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이순원 지음 / 뿔(웅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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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촌스러웠다. 「나무」의 첫 느낌은 촌스러움이었다. 100년 이상을 산 할아버지나무와 이제 갓 8살이 된 손자나무인 작은 나무가 깊은 겨울잠을 자야 할 한겨울에 문득 잠에서 깨어나는 첫 장부터, 페이지를 채워나갈 나머지 이야기와 마지막 장을 짐작케 했다.

조그만 시골집. 마당에 자리 잡고 있는 커다란 밤나무인 할아버지나무는 현재 집주인의 아버지가 심은 나무이다. 그 사람은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게 나라를 빼앗겼을 때, 어린 13살의 나이에 자신보다 1살이 어린 신부와 결혼을 했다. 어렸지만 남다른 생각이 있었던 어린 신랑은 초가집과 함께 유일한 소유재산이었던 민둥산에서 긁어모은 밤 다섯 말을 겨우 내내 묻어두었다가 보릿고개가 한창일 봄에 꺼내어 산에 심었다. 사람들은 차라리 배가 고픈 지금 그 밤을 얼른 삶아먹으라 했지만 신랑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 해 두 해가 가고,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는 민둥산을 보고 사람들은 어린신랑을 향해 비아냥거렸지만 드디어 십년이 되었을 때, 민둥산에서 싹을 틔우고 가지와 잎을 낸 밤나무들은 제법 굵은 밤송이를 만들어 내었다. 할아버지나무는 홀로 집 마당에 떨어져 있다가 민둥산에 묻히지 않고, 나중에야 발견이 되어 집 마당에 묻힌 집주인에게 조금은 특별한 나무였다.

오랜 세월 묵묵히 집 마당을 지켜온 할아버지나무와 올해는 기필코 밤송이를 많이 만들어 알차게 익히겠다는 작은 나무가, 예정보다 이르게 깨어난 겨울을 지나 봄, 여름, 가을을 거쳐 가는 동안 조근조근 들려주는 이야기는 초반 안 읽어도 무슨 책인지 다 알겠다 콧방귀를 꼈던 촌스러움에서 결국은 빙그레 미소 짓게 하는 소박함으로 진화해간다.

할아버지나무의 연륜에서 묻어나는 지혜와 작은 나무의 치기 속에서 벌어지는 각종 소란과 대화는 겨울에서 시작해 나무와 꽃이 세상을 향해 움트기 시작하는 봄, 드디어 열매를 맺고 해초 냄새가 나는 사나운 바람 등 많은 시련을 겪었던 여름을 지나 작은 나무에게 처음으로 두 개의 밤송이를 꼭꼭 익힌 가을에서 다시 기나 긴 겨울잠을 자야하는 겨울까지, 촌스러울지는 모르지만 작은 나무가 할아버지나무가 될 때까지도 결코 변하지 않을 소박한 진리를 전한다.

화로에 던져 구워먹는 것보다 땅에 묻어 나무로 자라게 하는 것의 의미. 추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제때 꽃을 피워 열매는 맺는 매화나무의 기상. 열매를 맺느라 다른 나무보다 수명이 짧지만 온 정성을 다해 열매는 맺고 이 세상에 주고 가는 과실나무의 소중함. 당장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보다 뿌리를 깊게 하고 가지를 튼튼하게 해 잎을 많이 내는 것의 중요함이 어찌 꽃과 나무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 “...네가 아직 어린 나무이기 때문이지. 지금 열매 한 개를 더 맺고 덜 맺고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다음 더 많은 꽃과 열매를 맺기 위해 그렇게 하라는 것이지.”

소박하다. 더도 덜도 할 것 없이 착하고 소박한 책이다. 「어린왕자」나 「연어」의 울림에는 못 미칠지 몰라도 “작가로서 어떤 글을 썼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내 글에 몸을 바칠 푸른 나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을 썼으면 좋겠다.”고 말해 왔다던 작가의 바람대로 충분히 나무들에게 떳떳할 수 있는 글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착하게 읽어나가 보자. 어느새 마지막장이고, 조그만 장난에도 까르르 크게 웃는 시골 아이처럼 착해져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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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름마치 1 - 진옥섭의 예인명인
진옥섭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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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 한 분이 손자 소풍을 따라갔다 … 그날따라 맥주가 달아 몇 잔 연거푸 들어갔고 하필 학부모 장기자랑이 시작되었다. 젊은 축들이 너나없이 나서서 “할머니도 한 곡 하세요.” 하며 톡톡 쳤다 … 그렇게 톡톡 건드리는 통에, 잔의 바닥에 거품이 되려 솟아오르는 기포처럼, 혈구(血球)의 앙금 밑에 쉬던 흥이 뽀글거리며 올라섰던가 보더라. 슬슬 ‘배운 가락’이 스며 나오기 시작해 그만 마이크를 잡고 말았다. 모두들 소란을 멈췄다 … “기생이다!” … 손자는 울면서 걸었고, 며느리는 여기 와서도 이럴 거냐며 타박을 했고, 아들은 호적에서 파자 했다. “호적이 무슨 우물이냐”던 할매는 그 밤 한 잔 가득 음독을 하였다.」

 

노름마치. 그것은 ‘놀다’의 놀음(노름)과 ‘마치다’의 마침(마치)가 결합된 말로, 최고의 명인을 뜻하는 남사당패의 은어이다. 그가 나와 한판 놀면 뒤에 누가 나서는 것이 무의미해 결국 판을 맺어야 하는, 놀음을 마치게 하는 고수 중의 고수를 ‘노름마치’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은 잘 닦여진 포장도로가 아니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눈물의 길이고, 울퉁불퉁하기는 딱 자갈밭인데다, 먼지 폴폴 날리는 흙길 중의 흙길이다. 그래도 그 길을 가겠다고 터벅터벅 걷다 보면 때로는 신명도 나고, 웃음도 난다. 눈물과 웃음 사이에서 한 걸음 두 걸음 내딛다 보니 어느새 세월은 저만치 흘러 얼굴엔 주름만 늘었고, 한판 질펀하게 놀던 동무들은 떠나고 없다. 누구 말마따나 이젠 저승이 볼만한 판인 것이다.

유앵이 할매. 통영바닥의 모든 예술을 한 몸에 휘감았던 최고의 여류는, 기생이란 소리를 피해 피난한 동해바다 어느 소도시에서, 어느 초등학교 소풍날, 한 잔 술로 이승의 소풍을 마감했다. 예기(藝妓). 회초리 맞아가며 배우고 익힌 소리와 춤은 식구들을 먹여 살렸지만, 되려 식구들은 손가락질 받는 당신이 싫다 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는 나는 모르오. 하며 숨어 지냈고, 가슴에 깊이 묻어두었던 한이 되살아 날 적 음독으로 세상과 이별했다. 어디서 소문을 듣고 왔는지 생판 모르는 이가 와서 예술이네 뭐네 하며 한 판 벌려준다 해도 왜 과거를 들쑤시느냐며 화통을 내놓는 것이다.

[노름마치]의 저자 진옥섭은 이런 분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하고 무대에 올리는 연출자이다. 짜하던 명성은 옛이야기이고, 오늘은 잊혀진 사람이 되어, 세상에 대한 관심마저 끊고 말문을 걸어 잠근 그들의 부서질 듯한 손을 잡고, 약속을 받아낸다. 무대에 오르겠다 하긴 했으나 건강이 부실하고, 오늘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분들이니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또 오랜 상처가 돋아 어느 순간 마음 돌릴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굳이 약조를 받아내고 무대에 세우는 건 일단 오르기만 하면 여태 없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이란 이름 속에서 순간순간 새것이 돋아난다. 이런 순간을 맛보면 중독이 되고 만다. 결국 또 들여다보고픈 것이다.

예기(藝妓). 남무(男舞). 득음(得音). 유량(流浪). 강신(降神). 풍류(風流). 얼핏 보면 예술인가 싶기도 하고, TV에서 보던 고리타분한 무엇인가 싶기도 하다. 그러다 자세히 들여다보자니 늘 보고 듣던 것인 것 같으면서도, 또 그렇게 어렵고 멀기만 하다. 예기와 남무, 득음의 길을 걸으신 분들은 기녀, 광대, 무당 등으로 순탄치 못한 삶을 사신 분들이시다. “모릉께, 하도 몰라중께, 그 천대에 다 죽고 다 작파혀서, 볼라면 지금 급허지요.” 씻김굿을 약속했으나 날짜를 얼마 남기지 않고 자신이 씻김굿의 망자가 돼 버린 이의 한탄은 그분들의 아물지 않은 상처와 마음속에 품은 경계를 짐작케 한다. 또 이제는 지나간 시간과 남겨진 시간이 아쉬워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아무리 어렵게 어렵게 그분들을 찾아내고 약조를 받아도 아무도 보러오는 이가 없다면 그건 말짱 도루묵이다. 하여 알려야 하고 그래서 진옥섭은 신문에 올릴 보도자료를 밤새 고쳐 쓰고 만들었다. 이 책은 그 보도자료를 수선한 것이다. 손가락질에, 가시밭길에 숨어 버린 분들인지라 세상에 알려지지 않아, 옛 기억을 물어물어 이력을 작성해 봐도 해외 어디에서 상 받았노라 하는 휘황찬란한 이들에게 가려지기 마련이다. 신문 한켠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결국 살아온 그대로의 모습을 전달해 예술의 전모를 깨닫게 하는 방법 밖에 없으니, 이 책에 적힌 글들은 바로 그분들의 상처를 긁어내 얻은 파란만장한 삶을 보도자료니, 팜플렛이니 하는 그 조그만 됫박에 담지 못한 면모를 밝혀 새로 엮은 것이다.

“길이 놓여 있다는 것은 숙명적으로 먼저 그 길을 간 자가 있다는 뜻이다.” 그 길은 애초에 가무악의 집안에 태어났거나, 쓰다달다 개념이 없는 어린 시절부터 이미 조련되어버린 것이다. 그 분들의 남다른 예술세계는 가무악일체(歌舞樂一體), 즉 소리와 춤, 악기 세 분야를 모두 아우르는 것인데, 한 분야에 매진하더라도 다른 두 분야가 완벽하게 몸속에 차 있어야 예술이 나온다는 관념이다. 노름마치. 저자 진옥섭은 그분들을 만나러 가는 길을 다시 올 수 없는 시간을 마중 가는 길이라 했다. 한 판 나서면 뒤에 누가 나서는 것이 무의미해져 판을 맺어야만 한다는 명인 중의 명인이었으나, 이젠 홀로 남아 노을처럼 삶의 마지막 기운을 내뿜는 이 시대 마지막 사람들의 이야기. 그 사연을 고이고이 엮여 내, 읽고나면 마음 한 구석이 아련해지고 그 기분이 쉬이 물러서지 않으니 이 책 역시 노름마치다. 생의 마지막 붉은 기운이 눈이 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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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12-11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

얼음무지개 2007-12-11 22:2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얼떨떨하네요. 이렇게까지는 기대하지도 못했는데..

멜기세덱 2007-12-12 0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저도 막 얼떨떨해서...지금...이래요...ㅋㅋ

얼음무지개 2007-12-12 09:12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진짠가 싶기도 하고..ㅎㅎ 멜기세덱님 진짜 축하드려요..1등~~^^

다락방 2007-12-12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얼음무지개 2007-12-12 23:2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제가 이런 축하를 받다니 참 신기해요.

환상의시기 2007-12-12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서평 잘 읽었습니다. ^ ^

얼음무지개 2007-12-12 23:25   좋아요 0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글에 비해 과분한 평가를 받았죠..^^;

순오기 2007-12-13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꼭 읽어봐야할 것 같은 맘이 팍팍~ 솟아나는 리뷰네요.
축하합니다~~~~

얼음무지개 2007-12-13 21:34   좋아요 0 | URL
책은 정말 좋아요..^^ 감사드리구요..ㅎㅎ

프레이야 2007-12-13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이 있었군요. 축하드립니다. 반가워요. 즐찾하고 갑니다.^^

얼음무지개 2007-12-13 21:34   좋아요 0 | URL
제가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라서... 글 하나 올라오는데 시간이 오래오래 걸리거에요..^^; 감사합니다.

마노아 2007-12-14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음무지개님 축하해요~ 닉네임도 너무 예쁘십니다. ^^

얼음무지개 2007-12-14 11:47   좋아요 0 | URL
닉네임은 노래제목에서 가져왔답니다. 시인과촌장의 노래이지요. 저도 단어가 예뻐서 쓰고 있답니다.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miony 2007-12-14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축하드려요!^^

얼음무지개 2007-12-15 02:4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참 저에게 이런 일이 생겨서 참 신기해하고 있는 중이에요..ㅎㅎ
 
사도세자의 고백
이덕일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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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자(勝者)의 기록이다. 승자의 기록임과 동시에 무척 이기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 패자(敗者)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악(惡)이 되고, 승자는 당당히 기록에 남아 선(善)이 된다. 역사를 기록할 권리를 갖게 된 승자에 의해 남겨진 역사는 철저히 승자의 시각을 대변하게 된다. 한쪽 눈을 감고, 한쪽 팔로 쓰면서 자신의 승리가 옳음을 강변하는 역사는 그래서 지독하게 이기적이다. 그런 기록을 토대로 과거를 재구성할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남겨진 역사적 고증이라는 것은 또 그렇게 이율배반적일 수밖에 없다.

영조 38년 윤 5월 13일. 나라의 국본인 세자가 뒤주 속에 갇혔다. 두려움에 찬 눈빛으로 살려달라고 빌면서 아버지이기도 한 왕의 명에 의해 뒤주 속으로 들어간 세자는, 한 여름 무더운 땡볕 속에서 무려 8일 동안 갇혀 있다 끝내는 세상과 연을 끊었다. 손이 귀한 왕조에 하나밖에 없는 왕자로 태어나, 온 세상 사람들의 기대와 사랑 속에 성장해, 이제는 장차 조선의 왕이 되었어야 할 세자였음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누구 하나 손 내밀어 주는 이 없는 완벽한 고립 속에 죽어간 것이다.

어찌하여 한 나라의 왕자가 그토록 철저한 외면 속에 죽을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정말로 사람들이 말하듯 정신을 놓았단 말인가. 그래서 혈연의 정보다는 나라의 앞날을 걱정한 왕은 천륜마저 버리고 자식의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단 말인가. 죽은 세자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에는 이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 그렇다고 말한다. 그러나 승자의 기록이기도 한 [영조실록]에는 어쩌면 그것이 다가 아닐 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게 하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것이 저자 이덕일이 [사도세자의 고백]에 귀 기울이게 된 이유이다.

역사의 패자였던 사도세자. 그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가 저술한 책은 보기 드문 패자의 기록으로써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상한 건 오히려 승자의 기록에서 패자인 사도세자가 성군의 자질을 지녔을 지도 모를, 지금까지의 상식과는 다른 면모가 보인 것이다.

이덕일은 조선을 사대부의 나라로 규정하고 있다. [조선왕독살사건]을 비롯한 그가 그간 내놓은 역사책에는 조선은 겉으로는 왕의 나라이나 왕은 무소불휘의 권력을 휘두르던 절대자가 아니었으며, 신하들에 의해 움직이던 나라였고 신하들은 왕을 모시기보다는 학문적 뜻을 같이 하는 당론을 따르던 당인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왕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반정을 일으키기고 하고, 때로는 독살을 하면서까지 택군(擇君)을 감행했던 것이다. 사도세자는 신하들에게 선택받지 못한 왕이었다.

영조는 당시 집권당인 노론에 의해 선택받은 왕이었고, 형이기도 한 선왕 경종의 죽음에 책임이 있었다. 비록 유약하긴 했으나 젊은 왕이었던 경종의 급서에 독살됐을 지도 모른다는 항간의 소문 한가운데 영조가 있었고, 영조는 그 업보를 씻는데 평생의 공을 들인다. 영조는 자신의 대에서 그 업보가 깨끗하게 마무리되길 바랐고, 아들인 세자에 의해 완성이 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세자의 뜻은 달랐다.

세자는 노론과 가까이 하지 않았다. 영조는 겉으로는 탕평책을 내세우고 있었지만 실은 노론을 중심에 두고 소론을 중용하는 노론중심의 정책을 폈다. 그것이 영조의 태생적 한계였다. 영조는 노론에 의해 택군이 된 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품이 강직했던 세자는 어느 한쪽에 기울지 않았으며 오히려 뒤에 물러나 있던 소론과 뜻이 맞았다. 이는 아버지 영조와 크게 어긋난 것이었다. 더군다나 부인인 혜경궁 홍씨의 집안은 노론이었다. 혜경궁 홍씨는 남편보다는 집안을 따른 노론의 여인이었고, 장인은 노론의 영수였다. 이것이 사도세자가 뒤주 속으로 들어간 날, 죽음을 감지하고도 가족이라 할 수 있는 부인이나 친지보다는 이런 날을 예견해 미리 약속을 해 둔 조재호를 부른 까닭이고, 그를 죽음으로 이끈 가장 큰 비극이었다. 그는 외로웠다. 아무도 곁에 없었고, 심지어 부인마저도 적이었던 것이다.

사도세자가 죽고, 당시 10살이었던 죽은 세자의 아들인 세손에 의해 과거 연산군의 일이 되풀이 될 것을 우려한 노론은 세손을 제거할 계획을 세우지만, 이는 실패하고 만다. 마침내 영조가 죽고 인고의 세월 끝에 왕에 오른 세손은 즉위 당일 빈전 문밖에서 대신들을 소견하며 이렇게 선포한다.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가슴 속에 품어 온 피 맺힌 한 마디를 내뱉고야 만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이들을 치죄하고, 그 중심에 어머니 혜경궁 홍씨 일가가 있었다. 이것이 혜경궁 홍씨가 [한중록]을 남긴 이유이다. "[한중록]을 쓸 당시 혜경궁은 사랑하는 남편의 비참한 죽음에 오열하는 20대의 청상과부가 아니었다. 당시 혜경궁은 궁중 깊숙한 곳에서 영조, 정조, 순조 세 임금의 치세 6,70여 년을 지켜본 70대의 노회한 정객이었다." [한중록]은 승자의 기록이었다.

한 쪽 눈만을 가진 역사의 기록은 억울하게 죽어간 한 남자를 정신병자로 몰았다. 그의 고백을 다 듣고 있노라면 240년 전의 일이 마치 오늘의 일인 것처럼 마음 한 켠이 스산해져 온다. 사도세자의 죽음은 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우리 역사의 크나 큰 오욕이며, 조선의 비극이기 때문이다. 신하의 선택을 받지 못한 세자는 죽임을 당했고, 그 다음 왕인 정조 역시 석연치 않은 죽음을 맞았다. 조선의 마지막 불꽃이었던 정조의 시대가 지나고, 조선은 세도정치로 얼룩지다 끝내는 나라를 빼앗기고 만다. 이 어찌 통탄하지 않을 수 있는가. 천륜마저도 버릴 만큼 권력을 향해 치달았던 비정한 정치 생리와, 백성을 사랑했던 두 군주(사도세자와 정조)의 죽음을 목도하고 땅을 치던 백성의 울부짖음 끝에 사도세자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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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Road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박준 글.사진 / 넥서스BOOKS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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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환상이다. 여행을 꿈꾸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실상 짐을 꾸려 배낭을 메고 떠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에 여행은 환상이 된다. 여행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몽롱한 듯 아련한 눈빛을 띠기 마련이다. 그럴 땐 마치 어릴 적 동화책 속의 용감한 기사처럼 지금 당장 공주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말에 오르기도 전에 온갖 두려움이 엄습하며 주저하고 체념하게 되는 것이다. 누구나 꿈을 꾸지만 누구도 감히 실현해 내지 못하는 것. 그래서 용기 없는 우리들은 하루 이틀, 혹은 꽉 짜진 일정에 맞춰 바삐 움직이는 패키지 관광이라도 나서는지 모르겠다. 단순히 지친 일상을 탈출하는 거라면 관광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여행을 한다는 건, 낯선 땅에 홀로 선 나와 마주보는 것. [온더로드]에는 환상을 현실로 만든 사람들이 있다.

태국 방콕의 ‘카오산 로드’. 전 세계 여행자들의 첫 시작이자 마지막이라는 여행자 거리 카오산 로드에는, 전 세계에서 모인 다양한 국적의 여행자들이 매일같이 모여들고 또 어디론가 떠난다. 저마다 경쟁이라도 하듯 커다란 배낭을 메고, 레게머리를 한 채 지미 헨드릭스의 얼굴이 프린트된 셔츠를 입고서 카오산 로드를 오가는 사람들. 카오산에서 여행은 일상이 된다.

아침에 일어나 머리를 감다가 문득, 출근을 하기 위해 매일매일 머리를 감아야만 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여행을 계획했다는 임정희님은 남편과 함께 손을 잡고 시작한 세계여행이 벌써 1년 남짓이나 됐다. 어느 날 누워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듣고 있다가 짐을 싸야겠다는 생각에 인도로 떠난 게 여행의 시작이 된 윤지현님은 무려 2년 동안 4개국만을 여행했다. 여행을 했다기 보다는 각 나라로 이사를 다닌 격이다. 이유가 어찌됐든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시작한 여행. 여행은 그들에게 일상이 되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 된다.

 

교환학생으로 태국에 와 작은 마을에서 살고 있는 루시는 17살의 고등학생이다. 아직은 어리고 자신밖에 모를 것 같은 수다쟁이 미국인 소녀는, 미국 밖에도 다른 세계가 있다는 걸 알아야 하며, 문화적인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묻는 말마다 아무 것도 모른다고 대답하는 시니컬 커플 코베와 키티는 부유한 유럽의 팔자 좋은 여행자들이라 생각했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캄보디아의 가난한 국민들을 보며 아파하고 힘들어한다. 또 라오스를 여행하면서는 어쩌면 서구보다 더 풍부한 문화를 가졌을 그들이 미국의 간섭이 없었다면 더 행복했을 지도 모른다고도 여긴다. 여행은 나를 돌아보게 됨과 동시에 너를 이해하게 된다. 

 

갖고 싶었던 60만 원 짜리 시계를 사는 대신 그 돈으로 여행을 시작한 문윤경님은 혼자 모든 걸 해결해야 하는 여행의 긴장감을 즐긴다. 너무너무 재밌단다. 행복해질 수 있는 걸 찾고 싶어 훌쩍 떠나기로 결심한 안야씨는 언제가 가장 행복하냐는 질문에 그런 질문부터가 행복하다며 무척 즐거워한다. 그 외에도 카오산에는 부모 등에 떠밀려온 고등학생부터 마약에 취해 살다 탈출구로 여행을 택한 독일 청년, 가게를 정리하고 함께 여행을 하고 있는 결혼 30주년을 맞이했다는 중년의 부부가 있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인도에서 오로빌이라는 공동체에서 살았다던 17살 소녀도, 수행을 하기 위해 미얀마로 가는 스님도 카오산에 들린다. 여행은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다. 시작도 과정도 끝도. 물론 무엇을 느끼든, 해답을 찾든 못 찾든, 여행을 통해 얻는 모든 건 각자의 몫이다.

여행은 현실이다. 환상이었던 여행은 카오산에서 만난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환상이 아닌 현실이 되어 다가온다. 언어도 그 무엇도 떠나는 데 필요한 건 아무 것도 없다고. 그저 한걸음 내딛기만 하면 된다고. 하나같이 혼자 여행하는 건 외롭지도 힘들지도 않다며 우리를 부추긴다. 나도 당장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의 여행이 더욱이 현실로 느껴지는 건, 그들은 행복해하면서도 불안해하고 걱정을 한다. 여행을 마친 후 미래에 대한 불안. 당장 내일을 알 수 없는 현재를 즐기면서도 홀로 사색에 잠길 때면 나름 자신에 대해 불만도 가진다. 그러면서도 여행을 시작한 것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후회하지 않는다. 「떠나는 건 일상을 버리는 게 아니라 다시 돌아와 더 잘 살기 위해서니까.」 여행은 참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온더로드]에서 여행은 현실이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꿈이다. 그리고 선택이다. 꿈으로 남으며 환상을 품고만 있을 것인가. 현실로 이룰 것인가. 선택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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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영화 - 전2권 세트 위대한 영화
로저 에버트 지음, 최보은.윤철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1895년 프랑스의 한 극장에서 기차의 도착이라는 영화가 상영됐을 때, 화면 속에서 움직이는 기차를 보겠다고 몰려드는 인파들 속에서, 한편에서는 달려오는 기차를 보고 놀라기 이전에 이것이 돈이 될 수 있다는 걸 간파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은 오늘날까지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양면의 동전과도 같은 오랜 물음이기도 하다. 영화는 과연 예술인가 산업인가? 자동차 몇 백 만대를 파는 것과 맞먹는 수입을 올리기도 한다는 한 편의 영화는 ‘영화’라는 산업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하지만, 영화는 늘 자신의 본질이 예술이라는 걸 잃지 않았다. 그리고 그 어느 장르보다 대중과 가깝고 대중을 필요로 하는 영화는 예술로서도, 오락으로서도, 산업으로서도 서 있는 위치가 참으로 고달프면서도 그 어느 분야에서도 필수불가결한 독특한 위상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왜 영화를 보는가? 「위대한 영화」의 저자 로저 에버트는 ‘관람 주체의 감정이입을 이끌어내는 점으로만 보면 영화는 가장 강력한 예술’이며, ‘위대한 영화는 관객들을 더 위대한 사람이 되도록 이끌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위대한 영화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 또한 실토한다.   

이 책을 읽는 건 그다지 녹록치 않다. 2권으로 나눠진 책의 양도 그렇거니와 각각 100편씩 모두 200편이라는 소개된 영화의 목록만으로도 본격적으로 책을 펼치기도 전에 상당히 위축이 되고 마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 영화들은 할리우드 최신 개봉작이 아니다. 오랜 무성영화부터 지금은 거의 들을 수도 볼 수조차 없는 이름의 감독들과 배우들이 거론되는 꽤나 두꺼운 책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영화평론가의 순전히 개인적인 판단에 의해 목록이 구성되고 그 영화를 소개하는 「위대한 영화」를 읽어볼 만한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영화의 질이 아닌 마케팅 능력으로 관객을 모아’ 영화를 산업으로만 취급하는 현실과 재밌고 기교가 빼어난 영화만을 좋아하는 관객들에게 영화라는 예술적 장르가 지닌 철학과 가치를 담아 전하고자 한, 영화를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의 애정이 만들어낸 더 없이 소중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소개된 200편의 영화는 결코 완벽한 영화가 아니다. 영화 역사상 최고의 걸작들도 아니다. 어떤 영화는 지독한 인종 차별주의로 시들어 가던 KKK단의 활성화를 불러 오기도 했고, 또 어떤 영화는 어린애들 얘기처럼 멍청하고 일요일 동시상영 영화처럼 깊이가 없다. 어쩌면 200편의 영화 모두 저마다 가진 흠결이 적지 않은 영화들인 것이다. 그러나 위대한 영화이다.
[쉰들러리스트]는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가 아니다.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악에 저항하는 것이 가능하며, 그런 저항이 성공할 수도 있다는 최소한 한 가지 사례를 찾으려 하였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깊은 절망의 수렁 속에 빠져들고 말테니까. [라쇼몽]은 우리는 우리가 봤다고 믿는 것조차 의심해봐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또 다른 영화 [이키루]에서 늙은 공무원의 유족과 친구들은 자신들이 그의 전락을 목격했다고 생각하지만, 목격한 것은 자아 발견과 구원의 과정이었다. 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는 무신론자에 마르크스주의자이며 동성애자였지만,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멜 깁슨이 그리스도의 고초를 인생에서 가장 압도적인 사건으로 보고 있는 반면 그는 영화 [마태복음]에서 예수의 가르침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루이스 부뉴엘 감독은 우리 인간을 위선자들로 봤고, 그 자신도 그런 존재라고 인정했으며, 아마도 우리는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존재일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 그가 만든 영화들은 영화의 첫1세기에 가장 특색 있는 작품군 중 하나를 형성하고 있다. [12명의 성난 사람들]은 렌즈 선택이 영화의 분위기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에 관심이 있는 감독들을 위한 교과서 역할을 한다. 히치콕은 테이블 밑에 있는 폭탄이 터지면 그건 ‘놀람’이고, 테이블 밑에 폭탄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게 언제 터질지 모른다면 그건 ‘서스펜스’라는 정의를 내렸다. 요즘의 슬래셔영화들은 놀람에 의존한다. 그러나 [이창]은 영화 내내 서스펜스에 충실하게 투자하면서 우리의 기억에 서스펜스를 저장해놓는다. 그런 까닭에 최후의 클라이맥스에 도달하면 성적 전희와 맞먹는 스릴러가 되는 것이다.

인터넷이나 신문만으로도 우리는 하루에 수십 편의 영화에 관한 글을 보지만, 당당히 책으로 묶인「위대한 영화」는 영화에 대한 글로서도 순수한 책읽기로서도 두 가지의 목적을 충족한다. 영화평론가로서 영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뿐만 아니라 만만치 않은 글 솜씨와 나름의 철학을 지닌 저자는, 여기 200편의 영화를 통해 위대한 영화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함과 동시에 영화라는 예술적 장르가 전할 수 있는 혜안의 세계를 맛보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그의 제안은 아마도 성공적이다. 적어도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기꺼이 그의 지극한 정성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인터넷에서, 각종 영화관련 잡지에서, 혹은 비디오가게에서「위대한 영화」에 거론된 영화를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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