것으로.... 크게 기대는 하지 마세요. 언제나 기대가 크면 실망하더라고요. ^^

그레이스 2023-01-07 0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마르크의 몰랐던 부분을 알려주셨네요.
자유와 안락이 주어져도 다 누릴 수 없는 것이 망명자들의 삶인 것 같아요.
많은 망명작가들의 모두 과거에 묶여 있죠.
다 비슷비슷한 이야기인데도 다 다른 이야기로 읽힙니다.
레마르크 전집을 언젠가 읽어야 할텐데요
3대 레마르크 기억도 안납니다.^^;;;

Falstaff 2023-01-07 09:15   좋아요 2 | URL
ㅎㅎㅎ 정말 예전에 읽은 작품을 다시 읽어보면 어떻게 그렇게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새 책을 읽는 것 같은지 말입니다. 레마르크 전집도 나와 있나봅니다.
십대 시절부터 이이의 작품은 진짜 좋아했습니다. ㅎㅎㅎ

잠자냥 2023-01-07 10: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책 표지가 넘나 신기해서 어디 출판사인가 굳이 눌러봤습니다. 아아…..

Falstaff 2023-01-07 15:38   좋아요 0 | URL
ㅎㅎㅎ 이 책, 역자가 유명 독문학자입니다. 근데 좀 오래된 번역이라 예스런 표현이 간혹 눈에 띄더군요. 전반적으로 좋습니다. 물론 정확한 번역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번역한 우리말이 좋다는 말씀.

- 2023-01-07 1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헤헤 저도 10대때 읽은 책 중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이미지 적(?)으로 좋아했던 작품이 개선문 예요 ㅋㅋㅋ 마두 조앙 마두, 여주가 자기 소개 하던 장면이었나? 아직도 기억 나네요 ㅋㅋ 책의 정서가 뭔가 고독하고 있어뵈는(?) 도시의 분위기 장난 없었던 거 같아요 ㅋㅋ 이렇게 레마르크 이야길 또 알고 가네요😀

잠자냥 2023-01-07 10:37   좋아요 1 | URL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읽어보아…. 캬. 십대 시절에 헤세보다 레마르크가 진리입니다.

- 2023-01-07 10:45   좋아요 1 | URL
그러고 보니 개선문 분위기도 프랑스여 ㅋㅋ 이 고급스런 골계의 프랑스 고양이!!😸

Falstaff 2023-01-07 15:41   좋아요 1 | URL
아휴, 그럼요. 십대 시절에 읽은 작품들이 제일입니다, 제일. 그중에서도 레마르크와 헤세는 뭐 할 말이 읎지요. 개선문 기억 잘 안 나시면 다시 읽어보셔요.
맞아요, 사랑할 때 죽을 때, 아호, 그거 뎡말, ㅋㅋㅋㅋ 뭐라 할 말이....

stella.K 2023-01-07 1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범우사 21년도 판이면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범우사 옛날엔 많이 봤지만 안 본지 오래되서…
레마르크 천재끕있었네요. 근데 외국도 남자한테
여성스런 이름을 쓰기도 하네요.
릴케도 그렇지 않습니까.

Falstaff 2023-01-07 15:46   좋아요 1 | URL
이거, 말만 21년 판이지 옛날 판을 그대로 찍은 거 같습니다. 표지만 달랑 바꾸고 가격 올리는 것이 소위 말하는 ˝개정판˝이잖아요. 역자가 그새 돌아갔나 그럴 겁니다. 범우사는 저도 요즘에 새 책이 나오는지 잘 모르겠더군요.
ㅎㅎㅎ 외국 이름에 여성스런 건 1st.name엔 없어요.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중간 이름에 넣는 걸로... ㅎㅎ

바람돌이 2023-01-08 13: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마르크는 대표작만 읽었는데 이런 책도 있군요. 오래전에 읽은 레마르크 책의 추억이 생각나서 좋네요. 그늘진 낙원이라는 말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Falstaff 2023-01-08 18:03   좋아요 1 | URL
옙. 이 책도 괜찮습니다. 원제가 낙원 속의 그림자...인데요, 낙원은 뉴욕, 그림자가 주인공이 처한 망명자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역자는 돌아갔고, 새롭게 다시 번역하기엔 세월이 많이 필요할 거 같습니다.

coolcat329 2023-01-11 18: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노 서부전선과 사랑할 때...이 두 책 생각하면 아우...ㅠㅠ
넷플릭스에서 서부전선 영화보다가 심장이 터질 거 같아 중단 상태인데 다시 시도하려구요.
올해는 개선문을 꼭 읽어보겠습니다.

Falstaff 2023-01-11 20:06   좋아요 0 | URL
전 서부전선, 사랑할 때, 이 두 편의 영화는 어려서부터 넘 간섭이 심해서 제대로 감상을 못했습니다. ㅠㅠ 정여사의, 편히 쉬시기를, 편견 때문에 말입죠. 왜 그러셨는지 몰라요.
개선문, 얼른 읽으셔요. ㅎㅎㅎ 별 네 개까지는 제가 보장합니다!!!

yamoo 2023-01-12 18: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레마르크 하드커버 전집있숩니다. 오래된건데....걍 쟁여놨다가, 열린책들로 <서부전선..>봤고, 민음 세계문학으로 <사랑할때와 죽을 때> 봤습니다. 정말 끝내주는 작가라고 생각하여 전집을 읽을 생각입니다. 제일 최고로 치는 책은 <서부전선..>인데, 열린책들 판본 오타가 너무 많아서 욕하고 읽었던 기억이 있네요. 그럼에도 내용은 아주 아주 좋았습니다!

근데, 막 일독한 유진 오닐의 <밤으로는..>은 별로였네요. 아마도 제가 가족 얘기 나오는 작품은 별로 안좋아하는 거 같습니다. 백년의 고독도 별로였고요...아마도 성향상 가족얘기는 정말 읽어도 그리 재미를 못느껴서요..^^;;

그레이스 2023-01-12 18:45   좋아요 1 | URL
빨간색 옷입은 하드커버 전집 맞나요
저도 갖고 있어요
그리고는 다른 출판사걸로 읽는거 저랑 비슷하시네요 ㅋ

Falstaff 2023-01-13 06:43   좋아요 1 | URL
오홍. 레마르크 전집이 있었군요. 빨간 색, 하드 커버... 대충 감이 잡히네요.
 
거미줄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요제프 로트 지음, 김희근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1894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었던 갈리치아 지역의 소도시 브로디에서 유대인 나훔 로트의 아들로 태어난 요제프 로트는 유대인이라기보다 차라리, 그가 1932년에 쓴 대표작 <라데츠키 행진곡>에서 잘 묘사한 것처럼 적어도 할아버지-아버지-본인 3대 까지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사실상’ 마지막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와 운명공동체 비슷하게, 오스트리아가 당연히 조국인 ‘오스트리아인’으로 생각했다. 요제프 로트가 빈 대학에서 “정상적으로” 독문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1차 세계대전에 황제군으로 참전했던 경험 덕으로, 사회가 유대인으로 요제프 로트 자신을 바라보던 시각과 관계없이, 이런 입장을 고수하게 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은 변하는 것. 로트 자신 역시 바이마르 공화국에 반대를 했는지는 확실히 모르지만(그랬을 거 같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패전의 책임을 묻는 과정에 전 유럽적인 반유대주의에서 시작한 유대인 책임론이 유독 독일-오스트리아에서 강력하게 대두되어 유대인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는 단계에 이르러는 피해의식에 싸이게 된다. 급기야 1933년에 오스트리아 군대의 상병 출신 키 작은 아마추어 화가가 놀라운 웅변술을 무기로 권력을 잡기에 이르자, 목숨을 건사하기 위해 프랑스로의 이주를 선택한다. 파리에서 망명생활을 이어가는 동안 로트는 심각한 수준의 알코올 의존증과 가난에 시달리다가 1939년에 파리 공립 자선병원에서 폐렴으로 45세를 일기로 눈을 감는다. 이이의 대표작으로는 위에서 짧게 언급한 <라데츠키 행진곡>과 유대인으로의 삶을 그린 <욥>, 그리고 에세이 <방황하는 유대인>을 꼽는다.

<거미줄>은 위키피디아에서는 “미완성” 데뷔작이라고 했다. 다 읽고 지금 독후감을 쓰는 입장에서 이게 미완성 작품인지, 완결을 맺은 작품인지 헷갈릴 수준으로, 굳이 미완성이라고 주장한다면 다 지어 놓고 뜸만 들이지 않은 돌솥밥 정도로 이해하면 접수하기 쉽겠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제국의 소위 신분으로 참전해 하인리히 왕자가 이끄는 연대에서 복무한 20대 후반의 ‘성실하고 예의바른’ 청년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출세를 위해 온갖 악행을 벌이는 과정을 그렸다.

독일제국 하사관 출신의 철도 세관원인 빌헬름 로제 씨는 순서대로 딸 둘과 외아들 테오도어를 낳고 죽었다. 금발의 테오도어는 성실하고 품행이 방정하여 타의 모범이 되는 소년이었는데, 일찍이 명망있는 사람이 되리라고 꿈꾸었지만 감히 그렇게 되리라고는 마음먹지 않았던 평범한 인물이었다. 그러다 1차 세계대전이 터져 소위 계급으로 참전해 무사히 귀환한 다음이 문제였다. 바이마르 공화국에 의하여 거의 강제로 제대를 하게 된 테오도어는 1918년에 대학에서 법학공부를 하며 동시에 유대인 보석상 에프루시 씨 집안에 들어가 가정교사로 일해야 했다. 어머니와 누이들 입장에서는 차라리 아들이 전사했더라면 집안의 자부심을 세워줄 수도 있고, 얼마 되지 않지만 연금도 조금 받을 수 있었는데 멀쩡하게 돌아왔다고 그걸 눈치를 주었고, 아버지는 정복을 입은 예비역 소위 아들이 뒤따르는 가운데 나무 상자에 갇혀 땅속에 묻혀버렸다. 테오는 안으로는 자신과 가정 사이에 장벽처럼 드리워진 말없는 적대관계와, 밖으로 사회주의자와 유대인에 대해 심해지는 사회적 적대감 사이에서 자신이 큰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것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금은 활수한 에프루시 씨가 주는 가정교사 임금으로 살고 있으나, 사실 테오는 학창시절부터 유대인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이 있었다. 자신이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던 급우, 유대인 글라저. 명랑한 성격의 소유자로 늘 미소를 지으며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학생. 그렇지만 20분 안에 아무 오류 없이 라틴어 작문을 완성하는 재능을 아예 가지고 태어난 듯해서 테오도어에겐 늘 좌절과 열등의식만 주던 아이. 이제 부르주아 중의 부르주아인 에프루시 씨의 아들인 어린 에프루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실수를 결코 인정하지 않는 작은 에프루시. 오히려 자신의 대답이 왜 정당하 것인지 테오도어에게 설명을 하면 테오 자신이 설득을 당할 위기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여, 틀린 것을 틀렸다고 지적하지 못하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기억 속의 글라저와 에프루시 씨, 에프루시 집안, 그리고 젊고 아름다운 에프루시 부인을 보면서 테오도어는 이건 분명히 뭔가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유대인들의 모든 것은 단연코 속임수라는 것. 공화국은 유대인의 돈벌이 광장에 불과하고, 이에 대한 증거로, 전쟁 발발시마다 유대인들은 군복무 면제를 받거나, 전투수행 부적합을 사유로 야전병원, 병참기지에서 서기로 근무하면서 총 한 번 쏘지 않고 전쟁 기간을 안전하게 보낸다는 것. 물론 일찍 직업군인을 선택해 하사관으로 근무하는 병력들은 제외하지만. 하여튼 군대가 몰락한 것은 어떤 방면에서든지 적아도 한달에 두어 번 이상 공무원을 매수하려 시도하는 유대인 탓이며, 그들이 사실상 국가를 지배하며, 사회주의를 고안해 애국심을 버리고 적을 사랑하게 유도하고, 동시에 경찰력을 장악해 민족주의 조직을 탄압한다는 거였다. 또한 “시온의정서”에서 보듯이 유대인들은 더 나가서 세계를 지배할 야욕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여, 자신과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빌헬름 티크만, 쾨테 교수, 강사 바스텔만, 물리학자 로란츠, 인종연구가 만하임 등을 거론한다. 이런 유대인 가운데 가장 부유한 에프루시 씨는 대단한 저택에 온갖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물품을 향유하지만 테오도어가 소유하고 있는 유일한 귀금속은 은으로 만든 화려한 장식의 그릇 하나뿐이다. 프랑스 아미생 성에서 약탈한 것으로 엄격한 상관 크라우제 소령이 도착하기 전에 은닉해 보관해 가져온 거에 불과하다.

이런 테오도어는 특히 에프루시 씨의 두번째 아내 에프루시 부인에게 홀딱 반하면서 세속적으로 출세해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게 된다. 자신의 가슴 속에 늘 간직해온 꿈은 눈같이 흰 백마를 타고 부대의 선두에서 행진하는 대위의 모습이었다. 수천명의 여자들이 선망하는 존재. 펄럭이는 깃발과 우레 같은 환호 속에서 여자들이 키스세례를 날리는 꿈은 질병처럼 분출해 관절과 신경, 근육 속에서 숨쉬며 혈관을 따라 흐르고 흘러 온 몸을 채우는데, 드디어 기회가 왔다. 에프루시 저택을 방문한 유대인 트레비치 박사. 테오는 트레비치 박사를 통해 하인리히 왕자와 연결이 되고, 왕자에게 하루 동안의 몸을 팔아 트레비치 박사가 소속해 있는 뮌헨의 비밀조직, 이름을 알 수 없는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쉽게 말해 밀정. 이제 그는 자신에게 아무런 악의가 없는 사회주의자들과 유대인들에게 적절한 누명을 씌워 자신의 영달을 위한 희생으로 삼는다.

이제 본격적으로 흥미진진하기도 하고, 잠깐 지나치게 잔혹하기도 하고, 어차피 인생 다 그게 그건데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사가saga가, 미완성 작품이라니까, 시작되려다가 만다. 배신하면 죽음으로 벌을 받고, 술에 취하는 등 실수로 비밀을 발설하면 제거되는 무시무시한 비밀 공동체 SII. 알파벳 S와 로마숫자 II로만 인식할 수 있는 복마전, 악마(魔)가 엎드려(伏) 있는 전당(殿) 역시 악마와 비슷하기는 하지만 사람 사는 곳이어서, 복마전 속에서는 더 독한 배신과 비밀유출이 벌어진다는 건, 다들 아시겠지?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서괭 2023-01-05 07: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 지어놓고 뜸만 들이지 않은 돌솥밥 ㅋㅋㅋㅋㅋ

Falstaff 2023-01-05 17:02   좋아요 0 | URL
ㅎㅎㅎ 재미있어 하시는 거 같아서 좋습니다. ^^
 
새벽에 눈을 뜨면 가야 할 곳이 있다 창비시선 367
민영 지음 / 창비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34년 갑술생 개띠 시인 민영이 여든 살 때 출간한 시집. 근데 이이가 환갑 넘어 찍은 시집 《유사를 바라보며》 와 별로 구분이 되지 않는다. 해가 바뀌었으니 벌써 이 시인이 어느새 망백望百. 정말 세월이 겁난다. 외로울 땐 바람에 삐걱이는 사립을 닫듯 눈을 감겠다는 <단장斷章>을 외웠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반 세기 가까운 시간이 휙, 지나쳐버렸으니, 그런데도 아직 시를 쓰고 있으니 참 무서운 세월이고 무서운 시인이다. 시들은 2007년, 그의 나이 일흔다섯부터 여든까지, 칠십 대 후반의 시작詩作 모음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야기는 《유사를 바라보며》와 많이 다르지 않다. 저 아득한 유년시대를 보낸 만주 간도의 화룡현, 그곳에서 함께 놀던 동무들, 여자아이들, 아직도 장백산, 즉 백두산 밑으로 유연히 흐르는 해란강변 옆에 잠든 아버지. 그리고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지워지지 않는 화인火印인 어머니. 더 어린 시절 까뭇한 기억 속의 고향인 철원까지. 사내 나이 예순이나 여든이나 거기서 거기인지도 모른다. 그는 이십 년이 지날 때까지 여전히 병든 아내의 발톱을 깎고, 저 만주 간도에서 함부로 아버지의 따귀를 갈기던 일본 순사에게 분노하고, 그곳에서 늙어갈 동무들의 주름진 얼굴을 상상한다.

  그러나 노인의 시를 읽는 일은 다른 의미에서 슬프다. 이이만 그런 것도 아니다. 시인이 나이가 들면 주변의 사소한 것에도 다 정령이 깃드나 보다. 저문 강에서 삽을 씻었던 정희성도, 신춘문예 삼관왕의 문학천재 출신 오탁번도, 한 바탕 농무를 추어 창비 시선 1번을 기록한 신경림도, 세월의 부드러움, 시간이 쓰다듬은 일상 구석의 누추하고 가련한 것들, 해 저물면 도로를 굴러다니는 낙엽 속에서도 노래를 찾는가 보다. 이런 시들을 새삼 소개하고 싶지는 않다.


​  칠십 대 후반에 쓴 민영의 시집 《새벽에 눈을 뜨면 가야할 곳이 있다》에서 제일 마음을 끈 것은 본문 속에 든 것이 아니라 시집에 들어가기 전에 읽으라는, <서시序詩>였다. 전문을 소개한다.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꽃도 철 따라 피지 않으리라

  그리고 구름도

  嶺 넘어 오지는 않으리라


​  나 혼자 남으리라

  남아서 깊은 산 산새처럼

  노래를 부르리라

  긴 밤을 새워 편지를 쓰리라


  산마루(嶺)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무엇이 있기에 다시는 높은 고개 넘어 이쪽으로 넘어오지 않겠다는 것일까. 앞 연에는 주어가 없다. 누가, 무엇이 오지 않겠다고 했는지 밝히지 않았다. 시는 독자마다 다 개별적인 해석이 가능한 영역이다. 나는 그것을 시인, 민영 자신이라고 보고, 영 넘어 있는 것은 피안, 피안의 세계, 이곳인 사바의 반대편에 있는 깨달음의 장소인 죽음의 자리라고 본다. 그곳엔 꽃도 철 따라 피지 않는다는 건, 언제나 피어 있다는 뜻일 수도 있고, 철, 계절이란 것이 아예 없다는 뜻일 수도 있을 터. 저 피안 너머 있는 구름 조차도 다시는 삶과 죽음의 산마루를 넘지 않는 곳에 시인은 혼자 남겠다는 다음 연. 그곳에서 노래를, 산새처럼 노래를 부르고 긴 긴 편지를 쓰겠단다. 그러니 산마루 너머 있는 것은 피안일 수도 있고 시의 세계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새벽에 눈을 뜨면 가야할 곳이 있다》를 시인은 자신의 마지막 시집, 노래책이라고 여긴 것은 아닐까?

  아니나 달라? 제1의 목차에 둔 시에서 그는 저 오래 전에 아름다웠지만 이제는 어디로 가버린 젊은 것들을 찾고 있다.


  이 가을에


  가을이 깊다.

  이역만리 먼 곳에서 날아온 새들

  갈대밭에 내려앉아 지친 몸을 쉬고,

  이슬에 젖은 연분홍 꽃잎들이

  불어오는 바람에 깃을 여민다.


​  생각해보아라

  얼마나 모진 세월을 살아왔는지,

  이제 너에게 남겨진 일은

  그 거칠고 사나운 역사 속에서

  말없이 떠난 이들을 추념하는 일이다.


  아, 모두 어디로 갔단 말이냐

  끝까지 올곧고 아름다웠던 젊은이들,

  시월 상달에 이 눈부신

  서릿발 치는 푸른 날빛 속에서

  어디로 가야 만나볼 수 있단 말이냐!  (전문)


  늙은 시인을 기어이 영탄하게 만든 끝까지 올곧고 아름다웠던 청년들은? 다 죽었다는 말이다. 진짜 숨을 거두었다고?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건 독자의 마음에 맡긴다. 변절도 죽음과 같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는, 한 때는 올곧고 아름다웠던 젊은이들의 “살아있는 시체들”을 숱하게 보고 있지 아니한가. 그저 시인은 거칠고 사나운 역사 속에서 말없이 떠난, “말없이 떠난 젊은이들”을, 그들 만을 추념할 뿐 부와 권력을 누리고 있는 “살아있는 시체”를 위한 공간은 없다. 늙은 시인에게 주어진 일은 오직 하나, 그들을 추념하는 것이며, 어느새 운동성은 휘발되었다. 우리는 이것을 노쇠, 닳음, 누추한 기억, 이 모든 것들을 통틀어 “추억”이라고 부른다. 노 시인은 그것을 먹고 사는구나.

  여든이 가까운 노인에게도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의 단어는 어머니. 어느 날 밤, 이 어머니가 시인의 꿈에 나왔다.


  꿈에 본 어머니께


  어머니,

  제가 사는 이 세상

  왜 이렇게 눈부신가요?


​  새들은 새들끼리

  굴참나무 숲에서 지저귀고,

  하늘에는 새털구름

  강물처럼 흘러갑니다.


​  어머니 계신 그 세상에도

  보리이삭 파랗게 패었습니까?

  저 앞 새밋들에

  실개천 한 오리 반짝이며 흘러가고,

  자운영 핀 밭둑 위에

  노랑나비 춤추며 날아갑니다.  (전문)


  그림 하나 본다. 당연히 풍경화. 들에 한 오리, 2킬로미터는 족히 반짝이면서 흘러가는 실개천의 밭둑엔 자운영이 피어 있고, 자운영이 있으니 노랑나비도 춤을 춘다. 봄이 와서 세상은 이리 눈부신데 어머니 계신 산마루 넘어도 시인이 즐기는 봄 속의 들판 같으냐는, 그러기를 바란다는 늙은 아들의 시. 전형적인 노시인의 시다. 언덕마루에 올랐을까? 아니면 그것도 쉽지 않아 TV 프로 <여섯시 내고향>을 통해 푸릇 보리이삭 팬 들을 보았을까? 아무러면 어떠랴. 시집에 이 비슷한 시들이 많다. 늙은 시인들이 내는 시집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나도 이젠 시인 민영과 작별해야 할 시간인 것 같다. 모두 아홉 권의 시집 가운데 세 권을 읽었고 가지고 있으며 두 편의 시를 외운다. 그러면 됐다. 더 바라 무엇 하겠는가. 민영에게 고맙다. 덕분에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가끔 쓴 소주 한 잔에 안주 삼아 당신의 시를 읊었고 앞으로도 자주는 아니지만 또한 그럴 터이니. 당신도 나 같은 독자가 있는 것을 조금은 위안 삼을 수 있으리라. 잘 가시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루카와 생명의 불 - 살만 루슈디 장편소설 문학동네 청소년 15
살만 루슈디 지음, 김석희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이 책을 읽음으로 해서 우리말로 번역해 나온 살만 루슈디의 픽션 단행본은 다 읽었다. 자서전 한 권이 또 있지만 자서전은 내 취향이 아니어서 영 손에 안 잡힌다. 책값이 오지게 비싸기도 하고.


​  <루카와 생명의 불>은 동화라고 하기에도, 소설이라고 하기에도 어중간한,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를 대상으로 한 소위 ‘청소년 소설’로 분류할 수 있겠다. 중학교에만 올라가면 당연히 읽어야 하는 외국소설로 <제인 에어>나 <전원교향악> 같은 걸 꼽으니 암만해도 이 책을 중학생에게 권하기는 조금 미안할 정도다. 역시 초등학교 고학년이 좋겠다.

  루슈디는 1988년에 출간한 <악마의 시> 때문에 1989년에 이란의 지도자 호메이니로부터 ‘파트와’라는 사형선고를 받는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게 이 파트와는 절대적인 명령 비슷하게 받아들여진다고 들었다. 이어서 그의 목숨에 백만 달러의 현상금까지 붙었으니 루슈디는 세상의 어느 외진 곳에서 자신의 소재를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알게 하고, 특별한 훈련을 받은 사람들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하루, 한 주, 한 달을 연명해야 했을 것이다. 물론 열 살 먹은 아들 자파르와 작년에 결혼한 두번째 아내 마리엔 역시 루슈디와 함께 거의 구금상태에 달하는 보호조치를 받아야 했다. 안가에서 지루한 생활을 보내면서 친구 없이 소년시절을 보내야 하는 아들 자파르를 보기가 딱해 루슈디는 십대 초반을 위한 청소년 소설 <하룬과 이야기 바다>를 써서 자파르가 열두 살이던 1990년에 출간한다.

  세월이 흘러 1998년에 모함마드 하타미 이란 대통령은 루슈디에게 내려졌던 파트와 선고를 취소해서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생명의 위협은 없어졌지만 어려서부터 무슬림 환경에서 자란 루슈디는 파트와 취소 결정에도 불구하고 마음 놓고 생활할 수는 없었다. 여전히 조심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하여간 <하룬과 이야기 바다>를 출간하고 20년이 지난 2010년, 루슈디는, 힘도 좋지, 두번째 아내 마리엔과 두번째 이혼을 하고 둘 사이에 난 열두 살짜리 둘째 아들 밀란을 위해 또 한 편의 청소년소설을 써 출간하니 바로 <루카와 생명의 불>이다. 이 책이 나올 때 둘째 밀란은 열두 살, 첫째 자파르가 서른 살. 열여덟 살 터울이고, 당연히 이복 형제다. <루카와 생명의 불>에서도 루카보다 열여덟 살이 더 많은 형 하룬이 등장한다. 이야기 폐색증에 걸린 세상을 구하기 위해 오래 전에 지구의 두번째 달에 가서 큰 모험을 한 적이 있는 바로 그 하룬이 맞다. 이 나이든 형은 열두 살짜리 어린 동생을 바라보더니 씽긋 웃으면서 “너도 이제 모험을 떠날 때가 됐다.” 라든지, “이럴 줄 알았어. 너도 우리 집안 사람으로 마법의 세계로 들어갈 나이가 됐어.”라고 동생의 모험을 부추기는데, 실제 생활에선 형이 첫째 엄마, 둘째가 둘째 엄마, 그리고 지금은 셋째 엄마, 몇 년 있다가 넷째 엄마하고 사는 반면, 소설에선 아빠 라시드 칼리파가 오직 조강지처인 ‘소라야’ 엄마하고만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살았다는 거다.

  다양한 생각이 펼칠 수 있는 것이 바람직한 현상임을 감안하시어, 내 의견과 다른 분께는 미리 양해를 당부하건대, 나는 2022년 노벨 문학상을 살만 루슈디가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흔을 훌쩍 넘은 노인네가 당연히 글도 무지 재미나게 쓰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상상력으로 무장을 한 것만 가지고도 충분히 받을 만한데다가 올해 8월에 테러를 당해 팔의 신경 절단, 간 손상, 한쪽 눈 실명이라는 험한 꼴을 당했으니 이왕 밥 딜런도 받고, 가즈오 이시구로도 받고, 화장실, W.C, 즉 윈스턴 처칠도 받았으며 심지어 아돌프 히틀러도 수상 대상자였던 그까짓 노벨 문학상 하나 주면 안 되겠나 했었는데 아니, 아니 에르노라니,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도 않았다. 뭐 그랬다. 못 받을 줄 알았고 아마 앞으로도 못 받겠지만 진짜 받았으면 싶었던 작가는 메릴린 로빈슨이었고.


​  힌두스탄 어로 문자라는 뜻을 가진 ‘알리프바이’ 나라가 있었는데 이 나라에 또 ‘카하니’라는 도시가 있단다. 루카가 사는 곳이다. 루카의 아버지 라시드 칼리파 씨는 이야기꾼으로 이름이 난 사람으로 웬일인지 루슈디는 칼리파 씨의 직업을 특정하지 않는다. 돈을 받고 이야기해주는 만담가나 스탠딩 코미디언이라기엔 힌두스탄이라는 지역과, 이미 21세기도 10년이나 지난 시절이라 컴퓨터 게임이 일상이 된 시대에 아직도 자기집을 보유하고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안정된 직업이라고 보기 힘들기는 한데, 주요 독자층이 아직 먹고 사는 문제에 깊은 생각이 없는 십대 초반의 아동일 터에 이이의 직업이 뭐냐, 하고 야박하게 따지진 않겠다. 하여간 칼리파 씨는 20년 전에 큰 아들 하룬과 함께 이야기 바다로 어려운 모험길에 나선 적이 있었다. 이이가 벼락을 맞는다. 카하니에 “거대한 불고리” 서커스단이 들어왔다. 이 서커스단에는 주로 길들인 야생동물의 멋진 쇼로 유명하지만 동물들 꼬락서니 하나는 정말 가관이었다. 암사자는 충치, 암호랑이는 눈이 멀었고, 코끼리는 굶주려 뼈가 앙상하고 다른 동물들도 지독하게 비참한 상태였다.

  어느덧 62세가 된 칼리파 씨가 학교를 마친 막둥이 루카의 손을 잡고 서커스 단 옆을 지나고 있을 때, 아버지는 동물들을 보더니, 서커스가 동물들에게 못할 짓이라면서 자신은 서커스를 보러 가지 않겠다고 결정을 한다. 루카도 동물들을 보니까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그리하여 덩치가 크고 무서운데다가 성미가 급하고 화를 잘 내며 좀처럼 웃지 않는 ‘불꽃단장’ 아아그를 향하여 이렇게 저주를 퍼붓는다.


​  “동물들이 당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불고리가 당신 천막을 활활 태워 없애기를!”


​  그런데 바로 이 순간, 왜 그거 있지 않은가, 학생들의 종알대는 떠드는 소리가 갑자기 한 순간에 싹 사라지며 조용해지는 찰라, 바로 이 비슷한 마술적 침묵의 짧은 시간이 발생했으며, 루카의 말이 널리 퍼져 하늘을 채우고 눈에 보이지 않는 운명의 여신들의 집에까지 도달한 것 같았는데, 하여튼 루카는 별 관심을 두지 않고 그냥 집으로 가버렸다. 하지만 그날 공연에 어떤 동물도 조련사와 단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으며, 서커스단을 몽땅 뛰쳐나가 사방팔방으로 흩어져버렸고, 밤에 천막에서 불이 났다는 거다. 동물 중에서 ‘멍멍이’라는 곰과 ‘곰돌이’라는 이름의 진갈색 래브라도 종 개가 루카의 집에 나타나 이후에 루카의 가장 충직한 보호자 역할을 한다.

  하지만 별이 빛나는 아름다운 밤에 무서운 일이 벌어진다. 카하니 시 위의 하늘, 실실라 강과 그 너머 바다 위에까지 별들이 유난히 찬란히 빛이 나서 도시에서도 은하수 흐르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던 날, 루카의 아버지 칼리파 씨가 깊고 깊은 잠에 빠져든다. 이튿날이 밝아도, 사흘이 지나도. 의사들도 원인을 알지 못하고, 그저 누워 있다가 근력이 빠지면 세상을 뜰 수밖에 없다는 소견만 밝히는 마법의 병환.

  마법의 세계에는 천상에 지혜의 호수가 있고, 호수의 물은 ‘시대의 새벽빛’을 받으며 ‘시간의 강’으로 흘러 ‘지혜의 호수’를 이룬다. 지혜의 호수는 ‘지식의 산’ 그늘에 있으며 이 산꼭대기에서는 ‘생명의 불’이 타오르고 있단다. 이제 아버지 칼리파, 위대한 이야기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단 한 가지, 지식의 산 위에 타고 있는 생명의 불을 훔쳐와 그걸 아버지의 벌어진 입에 넣는 것뿐. 아무도 깨울 수 없는 아버지를 위하여 루카는 ‘멍멍이’ 곰과 ‘곰돌이’ 개를 데리고 이미 생명이 다한 신들의 고향인 마법의 땅으로 길고 험한 모험의 길을 떠난다. 연말연시에 이제 청소년기에 돌입하려는 소년들을 위한 좋은 읽을 거리를 소개하는 포스트로 2022년을 마감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소년 만세! 그대들에게 21세기의 축복 있기를!


.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2-12-31 0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필독서하니까 친구생각나요. 중학교 입학전에 필독서라고 적힌 갱지를 받았는데 , 그 중에 갈매기 조나단? 읽고 이게 뭐냐!! 하며 그때부터 책과 담 쌓았다고 ㅋㅋ 전 아이 초등고학년 추천도서에 새의 선물 있어서 놀랐던 기억납니다. 주인공이 아이라지만 ㅠㅠ 그러고보니 악마의 시도 읽어야하네요. ~ 골드문트님 건강하시고 새해 복도 마니마니 받으세요. *^^*

Falstaff 2022-12-31 08:52   좋아요 1 | URL
ㅎㅎㅎ 갈매기 조나단과 책 손절. 굉장히 익숙한 장면입니다. 고딩 1학년 때 친구가 그거 읽었다고, 인생책이라고 을매나, ˝티나는 은근함˝으로 자랑을 하던지 말입니다.
새의 선물이 초딩 고학년 추천도서란 건, 아이고, 책 골랐던 교사들이 읽어보지도 않고 세상에나...
루슈디는... 한밤의 아이들 읽으셨어요? 저는 그게 악마의 시보다 더 좋았는데요. 광대 샬리마르, 무어의 마지막 한숨, 피렌체의 여 마법사, 하여간 루슈디는 다 좋더라고요.
리릭 소프라노 님, 목소리 억양 다 예쁘시던데 ㅋㅋㅋㅋ 새해엔 복이라기보다 구체적으로 연초에 로또 한 번 딱 붙어버리기를 앙망합니다!!!

Falstaff 2022-12-31 09:01   좋아요 3 | URL
아, 그리고요, 올해 제가 제일 맛있고, 멋있게 읽은 책이 바로 보부아르의 <레 망다랭>이랍니다. 올해에는 Top 10을 꼽지 못할 정도로밖에 책을 읽지 않아 올해의 픽 같은 페이퍼를 쓰지 못했는데요, 만일 썼다 하면 <레 망다랭>을 올해의 책으로 꼽았을 거 같습니다. 기회가 닿는다면 읽어보셔도 좋을 거 같습니다. 그럼 확실하게 로또 붙으실 겁니다. ^^;;;

stella.K 2022-12-31 12:32   좋아요 2 | URL
앗, 저는 골드문트님 올해의 픽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말 안하실건가요?
전 문트님 올해의 픽 <나는 고백한다>일 줄 알았더니
<레 망다랭>이군요. 아, 그 책은 작년에 읽으셨나요? ㅎㅎ
어쨌든 올핸 이미 많은 알라디너들이 올해의 픽을했고
다음 달에 픽 해주세요.ㅠ

유명한 작가들은 노벨문학상 안 줍니다.
그리 말씀하시면 쿤데라니, 하루키도 받아야 할 텐데 꼼짝도 안하잖아요.
저도 아니, 아니 에르노 왜...? 멍 때리긴 했어요.
메릴린 로빈슨 누군가 했더니 제가 오래 전에 <길라아드>를 읽었더라구요.
내 스탈은 아니지만 나름 괜찮은 점수를 줬더라구요.
리뷰에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아서 아직도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죠.
아마도 문트님이 리뷰 쓰신다면 1위 자리를 내놔야겠죠.
전 오래 했으니 문트님의 리뷰를 기다립니다.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Falstaff 2022-12-31 14:12   좋아요 2 | URL
으아, 감격입니다. 제 선택을 기다리시는 분이 계셨다니요. ㅜㅜ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나는 고백한다>는 작년 베스트였습니다. ^^
올해에는 작년의 반 정도밖에 안 읽었습니다. 연초에 퇴직을 하고 백수 생활에 적응하느라 나름대로 몸살을 좀 앓았던 거 같습니다.
발자크의 <잃어버린 환상>,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은 이미 고전이라 제가 새삼스레 픽이니 뭐니 하면 오히려 실례일 거 같고요, 좋았던 작품은 <레 망다랭> 외에
비트키예비치의 <탐욕>과 브루노 슐츠의 <브루노 슐츠 작품집> 이건 상당히 비슷해서 한 권으로 쳐도 좋을 거 같습니다.
에인 랜드, <파운틴 헤드>
포이히트방어, <톨레도의 유대여인>
베데킨트, <룰루>
서보 머그더, <프레스코>
루슈디, <피렌체의 여 마법사>
이 정도랍니다.
<불만의 집>도 좋았지만 리스트에 올릴 정도는 아니었고요, 이거 말고도 좀 섭섭한 작품도 몇 있었습니다. 폴란드 작가들의 책 두 권은 리스트에 올리긴 했으나 제가 충분히 이해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별점은 둘 다 네 개를 주었답니다. ㅎㅎㅎ

로빈슨은 글을 참 아리게 써요. <길리아드>보다 저는 <하우스키핑>과 <홈>을 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른 책도 얼른 번역해 나오기 바라는데 도무지 그럴 거 같지 않군요.
별.K 님도 새해 좋은 일만 생기기 바랍니다!!

유부만두 2022-12-31 09: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서전 재밌는데요~~~~ 난 읽었는데요~~~

Falstaff 2022-12-31 09:51   좋아요 2 | URL
앗, 그렇습니까? ㅎㅎㅎ 고맙습니다. 곧바로 도서관 관심도서로 찜했습니다!
분명 복 받으실 겁니다. ^^

잠자냥 2022-12-31 09: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화장실 처칠! 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올해 그래도 루슈디 줄줄 알았어요. 그래도 황천 갈 뻔했는데 점수 좀 더 주지…. ㅋ

Falstaff 2022-12-31 09:54   좋아요 3 | URL
그죠? 정말 아슬아슬하게 황천 바로 옆길로 빗겨 서서 말입죠. 상 한 번 주지 ㅋㅋ
W.C 윈스턴 처칠, 워싱턴 칼리지, 그리고.... ㅋㅋㅋㅋ ‘워매 씨바......ㄹ‘

페넬로페 2022-12-31 12: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살만 루슈디의 작품을 아직 한 편도 읽지 않았는데 그의 픽션을 다 읽으신 골드문트님!
역시나~~
항상 읽고 싶은데 다른 책이 앞을 가려서요. ㅎㅎ
골드문트님!
올해도 열심히 책 읽으시고 글 올리시는 모습이 언제나 알라딘 서재를 빛나게 하십니다.
내년에도 잘 따라가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Falstaff 2022-12-31 14:13   좋아요 2 | URL
아이고, 이렇게 좋은 말씀을 해주시고.....
페넬로페 님이야말로 서재를 반짝반짝하게 해주시지요! 내년에도 많이 배우겠습니다.
복 많이 받으셔요, 언제나, 늘..... ^^

coolcat329 2022-12-31 20: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루슈디 책 한 권도 안 읽어봤지만 저도 노벨문학상을 루슈디가 받길 바랬었습니다.
내년엔 꼭 루슈디를 읽어보겠습니다.
골드문트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길요~🎆

Falstaff 2022-12-31 20:38   좋아요 3 | URL
첫 작품을 잘 고르셨으면 좋겠습니다. 한밤의 아이들이나 광대 샬리마르, 피렌체의 여 마법사 쪽으로 하시는 것이 어떨까 싶네요. ㅎㅎㅎ
이 양반의 입담과 환상세계 같은 것하고 합이 맞지 않으면 의외로 낭패를 볼 수도 있을 거 같더라고요.
쿨캣님도 내년에 좋은 일만 펑펑, 불꽃처럼 작렬하기 바랍니다! 펑, 펑 퍼벙, 뻥!!!!! 하고요. ^^

coolcat329 2022-12-31 20:45   좋아요 3 | URL
네~한밤과 광대가 있습니다! 한밤으로 시작하겠습니다~감사합니다😊

독서괭 2023-01-01 00: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살만 루슈디가 8월에 테러를 당했군요??! 어휴, 무섭네요. 메릴린 로빈슨 누군지 몰라서 찾아보고 왔습니다 ㅎ 레 망다랭이 골드문트님 올해의 책이라고요?? 그럼 담지 않을 수 없네요.
골드문트님 새해에도 솔직하고 재미난 리뷰 많이 써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Falstaff 2023-01-01 07:08   좋아요 3 | URL
레 망다랭 처음 백 페이지 정도는 ˝버티셔야˝ 합니다. 관문을 통과하시면 이후로 즐기실 수 있을 겁니다. ㅎㅎㅎ 메릴린 로빈슨의 <하우스 키핑>이나 <홈>도 올해엔 좀 사료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ㅋㅋㅋ
독서괭님, 올해 ‘진짜 대박‘ 두 건 만 터지세요! ^^

그레이스 2023-01-02 2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새 서재에서 살만 루슈디의 오래된 책을 자주 보네요.
2023년에도 책 소개 기다리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므세요~~

Falstaff 2023-01-03 05:45   좋아요 2 | URL
그레이스 님도 책 소개 자주 해주세요!
늘 건강하시고, 돈 많이 버세요! ^^
 
수용소 - 교도관의 수기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세르게이 도블라토프 지음, 김현정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아무리 픽션을 쓴다고 해도, 작가가 가장 자신하는 건 당연히 자기가 직접 경험해본 것을 서술하는 일이리라. 세르게이 도블라토프는 레닌그라드에서 연극연출가로 활약하던 도나트 이사아코비치 매치크와 아르메니아인 연극배우 노라 세르게예브나 도블라탄 사이의 아들로, 2차 세계대전의 전화를 피해 피난지로 떠났던 우랄산맥 남서쪽 바시코르토스탄 공화국의 수도 우파에서 1941년에 태어난다. 3년의 세월이 흘러 다시 레닌그라드로 돌아온 가족은 훗날 도블라토프가 <여행가방>을 챙겨 미국으로 떠날 때까지 줄곧 레닌그라드의 루빈시테인 거리에서 산다. ‘도블라토프’라는 이름은 아르메니아 출신 어머니의 성을 따른 것으로 “도블라탄”을 러시아 ‘남성형’으로 만들어, 확실한 기억은 아닌데 아마도 아버지가 일찍 숟가락을 놓는 바람에 어머니 쪽 성을 취했다고 알고 있다. 확실하지 않다. 작가 가운데 일찍 아버지 여윈 인간들이 어디 하나 둘이어야지.

  원래 작가가 될 싹수가 있는 인간들은 좀 일찍 조숙해지는 경향이 있어서(그래서 키가 안 큰다, 키가!), 열여덟 살에 대학에 들어가 하라는 공부는 하지도 않고 이듬해인 1960년, 열아홉 살의 도블라토프 역시 한 살 위의 아샤 페쿠롭스카야와 결혼한다. 아샤와의 결혼은 도블라토프가 거의 최초로 심각한 후회를 낳았긴 하지만, 도블라토프가 쉰 살도 되지 않아 죽은 반면에 아샤는 아직도 살아 있다. 오래 사는 게 이기는 거다(여성 만세!). 도블라토프는 대학을 3년 다니다가 퇴학당한다. 왜 그랬는지 눈에 훤하다. 인문대학 핀란드어 과라니, 공부는 하기 싫지, 첫 해는 연애하다 망쪼가 들었고, 혹시 행복해질 수 있을까 싶어서 선택한 결혼은 둘 다에게 인간이 인간에게 만들어줄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지옥을 선물하고 말았으니, 지가 배겨낼 수 있었으면 오히려 그게 기적이었을 거다. 당시 소비에트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로 대학 다니다 퇴학당하면 자기 생각과는 전혀 관계없이 징집을 당하는 순서가 남았는데 도블라토프는 하필이면 저기 멀고 먼 코미 공화국 구석에 있는, 정치범도 아니고 살인, 강도, 강간, 중대한 횡령, 사기 등의 흉악범을 주로 격리시키고 그들의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해 만든 수용소 교도관으로 근무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코미 공화국? 나도 처음 듣는 지명이다. 구글 검색해보니 우랄 산맥 서쪽, 광활하긴 하지만 황량하기 이를 데 없는 동유럽 벌판의 북동쪽으로 한도 없이 펼쳐진 평야지대. 공화국의 수도는 책에서도 자주 거론하고 있는 식티프카르. 도블라토프는 이곳에서 처음 9개월을 근무하고 나머지 2년 3개월은 레닌그라드 근교 수용소에서 복무하다 제대한다. 레닌그라드,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일찍이 도스토옙스키가 하도 파먹어 그곳 근교라고 해봐야 별 울림이 없으니 도블라토프는 연작 《수용소 – 교도관의 수기》에서, 경험은 레닌그라드 근교에 위치한 수용소의 것을 일부 차용했을지는 몰라도 지역 배경은 코미 공화국의 수용소로 국한했다. 작가가 쓰기에도, 독자가 읽기에도 보다 공감할 수 있을 선택이라 할 수 있겠다.


​  도블라토프의 《수용소 – 교도관의 수기》는 원래 열다섯 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미국에서 출판을 위해 다시 정리하다가 대폭 수정해 작가가 출판사 편집장에게 보내는 열다섯 개의 편지와 단편 열 네 편을 엮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열다섯 부part가 전부 개별적 제목을 갖고 있다. 작가가 편집자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에 그는 이십 년 전에 경험한 소비에트에서의 수용소 교도관 근무 기억과 관련한 작품을 쓴 적이 있고, 그것을 어렵사리 보존했는데, 이걸 책으로 출간하려니 수용소 문학은 솔제니친 이후에 조종을 울렸다고 인식하는 출판계 인심을 안타까워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솔직히 나도 그렇다. 도스토옙스키, 솔제니친, 거기다가 저 멀리 가면 <부활>을 쓴 톨스토이에 의한 러시아/소비에트의 잡범, 정치범 수용소는 물론이거나와 이후 숱한 유대인, 집시, 공산주의자 제노사이드를 위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 수용소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듣고 읽어서 귀에 더깨가 지고 눈이 지물지물할 정도니까.

  그리하여 도블라토프는 항변한다. “솔제니친은 죄수였지만요, 저는 교도관이었습니다.”라고. 그러나 나는 이 다음에 하는 말에 더 주목했다.


​  “솔제니친에 따르면, 수용소는 지옥입니다. 제 생각에 지옥은 우리 자신(교도관)들인데 말이죠……”


​  정말? 정말이다. 수용소뿐만 아니고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지옥이다. 왜 그런고 하니 사람들 자신이 지옥이니까. 만일 도블라토프의 수용소 스케치가 진실에 가깝다면 우리나라의 일반 교도소를 포함한 국군 교도소, 지금은 경기도 장호원으로 이전했지만 흔히들 남한산성으로 부르던 곳에서 근무하는 교도관보다 훨씬 어려웠다고 믿는다. 워낙 오지에 홀로 떨어진 곳이라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자는 것도 죄수와 별반 다를 것 없고, 심지어 사는 것마저 비슷해 인생의 막장에 다다른 죄수들에게 아주 가끔은 린치를 당할 수도 있으며, 여기에 위 아래 계급의 눈치까지 봐야 하는 신세가 수용소 교도관이었을 테니 말이다.

  즉 《수용소 – 교도관의 수기》에서 주로 등장하는 것은 교도관과 교도관 사이, 교도관과 죄수 사이의 갈등이며 잘못된 해소방법 정도로 읽기 전부터 어느 만큼은 짐작할 수 있어서 읽기에 뭐 그냥 그랬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다른 독자의 경우는 모르겠는데, 역시 얘기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면 섭섭한 도블라토프의 건조하고 불친절한 문장이다. 아래 인용은 멋있어서가 아니라 작가의 어법이 이렇다는 의미에서 소개한다.


​  “6시까지 나는 병영을 어슬렁거렸다. 두 번 정도 나를 행정조로 어딘가를 보내려고 했다. 나는 후리예프 대위의 명령 수행 중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나를 편안하게 내버려두었다. 상사만이 궁금해했다.”


​  문장이 간결하고, 형용사나 부사에 의한 수식이 (거의)없다. 그리하여 독자는 이이의 열다섯 작품을 브레이크 없이 쉽게 읽어갈 수 있다. 이런 문장들이 건조하게 연결되지만, 연결된 문장의 총합은 독자로 하여금 도블라토프의 의도를 공감하게 만든다.

  잘 읽었다. 두 번째 도블라토프로 손색이 없기는 하지만 나는 <여행가방>이 더 좋았다.


.



댓글(7)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2-12-29 08:1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도 중간중간 툭툭 터지는 심드렁 유머가 재미있었습니다…..만 역시 도블라토프는 <여행가방>이 최고지요. <외국 여자>까지는 읽어보세요~!

Falstaff 2022-12-29 08:24   좋아요 3 | URL
옙! <외국여자>는 꼭 읽어얍지요! ㅎㅎ 고맙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2-12-29 10: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람 사는 곳은 지옥, 에 공감하고 들어왔다가 자기 자신이 지옥, 에는 양 무릎 탁 치고 제가 키 155인 이유도 함께 알아갑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2-12-29 17:55   좋아요 0 | URL
ㅋㅋㅋ 그러셨군만요!

그레이스 2022-12-29 11: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여행가방> 작가였군요. 수용소라는 곳은 감시자나 수용자나 모두에게 지옥이란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교도관도 있어야하고 수용소도 필요한 곳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는 게 슬프죠. 그나 저나 <여행가방> 어딘가에 있을텐데...ㅋㅋ

Falstaff 2022-12-29 17:56   좋아요 0 | URL
ㅎㅎ 감옥은 어쩔 수 없어도 수용소는 이제 없어져야 합니다.
<여행가방> 재미나게 읽으셔요! ^^

그레이스 2022-12-29 18:51   좋아요 1 | URL
그렇네요^^
제가 수용소라는 단어를 혼동해서 썼군요;;;
수용소는 비공간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