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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음악의 철학]

 말러를 듣는 사람으로써 한번쯤 읽어보고 싶었던 아도르노의 신음악의 철학. 철학자 아도르노는 음악에 대해 특히나 관심이 많았다고 하는데, 게중에 말러나 쇤베르크 일당(베베른, 베르크) 혹은 스트라빈스키에 대한 평을 많이 남겼다고 한다. 한분야에 전문가가 되기도 쉽지 않은데 음악의 철학적 접근이라니. 개인적으로는 음악은 머리 이전에 감각으로 듣고 받아들이는 언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기표와 기의로 이루어진 일상언어로 어떻게 해석되고 설명되는지가 조금은 궁금하다. 주위의 몇몇 사람들이 도전했으나 쉽지 않다고들 이야기하는 책이다. 선정되었으면 좋겠지만서도 선정되었다고 마냥 기쁘지만은 않을 책. 아마 읽게된다면 그 한달은 쉽지 않을 듯.




 [불국사에서 만난 예수] 

 사찰에서 만난 예수라니? 이땅에 기독교가 전래된 것이 조선 후기 정도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은데, 실은 신라시대에 이미 '경교'라는 이름으로 당나라를 통해 전해졌다. '네스토리우스교'라고 불렸던 '경교'는 서기 300여년에 이단으로 박해받은 네스토리우스가 아랍, 중앙아시아, 아프리카로 이동하면서 전해진 기독교의 한 갈래이다. 중앙아시아를 거쳐 당나라에 전해지게 되는데 당나라에서는 부유층을 중심으로 성행했었다고 전해진다. 기득권 층을 중심으로 전해진 경교는 그 뿌리가 튼튼히지 못하여 중국에서 힘을 잃어버리고 말지만, 그 당시에 당나라와 교역하던 신라에서도 포교활동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 근거로 불국사에 새겨진 돌십자가를 근거로 든다고 하는데, 글쎄. 자세한 내용은 책을 통해서 확인해보면 좋을 것 같다. 이제 곧 성탄절이기도 해서 기독교에 역사에 대한 책을 골라보았다.


[커뮤니티 디자인]

개인적으로 일본의 문화와 그 문화가 만들어지는 시스템을 사랑한다. 우익들이 설치는 꼴과 별개로 말이다. 확실히 일본은 배울 것이 많다. 이미 우리나라의 체계가 일본을 모델로 만든 것들이 많기 때문에, 일본의 사례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예측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특히 사회 전반적인 문화의 결정체인 건축은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앞서있고 시사하는 바가 크다. 커뮤니티(Community)라는 것은 무엇일까. 주민들이 공통으로 이용하는 시설들을 총칭한 것으로 정의하면 아마 맞을 거라 생각된다. 서로 소통하고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형성되어야 좋은 도시, 좋은 마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문제는 실천방법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는 것에 있다. 요즘처럼 온라인 기반의 커뮤니티가 발달되고 있는 사회에서 특히나 그렇다. 그래서 이 책이 궁금하다. 잘 작동하는 커뮤니티를 어떻게 실현시켰는지 말이다.



[왜 우리는 더불어 사는 능력이 세계 꼴지일까?]

사실 우리나라가 더불어 사는 능력이 떨어지는 나라는 아니었다. 그 옛날 농촌에서는 두레나 품앗이 같이 노동력을 공유하는 체계가 잘 형성되어있었고, 지금도 우리네 어머니들은 지인들과 함께 김장을 담그시곤 한다. 어쩌면 오늘날 공존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은 무한 경쟁을 기반으로한 자본주의 체제가 만들어낸 것 같다. 사실 자본주의는 효율을 높여주기는 하지만 함께 성장하고 살아간다는 '연대' 혹은 '공동체' 라는 의식은 줄어들게 된다. 상대방을 같이 나아가야할 선의의 경쟁 대상이라기보다 짓밟고 이겨내야하는 적이라는 전쟁과 같은 구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체제 안에서 대안을 찾기란 쉽지는 않다. 의식의 변화와 체제의 변화가 동시에 이루어져야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 책이 어떠한 대안을 제시했는지 살펴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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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한 경쟁시대에 살아가고 있다는게 참 슬프네요. 게으름이라는 낭만이 죄가 되는 시대입니다. 끈임없는 경쟁은 일 그 자체, 혹은 공부 그 자체만 하게 만들지 정작 그 일이나 공부 대한 철학은 소홀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즉, 왜? 라는 질문을 놓치고 말지요. 초중고 죽어라 공부하고, 또 대학가서 죽어라 공부만 하는데 정작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몰라 길을 잃고 말지요. 무엇을 해야하는 방향성이 없으니 공부를 하면서도 계속 헤매게 되고, 또 깊이있게 발전하기도 힘듭니다. 저의 게으름에 대한 옹호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게으름이라는게 결국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인데, 그 생각은 내 삶을 가꾸어가는데 씨앗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 씨앗이 탄탄해야 거기에 열리는 열매도 튼튼하지 않을까요. 


 한편, 게으름을 죄로 바라보는 것에서, 지배자-피지배자의 구도를 떠올리게도 하네요. 내가 게으르게 산다고해서 다른 사람의 생산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죠. 단지 나의 소득이 적어지는 것인데, 이것을 '죄'로 정의해서 금기시 한다는 것은 나의 게으름이 누군가에게는 손해를 끼칠 수 도 있다는 가정을 하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그 손해를 입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누구긴 누구겠습니까. 오늘날로 치면 나를 고용한 사측이겠지요. 더 나은 생산성을 위한 게으름은 죄가 아니라 보장되어야 할 권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이런 주장을 극단적으로 펼쳐간다면 제 생계는 위협을 당하게 되겠지요...회사에 금전적인 손해를 끼치는 것은 당연히 안될 일이지만, 더 높은 생산성을 위해 휴식의 시간을 갖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님들처럼 일반 직장인들도 안식년을 가지는 그날을 기대해봅니다. 




 냉전 시대의 소련과 미국이 미사일 위기를 겪었던 13일간의 회고록이라고 합니다. 자칫하면 핵전쟁으로 인류가 지구상에서 사라질뻔했던 바로 그 사건이지요. 저는 여기서 연애하는 남녀의 사랑 싸움이 떠오르네요(?!). 서로 관계가 파단이 날 것을 알면서도 자존심을 내세우며 한발치도 물러서지 않는 싸움. 너가 먼저 사과하지 않으면 나는 너의 전화를 받지 않겠어, 다시는 만나지 않겠어. 만약 누군가가 한발짝 물러서지 않으면 그 관계는 정말로 끝장이 나고 마는 것이지요. 하지만 소통의 끈을 놓지 않고 어느 누군가가 사과의 언질을 던진다면, 그 관계는 다시금 회복됩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도 서로가 한발씩 물러나서 결국은 평화롭게 해결됩니다. 그 사이에 사람들은 방공호를 파는 등의 공포를 몸소 체험했지만, 그래도 미국과 소련은 상호간의 미사일 기지를 축소하는 등의 세계 평화에 대한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있었던 상세한 이야기들은 이 책에 담겨있다고 하는데, 저는 꽤나 궁금하네요.  

















세권은 다른 분들이 많이 추천해주신 것들 중에서 골라봤습니다. 


<얽힘>이라는 책은 제목에서 참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는 것 같네요. 오늘날이 융합의 시대라고 하는데 또 한편으로는 다양한 것들이 얽혀있는 사회라는 생각도 듭니다. 단편적인 사고나 관계로서는 오늘날을 설명하기 힘들다는 반증이기도 하구요. 


<양자 불가사의>는 고전역학의 사고를 단번에 뒤흔든 양자역학을 설명하는 책인 것 같군요. 빛은 파동이자 입자라고 밝혀진게 이 시대의 물리학에서의 핫 이슈였죠. 기존의 관념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 벌어졌으니까요. 저도 피상적으로 알고 있어서 이 책을 통해 좀 더 깊게 알아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미국, 기술의 사회사> 기술의 발전은 노동의 해방을 낳았을까요. 이 책의 주제는 아니지만, 항상 그런 생각을 합니다. 도구나 기술의 발전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것인데, 높은 생산성이 더 많은 노동을 불러 일으키게 되는게 아닌가 하는...하여간 미국의 기술이 어떻게 발전하게 되었는지 기술 그 자체 뿐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조건들을 세밀하게 탐구하여 기술한 책이라고 합니다. 특히나 미국 같은 사회에서는 자본의 흐름이 어떻게 기술을 발전시켰는지도 주목할 만한 요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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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RBAG 2012-10-11 0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피로사회라는 책이 있다더군. 뭔가 제목만으로 확 공감이 되지 않냐. 일독해 볼까.

일개미 2012-10-11 09:30   좋아요 0 | URL
어 피곤해ㅋㅋ한번 봐야겟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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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래도 예술 및 문화 관련에서 잘 선정이 되지 않는데, 이번에는 하나정도 선정되었으면하는 바램이 있네요. 그래서 예술 및 문화서적 밀어주기 프로젝트를 진행해보려고 합니다. 그 중 첫번째 서적입니다. <배흘림기둥의 고백>은 전통건축이 생겨난 근원을 역사적인 사료를 통해 치밀하게 밝히고 있는 책인 <사라진 건축의 그림자>를 개정한 것입니다. 어떠한 양식을 사전적 설명이 아닌, 어떠한 이유로 그러한 양식에 이르렀는지를 마치 탐정처럼 추리해가는 구성을 갖고 있습니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전통건축의 아름다움은 그저 아름다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 아름다움 이전에 숨어있는 비밀이 있다고 하네요. 궁금하시죠? 저는 읽어서 알고 있습니다만, 그 아름다움이 치열한 '생존전략' 에서 나온다는 힌트를 드리겠습니다. 이번 개정판은 좀 더 일반인들에게 다가가기 쉽게 자료와 설명을 보충했다고 하는군요. 건축을 전공하지 않는 독자가 읽어도 고개가 끄떡여질법한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시나 예술 및 문화 서적 밀어주기 프로젝트 두번째입니다. 많은 분들이 추천해 주셨더군요. 미술을 바라보는 방식에 관한 고전이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현대미술에 그리 좋게 바라보고 있지 않은데,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관람자에 의해 완벽하게 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관람자의 열린 해석이라는 식으로 설명하고 정당화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잘 와닫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개가 짖는 것을 유심히 듣고 그 개가 배고픔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번식을 하고 싶다는 신호인지, 적대감의 표현인지를 일일이 분석해야할 필요가 있을까요. 단지 개는 짖어댄 것 일 뿐인데 말이죠. 오늘날의 현대미술을 두고 꿈보다 해몽이라는 이야기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 뒤샹의 <샘>과 같이 작품 그 자체보다 그 상황에 맞는 말을 '갖다 붙이는 것'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도 많은데, 현대 미술의 경우 누가 더 말도 안되는 자극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 처럼 보입니다. 기존 관념을 새롭게 바라보자는 의미라고는 하지만 그런식으로 치면 치기 어린 고등학생들의 짖궂은 장난도 예술의 일부분이겠지요. (독)설이 길었습니다만, 이 책이 이야기하는 '다른 방식으로 보기'를 통해 이런 저의 좁은 시야가 좀 더 넓어졌으면 하는 소망이 있네요.



 예술 및 문화 서적 밀어주기 프로젝트 세번째. 오늘날 한국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미인의 관념이 다분히 서양에서 물건너온 것이라는 것, 이미 모두가 알면서도 벗어날 수 없는 관념이 되버린 듯 합니다.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면 오늘날의 미인들과는 사뭇 다릅니다. 높은 콧대와 큰 눈 보다는쌍거풀 없는 눈과 동글납작한 코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우월하다고 할 수 는 없지만, 우리가 보는 아름다움은 다분히 학습된 것이 분명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아름다움의 관념에 학습된 우리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소비문화에 길들여지고, 또 그것이 보이지 않는 계급사회를 영속해가는 동력이 된다는 것이죠. 어쩌면 우리가 알지못하는 좀 더 다양한 아름다움을 찾고, 고정된 아름다움에서 자유로움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 책을 추천해봅니다.



 

 흔히 암흑시대로 알려진 중세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 책이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중세시대를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추구했던 시기가 아닌가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풍요롭지는 못했지만  숭고한 맛은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반면 오늘날은 보이는 것만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시대가 아닌가 합니다. 배부르지만 무언가 정신적으로 공허하게 말이죠. 결국 이 시대의 우리가 필요로하는 것은 이 두가지 - 물질과 정신 - 가치의 조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역사를 돌아보며 두 가치의 중간점을 찾아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쉽게 읽히지만 쉽지만은 않은 책. 오늘날 우리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는 시사만화 <장도리> 단행본 입니다. 길어지면 분노할게 분명하니 짧게 마무리하겠습니다.


 어둠이 길면 곧 아침이 오는 것이 세상의 이치 아니겠습니까. 모두가 공정하게 경쟁해서 승리한 사람은 박수받고 쓰러진 사람은 보듬어 다시 달리게하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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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간과 시간의 논의로 한정되었던 존재론의 담론을 '장소'로 확장시키는 내용을 담은 책이라고 합니다. 시간이나 공간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독립적이고 현실세계를 초월하는 어휘라면, 장소는 주변과의 관계를 고려한 좀 더 현실에 기반한 단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주변과의 관계를 생각한다는 것은 너무 사유 안에서만 머무르지 말고 생각의 바깥, 즉 그동안 잊고 있었던 신체의 감각을 되살리자는 내용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예측해봅니다. 그나저나 표지가 참 미니멀하고 이쁘네요. 예전에 열린책들의 책들을 책장에 꽂아놓곤 인테리어소품으로 참 좋다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그 못지않게 이 책의 표지도 참 미학적입니다. 요새 한창 일본에서 유행하는 가즈요 세지마와 그 주변인 들의 하얀 건축물이 생각나네요.





 

 메타과학은 과학을 연구대상으로 하는 학문의 총체라고 합니다. 과학철학이나 윤리학과 같은 분야를 포함하는 과학에 관한 모든 학문입니다. 가치중립적인 과학에 비해 그 것을 이용하는 방향은 인간이 정하는 것이고 그것은 다분히 가치를 판단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는 과학, 이를테면 인간복제 같은, 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사용할 것인지. 이런 것에 대한 가치 판단을 내리는 것은 단지 과학 그 자체에서 머물지 않습니다. 이 책의 맥락과 일치하는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메타과학과 과학을 생각했을때는 이 정도의 생각이 떠오르네요. 재출간본이지만, 과학을 이용하는 인간이 어떻게 과학을 바라보아야하는지에대한 관점은 시대를 초월해 우리가 꼭 가져가야할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에서 주목을 끌었던 공자의 <논어>에 대한 해제라고 합니다. 고전이고 워낙 유명한 작품이지만 막상 <논어>를 접해본 사람은 몇명이나 될까요. 마치 성경이 세계적 베스트셀러이지만 정작 그 텍스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한 사람은 거의 없는 것과 비슷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날 한국 및 동아시아 경제가 이렇게 발전한 것을 두고 후기 유교주의라 칭하면서 유교에 대한 긍정적인 역할에 주목하는 학자가 많습니다만, 단지 그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오랜 단일 왕조였다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국시로 삼은 것도 성리학, 즉 유교 이지요. 물론 오랜 왕조를 이어오면서 수많은 폐혜를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긍정적으로 보아야할 부분도 분명히 있겠습니다. 막상 생각해보니 기득권이 그나마 피지배계층의 눈치를 항상 보았다는 정도의 장점밖에는 떠오르지 않지만요. 물론 경전이라는게 그 자체만 보면 의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은데 막상 집단적인 통치체제로 쓰이게되면 분명히 문제점이라는것이 존재하겠지요. 어찌되었건, 이런 시대를 초월한 고전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20세기에 심리학과 음악계에 가장 영향력 있던 두 사람.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구스타프 말러. 개인적으로 고전음악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를 꼽으라면 말러는 반드시 들어갈 것입니다. 20세기 말의 허무주의가 말러 개인의 경험과 연계되어 희망과 허무가 끊임없이 진동하는(희망고문?) 말러의 음악은 그 깊이에 빠져 본 사람이라면 중독성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크지요. 심지어 오덕과 같이 말러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외치는 말이 말렐루야라고 하더군요. 잡설이 길어졌습니다만, 심리학적 차원에서 말러와 같은 트라우마가 많은 사람은 분석 대상으로 흥미로웠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시절 형제들의 죽음과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부인 알마 말러의 외도, 그리고 어린 딸의 죽음은 그의 음악을 설명하는 가장 좋은 주제이기도 하지요. 심리학이라는게, 상담자와의 대화 혹은 분석을 중심으로 설명되어야한다고 생각하는 저에게는 특히나 구스타프 말러와 같은 거장을 대상으로한 상담이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선과 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어릴적은 참으로 선명했던 이 개념이 나이가 들면 들수록 참 정의가 모호해지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오늘날에는 배따숩고 먹고살만한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 자체가 선으로 생각하는 것 같네요. 유력 대선후보의 5.16발언을 떠올려보면 더 그렇습니다. 물론 선과 악이라는 것은 여러가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겠지요. 경제적으로 빈곤한 것 자체가 악의 근원이라는 관점 역시 충분히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동의하지는 않지만요. 여튼 선과 악은 대립되는 개념이기도하고, 어쩌면 상호간에 서로가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역설적인 개념이기도 합니다.  베이컨의 그림이 떠오르는 표지(베이컨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혹시 아시는분 알려주세요.)는 선과 악이 하나의 뿌리에서 나오고 그 형상 역시 그다지 차이가 없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은데요. 이 책이 선과 악을 어떻게 정의하고 풀어가는지 궁금합니다.




 참 읽고 싶은 것이 많은 8월입니다. 매달 읽고 쓸 수 있는 2권씩의 책을 제공한다는 달콤한(?) 유혹에 빠져 아 책값 아끼면서 지식도 쌓고 독후감도 쓰고 참 일석 삼조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요샌 받아보는 책보다 사서 보는 책이 훨씬 많아진 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네요. 주머니는 비어가지만, 생각은 더 깊어져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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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 2012-08-05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좋은 책들 추천 감사합니다.. 다만 괜스레 끄적거리는게 아닌가 모르겠지만.. 인간복제 등의 주제에 대한 가치 판단에 대하여 생각하실때 장회익 선생의 저서를 참조하시려고 하신다면 좀 실망하실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어느 정도 읽어본 바로는 아무래도 그런 쪽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책인 것 같아서.. 사실 잘 모르겠네요, 읽기에 따라서 그렇게 읽을 수 있는 부분도 있기는 하니.. 음.. 괜한 말을 끄적인 것 같아 죄송합니다.

일개미 2012-08-05 21:52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잘 알아보고 써야했는데ㅋ 아 그리고 보니 추천한것 중 한권이(프로이트, 구스타프 말러를 만나다.)8월 발매더라구요. 자수합니다. 여러모로 좀 신중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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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인민>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 이후로 북한에 대한 적대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실상 이러한 극단적인 대립구도는 결국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지도층에나 유용하게 써먹혔다는 역사를 우리는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면 아예 역사적인 인식이 없던지.

 

 사실 이렇게 적대감이 가득한 오늘날에 이성적으로 그들을 알아야한다는 것은 감정적으로 잘 먹히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두가지 차원에서 반드시 북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본다. 하나는 실제적인 통일의 대상으로서 그들에 대한 선행적 학습 차원에서, 다른 하나는 종북과 진보적인 담론을 분리시키기 위해서이다. 이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들은 혹시나 이 책이 선정되었을 때를 대비해서 미루기로 한다.     


 <민주주의의 불만> 


 샌델의 과잉에 시대지만, 그 이유는 분명히 있으리라. 그만큼 사회가 구조적인 문제로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만큼 주목받았던 저작. 


 어떤 사안에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선택하게 된다. 이러한 선택은 결국은 우선순위의 문제인데, 자신이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가치관에 기초해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 가치관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샌델의 책은 이러한 가치관을 정립하는데 도움을 준다.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도덕과 정의를,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자본주의를 우리의 삶에 끌어들였다면, 이 책은 민주주의에 대한 통찰을 우리에게 가져다 줄 것이다.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서울의 역사가 600년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는 장소가 얼마나 될까? 식민지배와 전쟁으로, 그리고 개발논리로 우리는 너무 많은 기억을 잃어버렸다. 삼청동과 북촌에 주말이면 붐비는 수많은 인파는, 과거의 기억이 지워질수록 사람들의 향수는 더 커진다는 것을 반증일지도 모르겠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연인간의 사랑이 깊어지게만드는 것 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이 어떤 기억을 가진 장소인지 안다면, 좀 더 애정이 담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곳에서의 우리의 삶도 풍요로워질 것이다.


  

 <권력과 저항> 


 푸코, 들뢰즈, 데리다, 알튀세르. 이름만 들어도 현기증이 나지만, 이들을 한꺼번에 개괄할 기회도 흔치 않으리란 생각이 든다. 이 무지막지한 네임벨류의 철학자들에대해 더 늘어놓아보았자 나의 무지를 드러내고 말테니, 그냥 여기까지. 

 

 

 

 

 


 

 

 

 

  <일본사를 움직인 100인>


어릴적 일본은 무조건 싫은 나라였다. 우리나라를 식민지배하여 물자를 수탈하고, 독립을 탄압하고 수많은 목숨을 뺏어간 나라. 반성할줄 모르는데다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파렴치한 나라. 그러나 어른이 되고 일본의 문화적, 경제적 저력과 깊이를 직접 경험했을때, 일본은 단순히 싫은 나라에서 배워야할, 한편으론 뛰어넘어야할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외세에 의해 근대화 과정을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쩌면 일본의 경우가 어떻게하면 서양의 것을 배워우되, 자신의 것을 잃지 않고 발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좋은 예인 것 같다. 그들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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