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정희 시집 민음의 시 205
문정희 지음 / 민음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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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정희의 시는 수십 년 전부터 숱한 문학지를 통해 읽어왔다. 잡지에서 읽은 몇 편의 시를, 마치 시인의 거의 모든 작업을 읽은 것으로 확대하는 오류를 겪은 나머지 정작 시집을 사 읽을 생각을 못했다. 그게 여기까지, 오늘까지 온 거다. 근 40년. 그것 참 희한하지. 진짜로 이이의 시를 읽어보니까, 낯설다. 시인의 나이 예순여덟에 낸 시집인데 시는 아직도 알통이 울근불근하다. 목청 또한 귀에 익숙한 메조소프라노의 맹렬한 구호 선창 같다. 예를 들어 두 번째 실린 <강>이란 시를 보면,

 

 

  어머니가 죽자 성욕이 살아났다
  불쌍한 어머니! 울다 울다
  태양 아래 섰다
  태어난 날부터 나를 핥던 짐승이 사라진 자리
  오소소 냉기가 자리 잡았다

 

  드디어 딸을 벗어 버렸다!
  고려야 조선아 누대의 여자들아, 식민지들아
  죄 없이 죄 많은 수인(囚人)들아, 잘 가거라
  신성을 넘어 독성처럼 질긴 거미줄에 얽혀
  눈도 뒤도 없이 늪에 사는 물귀신들아
  끝없이 간섭하던 기도 속의
  현모야, 양처야, 정숙아,
  잘 가거라, 자신을 통째로 죽인 희생을 채찍으로
  우리를 제압하던 당신을 배반할 수 없어
  물 밑에서 숨 쉬던 모반과 죄책감까지
  브래지어 풀듯이 풀어버렸다

 

  어머니 장례 날, 여자와 잠을 자고 해변을 걷는 사내여
  말하라, 이것이 햇살인가 허공인가
  나는 허공의 자유, 먼지의 고독이다
  불쌍한 어머니, 그녀가 죽자 성욕이 살아났다
  나는 다시 어머니를 낳을 것이다 (전문)

 


  척 봐도 여성주의 시다. 그런데 스타일은 80년대 구호가 생각난다. 물론 시집의 초판이 2014년이라 지금 시각으로 볼 때 조금 촌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80년대 구호니 뭐니 이리 까탈을 잡는 것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사실인 것을 어떻게 하나. 독자가 그렇게 읽었다니 말이지. 엄마가 죽고, 장례를 지내고, 마리를 만나 영화를 본 다음에 한 침대에 든다. 며칠 후 식민지 알제 해변에서 권총으로 아랍 청년을 쏴 죽이는 뫼르소. <이방인>을 모티브로 문정희는 고려, 조선, 누대의 여인들, “식민지들”, 이라고 했으니 뫼르소가 살인을 저지른 프랑스의 식민지 알제리도 포함하여, 죄 없이 죄 많은 수인, 과거의 여성들 또는 여성형과의 이별, 단절을 선언한다. 여성 압제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했던 현모, 양처, 정숙을 대표 개념으로 해서. (몇 년 후에는 우리의 퍼스트레이디가 될 ‘정숙’까지 이별, 단절의 대상으로 한 걸 후회했을지도 모르지만 뭐.) 그래 현모와 양처와 정숙이란 어머니를 장사지내고 새로운 개념과 사랑을 나눠 새로운 어머니, 새 여성형을 낳겠다는 건데.
  왜 하필이면 식민지 알제리였을까. 그냥 시인이 <이방인>을 다시 읽었든지 아니면 책꽂이에 있는 책등을 보고, 어머니를 장사지낸 후의 생식행위와 여성을 연결해 시를 쓰고 싶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여기서 ‘평화’ 한 가지를 더 포함시켰으면 어땠을까, 이왕 “식민지들”을 시 안에 초청한 바 있고, 알제리와 식민모국 청년 뫼르소가 등장했겠다, 과거 식민해소를 위한 전쟁의 종식과 평화의 유지를 기원하면 그림이 더 커지고 좋았을 텐데. 전쟁과 이어지는 폭력의 물결 속에서는 염병한 현모, 양처, 정숙이란 이데올로기의 종식은커녕, 새로운 여성의 탄생을 위한 사랑마저 불가능하다는 걸 시인을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도 말이다. 역사 이전 시절부터 인류의 불평등이 존재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야만이었다고 본다. 야만의 가장 구체적이고 오래된 역사적 증거는 전쟁과 폭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하여 지속적인 젠더 간 불평등의 제거를 위해 제일 먼저 모색해야 하는 건, 진영 갈등의 유발이 아니라 항구적이고 물리적인 평화에 도달하는 방법이어야 한다.
  시인이 알제의 청년을 인용한 터에 이것까지 엮어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위의 시 <강>에서 보듯, 예순여덟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문정희의 시는 팔팔하다. 노익장. 노익장? 그것도 사람 나름이지. 학교에서 은퇴하고도 여전히 힘이 펄펄 나 좁은 땅 구석구석을 다니며 시낭송회에 참가해 마치 쥐약을 판 듯 시를 읊고, 문학을 심사하고, 특강을 하고, 가끔 보내온 독자의 문자를 읽고 감동해마지 않기도 하다.

 

  시 낭송을 하고 온 날이면
  꼭 시장에 나가 쥐약을 팔고 온 것 같다
  요즘 세상에 쥐가 어디 있는가
  나의 삶은 사뭇 육체적으로 변해 버렸다
  심각한 포즈, 은은히 떨리는 음성
  문학을 심사하고 우수 추천 시인 목록을 쓰고
  특강을 하고
  독자가 보낸 문자에 감동까지 주고받고 나면
  쥐약 장사의 수완만 날로 눈부신 것 같다 (<쥐약> 1연)

 

  자신의 삶, 이라기보다 요즘/노후 생활을 겸손하게 그린 것이리라. 나도 그렇게 읽었다. 그러다가 몇 분이 지나서 시집을 뒤적거리다 다시 읽어보니까, 이 시를 만일 만년 시인 지망생, 혹은 실력은 있으나 유명하지 않아 팔리지 않는 시인이 읽으면 참 거시기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명시인이 보기에 문정희가 얼마나 부러울까.
  시집에 들어있는 시를 크게 분류하면 ① <강>과 비슷한 여성주의, ② <쥐약> 류의 시인 자신의 모습, ③ 시인들의 끝나지 않는 고민인 시에 관한 사색, 그리고 ④ 기타, 이렇게 거칠게 네 가지 주제로 나눌 수 있겠다. ③의 범주에 드는 재미있는 시가 있어 소개한다.

 


 나의 펜

 


  나의 펜은 페니스가 아니다*
  나의 펜은 피다

 

  하늘이여 새여
  먹어라

 

  아나! 여기 있다
  나의 암흑
  나의 몸
  새 땅이다

 

  너에게 주는 선물이다

 

  두 번은 없다    * Pen is penis 변용 (전문)

 


  첫 행, “나의 펜은 페니스가 아니다”에 퍽, 한 방 맞은 느낌. 영어로 Pen is penis를 반대로 말한 거다. 음, 그런 뜻이군. 했다. 그럼 우리말로 하면 이건가? “나의 펜은 좆도 아니다.” 노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좆이 뭐냐, 좆이? 좋다 순화된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 그게 그거인 외래어, 중국어를 써서 다시 해석해보자. “나의 펜은 음경이 아니다.” 아, 이건 또 너무 해부학적이다. 시니까 시인의 여성주의 철학을 넣어서, “나의 펜은 남근이 아니다.” 좋다. 그럼 그렇다 치고 첫 연을 보면, “나의 펜은 남근이 아니다 / 나의 펜은 피다” 이런. 남근 수난시대. 평생 거꾸로 매달려 흔들리다가 왼쪽 다리에 차이고, 오른쪽 다리에 걷어차이며 살아야 하는 운명을 지닌 슬픈 기관이다. 사실 그게 하늘을 향해 불쑥 솟아오르지 않으면 진짜 볼 거 없는 부속물인데, 언제부터인지 야만과 폭력, 특히 성폭력과 마초의 대명사로 불리기 시작해 나름대로 불만이긴 할 터. 하지만 참아라. 오랜 세월 동안 해 온 업보가 있으니. 문정희가 쓰는 시는 이제 피다. 생명의 씨톨이 되는 건 포기했지만, 생명의 중추적인 순환계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니 하늘과 새에게 먹으라고 자신을 내던진다. “아나! 여기 있다”고. 근데 말이지, 시인이여 부탁이 있으니 제발 나한텐 주지 마시라. 당신의 암흑, 당신의 몸, 새 땅을 먹을 마음이 없으니. 문정희의 시와 나는 아무래도 합이 맞지 않는 거 같다. 나는 외침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이는 구호 선창에 능한 것처럼 보인다.
  이런 시도 있다.

 


  스무 살

 


  스무 살은 나이가 아니라 눈부심이다
  커피에 적시어 먹는 마들렌처럼
  부드럽고 달콤하다가 그만 사라진다
  눈만 크고 괜히 사나운 고양이같이 야옹거리며
  별 하나를 캐 보려고
  궁리하는 사이
  스무 살은 산뜻한 돌림병처럼 왔다 간다
  그 바람에 첫사랑이 스쳐 가는 것도 모른다

 

  스무 살은 고귀한 보석을 거기 두고 온 것을 알고
  남은 생애 동안
  두 눈이 빠지도록 그리워하는 풀밭이다

 

  날개를 펴서 미처 부딪혀 보기도 전에
  자유보다 더 많은 상처를 증거처럼 남기고
  얼떨결에 떠나 버린다 (전문)

 


  와우! 브라보! 저런 스무 살을 겪은 모든 인류에게 경배를! 스무 살이 눈부심이라고? 지나고 보니? 음. 시인은 아무래도 근본이랄까 태생이랄까, 아니면 종족 자체가 아예 나하고는 다른 거다. 스무 살은 혼돈이었는데. 부드럽고 달콤하게 사라진다? 아이고, 나도 저렇게 한 번 살아나 보고 여기까지 왔어야 했다.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고, 하는 일마다 쿵쿵 보이지 않는 벽에 마빡을 부딪는 진퇴양난의 시절. 그게 나의 스무 살이었는데. 시인은 얼마나 좋았을까. 저런 시절을 이렇게 소중하게, 늙어서까지 가지고 있을 수 있으니. “고귀한 보석”같은 스무 살로 얼마나 돌아가고 싶을까. 부럽다, 진심으로. <쥐약>을 읽는 무명시인의 마음이 <스무 살>을 읽는 내 마음과 비슷하겠지. 썅.
  그래도 마음에 드는 시 하나는 찾았다. 이거나 읽고 떨어져야겠다.

 


  물구나무

 


  하늘을 좀 즐겁게 해 드리려고
  하늘 향해
  두 다리를 활짝 벌렸다

 

  꽃이 피면
  하늘과 땅이 함께 웃으시겠지!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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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9-06 10:0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가만보니 시집 제목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네요.
(리뷰 다 읽고 제목을 봤어요)
페니스 Pen is 는 좀 아재개그같지만🙄
폴스타프님 덕분에 재밌게 문정희를 읽었습니다. 폴스타프님
분석도 알통이 울근불근!

Falstaff 2021-09-06 10:19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기분이 좋고 어깨가 으쓱으쓱해집니다!
아이고, 전 분석 못해요. 그냥 읽은 감상이 그렇다, 하는 겁지요. ㅋㅋㅋㅋ

잠자냥 2021-09-06 12:54   좋아요 2 | URL
Pen is penis 증말 아재개그네요. 아 미쳐... ㅋㅋㅋㅋ ㅠㅠ

붕붕툐툐 2021-09-06 12: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니스에 대한 단상 잘 읽었습니다. 새로운 관점이네요~ㅎㅎ
스무살은 스무살 제 조카에게 보내줘야겠어요~^^

Falstaff 2021-09-06 12:27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 물구나무 재밌지 않나요?
스무살 조카한테 보여주시면 어떻게 읽을지 궁금합니다. ㅎㅎㅎㅎ

새파랑 2021-09-06 13: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스무살> 시는 정말 좋네요. <나의 펜>은 마치 폴스타프님이 쓰신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Falstaff 2021-09-06 14:25   좋아요 3 | URL
아오, 새파랑님도 혹시 저하고 안 맞는 거 아녀요?
스무살이 좋아요? 아이고.. ㅋㅋㅋㅋㅋㅋㅋㅋ
내 펜은 뭐 그렇다고 쳐도 말입죠. ㅎㅎㅎㅎ

새파랑 2021-09-06 13:27   좋아요 3 | URL
아 폴스타프님은 안좋으셨군요 😅 저는 폴스타프님도 좋다고 생각을 했나봐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