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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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애의 마음>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래 김금희의 작품집을 선택할 때는 머뭇거림이 없었다. 아홉 단편소설이 실려 있는 《너무 한낮의 연애》. 2016년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은 표제작과 2015년 젊은작가상 입선(이라고 해두자)작인 <조중균의 세계>를 망라하고 있는데, 역시 두 작품에 대해서 할 말이 많다. 물론 <세실리아>, <반월>도 마음에 찼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건 서평이나 분석을 포함한 어떠한 형태의 평가가 아니라, 이 책 《너무 한낮의 연애》 읽기를 막 끝내고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감상을 적고 있다는 것을, 보잘것없는 독후감을 읽어주시고 계신 분들은 이해해주기 바란다.

 

  김금희는 전에 읽은 수작 <경애의 마음>에서도 그랬고, 이번에 <너무 한낮의 연애>와 <조중균의 세계>에서도 직장생활을 하다 보직을 박탈당하거나(<너무 한낮…>), 직원들과 격리된 생활을 하는(<조중균…>) 급여생활자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나는 특히 <조중균…>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 않으려 합니다.”라고 말하지 않는 필경사 바틀비가 21세기 서울에서 산다면 영락없이 조중균씨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허먼 멜빌이 극단적인 바틀비를 창조하여 다분히 우화적 느낌까지 내긴 했다. 이에 김금희는 정상적이지 않은 외통 고집의 조중균에게 부적응으로부터 시작하는 당연한 소외와, 소외의 결과로 탈락까지, 빠짐없는 종합선물세트를 준비했다. 바틀비와 조중균씨의 공통점은 “I would prefer not to.”선언과,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지 않고 자신이 준비한 수첩에 확인 사인을 요구하는  “나는 밥을 먹지 않았습니다.”의 비타협성에 있다.
  내가 조중균씨의 이야기를 읽으며 단박에 바틀비를 생각하게 된 것은, 조중균씨의 태도를 포함한 모든 것에 들어있는 우울과 치유할 수 없는 부적응 증세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찍이 대학시절 필수과목 시험을 볼 당시에, 이름만 적고 시험시간을 채워 퇴장하기만 하면 좋은 학점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시험지에 ‘지나간 세계’라는 시를 적고 이름은 쓰지 않은 채 답지를 제출해 군대에 가야했던 인물. 그러니까 매사에 타협불가능한 사람이다. 대개 이런 사람들을 직접 만나면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조중균씨는 답답하기는 하지만 그가 하는 행동에 잘못된 것이 없어서 독자로 하여금 동정과 안타까움이 들게 만든다. 물론 정말로 함께 직장생활을 해야 했던 작품 속 사무실 직원들은 복장이 터졌겠지 싶기는 하지만.

 

  이에 비해서 표제작 <너무 한낮의 연애>는, 공감할 수 있기는 한데 아쉬웠다.  영업팀장으로 근무했던 주인공 필용은 업무상 어쩔 수 없이 융통성을 발휘하고는 했는데 그게 주로 현금과 관련된 융통성이어서, 이것 때문에 영업팀장에서 보직 해임을 당하고 시설관리팀의 직원으로 전보된다. 필용은 직원들과 같이 점심을 먹기가 뭐해서 좀 멀리 떨어진 종로까지 걸어가 맥도날드 햄버거로 때우고는 했다. 그러다 작은 공연장을 발견하고, 한 시절 유학을 위해 영어 학원에 같이 다니던 ‘양희’라는 6년 후배를 떠올리고, 당시 그 아이가 쓰던 연극 대본 <나무는 크크크 하고 웃지 않는다>가 생각났는데, 맥도널드에서 바라다 보이는 공연장에서 주위 사무실의 급여 생활자를 위한 작은 공연의 제목이 <나무는 ㅋㅋㅋ 웃지 않는다>라서, 양희가 배우는 아닐망정 혹시 연출을 하는 연극이 아닌가 싶어 공연을 관람하게 된다.
  공연은 얼굴까지 의상을 뒤집어 쓴 배우가 나와 관객 가운데 한 명을 무대에 끌어올려놓고 마주 앉아 서로 마주보는 것이 다다.
  아쉽게도 나는 이 퍼포먼스를 본 적이 있다.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있었던 것으로 관련 정보는 잊고 있었지만 작품의 뒤에 작은 글씨로 써 놓았다. “연극의 형식은 2010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퍼포먼스 <예술가가 여기 있다>에서 착안했다.”
  뉴욕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퍼포먼스에서는 이이가 젊었을 때 정말로 연애했던 옛 연인이 붉은 드레스를 입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앞에, 마리나가 모르는 상태로 등장해 서로를 마주보다가 몇 초 후에 눈물을 펑펑 쏟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리나 앞에 나타난 초로의 신사가 아우, 정말 멋있게 늙은 남자라서 기억에 오래 남아 있었을 수도 있다.
  뭐 그럴 수 있다. 기존에 있었던 퍼포먼스를 차용해 사용할 수도. 그러나 좀 아쉬웠던 건, 단편소설의 분량, 널럴한 편집의 34 페이지에 불과한 짧은 작품에서 퍼포먼스가 여러 차례, 적지 않은 분량으로 나온다는 거. 작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한 번 짜보는 노력을 했더라면 좋았을 뻔했다.
  아울러 보직해임을 당한 것도 모자라 한직인 시설관리팀의 팀원으로 발령 난 필용의 성격이 좀 약하다. 회사는 필용을 문제사원으로 찍어놓고 특별히 관리하는 중이다. 본인도 그걸 알고 있다. 김금희는 회사생활을 정말로 해본 적 있는 것 같지만, 인사이동 결과 퇴직 권유 수준의 한직으로 발령받아본 경험은 없는 것 같다. 필용의 처지는 회사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고, 특히 인사팀장은 공연관람을 위해 점심시간 몇 분 일찍 외출해 몇 분 늦게 복귀하는 필용에게 최하점의 인사평가를 주고, 가랑비에도 안 젖게 조심하라고 주의시킨다.
  약하다. 필용의 암산에 의하면 그간 자신이 빼먹은 시간이 하루, 즉 여덟 시간은 안 될 거라고 하는데, 그 정도면 인사위원회 회부해 징계절차를 밟아 중·약 정도의 징계를 받아야 한다. 팀장까지 경험한 필용 역시 이를 알고 있어 그렇게 오래 근태를 태만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거의 대부분의 인간은 소외당할 때 더욱 공격적인 성격으로 바뀐다. 내가 본 필용의 성격은 너무 약하다.
  그러나 표제작 <너무 한낮의 연애>를 마음에 차지 않게 만든 건 역시 중요한 제재인 “차용한 퍼포먼스” <나무는 ㅋㅋㅋ 웃지 않는다>가 작품에 너무 많은 분량을 차지한 것이었다. 아무리 작품이 좋아도 자기 아이디어를 쓰지 않으면, 이미 경험한 독자는 하품을 멈출 수 없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아이디어 짜기 피곤해? 그럼 글을 쓰지 않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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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9-10 09: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ㅎㅎ 마침 그 퍼포먼스를 보셨다는 대목에서 깜짝 놀랐습니다. 아마 작가는 독자중 ‘이걸 본 사람 거의 없겠지?‘생각하고 마음껏 반복 사용하지 않았을까 싶네요ㅋ 의도하신건 아니시겠지만<경애의 마음>과 <필경사 바틀비>를 읽고 싶어집니다🤭

Falstaff 2021-09-10 09:26   좋아요 6 | URL
ㅎㅎㅎ 그 퍼포먼스를 다락방님도 보셨다잖아요.
<필경사 바틀비>는 읽으셔야지요. 완전 19세기 사람인데 바틀비는 놀라울만큼 포스트 모던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인류의 문화유산인 <모비딕>을 쓴 양반이 단편까지, 와우, 대단합니다. ^^

그레이스 2021-09-10 10:26   좋아요 2 | URL
저는 <현대적 사랑의 박물관> 북트레일러 만들때 MoMa에서 한 아브라모비치의 퍼포먼스 함께 올렸었어요.
그 책에서도 이 퍼포먼스가 배경이었는데 MoMa 관람객들의 사랑과 아픔과 마리아 아브라모비치의 삶과 예술이 만나는 이야기라고 할까요?
제게는 고민하던 문제들이 있어서 좋았던 작품!

Falstaff 2021-09-10 10:31   좋아요 2 | URL
오, 그레이스 님도 아브라모비치 공연을 좋아하시는군요!
이쯤 되니 알고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문득 듭니다. ^^;;;

다락방 2021-09-10 09:1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너무 한낮의 연애>를 먼저 읽고 흐음, 별로인데 한 후에 <경애의 마음>을 만나서 김금희에 대한 기대가 상승한 경우입니다. 저는 너무 한낮의 연애에서 그 맥도날드.. 이야기가 너무 뻔하고 별로였어요. 그래서 이게 뭐여.. 했었는데 경애의 마음은 참 좋더라고요.

그리고 언급하신 ‘ 뉴욕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퍼포먼스‘는 제가 너무 좋아합니다! 과거의 연인이 나타나서 마주보고 눈물 흘리고 손 잡는 거 너무 인상적이었는데 그건 폴스타프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둘다 아주 멋지게 늙어서 그런것도 있고, 그냥 그 이야기가 참 좋았어요. 내가 이런 퍼포먼스를 한다는 걸 알고 부러 찾아와 앞에 앉아준 과거의 연인. 눈을 떴을 때 내가 과거의 연인을 볼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을테니 놀라고, 그리고 마주본 뒤에 눈물을 흘리는데, 아오, 이거 너무 좋아서 저는 얼마전에 갑자기 또 너무 보고 싶어서 부러 찾아보았더랬어요. 그렇게 오랜만에 만나 눈물 흘리고 손잡을 수 있다는 것은, 그들이 나쁘게 헤어진 건 아닌것 같아 그점이 참 좋았어요. 만약 스토커나 데이트 폭력남이었다면 그런 스토리로 이어지진 않았을 것 같아서요.

크.. 좋습니다.

Falstaff 2021-09-10 09:29   좋아요 4 | URL
ㅎㅎㅎ 다락방님이 은근히 로맨티스트인 거 같아요! 마음은 십대 후반, 실제는 20대 중반, 맞죠? 저도 장면이 정말 인상깊고 아름다워서 오래 잔상에 남았었습니다. 근데 그걸 차용해? ㅋㅋㅋㅋ

김금희는 역시 <경애...>가 대빵입니다. 확실한 건 한 작품 재미나게 읽었다고 다른 책을 크게 기해했다간 여차하면 코피난다는 겁니다.

잠자냥 2021-09-10 09:42   좋아요 4 | URL
아, 제가 김금희 작품은 <너무 한낮의 연애>에서 멈춘 게 잘못이군요? <경애의 마음>은 언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전 김금희가 일상의 구질구질함을 잘 묘사하는 작가라고 생각했어요(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김애란 이후로). <너무 한낮의 연애>나 ,<조중균> 읽을 때 와, 삶이 어쩜 그렇게도 구질구질하게 느껴지던지;;;; 뭔가 더 읽기 힘들어지더라고요.

암튼 다부징님 은근히 로맨티스트 아니고 대놓고 로맨티스트임. 포스팅 보세요 잘 보면 다 사랑이야기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부장이 젤 좋아하는 책은 뭐다?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Falstaff 2021-09-10 09:59   좋아요 3 | URL
옙. 경애까지는 갔다 오시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ㅋㅋㅋㅋ 일상의 구질구질함. 이걸 제일 잘 묘사하는 사람이 독보적 김애란.
김애란을 젤 귀여워하는 선배가 아마 공선옥.
공선옥 역시 구질구질, 이라기보다 공씨 세대 표현으로 ‘궁상떠는‘ 장면을 효과적으로 그린 사람도 그리 많지는 않을 거예요. ㅋㅋㅋㅋㅋㅋ
근데 한낮의 연애나 조중균 보다 찌질하지는 않습지요. (우와, 이런 작가들 모아도 근사한 페이퍼가 될 수.... ㅋㅋㅋㅋ)

그럼 다부장님은 공식적인 로맨티스트인 걸로 합시다!

다락방 2021-09-10 10:18   좋아요 4 | URL
저는 사랑 이야기 너무 좋아해서 사랑 가지고 장난 치는걸 너무 싫어하는 겁니다. 사랑 우습게 아는 놈들도 싫은 거고.

저는 뜨거운 로맨티스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새벽 세시가 뭐가 어때서요, 왜, 왜, 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1-09-10 15:21   좋아요 3 | URL
저 김애란도 읽었고 공선옥도 읽었고(공여사가 김여사 좋아하는 건 처음알고) 김금희도 꽤많이 읽었는데 무엇보다 새벽세시를 읽어서 ㅋㅋㅋ 이 대화에 낄수 있다!!! 나 책좀 읽은 여자다! 우하하하하!!!!! 이제 뉴욕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퍼포몬스만 보고오면 된다요!!

Falstaff 2021-09-10 15:31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전 새벽 세시만 읽으면 됩니다!!!!

다락방 2021-09-10 15:37   좋아요 1 | URL
쟝님, 여기요!

https://youtu.be/OS0Tg0IjCp4

다락방 2021-09-10 15:38   좋아요 2 | URL
아 폴스타프 님 새벽 세시 싫어하실 것 같은데 말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9-10 15:42   좋아요 1 | URL
앗, 그렇습니까!
그럼 미리보기로 잠깐.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9-10 15:49   좋아요 1 | URL
근데 되게 궁금하긴 해요. 고전을 많이 읽어오신 폴스타프 님은 새벽 세시를 어떻게 읽으실지...( ˝)

Falstaff 2021-09-10 15:52   좋아요 1 | URL
아, 고민, 고민.... 어휴, 이런 부담스런 말씀을.... ㅋㅋㅋㅋ

잠자냥 2021-09-10 09:3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보잘 것 없는 (x) 보잘것없는(o)

ㅋㅋㅋㅋ 아니, 폴스타프 님 이런 거 잘 안 틀리시던데 틀린 거 보고 깜놀해서 일단 달아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9-10 09:36   좋아요 6 | URL
와우, 그렇군요. 이게 한 단어네요. 여태 몰랐습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이런 거 배우는 게 칭찬 한 번 듣는 거 보다 더 좋습니다!!!!
얼른 고쳐야지!!

잠자냥 2021-09-10 09:42   좋아요 4 | URL
이거 사실 사람들이 잘 틀려요. ㅎㅎㅎ 알라딘 서재에서도 종종 보는데 친분이 없으면 선뜻 알려드릴 수는 없고 ㅋㅋㅋㅋ 폴스타프님은 저랑 싸대기 주고(?)받는 사이니까 실례를 무릅쓰고 알려드렸습니다. 엣헴

Falstaff 2021-09-10 09:56   좋아요 3 | URL
어휴, 이번엔 ‘그것도 몰랐어!‘ 하면서 싸다구 안 올라왔네. 살았다!

coolcat329 2021-09-10 12:35   좋아요 4 | URL
오 저도 배웠습니다.ㅋ

coolcat329 2021-09-10 12: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경애의 마음>만 읽어봤는데 이 소설은 다들 좋아하더라구요.

Falstaff 2021-09-10 12:41   좋아요 1 | URL
김금희의 모든 작품이 높은 별점을 즐기고 있긴 합니다만.....ㅋㅋㅋㅋ

케이 2021-09-10 14: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말씀하신 퍼포먼스 저도 봤어요. 팔스타프님 말대로 옛연인인 남자가 워낙 미중년이었던 게 특히 기억에 남아요. (제가 원래 미남은 웬만해선 안까먹거든요.ㅎ) [경애의 마음]은 읽어야지 맘은 먹었는데..애기 둘 키우면서 독서하는 게 쉽지 않네요.
저도 회사생활하면서 징계위원회 회부되고 해고까지 당해본 경험이 있는데..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직접 당해본 사람인 제가 읽음 어떤 생각이 들지.
팔스타프님 항상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Falstaff 2021-09-10 14:36   좋아요 1 | URL
아 케이 님도 보셨군요!
제 눈에는 옛 연인이 퍼포먼스의 주인공 마리나보다 더 잘 생겼더라고요. ㅎㅎㅎ
거기다가 서로 눈빛을 교환하는 따뜻한 시선이라니요. 그런 재회라면 해보고 싶.... 여기서 말조심해야 합니다. ㅎㅎㅎㅎ

케이 2021-09-10 14:42   좋아요 1 | URL
제가 댓글 수정하는 사이에 댓글을 달아주셨네요! 참고로 전 해고임에도 불구하고 자진퇴사 처리까지 당했었는데..벌써 오래 전이라 이젠 화도 안나네요.ㅋㅋ 한동안 그 일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는데.
좋은 계절 즐겁게 보내셔요~

2021-09-10 14: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21-09-10 17: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헉! 저는 김금희 작가의 팬인데요. 사실 <경애의 마음>은 처음에 대충 보다 그만 읽고 다시 읽고 너무 깜짝 놀란 작품이고요. <너무 한낮의 연애>는 그 어떤 분위기, 정조는 좋은데 좀 약하다, 이런 느낌 가지고 있었어요!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해주신 것 같아요. 그리고 댓글 읽다가 저 공연을 반드시 찾아봐야겠다고 불끈! 합니다.

김금희 작가는 목소리도 참 좋더라고요. 오디오북 본인이 읽어준 거 듣는 게 너무 좋았어요. 장편을 또 기대합니다.

Falstaff 2021-09-10 20:11   좋아요 2 | URL
감상평은 백 명이 전부 달라야 그게 정상 아닌가 싶어요.
저도 김금희의 문장을 참 좋아하는데요, 하여튼 이 단편집은 작가가 진심으로 느끼지 않은 것을 서둘러 형상화 한 것 같았습니다. 그것도 일종의 비극을 말이지요. ㅋㅋㅋ
근데 제가 뭘 알겠습니까.

blanca 2021-09-10 17: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지금 보고 왔어요. 좋은 공연 찾아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Falstaff 2021-09-10 20:19   좋아요 2 | URL
저도 지금 또 봤는데, 봐도 봐도 가슴이 무너지네요. 우우우우후후후후후........
 
유다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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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다. 가룟 유다. 브루투스와 함께 서양인들에겐 최악 배신의 대명사다. 아모스 오즈는 이 책 <유다>에서 가룟 유다를 현대 이스라엘 구성원의 눈으로 다시 해석하려 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책은 현 지구의 이데올로기를 선점하고 있는 기독교적 종교관, 세계관을 양보하고 싶지 않은 독자에게는 마땅하지 않을 수 있다.
  작품의 주인공은 25세의 청년 슈무엘 아쉬. <유다>는 오즈가 일흔다섯 살에 쓴 소설이다. “1959년 말에서 1960년 초 겨울에 있었던 이야기다.”로 시작하는 <유다>는 이어서 주인공 슈무엘 아쉬의 현재 상황과 외모, 거주지 등에 대한 상세묘사가 이어진다. 1939년생인 오즈는 현대의 독자들은 별로 기억하지도 않을 방, 생김새, 옷장에 걸려 있거나 지금 입고 있는 옷, 가구 등에 관해서 그저 한 번의 눈길을 보내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아마 이런 소설작법의 거의 마지막 작가라고 해도 크게 무리는 아닐 듯하다.
  슈무엘 아쉬는 1959년 12월에 대학원의 석사논문을 포기한다. 몇 년 동안 연인관계를 유지했던 아르데나는 전에 사귀던 부지런하고 조용한 수문학자 남자친구 네쉐르 샤르쉡스키가 청혼을 하자마자 떠나버렸고, 샤하프 주식회사를 운영하다가 오랜 동업자와 소송이 붙어 패배하는 바람에 파산을 한 아버지가 더 이상의 학비와 경비를 지원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12월 초, 노발대발하는 지도교수 아이젠슐로츠 박사에게 여태까지 지지부진하게 진행했지만 지도교수만큼은 여전히 큰 기대를 하던 논문 “유대인들의 눈에 비친 예수”를 작파하고 학업마저 중단하겠노라 얘기를 해버렸다. 그리고 3주 후 연인 아르데나가 초대한 결혼식에 참석하려 하다가 지독한 천식발작이 일어나 포기하고 연말을 맞는다.
  이제 실업자가 된 슈무엘은 자신만의 삶을 꾸리기 위해 예루살렘을 떠나기 전에 쓰던 기숙사 비품 판매를 위해 벽보를 붙이려다 구인광고 한 장을 발견한다. “마음 맞는 분 구함.” 인문학을 전공하는 미혼남으로 역사를 잘 알고, 상대방의 기분을 잘 헤아리는 세심한 대화 가능자. 저녁마다 다섯 시간 정도 학식 깊고 지적인 일흔 살 장애 남성에게 말동무를 해주는 일자리다. 무료로 숙소와 저녁 식사를 제공하고 소액의 월급도 지급하는데, 장애인은 자력으로 생활이 가능한 자라서 도우미가 아닌 말동무를 구한다는 것에 방점을 둔 광고다. 특색있는 건, 면접에 통과하면 비밀유지서약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정도. 우리의 주인공은 당연히 이 광고에 지원하고 그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구원할 자가 시온에 오셔서 속히 예루살렘을 재건하기를, 5674년”
  칠십 대 장애인의 말동무가 되기 위해 다락방에 입주한 집. 대문 위엔 다윗의 방패 모양의 녹슨 쇠로 만든 아치형 장식에 이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유대력 5674년은 서기력 1913년 가을부터 1914년 봄까지의 시기란다. 사자 머리 모양의 노커가 달린 현관문엔 양각 현판이 있고, 거기엔 “주께서 지키시어 주인의 정직함을 선포하시는 예호야킨 아브라바넬의 집”이라 쓰여있다. 1959년 12월 현재의 집주인은 아탈리야 아브라바넬. 당시 집주인의 손녀. 칠십 대 장애인의 이름은 게르숌 빌드. 못생긴 편으로 키 크고 좋은 몸집을 지녔으며 한쪽으로 기운 듯 굽은 등과 매부리코, 낫을 연상시키는 턱선, 숱이 많고 부드러운 백발이 목덜미까지 덮고 있었다. 여기까지 보면 서구에서 흔히 묘사하던 전형적인 유대인과 비슷하다. 샤일록도 언뜻 생각날 정도. 그러나 한 가지를 더 보태자. 양모로 만든 서리 같아 보이는 눈썹. 텁수룩한 콧수염. 만일 빌드의 털 색깔이 검기만 하다면 최후의 만찬에서 열두 제자 가운데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인물,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성당 주임신부를 모델로 해서 그린 예수의 제자, 지옥 가장 깊은 곳에서 루시퍼의 무릎에 앉아 있는 배신자 가룟 유다의 모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게르숌 빌드는 절대로 배신자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아들 미카 빌드는 징집 제외자임에도 불구하고 거짓으로 신체검사를 통과해 1948년, 유대인들은 독립전쟁이라 부르고, 아랍-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재앙”이라고 부르는 전쟁에 나가 부상한 채 홀로 고립되어 전사하고 말았다. 게르숌 빌드는 놀라울 정도의 지적 능력으로 평소 가까운 또 다른 지식인 친구들과 전화로 몇십 분씩 인용과 가차없는 비평을 섞어 지적 희롱을 즐기는 한편 밤새도록 뭔가를 쓰는 일을 계속한다. 이 노인은 슈무엘이 비록 포기한 상태이지만 그의 논문 “유대인이 본 예수”와 가룟 유다에 관한 그의 관점에 대하여 따뜻한 비판과 격려를 멈추지 않는다.
  1951년에 사망했지만 이 책의 숨은 또 한 명의 주인공인 쉐알티엘 아브라바넬. 그는 책에 한 번도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스라엘 건국 초기부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예루살렘 지역에, 아랍-팔레스타인인들과 전쟁을 통해, 무력에 의한 이스라엘을 건국한 벤구리온의 대척점에 서서, 아랍-팔레스타인과 유대인의 지속적인 공존을 통한 연합형태의 평화적 체제를 주장한 “가상의” 인물이다. 그는 유대인들이 인내심을 가지고 선의를 통해 아랍인들과 대화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공동으로 참여하는 노동조합, 유대인 정착촌에 아랍인들의 거주 인정, 유대 학교의 아랍인 재학 등의 방법을 제시하며, 오직 유대인들에게만 소속된 통치기관을 갖춘 독립적인 유대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가식적인 생각을 버리자고 촉구했다. 그의 평화이론은 당연히 유대-아랍의 전쟁에 돌입하자마자 배척되기에 이르고, 쉐알티엘 아브라바넬은 거의 모든 유대인으로부터 배신자의 낙인이 찍혀버린다. 전쟁이 끝나고 2년 후에 죽음을 맞은 쉐일티엘 아브라바넬은 자신의 모든 원고를 잘게 찢어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려버렸으며, 문서보관소와 도서관에서조차 그의 저작과 관련 회의록은 국가 비밀로 향후 30년간 공개를 하지 못하게 묶여 있는 상황이다.
  평화를 주장하고, 아랍인과의 공존을 모색하다가 국가와 민족의 배신자로 찍힌 쉐알티엘 아브라바넬의 친딸이 슈무엘을 게르숌 빌드의 말동무로 고용한 45세가량의 미인, 아탈리야 아브라바넬. 게르숌 빌드의 아들이자 독립전쟁에서 전사한 미카 빌드를 남편으로 맞았으나 슬하에 자식을 두지 못한 채 과부가 된 여인이다. 아탈리야는 한 번도 아버지의 정을 표현하지 않은 쉐알티엘 아브라바넬의 정치이념인 아랍인과의 평화공존에 기본적으로 동의하지만 결코 입 밖으로 발음하지 못할 숙명을 안고, 두 다리를 사용하지 못하는 조금 괴팍한 최고의 지식인인 시아버지와 불임의 운명을 지고 산다. 여기에 동거인으로 합해진 유대인 예수-유다 전문가이자 주인공인 슈무엘 아쉬. 이들이 민족의 배신자 가룟 유다와 쉐알티엘 아브라바넬에 관한 깊은 사색을 만들어낼 것임은 처음부터 명백하다. 물론 과정은 직접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아모스 오즈의 마지막 작품 <유다>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아모스 오즈의 바이오그래피를 알았더라면 좋을 뻔했다.
  아모스 오즈는 1939년 5월 팔레스타인 위임통치국의 예루살렘에서 아모스 클라우스너 Amos Klausner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부계 클라우스너 가문은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니우스 인근의 농부였으나, 아버지 예후다 클라우스너는 빌니우스 대학에서 역사와 문학을 공부하고 교수를 꿈꾸던 인텔리였으며, 오랜 세월을 유대 국립도서관과 유대 대학도서관에서 일했다. 어머니는 폴란드(현재는 우크라이나)에서 대규모 제분소 소유자의 섬세하고 잘 교육받은 딸로 프라하의 샤를 대학에서 역사학과 철학을 공부했지만 30년대 대공황을 만나 학업을 중단했다.
  오즈의 아버지는 16~17개의 언어에 능통했고, 어머니 역시 7~8개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으나 이스라엘의 공용어인 히브리어엔 능숙하지 못해 부부간에는 폴란드어와 러시아어로 의사소통을 했다. 그러나 오즈에겐 새 히브리어만 사용하도록 종용한다.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의 히브리 문학과 학과장이었던 백부 요셉 클라우스너를 비롯한 가족 거의 모두가 우익인 보수 민족주의 입장에 있었고, 심지어 극우 노선의 헤루트 정당 간부를 지내기도 했다. 오즈는 열네 살에 집을 나와 시온주의자 노동자의 자격으로 훌다 키부츠에 들어가고 거기에서 클라우스너라는 성을 버리고 오즈로 개명한다.
  이런 오즈에게 큰 변화를 일으킨 것이 1967년의 6일 전쟁에서 골란 고원 전투에 참전한 일이다. 이스라엘은 단 6일 만에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의 코를 깨뜨리고 승리를 쟁취하긴 했지만, 이 전쟁을 통해 오즈는 어떻게 하면 이스라엘 땅이기 전에 팔레스타인 땅이었던 곳에서 유대-아랍의 평화를 지속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두 개의 국가”라는 해결책을 제시하기에 이른다. 평화주의자로 변신한 오즈는 실제로 신문 ‘다바르’지에 “조상들의 땅”이란 기사를 게재하고, 1978년에는 “피할 수 없는 분쟁도 추악한 분쟁”이라 글을 쓰며 “즉시 평화” 단체를 구성해, 투쟁과 전쟁을 생존수단의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 삼는 이스라엘 국민과 정부로부터 “배신자”라는 호칭을 부여받는다.
  즉 작품 <유다>의 안 보이는 주인공 쉐알티엘 아브라바넬은 정치적 인간으로 아모스 오즈 본인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해석은 아니다. <유다>가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 될 줄은 몰랐겠지만 이제 죽음의 침상이 멀지 않았음을 알고 있던 오즈는, 아랍인과의 공존이라는 평화 주장과, 그로 인해 자신이 받을 수밖에 없던 “배신자”라는 멸칭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싶었을 것이다. 무려 50년 동안 평화와 공존을 주장했던 노 작가의 마지막 화해를 위한 역작. 그것이 소설 <유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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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9-09 10: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벌써(!) 중고로(최상 등급으로) 나왔기에 냉큼 샀습니다요.

Falstaff 2021-09-09 10:53   좋아요 3 | URL
전 새 책 샀는데요, 출판사 제공 도서 우짜구 해서 김이 좀 샜습니다.
좀 더 기다렸다가 중고 최상으로 살 걸 그랬습니다. 흑흑....

청아 2021-09-09 11: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유다>여서 바로 다자이 오사무의 <직소>가 생각났는데요. 읽어보니 전혀 다른 방식의 접근이네요! 오즈와 같은 생각이 배신자로 까지 낙인찍힌다는것도 너무 안타깝구요. 꼭 읽어볼래요!

Falstaff 2021-09-09 11:21   좋아요 3 | URL
ㅎㅎㅎ 백자평에 언질을 했듯이 쉽게 휙휙 넘어가는 작가는 아니더라고요.
다 읽으면 읽기를 잘 했다, 라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

mini74 2021-09-09 15: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의 미카엘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 책은 조금 결이 다르네요. 작가님이 배신자취급을 당했군요. 저도 중고 최상급을 기다려야 하나요. ㅎㅎ

Falstaff 2021-09-09 15:44   좋아요 1 | URL
읍! 나의 미카엘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아우.....
전 그 책, 길지도 않은데 읽느라 아주 혼이 났습니다. 다른 책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가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가 아주 좋더군요. 그 책 아니었으면 아마 <유다>를 읽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어요. ㅎㅎㅎㅎ 역시 여러가지 감상이 있어야 좋습니다!!!

mini74 2021-09-09 15:47   좋아요 1 | URL
ㅎㅎㅎ 남자들은 이 책 싫어하더라고요. 욕 많이 먹는 한나ㅠㅠ

그레이스 2021-09-09 15: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드뎌 리뷰를 쓰셨네요
무게가 다르네요
쉽게 읽어갈 수 없다고 하신 이유를 알겠네요
다시 한번 깨달은 것!
책을 받았을때 읽어야한다. 미루지 말고!

Falstaff 2021-09-09 15:45   좋아요 2 | URL
ㅎㅎㅎㅎ 맞습니다. 사면 읽어야 해요!
때려 치우더라도 읽다가 때려 쳐야 합지요! ㅋㅋㅋㅋ
 
사서
옌롄커 지음, 문현선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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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아송>,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레닌의 키스>에 이어 네 번째 읽은 옌롄커.
  1958년 8월에 중국 허난성 뤄양시 쑹현현(현 정부는 청관진 소재)에서 태어난 옌롄커(閻連科). 내가 알 수 있는 옌 씨의 출생지는 쑹현 현까지다. 쑹현 현에 속한 마을이거나 현의 수도인 청관진(鎭)일 수도 있겠다.
  이렇게 자세하게 중국의 행정구역을 소개하는 이유는 이러하다.
  이 작품 <사서>는 중국에서 천지개벽, 즉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어 전 중국 각지에서 먹물이 들었거나, 중산계급 이상이거나, 동네 이장에게 미운털이 박혔거나 하는 인물들을 몽땅 색출해 ‘하방’이란 이름으로 시골지역으로 이주시키고, 이들에게 “노동을 통한 재탄생”의 기회를 주었을 당시를 시간적 공간으로 한다.
  장소는, 중원 땅 황허 남쪽 본류에서 백여 리 떨어진 광활한 모래사장으로 명나라 시대부터 대표적인 유배지였으나 수백 년 동안 유배 온 죄수들의 제방공사와 토지 비옥화 작업으로 땅이 ‘땅의 꼴’을 잡자마자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어 이젠 유기수들이 노동교화로 곡식과 면화를 심는 대농장으로 이름을 위신구(育新區)라고 하는데, 이 안에 모두 99개의 구(區)가 있으며, 총 구성원 127명 가운데 95퍼센트를 중국의 최상급 지식인들로 모아놓은 마지막 제 99구를 만들었다. 작가 옌 씨는 이 제 99구를 책임지고 인솔하는 인물을 ‘아이’, 말 그대로 코밑에 솜털만 난 10대 초중반 남자 아이로 설정했다.
  이 문제적 아이, ‘아이’는 당연히 본명이 있지만 책에서 단 한 번도 이름을 소개하지 않는다. 이 아이는 공화국 설립 전에 한 여자아이가 일본인의 심문에도 정보를 말하지 않았다가 일본인에 의하여 작두로 목이 잘렸으나, 공화국 설립 후에 국가 영웅으로 추앙받는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아 자신의 99구가 수확 목표량, 달성 수준에 사활을 걸어 터무니없는 목표설정과 달성 재촉에 저항하는 구성원들에게 자신의 작두를 앞에다 내놓고 작두날 안에 자기 목을 집어넣고는, 어서 내 목을 잘라라, 아니면 달성목표에 동의하라, 이런 식으로 99구를 끌어간다.
  하여튼 아이가 이끄는 99구는 터무니없이 높은 목표량과 밀 농업 이후 강철제련 목표에서 훌륭한 달성률을 보여 자신의 상부인 진, 현, 시, 성의 칭찬과 시상을 성취하고, 이어서 베이징에 상부의 상부의 상부, 즉 마오로부터도 근사한 상을 받아내 본인이 영웅으로 불리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데 이런 야망은 혼자만 가지고 있나. 아이의 99구는 현에서 가장 특별한 성취를 올리기는 했으나 현장은 99구의 결과에 2등 상을 수여함으로써 아이의 베이징 행을 막아버리고 다른 당근의 제시하여 또 직사하게 일만 하도록 만든다.
  아이의 꿈. 진-현-시(책에서는 지구地區)-성-수도로 이어지는 영달의 로얄 로드가 작품을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 되기 때문에 저 앞에서 행정구역 소개를 상세하게 했다.
  하여튼 이 왕도는 정말 대단한 것이라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수학, 화학, 물리, 생물 등의 올림피아드를 중국이 싹쓸이 하는 이유도 이 왕도를 또박또박 걷는 학생들만 선발하기 때문이다. 올림피아드 출전 대상자 서너 명을 뽑기 위해 전국 23개 성, 5개 자치구, 4개의 직할시에서 과목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딱 한 명만 선발해 모두 32명의 학생이 최종 시험을 치룬다고 한다. 중국 인구가 14억 명이다. 말이 14억이지, 우주공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중국 땅에 사시는 모든 중국인들의 분변 슬러지를 드럼통에 담아 그걸 한 줄로 세울 경우 304일 만에 달에 도달해, 인류는 오직 중국인이 싸질러 놓은 똥오줌 슬러지만 부여안고 달까지 기어 올라갈 수 있다는 걸 감안해보시라. 그렇게 촌-진-현-시-성-수도의 왕도는 멀고도 먼 고난의 길이다.

 

  제일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겨우 네 작품을 읽고 옌롄커가 이렇다, 저렇다 하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사서 四書>는 제목만 딱 보면 『시경』과 매우 관련이 있는 <풍·아·송 風·雅·頌>과 유사할 거 같지만 내용은 <레닌의 키스>에 가깝다. <레닌…>에서 레닌의 시신을 망해버린 소비에트에서 구입해 와 현을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키우겠다는 허황된 야망에 찬 현장 류잉췌의 도전기가, <사서>에서는 아이가 현장의 귀띔을 받아 맹목적인 도전을 감행하는 것과 유사하고, 실제로 중국의 현대사에 있었던 1950년대 대기근으로 곳곳에서 아사자가 속출했던 비극도 <레닌…>에 이어 다시 재현된다. 하방 지식인이 등장하는 작품도 낯설지 않다. 천쯔두와 주샤오핑의 공동작품인 <뽕나무벌 이야기>를 비롯한 드라마, 소설 등을 이미 읽었다.
  아직까지도 공산주의 체제가 과시해온 ‘프롤레타리아 독재’, 즉 한 명의 지배자가 불쑥 나타나 무진장 오랫동안 프롤레타리아를 대상으로 독재체제를 마음대로 펼치는 정치구조를 자랑하는 중화인민공화국도, 역사상 모든 프롤레타리아 독재국가가 그랬듯, 프롤레타리아의 생생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유난히 싫어한다. 그런데 여태 내가 읽은 옌 선생의 작품을 보면 하나같이 지식인들의 타락과 도시빈민을 넘는 도시천민과 시골 극빈자들의 험한 광경을 날것으로 보여주기에 머뭇거림이 없다. 상황이 이러니 가뜩이나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여념이 없는 출판업계가 흔쾌하게 옌렌커의 작품을 찍어줄 턱이 없어서, 옌렌커는 자신의 현실 풍자적인 작품에 대하여 수시로 자기 검열을 한단다. 오직 하나, 진짜 검열에 걸리지 않기 위해.
  그러니까 최고 지식인들의 하방, 농업이란 육체노동을 통한 의식 개조 또는 재탄생, 40년대 후반의 강철제련운동, 대기근 등을 거치며 중국에서 가장 위대한 <유물론>의 번역본을 낸 학자마저 풀씨를 먹는 참새의 똥을 삼키는 장면 역시 옌렌커의 자기검열을 통한 것이라 봐야 하니까 그의 자기검열 필터가 성기긴 한 모양이다.
  책에 등장하는 99구의 인물을 거론하면, 책임자이자 권력자인 아이, 구성원의 일상을 “죄인록”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아이에게 일러바치는 작가, 참새의 똥을 삼키는 <유물론>의 대가인 학자, 학자와 사랑에 빠진 1세대 자수성가형 음악가이자 피아니스트, 성서를 발로 밟으면 혜택을 주겠다는 아이의 제안을 거절하는 종교(인), 한자 자전과 사전편찬에 권위를 떨친 바 있는 교수, 놀라운 아이디어로 성에서 최고의 철 제련 성과를 만들어내고 위신구를 빠져나가는 실험(조교) 등이다. 이들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부터 문화혁명시대까지 막 섞여있는 것처럼 보이는 작품 속에서 매 페이지마다 희열 없는 고초를 겪으며 오직 하나, 집단 노동교화 농장 위신구를 벗어나 자기 집, 가족, 직장으로 돌아갈 희망 속에서 고난을 겪거나 고난에 대항해 부러져 세상을 뜨고 만다.

 

  여기까지라면 아무 이의 없다. 근데 옌렌커가 좀 무리하는 게 눈에 띈다. 결정적 무리는 책의 마지막 장면에 나온다. 그래서 독자로 하여금 넋이 나가게 해, 에이 썅, 이게 뭐야 여기까지 잘 와서, 이런 생각이 들게 하지만 그것 때문에 이 책을 읽지 말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아무리 중화인민공화국에 살고 있는 작가가 하더라도 3백 년 전에 옌롄커가 이 책을 썼다면 로마 교황청에서(교황은 무슨, 교왕이면 됐지, 라고 여기는 유물론자인 내가 보기에도) 보낸 암살자에 의해 쥐도 새도 모른 새에 죽어 자빠지든지, 이탈리아나 스페인까지 유괴당해 화형에 처해졌을 거라고 확신한다. 전혀 동의할 수 없을 정도로 근거 없고 난데없는 무리수라고 보이나 어디까지나 나는 아마추어다. 변죽만 울리고 입 싹 닦으면 얄밉기는 할 텐데, 그렇다고 왜 이런 의견을 피력하는지는 알려드릴 수 없다. 당연히 스포일러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에필로그 격인 마지막 장 <시시포스의 신화>. 그걸 왜 넣었을까? 독자에 따라 상당히 의미심장하게 읽는 것 같지만 내 눈엔 진짜 잘 그린 뱀 다리다. 본문 가운데 아이와 작가가 수레를 끌고 40도 경사의 언덕을 오르는 장면 나오면 됐지 뭘 더 원하는 게 있다고 시시포스의 신화 운운하는지. 말이 나왔으니 하는 건데, 40도 경사는 언덕이라고 부르지 않고 “산” 메산山 자를 쓴다. 그런 경사를 무거운 수레에다 손만 척 얹고 슬슬 걸어가는 장면 나오잖는가 말이지. 제주도 가면 도깨비 언덕이라고 부르는 곳. 보기엔 오르막인데 차에 기어 빼 놓으면 차가 저절로 오르막을 기어 올라가는 착시를 유발하는 장소. 중국이라서 오르막이 40도 경사라고 우겨도, 중국인들의 유서 깊은 과장과 허풍을 미리 감안해서 들을 줄 아는 동방예의지국 사람들이, 구태여 시시포스의 신화라고 쓴 시시포스의 구라까지 읽을 필요는 없었을 거 같다는 촌평. 아쉽다. 이런 것들을 감안해도 참 잘 읽은 소설인데, 뱀의 다리가 확실히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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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9-07 12: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음..리뷰읽고 달려가서 미리보기로 조금 읽어보니 재밌을것 같은데요. 풍자와 은유로 점철된듯한 느낌.
무리수가 심해 뱀 다리가 길다 하신거죠? 결정적 무리수가 너무 궁금합니다🤔

Falstaff 2021-09-07 13:00   좋아요 3 | URL
이 책은 제가 아는 분이 최고의 옌롄커라고 자신있게 얘기해서 선택했습니다만, 기대가 워낙 커서 그랬든지 하여튼 거기까지는 가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말씀하신대로 풍자, 은유, 해학 등등이 난만해서 끝까지 재미나게 읽히더라고요. 옌롄커가 워낙 입심이 좋은 작가라 일단 기본으로 별 두 개는 먹고 들어가니까요. ㅋㅋㅋ
도서관이나 중고책 구입하시면 좋겠습니다. 결정적 무리수는 사실 책의 앞에 조금 맛보기로 나오는 건데요 그걸 구체적으로 확 터뜨려버리는.... 하여튼 그런 거 있습니다. ㅎㅎㅎ

행복한책읽기 2021-09-07 13:2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검열 예방작에 저 정도 표현이 등장한 걸 보니. 과연 검열 그물이 성기나 봐요. 뱀이 예전엔 진짜루 다리가 있었대요. 과학적으로 증명이 됐다죠. ㅋ 저는 폴스타프님 리뷰로 이 작품 읽은 걸루^^;;

Falstaff 2021-09-07 13:43   좋아요 2 | URL
뱀한테 진짜 다리가 있던 때가 아마 6.25 전이죠? ㅋㅋㅋㅋ
옌롄커가 좀 거칠어서 안 좋아하시는 분도 많습니다. 괜찮은 선택입니다. ^^

coolcat329 2021-09-07 17: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옌렌커 책이네요~^^물론 안 읽었지만요. 별4개니 그냥 기분좋네요.
사실은 이 작가 책 중 <인민을...>을 읽다가 도서관에 반납한 경험이 있습니다. 재미가 없더라구요🥱
사서는 기대해봅니다.

Falstaff 2021-09-07 19:28   좋아요 3 | URL
아후. 사셨으면 무조건 읽으셔야 합니다! 냅두면 나중에 애들이라도 읽겠지, 하는 건 걍 희망사항이예요!!!! ㅋㅋㅋㅋ
인민봉사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그만큼 야~하지도 않고요. ㅋㅋㅋㅋ
 
- 문정희 시집 민음의 시 205
문정희 지음 / 민음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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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정희의 시는 수십 년 전부터 숱한 문학지를 통해 읽어왔다. 잡지에서 읽은 몇 편의 시를, 마치 시인의 거의 모든 작업을 읽은 것으로 확대하는 오류를 겪은 나머지 정작 시집을 사 읽을 생각을 못했다. 그게 여기까지, 오늘까지 온 거다. 근 40년. 그것 참 희한하지. 진짜로 이이의 시를 읽어보니까, 낯설다. 시인의 나이 예순여덟에 낸 시집인데 시는 아직도 알통이 울근불근하다. 목청 또한 귀에 익숙한 메조소프라노의 맹렬한 구호 선창 같다. 예를 들어 두 번째 실린 <강>이란 시를 보면,

 

 

  어머니가 죽자 성욕이 살아났다
  불쌍한 어머니! 울다 울다
  태양 아래 섰다
  태어난 날부터 나를 핥던 짐승이 사라진 자리
  오소소 냉기가 자리 잡았다

 

  드디어 딸을 벗어 버렸다!
  고려야 조선아 누대의 여자들아, 식민지들아
  죄 없이 죄 많은 수인(囚人)들아, 잘 가거라
  신성을 넘어 독성처럼 질긴 거미줄에 얽혀
  눈도 뒤도 없이 늪에 사는 물귀신들아
  끝없이 간섭하던 기도 속의
  현모야, 양처야, 정숙아,
  잘 가거라, 자신을 통째로 죽인 희생을 채찍으로
  우리를 제압하던 당신을 배반할 수 없어
  물 밑에서 숨 쉬던 모반과 죄책감까지
  브래지어 풀듯이 풀어버렸다

 

  어머니 장례 날, 여자와 잠을 자고 해변을 걷는 사내여
  말하라, 이것이 햇살인가 허공인가
  나는 허공의 자유, 먼지의 고독이다
  불쌍한 어머니, 그녀가 죽자 성욕이 살아났다
  나는 다시 어머니를 낳을 것이다 (전문)

 


  척 봐도 여성주의 시다. 그런데 스타일은 80년대 구호가 생각난다. 물론 시집의 초판이 2014년이라 지금 시각으로 볼 때 조금 촌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80년대 구호니 뭐니 이리 까탈을 잡는 것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사실인 것을 어떻게 하나. 독자가 그렇게 읽었다니 말이지. 엄마가 죽고, 장례를 지내고, 마리를 만나 영화를 본 다음에 한 침대에 든다. 며칠 후 식민지 알제 해변에서 권총으로 아랍 청년을 쏴 죽이는 뫼르소. <이방인>을 모티브로 문정희는 고려, 조선, 누대의 여인들, “식민지들”, 이라고 했으니 뫼르소가 살인을 저지른 프랑스의 식민지 알제리도 포함하여, 죄 없이 죄 많은 수인, 과거의 여성들 또는 여성형과의 이별, 단절을 선언한다. 여성 압제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했던 현모, 양처, 정숙을 대표 개념으로 해서. (몇 년 후에는 우리의 퍼스트레이디가 될 ‘정숙’까지 이별, 단절의 대상으로 한 걸 후회했을지도 모르지만 뭐.) 그래 현모와 양처와 정숙이란 어머니를 장사지내고 새로운 개념과 사랑을 나눠 새로운 어머니, 새 여성형을 낳겠다는 건데.
  왜 하필이면 식민지 알제리였을까. 그냥 시인이 <이방인>을 다시 읽었든지 아니면 책꽂이에 있는 책등을 보고, 어머니를 장사지낸 후의 생식행위와 여성을 연결해 시를 쓰고 싶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여기서 ‘평화’ 한 가지를 더 포함시켰으면 어땠을까, 이왕 “식민지들”을 시 안에 초청한 바 있고, 알제리와 식민모국 청년 뫼르소가 등장했겠다, 과거 식민해소를 위한 전쟁의 종식과 평화의 유지를 기원하면 그림이 더 커지고 좋았을 텐데. 전쟁과 이어지는 폭력의 물결 속에서는 염병한 현모, 양처, 정숙이란 이데올로기의 종식은커녕, 새로운 여성의 탄생을 위한 사랑마저 불가능하다는 걸 시인을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도 말이다. 역사 이전 시절부터 인류의 불평등이 존재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야만이었다고 본다. 야만의 가장 구체적이고 오래된 역사적 증거는 전쟁과 폭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하여 지속적인 젠더 간 불평등의 제거를 위해 제일 먼저 모색해야 하는 건, 진영 갈등의 유발이 아니라 항구적이고 물리적인 평화에 도달하는 방법이어야 한다.
  시인이 알제의 청년을 인용한 터에 이것까지 엮어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위의 시 <강>에서 보듯, 예순여덟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문정희의 시는 팔팔하다. 노익장. 노익장? 그것도 사람 나름이지. 학교에서 은퇴하고도 여전히 힘이 펄펄 나 좁은 땅 구석구석을 다니며 시낭송회에 참가해 마치 쥐약을 판 듯 시를 읊고, 문학을 심사하고, 특강을 하고, 가끔 보내온 독자의 문자를 읽고 감동해마지 않기도 하다.

 

  시 낭송을 하고 온 날이면
  꼭 시장에 나가 쥐약을 팔고 온 것 같다
  요즘 세상에 쥐가 어디 있는가
  나의 삶은 사뭇 육체적으로 변해 버렸다
  심각한 포즈, 은은히 떨리는 음성
  문학을 심사하고 우수 추천 시인 목록을 쓰고
  특강을 하고
  독자가 보낸 문자에 감동까지 주고받고 나면
  쥐약 장사의 수완만 날로 눈부신 것 같다 (<쥐약> 1연)

 

  자신의 삶, 이라기보다 요즘/노후 생활을 겸손하게 그린 것이리라. 나도 그렇게 읽었다. 그러다가 몇 분이 지나서 시집을 뒤적거리다 다시 읽어보니까, 이 시를 만일 만년 시인 지망생, 혹은 실력은 있으나 유명하지 않아 팔리지 않는 시인이 읽으면 참 거시기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명시인이 보기에 문정희가 얼마나 부러울까.
  시집에 들어있는 시를 크게 분류하면 ① <강>과 비슷한 여성주의, ② <쥐약> 류의 시인 자신의 모습, ③ 시인들의 끝나지 않는 고민인 시에 관한 사색, 그리고 ④ 기타, 이렇게 거칠게 네 가지 주제로 나눌 수 있겠다. ③의 범주에 드는 재미있는 시가 있어 소개한다.

 


 나의 펜

 


  나의 펜은 페니스가 아니다*
  나의 펜은 피다

 

  하늘이여 새여
  먹어라

 

  아나! 여기 있다
  나의 암흑
  나의 몸
  새 땅이다

 

  너에게 주는 선물이다

 

  두 번은 없다    * Pen is penis 변용 (전문)

 


  첫 행, “나의 펜은 페니스가 아니다”에 퍽, 한 방 맞은 느낌. 영어로 Pen is penis를 반대로 말한 거다. 음, 그런 뜻이군. 했다. 그럼 우리말로 하면 이건가? “나의 펜은 좆도 아니다.” 노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좆이 뭐냐, 좆이? 좋다 순화된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 그게 그거인 외래어, 중국어를 써서 다시 해석해보자. “나의 펜은 음경이 아니다.” 아, 이건 또 너무 해부학적이다. 시니까 시인의 여성주의 철학을 넣어서, “나의 펜은 남근이 아니다.” 좋다. 그럼 그렇다 치고 첫 연을 보면, “나의 펜은 남근이 아니다 / 나의 펜은 피다” 이런. 남근 수난시대. 평생 거꾸로 매달려 흔들리다가 왼쪽 다리에 차이고, 오른쪽 다리에 걷어차이며 살아야 하는 운명을 지닌 슬픈 기관이다. 사실 그게 하늘을 향해 불쑥 솟아오르지 않으면 진짜 볼 거 없는 부속물인데, 언제부터인지 야만과 폭력, 특히 성폭력과 마초의 대명사로 불리기 시작해 나름대로 불만이긴 할 터. 하지만 참아라. 오랜 세월 동안 해 온 업보가 있으니. 문정희가 쓰는 시는 이제 피다. 생명의 씨톨이 되는 건 포기했지만, 생명의 중추적인 순환계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니 하늘과 새에게 먹으라고 자신을 내던진다. “아나! 여기 있다”고. 근데 말이지, 시인이여 부탁이 있으니 제발 나한텐 주지 마시라. 당신의 암흑, 당신의 몸, 새 땅을 먹을 마음이 없으니. 문정희의 시와 나는 아무래도 합이 맞지 않는 거 같다. 나는 외침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이는 구호 선창에 능한 것처럼 보인다.
  이런 시도 있다.

 


  스무 살

 


  스무 살은 나이가 아니라 눈부심이다
  커피에 적시어 먹는 마들렌처럼
  부드럽고 달콤하다가 그만 사라진다
  눈만 크고 괜히 사나운 고양이같이 야옹거리며
  별 하나를 캐 보려고
  궁리하는 사이
  스무 살은 산뜻한 돌림병처럼 왔다 간다
  그 바람에 첫사랑이 스쳐 가는 것도 모른다

 

  스무 살은 고귀한 보석을 거기 두고 온 것을 알고
  남은 생애 동안
  두 눈이 빠지도록 그리워하는 풀밭이다

 

  날개를 펴서 미처 부딪혀 보기도 전에
  자유보다 더 많은 상처를 증거처럼 남기고
  얼떨결에 떠나 버린다 (전문)

 


  와우! 브라보! 저런 스무 살을 겪은 모든 인류에게 경배를! 스무 살이 눈부심이라고? 지나고 보니? 음. 시인은 아무래도 근본이랄까 태생이랄까, 아니면 종족 자체가 아예 나하고는 다른 거다. 스무 살은 혼돈이었는데. 부드럽고 달콤하게 사라진다? 아이고, 나도 저렇게 한 번 살아나 보고 여기까지 왔어야 했다.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고, 하는 일마다 쿵쿵 보이지 않는 벽에 마빡을 부딪는 진퇴양난의 시절. 그게 나의 스무 살이었는데. 시인은 얼마나 좋았을까. 저런 시절을 이렇게 소중하게, 늙어서까지 가지고 있을 수 있으니. “고귀한 보석”같은 스무 살로 얼마나 돌아가고 싶을까. 부럽다, 진심으로. <쥐약>을 읽는 무명시인의 마음이 <스무 살>을 읽는 내 마음과 비슷하겠지. 썅.
  그래도 마음에 드는 시 하나는 찾았다. 이거나 읽고 떨어져야겠다.

 


  물구나무

 


  하늘을 좀 즐겁게 해 드리려고
  하늘 향해
  두 다리를 활짝 벌렸다

 

  꽃이 피면
  하늘과 땅이 함께 웃으시겠지!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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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9-06 10:0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가만보니 시집 제목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네요.
(리뷰 다 읽고 제목을 봤어요)
페니스 Pen is 는 좀 아재개그같지만🙄
폴스타프님 덕분에 재밌게 문정희를 읽었습니다. 폴스타프님
분석도 알통이 울근불근!

Falstaff 2021-09-06 10:19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기분이 좋고 어깨가 으쓱으쓱해집니다!
아이고, 전 분석 못해요. 그냥 읽은 감상이 그렇다, 하는 겁지요. ㅋㅋㅋㅋ

잠자냥 2021-09-06 12:54   좋아요 2 | URL
Pen is penis 증말 아재개그네요. 아 미쳐... ㅋㅋㅋㅋ ㅠㅠ

붕붕툐툐 2021-09-06 12: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니스에 대한 단상 잘 읽었습니다. 새로운 관점이네요~ㅎㅎ
스무살은 스무살 제 조카에게 보내줘야겠어요~^^

Falstaff 2021-09-06 12:27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 물구나무 재밌지 않나요?
스무살 조카한테 보여주시면 어떻게 읽을지 궁금합니다. ㅎㅎㅎㅎ

새파랑 2021-09-06 13: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스무살> 시는 정말 좋네요. <나의 펜>은 마치 폴스타프님이 쓰신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Falstaff 2021-09-06 14:25   좋아요 3 | URL
아오, 새파랑님도 혹시 저하고 안 맞는 거 아녀요?
스무살이 좋아요? 아이고.. ㅋㅋㅋㅋㅋㅋㅋㅋ
내 펜은 뭐 그렇다고 쳐도 말입죠. ㅎㅎㅎㅎ

새파랑 2021-09-06 13:27   좋아요 3 | URL
아 폴스타프님은 안좋으셨군요 😅 저는 폴스타프님도 좋다고 생각을 했나봐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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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진탕 마셨다. 아침에 깨니 미안하다. 해장으로 콩나물국 끓이고 달걀 프라이 두 개 부친다. 딤채에서 새 김치 꺼낸다. 밥 두 공기 푸고 아내를 깨운다. 술마시고 왔으니 이 정도 해도 괜찮다. 커피 내려 가져다 바친다. 늙은 아내, 트림 꺽하고는 산미 좋고 맛있는데! 기분좋다. 얻어맞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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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9-04 09: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불금에는 진탕 술이죠~!! 역시 프로필 사진과 행동 일치

Falstaff 2021-09-04 09:27   좋아요 3 | URL
ㅋㅋㅋ 일용할 양식이지요!

초딩 2021-09-05 2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나쁘지 않은 술 마신 다음 날의 전경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