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일하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들어오셨다. 무슨일인가 싶어서 '무슨일로 오셨어요'했더니 들고계시던 노란 서류봉투에서 모나미볼펜두다스하고 영수증하나를 꺼내서 사달라고 한다. 그런데 그것 두개에 만원이다. 회사돈으로 처리 할수없는 이것은 내 주머니에서 나가야 하는데. 순간 짜증이 났다.
이미 많아서 필요없다라고 말하는 순간에 할머니가 우는 듯한 목소리가 '손이 마비되서 자식(혹은 손자였던가..)등록금 낼수가 없어서 이래 다닙니다. 5만원벌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나이 60먹어 이러고다닙니다.' 하는데 듣는것이 싫어서 그냥 만원을 내주었다.
짜증을 내서 책상정리를 하다가 내가 이렇게 못됐구나. 했다. 내가 이렇게 못됐구나. 나쁘구나.
전철에서, 혹은 거리에서 너무나도 멀쩡한 사람들이 구걸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기분이 나쁘다. 왜 아무것도 할 생각도 안하고 저러고 있나. 싶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땐 몰랐다. 어린 시절에도, 고등학교 다니던 그 시절에도 목포에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서울에 올라오니 그런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처음에는 그들에게 하나하나 돈을 넣어주기도 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불쌍한 사람들이 많은지 싶었다. 하루 종일 거기에 앉아서 돈을 구걸하는 젊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순간부터였다. 더이상 그들을 가여이 여기지 않게 된것이.
힘들게 사회생활을 하면서 때로는 죽고 싶을 만큼 힘들기도 했다. 하지만 남에게 손벌리는 것이 난 더 싫고 자손심 상하며 차라리 죽고 말지라는 심정인데...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되니 그들이 더욱 한심해 보인다. 물론, 청년실업이 어쩌고 하지만 사람이 필요한 곳은 많다고 한다. 실업자들이 많은 것은 그네들이 기피하는 일자리가 많은 탓이다. 흔히 말하는 3D업종은 쳐다도 보지 않으면서 자리가 없다고 한다. 수많은 노숙자들이 이제는 밤에 자고 낮에는 도서관으로 출근한다고 한다. 국립, 구립 도서관에 낮에 가면 지금은 노숙자들이 공부하기 위해 온다고 한다. 최소한 그러한 노력이라도 했으면 한다. 물론, 도서관에 다니는 이 노숙자들은 조금이라도 공부를 했던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아닌 사람들도 찾아보면 작게라도 입에 풀칠할 정도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전철을 돌아다니는 장님들 중 진짜인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한다. 정말로 장님인 사람들은 밖에 나오길 두려워한다고 한다. 세상이 각박하다보니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타인을 믿지 못하게 된 나를 보면서 참 많이 아프고 슬프지만 생각해보면 난 어린 시절에도 사람을 믿지 못했던 것 같다. 어쨌든, 난 오늘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또 슬프다. 내가 점점 삭막해져가는구나. 더이상 연민이란 감정을 갖지 않게 되어가는구나.
그러면서도 나는 가여운 사람들이 나오는 책, 영화 등을 보고 울어댄다. 이 처절한 이중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전철에서의 그 사람들과 오늘의 그 할머니 등에게서도 진실로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며 진실로 울고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것까지 생각하기엔 내가 점점 작아지고 삭막해져가고 있다.
이렇게 못된내가 너무나도 싫어지지만 어쩔수없이 그렇게 또 살아가게되겠지. 사랑에 대해서 더이상의 기대를 갖지 못하게된(사랑한번안해보고) 내가 너무 가엾기도 하지만. 그래도 난 잘살아가고 있다. 나보다 불행한 이들은 얼마든지 있으니 자신을 가여이 여기는 내가 지금 사치를 부리고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