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희곡우체통 낭독회 희곡집 국립극단 희곡우체통 희곡집
이유진 외 지음 / 걷는사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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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희곡우체통.”
  우리나라 국립극단이 2018년부터 좋은 희곡을 발굴하기 위해 온라인을 통해 희곡을 상시 모집하고, 이 가운데 빼어난 작품을 발굴해 상금은 못 줄망정 낭독회를 열어주는 행사라고 한다. 국립극단의 희곡우체국장 김명화는 연초부터 COVID-19가 덮친 2020년을 저 옛날 역병이 창궐했던 오이디푸스 왕 치하의 테베와 비교해가며, 관객과 대면해야 진정한 생명을 얻는 연극 역시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는데 이 와중에 예전에 비하여 양은 적지만 질적으로 풍성한 작품들을, 거리두기 또는 온라인 무관객 낭독회로 할 수밖에 없었음을 아쉬워했다.
  참 좋은 제도다. 올해 초까지 주로 중국의 현대 희곡을 집중해서 읽을 기회가 있었고, 중국 현대희곡의 높은 수준에 호기심이 생겨 우리나라 현대 희곡에도 관심을 쏟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일종의 의무감 비슷한 감정이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희곡우체통”이라니. 참 예쁘장한 이름의 공모제도. 상금 백만 원보다 자기가 쓴 희곡이, 비록 무대장치와 분장, 연기는 없더라도 진짜 배우들에 의하여 무대 위에서 낭독된다는 것이 훨씬 더 영광스럽지 않겠는가. 물론 상금도 주면 금상첨화지만. 하긴 국립극단 예산이 얼마나 된다고.

 

  책 뒤, 우체국장 김명화의 작품해설은 우체국에서 선정한 작품들에 관한 내용이니 좋은 이야기만 하는 것이 당연하겠다. 나는 내 돈 주고 사 본 책이니 내가 감상한 바를 솔직하게 쓸 수 있는 것도 당연하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솔직하게 우리의 현대희곡을 읽어본 감상을 이야기하자면, 기대 이상이다.
  단, 조건이 있다. 이 책에 실린 작품을 쓴 극작가들은 거의 대부분 신인이거나, 심지어 데뷔작이라 거장 극작가들의 작품과의 수평비교는 하지 말자. 심지어 전에 읽은 중국현대희곡 작품들과도 비교하면 안 될 것이, 중국희곡을 쓴 극작가들은 몇 번의 해외공연도 해 봤을 정도로 이미 중국 연극계에서 뼈가 굵어지고 몸집마저 불린 베테랑들이라는 점. 즉, 이유진 외 다섯 명의 극작가들의 체급과 비교해 말하자면 기대 이상이었다는 것이다.
  대개 문학행위 가운데 아방가르드를 선도해가는 장르가 드라마, 희곡 아니었나? 그래서 우리 희곡작품을 고를 당시, 일단 한 권을 읽어보고, (현대)연극의 전위성 정도를 내 머리로 접수 가능하면 더 찾아 읽겠다, 해서 딱 한 권을 산 것이 아쉽다. 이왕 구입하는 김에 2018년과 2019년 희곡집까지 한 번에 들여왔으면 더 좋을 뻔했는데. 우리나라 문학의 아방가르드는 단연 시가 이끌고 나가는 것 같다. (물론, 제발 좀, 지금보다 훨씬 적은 수의 시인들이 그들의 아방가르드 리그를 벌였으면 좋겠지만.) 그리고, 내가 읽어본 현대희곡이 중국에 국한한지라, 중국의 작품과 비교해도 실험적인 작품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아니면 아직은 실험적인 작품으로 주목을 받기 쉽지 않은지도. 그래서 저절로 우리 희곡은 읽는 사람들 편하게 생활 이야기도 있고, 가까운 미래의 디스토피아로 보는 휴머니즘도 있고, 심지어 성종임금의 용안에 손톱자국을 내 사약을 받는 윤씨 이야기도 있으며, 저 유명한 체호프의 작품 뒷얘기를 꾸며낸 것뿐만 아니라, 아예 낭독극을 전제로 한 듯이 보이는 해체적 실험극도 하나 있고, 1960년대 후반의 개발독재 시절을 그린 것도 있다. 한 마디로 다양하다. 그래서 더 좋았다.

 

  다른 작품들보다 더 좋아서가 아니라 단지 제일 먼저 실렸다는 이유로 이유진의 <X의 비극>을 소개한다. 제목의 ‘X’는 사람 이름이나 이니셜, 별명이 아니고 X세대, X 제너레이션을 뜻한다. X세대는 원래 캐나다 작가 더글러스 쿠플랜드가 1960년대에 태어난 세 명의 젊은이를 칭했으나, 이제는 소위 ‘신세대’를 일컫는 말로 굳어졌다. 이 작품에서 X세대는 2010년대 말에 40대에 이른 과거의 신세대. 한때는 신세대였으나 이젠 세상이 빛의 속도로 변해가는 걸 눈 번히 뜨고 바라보지만 시대가 요구하는 속도에 맞추지 못해 도무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공포에 휩싸인 샌드위치 세대를 상징한다.
  주인공 강현서는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쉬지 않고 경쟁과 노력과 능률의 톱니 사이에서 이젠 번-아웃된 상태. 이제는 자신이 조직에 기여하는 이익보다 받아가는 급여가 더 많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했고, 더 이상 경쟁의 칼날 위에서 중심을 잡고 있기도 진저리가 나, 마치 그레고리가 하루 날 잡아 딱정벌레로 변해버렸듯이 어느 날 자리 깔고 자빠져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기 커리어를 포기하고 출산과 육아를 해온 경력단절여성 아내 안도희는 기껏 해야 최저시급을 받으며 식당 일을 할 수 있을 뿐인데, 입시를 코앞에 둔 고2 아들 강명수는 수학 과외비를 제때 내지 못하는 것을 쪽팔려 불평하고, 안도희는 남편의 죽마고우이자 의사이자 이혼남인 박우섭과 내연의 관계를 맺는 대가로 아들의 과외비를 벌어온다.
  현서의 늙은 어머니 70대 안영자는 외아들 현서를 자리에서 일으키기 위하여 자신의 작은 집을 팔아 돌팔이 중에게 전 재산을 시주해서 부적 한 장을 얻어오고, 아내, 친구, 아들은 가장의 역할을 계속할 것을 끈질기게 요구하지만, 안타깝게도 강현서는 완전히 번-아웃. 급기야 가정은 완전히 해체되고 현서는 아들의 20대 아가씨 수학과외선생인 윤애리의 제안에 따라 모종의 둘 만의 의식을 치루려 한다. 물론 몸의 관계는 아니다. 번 아웃되어 자리보전을 하는 남자가 그럴 수는 없을 테니.

 

  여섯 명의 극작가들을 검색해보았다. 인터넷에서는 이들의 자료를 거의 발견할 수 없다. 극작가 이름을 차례로 소개한다.
  이유진(2007년 등단), 박세은(데뷔), 박지선, 김수연(첫 장편희곡), 강동훈(데뷔), 홍단비. 이들의 건필과 (기필코!) 성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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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6-25 09: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희곡열풍을 주도하시는 우리의 Falstaff님, 저는 아직 물에 입수전입니다^^˝희곡우체통˝ 느낌 넘 좋은 단어인데요^^ 왠지 아기자기하면서 온기 넘치는 희곡들이 그득한 우체통 열어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이름

Falstaff 2021-06-25 10:18   좋아요 2 | URL
정말 응모전 이름 잘 지었습니다. 올해 역시 역병이 창궐한데 행사가 이어지는지 궁금하네요. ^^

잠자냥 2021-06-25 09:57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오 이런 책도(이런 제도도) 있군요! ㅋㅋ 제가 몇 년 전에 근로자문화예술제에서 희곡 작품으로 작은 상을 한 번 받았는데요. 그땐 상금도 주더라고요. 폴스타프 님 말씀처럼 상금도 상금이지만 제가 쓴 희곡으로 어느 극단에서 무대에 올려주면 정말 더 좋을 거 같은데 어디서도 연락은 오지 않.. 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6-25 10:20   좋아요 6 | URL
아이고, 극작가님이셨군요!! ㅋㅋㅋ
맞아요, 진짜 배우가 무대 위에서 자기가 쓴 극을 낭독해준다는 거 하나만 가지고도 너무너무 매력적입니다.
그때 상금으로 뭐 하셨어요? 대개 술값으로 없어지지 않나요? 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1-06-25 10:27   좋아요 4 | URL
알고 보니 폴스타프는 소설가, 잠자냥은 극작가 ㅋㅋㅋㅋㅋ
상금은 폴스타프 님이 그러셨듯이 술 쐈습니다. 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6-25 10:30   좋아요 3 | URL
그렇다니까요. 이상하지 참 거.... 글짓기 시합에서 상금 받으면 꼭 술로 조진단 말입니다. 거의 예외가 읎어요. 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1-06-25 15:33   좋아요 1 | URL
와~~극작가 잠자냥님!👏👏👏
늦게나마 축하드립니다.

잠자냥 2021-06-25 15:39   좋아요 1 | URL
쿨캣 님 / 숙취쟁이 등극을 축하한다굽쇼? 감사합니다 ㅋㅋ

- 2021-06-25 18:44   좋아요 1 | URL
뭐야. 여기 극작가랑 소설가인데 술마시는 독서가들 있어... (치..치인다..)

잠자냥 2021-06-25 22:24   좋아요 3 | URL
이보게 쟝쟝 폴스타프와 잠자냥은 한낱 주정뱅이에 숙취꾼에 봉급쟁이일 뿐이라니까!

얄라알라 2021-06-25 10:3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와! 두 작가님의 대화, 교집합이 많으시겠지만 그 핵의 핵은 술^^ 그만큼 문학성뿐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인정받으셨다는 뜻^^

Falstaff 2021-06-25 10:34   좋아요 5 | URL
아이고..... 그노무 ‘작가‘에서 전 빼주셔요. ㅜㅜ
ㅋㅋㅋㅋ 인간관계에서 인정 받은 건 사실입니다. 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1-06-25 11:12   좋아요 4 | URL
어제도 술 오늘은 숙취 이것이 인생. ㅋㅋㅋㅋ

새파랑 2021-06-25 12: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소설가에 극작가시라니 예상은 했지만 정말 놀랍네요~!

Falstaff 2021-06-25 12:13   좋아요 4 | URL
아, 글쎄 아니라니까요! ㅋㅋㅋㅋ 전 그냥 주정뱅이이자 봉급쟁이. ㅋㅋㅋㅋ

잠자냥 2021-06-25 12:16   좋아요 4 | URL
전 주정뱅이까지는 아니지만 그냥 숙취중독자에 봉급쟁이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새파랑 2021-06-25 12:19   좋아요 1 | URL
두분 정말 공통점이 많으신거 같습니다 😊 역시 술은 필수 인거 같아요~~!

coolcat329 2021-06-25 15:35   좋아요 3 | URL
아 ㅋㅋㅋ 이 두분 오늘 또 만담 시작하셨어요. 🤣

잠자냥 2021-06-25 15:40   좋아요 3 | URL
쿨캣님 들을만하우?ㅋㅋㅋ

그레이스 2021-06-25 12: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희곡에 전위성까지...!
아무래도 저는...^^;;

Falstaff 2021-06-25 12:14   좋아요 1 | URL
ㅎㅎㅎ 전위성이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는 건데요.
읽으면서 곧바로 접수가 되지 않는 작품은 없었습니다. ^^

그레이스 2021-06-25 12:19   좋아요 2 | URL
일단 그 글짜가 크게 다가온것은 희곡과 안 친한 제 탓일듯 합니다.
작품 선정시 그런 기준이 있다면, Falstaff님께 접수가 되는 작품도 제게는 힘들수 있겠다는 생각 ㅠㅠ이 드네요^^
그래서 <통쾌한 희곡의 분석>이란 책을 검색해 봤는데요
혹시 읽으셨다면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Falstaff 2021-06-25 12:28   좋아요 2 | URL
<통쾌한 희곡의 분석>... 안 읽어봤습니다.
저는 그냥 즐기자는 입장이라서 책 읽으며 따지는 걸 좋아하지 않거든요.
요즘 우리 시 읽으면서 하도 모르겠어서 해설을 좀 읽었더니 약간, 아주 약간 따지는 경향이 생겼습니다만. ㅋㅋㅋㅋ
좀 기다리시는 것도 좋습니다. 세상에 읽을 책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레이스 님하고 맞는 책만 읽으셔도 시간이 모자랍니다. ^^;;

coolcat329 2021-06-25 15: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늘 폴스타프님 리뷰는 읽으면서 참 미소가 나옵니다. 개인적으로 찰진 욕이 섞인 글을 쬐금 더 좋아하긴 하지만...
저 희곡 쓴 작가분들이 이 글을 읽고 얼마나 힘이 될까 생각해보니 절로 미소가 나오더라구요...

Falstaff 2021-06-25 16:10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고맙습니다!
 
바다의 침묵 열린책들 세계문학 13
베르코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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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에 의하여 겨우 3년 조금 넘게 지배당하면서 난리를 치는 작가의 편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너네 프랑스는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에 식민지를 몇백 년 씩이나 지배해놓고 말이지. 지배당한 지역에서 글을 쓰려면, 너네들이 지배하고 있는 사람들 마음도 돌아볼 줄 알아야 하는 게 옳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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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6-24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이거 별 두개군요. 읽어보려고 중고 책 담아뒀는데…!

Falstaff 2021-06-25 08:39   좋아요 1 | URL
작품들 자체는 세 개, 위와 같은 이유로 하나 삭제... 이 수준입지요. ㅋㅋ
중고책이라면 감안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네요.
 
잃어버린 이름에게
김이설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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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소설 네 편을 묶은 책.
  이 책에 읽고 열린 공간에서 독후감을 쓰는 게 매우 부담스럽다. 아주 오래전 김연이 쓴 <그 여름날의 치자와 오디>를 읽고, 그때 여성주의에 대하여 무지했던 내가 결론 부근에 “여자와 남자, 좀 서로 좋아하며 살자.”고 썼다가 아오, 근 20년 동안 인터넷에서 친하게 지내던 전투적 페미니스트 여성(인줄 전혀 몰랐던 내가 바보다)한테 “개저씨”라고 귀싸대기 한 방 얻어터지고 절교당한 적 있다. 등장하는 남성들은 어떻게 하나같이 다 개새끼들이냐, 라는 말과, 서로 좋아하며 살자, 라고만 얘기했음에도. 이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한 마디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깊고 깊게 자각해, 특히 여성주의에 관한 논의에서는 언제나 한 발 뺀다. 벼락 맞고 즐거운 건 변태밖에 없으니까.
  《잃어버린 이름에게》를 읽고 단박에 <그 여름날의 치자와 오디>를 소환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남자는, 시아버지는 네 단편에서 전부 이미 죽었으니 열외로 하고, 다, 몽땅, 친정아버지, 남편은 당연하고, 아들새끼까지, 심지어 남자 의사 새끼들까지 전부 다 개 썅노무새끼들이다. 착한 남자는 오직  죽은 남자뿐. 주인공은 딸 둘, 혹은 위에 아들, 아래 딸을 둔 40대 중반의 전업주부 여성으로 결혼하고 20년 왔다 갔다 하는 세월동안 최악의 가사노동, 육아에 시달리다 급기야 신경정신과 전문의의 처방을 받아 한 움큼의 약을 복용해야 하는 처지로 떨어진 갱년기.
  그러니까 김이설은 ‘우리 주위에 흔하고 흔하게 널린’ 개 썅노무새끼들과 함께 사는, 흔하고 흔한 우울증 중년 여성을 주인공으로 선발해, 극단적인 차별과 소외와 자존감 상실을 겪는 과정을 상세하게 그려냈다. 상대역인 남편은 누구 하나 빠짐없이 전부 이기적인 가장이며, 심지어 아직 초경도 겪지 않은 어린아이와의 잠자리를 선호하는 극강의 변태지만 능력 있는 공무원 신분에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실력자이기도 하다.
  아들 새끼 역시 남자니까, 우리 주변에 그냥 자갈처럼 널려있는 호로새끼 가운데 하나. 공부 하나 잘 하는 거 가지고 이제 중2 밖에 안 된 어린놈이 콘돔 사용과 상호 합의를 바탕으로, 공부에서 비롯하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숱한 동급생 여자 아이들과 관계를 맺고 다니는데, 아비라는 놈은 죄의식에 빠진 어미한테, 그럼 남자가 돼서 주는 데 안 먹냐, 이따위 말이나 씨부린다. 친정아버지새끼도 퇴직 후에 아내를 파출부 부리듯이 해 일흔이 넘은 엄마는 바야흐로 황혼 이혼을 고민하는 단계.
  진심으로 기원하노니, 작가 김이설의 실제 생활에서는 이런 널리고 널린 일들이 벌어지지 않았기를.
  비겁하지만 나는 별점을 제외한 의견은 달지 않겠다. 읽어보실 분은 그렇게 하시라.

 


* 감각적인 문체와 문장으로 별점 하나를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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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6-24 09: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오, 소개된 내용만 봐도 굳이 읽고 싶어지지는 않네요. 발암 ㅠ_ㅠ

그나저나 ˝개저씨˝ 폴스타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6-24 10:57   좋아요 3 | URL
ㅋㅋㅋ 그래서 요즘 우리 시와 소설 읽기가 망설여진답니다.
시간이 더 지나 좀 추려진 후에 읽던지 해야....

그래 내가 ‘개저씨‘ 맞느냐고 여러분들한테 많이 물어봤는데 대놓고 얘기하기 뭐 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라고 하던데요. ㅋㅋㅋㅋ 지난 세기부터 친했던 말 똑부러지게 하는 여성분도 포함해서요. 그래 아닌가보다, 하고 살고 있씀다. ㅋㅋㅋ

잠자냥 2021-06-24 10:59   좋아요 2 | URL
아 대놓고 어떻게 말해욬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6-24 11:24   좋아요 3 | URL
대놓고 너 개저씨 맞아, 라고는 안 하겠지만
예컨데 잠자냥 님 정도면, 좀 그런 면이 있기는 있는데 딱 그렇다고 얘기할 정도는 아니예요..... 쯤으로 허실 거 겉어서어... ㅋㅋㅋㅋㅋ
제 주위엔 이런 여성분들 무척 많아요. 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1-06-24 11:28   좋아요 5 | URL
ㅋㅋㅋㅋㅋ 맞습니다. ㅋㅋㅋ 주눅들지 마세요.
폴스타프 님이 개저씨였으면 제가 진작 이 서재 발 끊었을 겁니다. 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1-06-24 19: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마이! 예전에 크게 당하셨다던 에피소드가 이거였군요. 근데 제가 전후사정은 모르겠지만 폴스타프님 저 발언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네요..😥
20년 온라인 친구였는데...세상에...

근데 이 책 어쩜 남자가 다...ㅠㅠ

Falstaff 2021-06-24 19:38   좋아요 2 | URL
ㅎㅎㅎ ˝크게˝라고 까지는 뭐...
하여튼 이후로 특히 여성주의에 관해서는 입틀막입니다. ^^;;;

mini74 2021-06-24 20: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ㅎㅎ 개저씨. 실제로 일본만화중에 일정 나이가 되면 아저씨들이 개로 변해요. 시바 치와와 진돗개. 폴스타프님은 어떤 종류신지. 전 된다면 푸들되고 싶어요. 웨이브가 맘에 들거든요 ㅎㅎㅎ

Falstaff 2021-06-24 20:13   좋아요 2 | URL
아...... 이건 정말, 지극히, 심각하게 힘든 질문입니다. 흑흑흑....
일단, 저는 개에 관해서 잘 모른다는 확실한 진실로 답변을 피하고자 합니다. ^^;;;

stella.K 2021-06-24 20: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욕이 참 찰집니다. ㅋㅋ
저도 이 소설은 좀 안 읽을 것 같아요.


Falstaff 2021-06-24 20:41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이거 알라딘 서재 관리자의 검열에 걸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한 번 걸려봤거든요. ㅋㅋㅋㅋㅋ
읽지 마세요. 없는 병 생깁니다.

라마 2021-10-18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댓글 남겨봅니다. 이 소설에서 좋은 남성이 ‘죽은 남자‘ 밖에 없는 건 아무래도 그간 좋은 여성은 죽은 여자 밖에 없던 다른 소설들에 대한 다시쓰기라고 봐야겠죠. 물론 모든 소설이 그래왔다는 것은 아니고, 이 소설의 작가님도 모든 소설이 그러했다고 생각하며 쓰신건 아닐 겁니다. 저도 마냥 좋아하는 방식의 글쓰기는 아니지만 어쨌거나 이 점은 소설의 개연성의 결함이라기 보다 일종의 장르 문법이며, 작가님의 개인적인 인식적 오류 때문도 아닐 것 입니다.

Falstaff 2021-10-18 12:45   좋아요 0 | URL
예. 하신 말씀이 옳습니다.
 
산책하는 사람에게 - 안태운 시집 문학과지성 시인선 550
안태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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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태운 역시 김수영 문학상을 받은 시인. 그거 하나 믿고 신간을 납죽 골랐다가 또 피봤다. 도대체 독후감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다. 알라딘 독자 서평에 만점짜리가 수두룩하다. 그래서 왜 만점을 줄 수밖에 없었는지, 치사하지만 컨닝 좀 하려고 해도 서평, 백자평, 이런 것들 역시 모두 또 다른 현대시 수준이다. 그리하여 시는 물론이거니와 서평, 백자평을 통해 얘기하신 독자들의 고견 역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왜 시를 읽은 감상이 추상명사와 은유가 되어야 하는지, 이해는 하지만 좀 아쉽다. 이건 내 성질이 드러워서 그렇다. 서평, 백자평 써주신 분들에게 까탈을 부리는 것도 아니고, 부려서도 안 되고, 감히 흠을 잡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있음을 혜량해주시기 바란다.
  특정 작품 및 소설이 좋다, 라고 선언하기 위해 나는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고 믿는, 쥐뿔도 없으면서 까다롭기만 한 족속이다. 이 시집을 읽으며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차라리 소설을 쓰지 그러셨을까, 하는 거였다. 21세기에 “한 잔의 술을 마시고 /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뭐 이런 이미지즘 시도 아니고, 도무지 무슨 주장을 하고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 시를 내가 왜 읽고 있을까.
  어쨌거나 《산책하는 사람에게》를 읽음으로 해서 사놓은 “요즘 시”를 수록한 시집은 이제 네 권 남았다. 한 권 한 권 읽는 일이 내게는 고난의 행군이다. 돈 꿔줬는데 안 갚고 토낀 놈 있으면 선물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내 주변엔 그런 강아지들이 없다.
  지금 남은 네 권의 시집만 다 읽으면,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 이런 시들을 즐길 수 있는 탁월한 자들의 대열에, 나도 한 번 끼어볼까, 감히 다시는 마음먹지 않겠다. 그러니 말이 곱지 않은 걸 용서해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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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6-22 09:1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고난의 행군! ㅋㅋㅋㅋ 정말 고난의 행군인가봐요. 이번 리뷰에서는 시 한 줄도 언급 안하심. 심지어 사진 찍어 올리는 수고도 하지 않음 ㅋㅋㅋㅋㅋ김수영이 저세상에서 어떤 생각할지 잠깐 궁금해지네요.

Falstaff 2021-06-22 09:41   좋아요 6 | URL
아, 지금 정신적 타격이 심합니다. 우울증이 막 도지려 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아직도 시집에 네 권 남았다니... 그래도 굳게 마음 먹고 견디려 합니다!!

다락방 2021-06-22 09:3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서평, 백자평, 이런 것들 역시 모두 또 다른 현대시 수준‘ 에서 웃고갑니다 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6-22 09:42   좋아요 3 | URL
ㅋㅋㅋ 다 제가 모자라서 그렇게 읽히는 겁니다.

잠자냥 2021-06-22 10:35   좋아요 3 | URL
ㅋㅋㅋ 궁금해서 이 책 클릭해서 백자평 리뷰 좀 훑어봤는데, 정말 다들 시를 쓰고 계시네요?

그리고 궁금해서 미리보기로 좀 읽었는데.... 휴 저는 현대시는 영영 못 읽을 거 같습니다. 오그라들어서...;;;

Falstaff 2021-06-22 11:00   좋아요 4 | URL
잠자냥님 때문에, 내가 제대로 읽은 건가, 싶어서 저도 다시 보고 왔잖습니까.
에휴... 하여튼 네 권만 더 읽으면 저도 아듀, 외칠 겁니다. ;;

새파랑 2021-06-22 11: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돈 꿔줫는데 안 갚고 토낀놈에게 선물하고 싶은 시집이라니 ㅎㅎ 폴스타프님의 왠지 깊은 분노가 느껴지네요 ㅜㅜ 저도 백자평 보고와야 겠네요 ㅎㅎ

Falstaff 2021-06-22 12:12   좋아요 3 | URL
ㅋㅋㅋ 분노까지는요 뭐.
걍 그렇게 골치 아픈 시집이다, 뭐 이런 정도지요. ㅎㅎㅎ

coolcat329 2021-06-22 14:1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번엔 시를 안 올려주셔서 미리보기로 좀 읽다 왔습니다.
시들이 다 산문같네요.
저도 잠자냥님 비슷하게 오글오글하네요.

Falstaff 2021-06-22 14:59   좋아요 4 | URL
이번 시집의 시들은 무지하게 긴 게 특징이더군요.
과하게 길지 않으면 이런 양식을 좋아하는데, 아이고... 대책이 없더라고요. ㅋㅋㅋ

붕붕툐툐 2021-06-22 21:5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ㅋㅋㅋ깊은 빡침이 느껴지는 리뷰 잘 읽었습니다. 시는 일단 독자가 읽었을 때 이해가 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이번 시집 역시 패스하겠습니다. 하핫!!

Falstaff 2021-06-23 08:40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툐툐 님도 이 시집 안 읽으시는 편이 만수무강에 좋습니다.
 
캣퍼슨
크리스틴 루페니언 지음, 하윤숙 옮김 / 비채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왜 샀을까? 표지가 야해서 산 건 분명히 아니다. 추리할 수 있는 건, ① 출판사 ‘비채’에서 나온 괜찮은 책을 몇 권 읽고,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특색있는 책을 내는 회사라고 생각했던 점, ② 어떻게 이 책까지 서핑했더니 마침 독자 리뷰가 괜찮았다는 점, 그리고 결정적으로 ③ 알라딘의 쿠폰을 사용하기 위해 헌책 한 권은 사야 했던 점이 딱 맞아 떨어졌을 것이다.
  82년생 김지영 씨보다는 나이가 약간 적을 거 같은 작가 크리스틴 루페니언은 한국어판 서문을 통해 자신의 대표작 <캣퍼슨>이 어떻게 스타덤에 올랐는지 자기 자랑을 약간 하면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잡담 비슷하게 말을 이어간다. 2017년 12월에 <뉴요커>에 발표하고 트위터에서 입소문이 나는 바람에 수백만 명이 읽고, 토론하고 하여튼 장안의 화제가 되었으며, 작가의 친구 가운데 한 명이 일본에 갈 일이 있었는데 일본인들도 기차 안에서 <캣퍼슨>에 관해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는 얘기까지 적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이 책에서 보게 될 몇몇 작품은 21세기의 데이트에 관한 사실주의적인 묘사를 담고 있”단다. 그리고 나는 이어지는 문장들을, 서문을 읽을 당시, 너무나도 가볍게 읽고 지나갔다. “당신에게 익숙하게 읽힐 작품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이 그렇지 않은 작품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당신이 모든 이야기 속에서 뭔가 진실이라고 느껴지는 것―더러는 느낌일 수도 있고, 이미지나 농담, 단 한 줄의 대화일 수도 있을 것이다―을 발견하게 되기를 희망한다.”
  그리스틴이 마음을 담아 쓴 서문을, 책을 읽은 후에 다시 훑어보니, “뭔가 진실이라고 느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되기를 희망한다.”는 것이, 자신의 작품 속엔 독자는 발견할 수 없을지라도 적어도 하나 이상의 진실이 담겨(숨겨) 있다는 말로 읽혔으며, 결과적으로 나는 보물찾기에 성공하지 못한 서툰 독자였는데, 이 순간 정이현이라는 우리 소설가를 머리에 떠올렸으니, 왜 그런고 하면, 그의 장편 <너는 모른다>의 발문에서 “진심을 다해 썼고 세상에 내놓는다. 그게 다다.”고 심지어 책의 띠지에까지 써놓은 적이 있고, 그걸 읽은 나는 독후감에 이렇게 쓴 적이 있기 때문이다. “진심을 다해 쓰지 않는 작가가 있어? 세 명만 꼽아보시라. 누가 있나.” 마찬가지로 크리스틴 루페니안의 한국어판 서문에 대하여도 이렇게 묻고 싶다.
  “자기 작품 속에 진실이라고 느껴지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작가가 있다면 두 명만 대보시라. 누가 있나.”

 

  물론 표제작인 <캣퍼슨> 하나만 읽었을 때는 공감할 수 있었다. 나름대로 재밌고, 웃기기도 했다. 깔끔하게 미소 지으며 끝을 볼 수는 없었어도.
  아, 의문 하나. 이 작품의 영어 제목은 <Cat Person>이건만 우리말 제목은 왜 <캣 퍼슨> 대신 <캣퍼슨>으로 했을까? 별 것 가지고 지랄한다 생각하지 마시고, ‘cat person’은 “고양이를 좋아하거나 키우는 사람”이라고 책 소개에 쓰여 있는데, 우리말 ‘캣퍼슨’은 배트맨과 함께 복면 쓰고 고담의 밤을 지배하는 캣우먼의 서방 같잖아? (우먼woman, 퍼슨person으로 젠더를 구분한 건 악의적 고의가 아니다.)
  이 단편은 서른네 살 먹은 백인 인텔리겐치아처럼 보이는 뚱보 남자와 스무 살 먹은 대학생 사이에서 발생한 끌림과 발전, 사랑으로 오해하고, 젊은 여성 마고가 자신의 의지로, 고이 숙소까지 모셔다드리겠다는 친절 대신 그와 성적 접촉을 유도해, 이 과정에서 남자한테 정나미가 떨어져 이별하기까지, 짧은 연애와 사랑과 잠자리와 이별 얘기다. 무척 솔직한.
  먼저 스무 살 대학생 마고의 성적 특이성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로버트가 일곱 번째 잠자리 파트너로 등록될 예정이니, 하이틴 시절에 섹스란 것이 어떤 건지 궁금해 했고, 급기야 그것을 경험해보기로 작정을 한다. 상대방은 2년 동안 사귄 남자친구. 남친과 몇 달에 걸친 깊은 토론을 하고, 산부인과를 방문해 전문의의 상담과 조언을 거친 후, 엄마, 친엄마 맞다, 엄마와 겁날 만큼 어색하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의미 있는 대화를 거쳐, 엄마가 조식을 포함해 깔끔한 숙소를 예약해주고, 급기야 드디어 딱지를 뗀 아침엔 호텔 프론트에 엄마가 보낸 “내 딸, 딱지 뗀 거 축하해!” 기념 카드까지 받았다는 거 아니냐. 정작 마고는 쓰라려 죽겠는데 말이야.
  이런 마고가 로버트 소유의 생각 이상으로 깨끗한 집으로 가서, 자발적으로 로버트의 깔끔한 침대에 오르며 스스로 판타지의 황홀경에 빠진다. 이 아름다운 여자를 봐, 완벽해, 몸매도, 모든 것이, 겨우 스무 살이야, 피부에 흠 하나 없어, 로버트가 자신을 이렇게 보고 있을 거라고 상상해가며. 그런데 여기에 로버트가 찬물을 한 바가지 뿌려버린다.
  “전에 해본 적 있어?”
  이 지점에서 독자들은 갈릴 것이다.
  ① 서른네 살의 남자는 스무 살의 마고가 혹시 아직 경험이 없다면 더욱 조심해서, 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섹스가 좋기는커녕 쓰라리기만 한 경험을 하지 않게 배려를 하려 물었다. 그래 처음부터 조심스레 터치하지 않았느냐.
  ② 웃기지 마라. 로버트는 그냥 썅노무새끼다. 해봤다는 얘길 듣자마자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온갖 집을 다 하지 않느냐.
  이건 전적으로 독자 마음이다. 어떻게 해석하든지. 하여튼, 마고는 침대 위에 앉아 있고, 로버트가 허리띠를 풀고 바지를 내려 벗다가, 아직 풀리지 않은 신발끈을 풀기 위해 몸을 굽히는 순간, 털에 가려진 물렁하고 불룩한 배가 아래로 축 늘어뜨려지는 게 눈에 들어온다. 이 상황이 도래하자, 마고는 속으로, 싫다, 싫어!를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러나 먼저 얌전하게 에스코트해서 집에 데려다주겠다는 로버트의 발동을 건 건 마고 자신이라 그냥 눈을 질끈 감고 선반 위에 있던 위스키를 꿀꺽 한 모금 삼켜버린다. 딱 그림이 그려지시지?
  이후 한심한 베드씬이 벌어지고, 새벽 세시에 마고가 주장해서 로버트가 기숙사까지 차를 태워 데려다주고, 한 번의 관계로 정이 뚝 떨어진 마고가 로버트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이야기.

 

  이거 한 작품이라면 크게 공감하지는 않더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을 텐데 다른 단편들은, 저자가 한국어판 서문에 얘기했다시피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 괴기스럽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제 막 습작 시대를 벗어난 좀 덜 익은 단편들을 읽는 듯하기도 했다. 아, 이런 느낌이 물론 <캣퍼슨>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작품에 적용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왜 우리 작가들 대신 번역한 외국 문학을 읽느냐 하는 걸 말하는 것이 좋겠다. 우리 작가들이 쓴 우리 문학은 아직 검증이 안 된 것들이 많다. 즉, 분명히 문학의 보석들이 있겠지만 많고 많은 원석 속에서 그것들을 찾는 데는 이제 내가 책을 읽을 시간과 돈이 별로 많지 않다. 반면에 번역서는 대체적으로 시간의 검증을 받았거나, 신간이라고 하더라도 출판사 편집자의 필터를 통해 수준 이상의 작품이라서 한국어판이 나왔을 확률이 높다고 믿어서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책은 내 기대에서 벗어났다. 여기서 말하는 나의 ‘기대’는 나의 ‘기호’와 상당히 유사한 단어이니, 《캣퍼슨》을 재미있게 공감하면서 읽으신 분께선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 참 오랫만에 내돈내산을 다 읽지도 않고 덮어버렸다. 부언하건데, 작품의 품질을 별개로 하고, 나와 이 책이 맞지 않았을 뿐이라서 그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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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6-21 09: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이 책 처음 나왔을 땐 궁금함에 보관함에 담아두었는데, 그 이후로 궁금함이 가시더라고요. 그래서 살포시 보관함에서도 뺐는데, 이 포스팅 보니 후회는 없을 거 같습니다.

Falstaff 2021-06-21 09:38   좋아요 5 | URL
ㅋㅋㅋ 이런 댓글 읽고 다음과 같이 답글 쓰는 것이 이렇게 뜻깊을 줄은 몰랐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ㅋㅋㅋㅋ

다락방 2021-06-21 10:08   좋아요 3 | URL
저는 이 책이 안궁금했는데 폴스타프 님 리뷰보고 앞으로도 관심을 안갖는 걸로 하겠습니다. ㅎㅎ

Falstaff 2021-06-21 10:10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뭐라 드릴 말씀이 읎네요. ㅋㅋㅋㅋ

새파랑 2021-06-21 0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돈내산을 중간에 덮는건 정말 천재지변이 아니면 쉽지 않을턴데 ㅜㅜ 역시 표지에 낚이면 안되겠군요 ㅎㅎ

Falstaff 2021-06-21 09:46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글쎄 표지에 낚은 건 절대 아니라니까요!

잠자냥 2021-06-21 09:54   좋아요 1 | URL
저도 사실 폴스타프 님이 표지 때문에 샀다고 생각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6-21 10:04   좋아요 1 | URL
택배 풀고 표지를 보는 순간, 비슷한 말씀들을 틀림없이 허실 거란 직감이.....ㅋㅋ

coolcat329 2021-06-21 11: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이 이 책을 올리셔서 조금 의외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게 청소년의 성을 그린 청소년 소설이라고 제멋대로 생각, 게다가 전혀 관심이 안 간 책이었거든요. 근데 어른 책이고 단편이군요.
저는 표지에 낚이신건 아니라는 주장 믿습니다! ㅋㅋㅋ

Falstaff 2021-06-21 12:12   좋아요 2 | URL
흑흑... 고맙습니다. 쿨캣님 밖에 읎습니다. ㅠㅠ
완전히 제 생각만으로 말씀드리면, 도서관 가셔서 보여도 고르지 마세요. ;;;

얄라알라 2021-06-21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at person이란 단어는 catwoman이나 catmom 등. cat 돌봄자(?)들을 여성화시키는 표현과 좀 다르네요. 표지 보고, 저 역시 혹했습니다만 ‘내돈내산‘ 평 내려주신 Falstaff님의 조언을 따르기로 합니다^^

Falstaff 2021-06-21 13:08   좋아요 1 | URL
글쎄 제 말씀이 그거 아닙니까. 원래 제목이 cat person 인데 왜 우리말 제목을 캣(떼고)퍼슨이 아니라 그냥 ‘캣퍼슨‘으로 띄어쓰기를 안 하느냐는 거 말입죠.
ㅎㅎㅎ 좋은 선택하신 겁니다.

초란공 2021-06-21 13: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성인이 되고 한참 후에(그렇다고 철이 든건 아니지만요) 책을 읽기시작한 경우라서 유명작가의 작품이 와닿지않으면 그냥 제가 아직 작품의 진가를 파악하기에 부족하구나 생각합니다. 어떤 작가는 소설은 마음에 드는 데, 에세이는 도무지 적응이 안되고, 또 다른 작가는 에세이가 아주 마음에 들어서 소설도 읽어보면...저의 안목이 부족함을 탓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소심한 저는 마음에 든 책에 대해서만 주로 글을 올리니 대체로 칭찬만 하게 되네요. 개인적으로 ‘사지 말아야 할 책‘ 메뉴를 만들어볼까 싶기도 하구요. ㅋㅋ 알라딘과 출판사측의 항의로 활동정지 되는건 아닐까 싶습니다^^ 근데 개인적인 기호이니 어쩌겠습니까? ^^
=> 다시 생각해보니 제가 감히 ‘사지 말아야할 책‘을 정하고 강요하는듯한 것이 작절하지 않아보이고, 좀 더 소심하게 가야겠네요. ‘사지 않았으면 하는 책‘ 정도랄까요? ㅋㅋㅋ

Falstaff 2021-06-21 14:07   좋아요 5 | URL
아휴.... 마음에 드는 것만 읽기에도 시간과 돈이 부족한 게 현대인입니다.
굳이 적응이 되지도 않는 책을 붙잡고 참선, 면벽기도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러시다가 나중에 사리 나옵니다. 안목이 부족한 경우는 세상에 아예 있지도 않습니다. 지깟 것들이 해봐야 시, 소설, 요즘에 바람부는 희곡 밖에 더 됩니까. 마음에 안 드시는 거 있으면, 아놔 나 이거 싫어, 하셔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진짭니다. ㅋㅋㅋㅋ

심지어 저는 이런 페이퍼, ˝지루하고 지루했던 불후의 명작 Top 10˝을 썼었는데 이달의 페이퍼로 선정돼 상금도 받았는 걸요. ㅋㅋㅋㅋㅋ https://blog.aladin.co.kr/729554277/11922276

자랑은 아니지만 다시 한 번 크게 외쳐볼까요? 이거 진심입니다.
난, 괴테가 싫다!!!!!!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1-06-21 14:18   좋아요 3 | URL
나도 괴테가 싫다!! (아, 쿨캣 님 지적대로 폴스타프 님하고 또 같이 다니고 있네요 ㅋㅋㅋㅋㅋㅋ)

syo 2021-06-21 14: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표지네..... 표지야.....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

Falstaff 2021-06-21 14:54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 저 띠지를 벗기면 더 야해요!

잠자냥 2021-06-21 15:07   좋아요 3 | URL
어머나... 오늘 알라디너 여럿 오프라인 서점 출동하겠네요. 뭔가 이 띠지 벗기고 유심히 보다가 살짝 자리 뜨는 사람들 많겠구먼...(일단 저부터 출동!)

얄라알라 2021-06-22 09: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댓글 읽다가 아침부터 커피뿜을 뻔했어요 ㅋ

Falstaff 2021-06-22 09:43   좋아요 0 | URL
ㅎㅎㅎ 알라디너 수준이 대개 이 정돕니다. ㅋㅋㅋㅋㅋ

- 2023-05-14 2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걸드문트님! 저도 이 책 중반부에서 더 읽지 말까 생각하다가… <좋은 남자>는 읽어보자 싶어서 걍 다 읽었거든요. 후반부로 갈 수록 괜찮더라고요. 다 읽고 나니 작가가 가진 어떤 시선도 보이고.
리뷰 잘 읽습니다. 덜 익은 단편들이라는 말에 매우 공감합니다.

Falstaff 2023-05-15 06:14   좋아요 1 | URL
앗, 뒤쪽 단편들은 괜찮군요. 에휴. 그저 참아야 하는데.... 어디 있는지 찾기도 힘들고... ㅎㅎㅎ 고맙습니다. 눈에 띄면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 2023-05-15 09:33   좋아요 1 | URL
아니오~ ㅋㅋ 걸드문트님은 다른 좋은 거 읽고 더 재미난거 써두시면 나중에 제가 쫓아와서 또 다른 좋은 재밌는 리뷰 읽을게요!
방금 안 사실인데 <캣 퍼슨>의 경우도 문제가 좀 있었나 봅니다. 작가가 남의 사생활을 썼다는 군요?
작가란 무엇인가… 킁… 소설이란 무엇인가…흐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