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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이름에게
김이설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0월
평점 :
단편소설 네 편을 묶은 책.
이 책에 읽고 열린 공간에서 독후감을 쓰는 게 매우 부담스럽다. 아주 오래전 김연이 쓴 <그 여름날의 치자와 오디>를 읽고, 그때 여성주의에 대하여 무지했던 내가 결론 부근에 “여자와 남자, 좀 서로 좋아하며 살자.”고 썼다가 아오, 근 20년 동안 인터넷에서 친하게 지내던 전투적 페미니스트 여성(인줄 전혀 몰랐던 내가 바보다)한테 “개저씨”라고 귀싸대기 한 방 얻어터지고 절교당한 적 있다. 등장하는 남성들은 어떻게 하나같이 다 개새끼들이냐, 라는 말과, 서로 좋아하며 살자, 라고만 얘기했음에도. 이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한 마디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깊고 깊게 자각해, 특히 여성주의에 관한 논의에서는 언제나 한 발 뺀다. 벼락 맞고 즐거운 건 변태밖에 없으니까.
《잃어버린 이름에게》를 읽고 단박에 <그 여름날의 치자와 오디>를 소환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남자는, 시아버지는 네 단편에서 전부 이미 죽었으니 열외로 하고, 다, 몽땅, 친정아버지, 남편은 당연하고, 아들새끼까지, 심지어 남자 의사 새끼들까지 전부 다 개 썅노무새끼들이다. 착한 남자는 오직 죽은 남자뿐. 주인공은 딸 둘, 혹은 위에 아들, 아래 딸을 둔 40대 중반의 전업주부 여성으로 결혼하고 20년 왔다 갔다 하는 세월동안 최악의 가사노동, 육아에 시달리다 급기야 신경정신과 전문의의 처방을 받아 한 움큼의 약을 복용해야 하는 처지로 떨어진 갱년기.
그러니까 김이설은 ‘우리 주위에 흔하고 흔하게 널린’ 개 썅노무새끼들과 함께 사는, 흔하고 흔한 우울증 중년 여성을 주인공으로 선발해, 극단적인 차별과 소외와 자존감 상실을 겪는 과정을 상세하게 그려냈다. 상대역인 남편은 누구 하나 빠짐없이 전부 이기적인 가장이며, 심지어 아직 초경도 겪지 않은 어린아이와의 잠자리를 선호하는 극강의 변태지만 능력 있는 공무원 신분에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실력자이기도 하다.
아들 새끼 역시 남자니까, 우리 주변에 그냥 자갈처럼 널려있는 호로새끼 가운데 하나. 공부 하나 잘 하는 거 가지고 이제 중2 밖에 안 된 어린놈이 콘돔 사용과 상호 합의를 바탕으로, 공부에서 비롯하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숱한 동급생 여자 아이들과 관계를 맺고 다니는데, 아비라는 놈은 죄의식에 빠진 어미한테, 그럼 남자가 돼서 주는 데 안 먹냐, 이따위 말이나 씨부린다. 친정아버지새끼도 퇴직 후에 아내를 파출부 부리듯이 해 일흔이 넘은 엄마는 바야흐로 황혼 이혼을 고민하는 단계.
진심으로 기원하노니, 작가 김이설의 실제 생활에서는 이런 널리고 널린 일들이 벌어지지 않았기를.
비겁하지만 나는 별점을 제외한 의견은 달지 않겠다. 읽어보실 분은 그렇게 하시라.
* 감각적인 문체와 문장으로 별점 하나를 보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