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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이 아름답다 ㅣ 범우사상신서 35
E.F.슈마허 지음 / 범우사 / 1986년 12월
평점 :
품절
1.
(1) 인간의 본성은 비인간적인 기술과 조직 속에서 질식하고 쇠약해져 가고 있다.
(2) 인간의 생명을 지탱하는 생활환경이 파괴되어 절반쯤 붕괴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
(3) 인간 경제에 없어서는 안 되는, 재생이 불가능한 자원, 특히 화석원료 자원의 고갈이 눈앞에 보이고 있다.
위의 세 가지는 슈마허가 말하는 지금 우리 시대의 위기입니다. 1973년에 쓰여질 당시의 세계를 진단한 것인데 2016년 지금의 상태를 보면 단 하나도 개선된 것이 없이 세 가지 모두 악화되어 있습니다. 사실 슈마허가 우리나라를 대상으로 쓴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우리나라는 저 세 가지 문제에 얽혀서 겨우 버티고 있는 것 같습니다.
(1)대기업 위주의 갑을관계, 군대식 조직, 비인간적인 방식이라도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식의 마인드
(2) 전세게에서 도시화율이 가장 높아 불과 10년전만해도 여름 기온이 34도만 되어도 신문에 대서특필되던 것이 이제는 36도, 체감온도 40도 이상이 몇날며칠 지속되는 상황.
(3) 화석원료중 가장 큰 비중인 석유가 우리나라는 고갈이 아니라 아예 없는데도 선진국들 중에서도 상위권의 소비율을 보이고 있는 상황
슈마허가 혀를 끌끌차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사실 책이 쓰여질 당시만 하더라도 기존의 경제체계가 많은 문제점들을 보이고 있었고 그래서 슈마허의 책이 주는 파급력은 상당히 강력했습니다. 많은 나라에서 그를 불러 자문을 구했고, 미국에서의 마지막 대중연설에서는 6만 여명의 청중을 불러모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때 뿐이었고 거의 모든 나라들이 기존의 자본주의적 이기주의를 유지, 이후의 경제는 위기가 오면 겨우겨우 막아내는 식의 역사로 이어졌습니다. 모두가 슈마허의 작은기술이 옳고 그것이 앞으로 공존하며 살기 위한 해답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누구도 먼저 나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진국 기술의 자본대비 효율과 양적 풍요를 거절하기란 정치인들과 경제인들에게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민간단체들이 나서서 작은 기술의 중요성과 인간의 공존에 대해 외치고 있지만 힘이 부족한 듯 보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저를 포함한 일반인들의 시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비인간적인 방식에 반대하고 공기가 탁해지는 것에 걱정은 하면서도 결코 생각을 바꾸지는 않습니다. 에어컨은 계속틀고, 이 좁은 땅에서 자동차는 커야 제맛이고, 회사 내의 체계에 시간이 지날수록 적응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체제가 좋은 거다, 이게 정답이다 라는 마인드가 계속된다면 변화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조금씩만 바꿔도 더 좋은 세상이 올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가성비만 따진 상품 구매보다는 지역 기반의 상품, 자연 친화적인 음식 구매 등이 있을 것 같습니다.
<동네시장에서의 구매도 한걸음이지 않을까요!>
2.
'원조를 받던 국가에서 원조를 주는 국가로 변한 유일한 국가', '한강의 기적을 보여준 개도국들의 모범' 우리나라는 이런 평가를 많이 받아서 사실 우리나라가 많은 개발도상국들을 도와주는 데 열심히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우리가 가진 노하우를 전달하여 그들을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선진기술을 바탕으로 발전하게 한다면 세계가 공존하는데 분명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니 우리나라는 그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것이라고 깨닫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작은기술, 적정기술의 시기를 거치지 못했습니다. 전쟁 이후 선진국의 기술을 그대로 베껴 선진 기술을 우리 사회에 우겨넣었습니다. 그 과정속에서 발생한 여러 문제들은 발전의 이름 아래, 독재의 힘으로 모두 무시, 덮어졌습니다. 가발, 신발 밑창을 만들던 국가가 갑자기 조선업, 철강업, 화학업의 국가로 전환이 되었습니다. 지금 이 정도의 풍요를 누리고 있는 건 어쩌면 3저 호황과 같은 시대적 천운과 전쟁 이후 물질적으로 잘 살고 싶다는 국민들의 호응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래성을 쌓아올리듯 중간기술 없이 선진기술을 도입하여 불안불안한 경제성장이 이어져 왔습니다.
<잘 지은 모래성도 모래성일 뿐입니다.>
그리고 지금, 모래성의 밑부분이 스르르 흘러 내리고 있습니다. 조선업의 붕괴, 내수가 너무 부족한 경제, 후진국보다도 못한 일부 국민지수. 우리나라는 타국에게 노하우를 전해줄 때가 아닌 작은 기술을 잘 활용한 국가들을 벤치마킹해야 할 때입니다.
3.
일전에 저의 꿈이 도서관을 많이 세우는 것이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게 해서 조금은 더 배려와 이해가 많은 사회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생긴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꿈을 위한 내 마음속 전제는 그럴만한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돈을 많이 벌면 그만큼 도서관을 더 많이, 더 좋게 세울 수 있으니 효과가 크겠구나라는 생각. 이 책을 읽고 나니 나의 꿈에서 사람들의 배려심과 이해심이 높아지는 것은 부수적인 것이고 결국 최대한 많은 도서관을 세우는 업적이 꿈의 핵심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슈마허가 지적은 물론 거대산업과 같은 거시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개인에 불과한 저의 꿈에도 모든것을 수치화하고 계량화하는 자본주의적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한 명이라도 독서를 통해 삶이 바뀌는 것이 진정한 목표가 되어야 했을텐데 그동안 '멋진 별장을 사야지~' 라는 물질적인 꿈과 다를 바 없는 꿈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 멋진 도서관을 지어야지라는 물질적인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슈마허는 교육을 받은 인간은 두 가지 이데올로기 중 하나를 가지게 된다고 합니다. 교육이 특권을 위한 프리패스로 간주된다는 이데올로기와 교육은 다른 이를 위한 봉사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 떠맡은 의무라는 이데올로기. 대학교 4학년 막바지에 다다른 저로서는 2번째 이데올로기가 훨씬 더 좋아 보입니다. 운좋게 큰 어려움 없이 공부를 할 수 있었는데 이 배운 것을 남들을 위해,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쓸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도서관 세우기'라는 목표도 그런 마음에서 생긴 것 같습니다. 이제는 그런 목표를 조금은 더 비물질적으로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게 하기' 같은 걸로 바꾸어야 겠습니다.
<길거리에서 책읽는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