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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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주인공의 재미있는 이야기였습니다. 평범한 증권 거래인에 예술에 관심이 많은 부인을 두었던 그는 갑자기 그림을 그리고 싶어 출장을 갔던 파리에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작가이자 스트릭랜드 부인과 일면식이 있었던 화자는 부인의 부탁으로 스트릭랜드를 만나러 가고 거기서 스트릭랜드와의 인연이 시작됩니다. 그림을 열심히 그리기는 하지만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던 스트릭랜드를 유일하게 인정한 화가가 화자의 친구인 스트로브였습니다. 그는 스트릭랜드를 동경하며 그에 대해 물질적인 도움을 스스럼없이 해줍니다. 아픈 스트릭랜드를 자기집에 들이기까지 했는데 그의 부인이 스트릭랜드를 따라 스트로브와의 결별을 선언했고, 부인을 너무나 사랑했던 스트로브는 오히려 그가 집을 두고 떠나버립니다. 하지만 스트릭랜드는 스트로브 부인마저 버린채 돈을 벌기 위해 이곳저곳 헤매다가 타히티로 흘러들어갑니다. 거기서 토착인과 결혼하여 스스로 지상낙원이라고 칭한 지역에서 살다가 문둥병으로 죽어버렸습니다.


<타히티 여인들 - 고갱>


표지에서 볼 수 있는 고갱을 모델로 삼았다고 한 이 소설은 작품해설에서 말하길 실제 고갱의 삶과는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고갱은 증권거래인이기는 했지만 스트릭랜드처럼 갑자기 모든걸 버리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증권일을 하면서도 그림을 계속 그렸고, 증권회사가 파산하자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빈곤을 버티지 못한 부인이 자식과 떠나면서 소설과는 반대의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후에 고갱도 스트릭랜드처럼 잡역부로 일하고 타히티로 떠나 현지인과 같이 살며 여생을 보냅니다. 문둥병이 아닌 심장병으로 삶을 마감했다고 하네요. 오히려 고갱보다 스트릭랜드의 삶이 더 화가처럼 느껴지는 기분입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예술가에 대한 동경이 많이 줄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특히 유명한 고흐를 대표로 하는 소위 '미쳐버린' 화가들은 그들의 광기, 자유로움으로 사후에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화가들의 기이한 행동들은 신비로움이 덧붙여 천재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설사 부정한 짓을 저지르더라도 예술가니까, 화가니까 이해가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모두 먼 발치에서 바라본 화가, 예술가 일 것입니다. 그들의 일생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면 우리가 지금 느끼는 것과 같은 매력을 느끼지 못했을 겁니다. 고흐의 작품이 생전에 그렇게 팔리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는 고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생전에 그림을 팔지 못한, 가난 속에 피어난 꽃과 같은 위대한 화가 고흐' 라는 식으로 왜 이런 좋은 작품들이 팔리지 않았을까 라는 궁금증을 가지며 작품을 위대한 눈으로 바라봅니다. 반면 고흐 주변에 있던 인물들의 눈으로 보자면 한 예술가의 처절하고 비루한 삶을 그대로 보고 있을 테니 그림에 매력을 크게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퇴폐적인 일들, 세상의 기준에 맞지 않는 행동들을 거리낌 없이 하는 그들을 바라본다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겠지요. 예술가의 삶을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도 우리와 많이 다르지 않구나, 오히려 어떤 경우에는 우리보다도 못하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제는 예술가라고 나도 모르게 '우와~'하면서 바라보는 것이 줄어들 것 같습니다.


 




2.

전 확실히 6펜스에 가까운 사람인가 봅니다. 영국의 가장 낮은 단위로 유통되는 은화인 6펜스. 알다가도 모를 이 책의 제목은 사실 두 가지의 상반된 세계, 달로 대표되는 충동적이고 욕망이 넘치는 영역과 6펜스로 대표되는 돈과 물질의 영역에 대해 이야기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국의 세속적인 교육을 착실하게 받았기 때문에, 예술에 대한 재능을 발견하지 못하고 멀리하였기 때문에 6펜스에 가까운 사람으로 느껴졌습니다. 저와 같은 6펜스의 사람들은 스트릭랜드의 행동들을 섣불리 이해하지 못합니다. 단순히 '그림을 그리고 싶었기 때문에' 다니던 직장과 심지어 가족들까지 서슴없이 버리는 것 하며, 자신에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동료화가를 냉대하며 부인까지 뺏어가고...




천재이기에 이런 행동들이 용서가 되는 것일까요? 예술가라면 이런 별난 행동들을 눈감아 줄 수 있을까요? 대의, 진리를 위해 세속의 묶인것들로부터 벗어난 것이라고 말은 하지만 인간적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나는 세상을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같이 사는 것인데 그렇게까지 해야만했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달을 꿈꾸는 것이 그런 것이라면 차라리 6펜스를 쥐고 사는 것이 더 나은 것 같습니다. 영혼의 세계와 순수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킨다고 혼자만의 순수이고 혼자만의 욕망 분출인 것 같은 느낌이 더 강하게 듭니다. '그대의 모든 행동이 보편적인 법칙에 맞을 수 있도록 행동하라'는 칸트의 정언명령은 인간이 공존하기 위한 법칙인데, 모두가 스트릭랜드처럼 산다면 욕망만이 가득한 세상이 될 것 같습니다. 너무나 이성적인 사회도 삭막한 기운만이 가득하겠지만 너무나 욕망적인 세상도 좋은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결국 균형잡힌 이성과 욕망이 가장 좋은 것 같다는 당연한 결론.... 6펜스만 바라보며 살아온 저같은 경우는 예술을 해서 욕망을 건전하게 발현시켜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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