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아직 말아톤이 촬영 중일 당시에, 나는 오직 조승우가 나온다는 이유하에 이 영화를 꼭 보겠다고 생각했었다. (무슨 내용인지도 잘 모르면서..) 영화가 자폐아에 대한 내용이란 것은 개봉하기 조금 전에서야 알았던 것이다. 사실 조금 걱정을 했드랬다. '울어, 울어, 이래도 안울래?’ 식의 신파로 흘러갈 것이.영화를 자폐아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는데, 난 사실 초원이가 그냥 조금 특별한 아이 이외로는 잘 안 느껴졌다. 영화를 좋아하고, 조승우를 좋아하는 내 친구는 자신이 공감하지도 못한 채, 가식적인 눈물을 흘릴것만 같아서 보기가 싫다고 했다. 글쎄, 보기 전에야 그런 식의 생각을 안했던 것은 아니지만.. 영화는 자폐아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한 모자에 관한 이야기일 뿐이다. 평범한 모자관계. 형에게만 신경을 쓰는 어머니로 인해서 소외당하는 둘째 아들과 어머니의 통제 아래에서 생활하는 큰 아들. 그로인한 갈등이 있을 뿐이다.

사실, 이정도의 구조야 우리 사회에서 흔한 이야기 아닌가? 장남(혹은, 첫째)로 태어나서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부모가 원하는 길로만 걷길 강요당하는. 단지, 영화에서는 초원이의 장애로 인해서 약간은 다른 관점일 뿐 엄마의 강요와 아들의 반항은 같은 구조이다, 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어린 나이라고 해도 상처는, 상처의 기억은 가슴에 박혀 아물지 않게 마련이다. 드러내지 못한 상처는 언젠가 한번은 폭발하든지, 아니면 속으로 계속, 계속 곪아가기 마련이다. 초원이가 ‘싫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않는 이유는 그 상처 때문이다.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잠재된 두려움이 그 말을 뱉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초원이가 달리기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엄마는 알지 못한다. 그저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믿을 뿐이다.

어느 순간 폭발되어 버린 초원이의 상처는 엄마의 상처이기도 하다.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일수도 있는) 엄마는 그 죄의식으로 더더욱 초원이에게 집착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너무 늦게 깨달았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두 사람 다 건강하게 살아있으니까 앞으로 그들 가족의 삶은 좀 더 달라질 것이다. (살아있는 한 너무 늦게 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영화에서 내가 눈물을 흘린 것은 초원이가 불쌍해서가 아니다. 단지, 엄마와 초원이의 모습에서 나를 떠올렸기 때문일 가능성이 더 크다. 집안의 첫째로 태어나서 남동생만 둘이지만, 엄마가 항상 기대곤 했던 것은 장남이 아니라, 장녀인 나였다. 엇나가면서 반항하는 장남에게 받은 상처를 나에게 기대며 풀었기에 나는 엇나가지 못했고, 작은 반항한번 하지 못했다. 사춘기도 없이 넘어왔으니까,

집에서 벗어가기만을 원했던 내가 기회가 되자 뒤도 안돌아 보고 뛰쳐나와 버린 것도 너무 많이 힘들어서이다. 반항한번 없이 엄마의 말대로 살아온 나는 초원이와 닮았다. 다른 점은 초원이는 한번 폭발했지만, 나는 말없이 간접적인 반항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초원이가 행복해서 다행이다. 마지막에 자신의 뜻대로 해낸 것이 다행이다. 너무 너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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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5-02-03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어제 이거 봤는데...지금 리뷰 쓰려고 해요. 반가워요 위로님.

작은위로 2005-02-03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저도 반가워요. ㅎㅎㅎ

로렌초의시종 2005-02-03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이 영화에서 초원이가 장남이라는 생각에는 미처 집중을 못했네요. 중요한 요점을 짚어내셨군요, 작은위로님~ 저는 아무래도 이 영화 한번 더 볼까봐요......

작은위로 2005-02-03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도 볼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걸요. 아무래도 닮은 꼴인가요~ ^^ 그냥 좀 우리와는 다른 이유이지만, 비슷한 거 같아서요. 이유도, 내용도, 삶도 다르지만, 조금 달리 생각해보니, 초원이가 자폐증이 없어도 장남이란 이유로 엄마의 통제 아래였을지도 모르지요. 동생은 동생대로 열등감 혹은 다른 이유의 소외감에 젖었을 지도 모르고요. 그냥 그냥, 그게 떠올랐어요. 감사해요~ ^^;;

작은위로 2005-02-03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굳이 한번 더 볼 필요까지 있을까요? 좋은 영화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