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인 6색 21세기를 바꾸는 상상력 인터뷰 특강 시리즈 2
한겨레출판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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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바꾸는 상상력이라는 주제로 여기 모인 6분.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한비야, 이윤기, 홍세화, 박노자, 한홍구, 오귀환. 개인적으로 한홍구님과 오귀환님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했지만 그건 내 개인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제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것이 기쁘기도 하다. 모르던 것을 아는 것이 책을 읽는 기쁨 중의 하나가 아니던가.
각자 다른 분야에 몸담고 있는 분들인 만큼 21세기를 꿈꾸게 할 상상력을 주제로 펼친 강연은 한마디로 먹을 거 많은 풍성한 자리였다. 직접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게 아쉽지만 이렇게 책으로라도 만나게 되니 참으로 다행스럽다.
힘 많은 자들에게 보태면서 달콤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힘없는 자에게 보태면서 진정한 행복을 느끼며 살기를, 또 세계를 무대로 커다란 꿈을 꿀 것을 역설하는 ‘한비야’님의 고통을 나누는 상상력. 인간의 원형이 그려낸 언어이며, 인류의 상상력의 근원인 신화를 즐길 것을 제안하는 ‘이윤기’님의 신화의 상상력. 물신주의가 판을 치는 현 사회를 비판하고, 물신에 대한 저항과 끊임없는 공부, 자기성숙을 모색함으로서 과거 정권에서 억압된 교육을 통해 만들어진 복종하는 인간이 아닌 스스로의 자아실현을 이룰 것을 이야기하는 ‘홍세화’님의 자아실현의 상상력.
지배집단에 의해 장악된 성장기의 헤게모니와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분석하고 현 동아시아에 불고 있는 민족주의 열풍의 위험성을 진단한 ‘박노자’님은 민족주의라는 마약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서슴치 않는다. (새로운 동아시아를 만드는 상상력) 역사학자로서 꿈을 빼앗아가는 시대. 간첩을 만들어내고, 군대와 학교를 통해 사회를 통제하는 시대를 벗어나 금기를 깨고 꿈을 꾸자고 말하는 ‘이홍기’님의 강연 속에 등장한 “미국 간첩은 어디로 신고하죠?” 등의 대담한 비유는 듣는 이의 허를 찌른다. (과거를 푸는 상상력) 마지막으로 자신을 스스로 ‘콘텐츠 큐레이터’라고 소개한 ‘오귀한’님은 문명을 이야기한다. 지도 한 장으로 바뀐 세계의 역사, 언어와 종교로 세계를 지배하는 문명. 과거의 문명이 오늘날까지 미친 영향을 설파하고 새로운 세기에는 과거를 발판삼아 발상을 바꾸어야 살아남일 수 있음을 주장한다. (문명에서 배우는 상상력)
1권의 책 속에 6명의 주장이 나누어져 있으니 깊이가 덜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접어도 좋다. 속된 말로 엑기스라 할 만한 좋은 강연이었음이 틀림없으니까. 물론 좀 더 파고들어갈 작정이라면 그분들의 저작을 직접 접하길.
한가지. 아무래도 <한겨레21>에서 마련한 자리인 만큼,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 권의 책은 그 책이 담고 있는 만큼만 보여준다. 그걸 받아들이든, 반박을 하든 그건 독자 개인의 자유이며, 다양한 사유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21세기를 바꾸는 상상력! 전쟁으로 얼룩진 대한민국의 20세기는 잔인했고 불행했으며, 사회문화적으로도 후졌습니다. 상상력이 기를 펴지 못하던 시대, 꿈꿀 권리조차 매와 고문으로 다스려지던 시대였습니다.]

이제는 꿈을 꾸어야 할 때. 상상력은 세상을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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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치바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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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최근 우리나라에 불고 있는 일본소설 열풍의 주역으로 꼽히고 있는 작가와 작품의 대표적인 특징은 가볍다는 것이다. 올해 몇 권의 일본소설을 읽어봤는데 마치 개인의 일기장처럼 소소한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작은 에피소드와 영화의 나레이션 같은 감상적인 술회 등으로 채워져 있는 것이 주였다.

‘사신치바’는 ‘치바’라는 이름을 가진 사신(死神)의 이야기이다. 병이나 자살, 수명이 다 된 죽음이 아닌, 갑작스런 사고나 예기치 못한 일로 죽게 될 것으로 예정된 사람을 일주일 전쯤 찾아가 곁에서 미리 사전조사를 하고, ‘가’와 ‘보류’를 통보한다. ‘가’를 통보하면 그 사람은 사신이 조사를 끝낸 일주일 바로 다음 날 죽게 되고, ‘보류’를 통보하게 되면 삶이 연장된다. 사신을 주인공으로 한 만큼 인간의 죽음을 다루고 있지만 역시나 나풀나풀 가볍고, 사신의 1인칭으로 서술된 스토리는 사신의 메모가 적힌 포스트잇 같기도 하고, 블로그에 올린 오늘의 일기 같기도 하다.

재밌다. 재미도 있고 가벼운 만큼 술술 읽힌다. 사신치바가 담당했던 6명의 일주일 동안의 삶은 6개의 에피소드로 나눠져 단편처럼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듯 하지만 결국 인간은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고, 주고받는 관계 속에 있다는 설정은 작은 울림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사신은 대부분 담당한 인간에게 ‘가’를 주지만 적어도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 악한 인간은 없다. 악해서가 아니다. 그의 삶이 다 했을 뿐.

재밌게 읽히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설정부터 그다지 와 닿지는 않는다. 음악을 좋아하고, 항상 비를 몰고 다니고, 조사한 사람에 맞게 자유자재로 변신하면서 그 사람의 정보를 미리 알아내 친해지고. 그리고 죽음을 결정하는 사신. 소설이라는 건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에 공감하며 깊게 빠졌을 때 몰입이 되기 마련인데, 적어도 나에게는 인위적인 냄새가 가득 풍기는 소설 속 세계에 깊게 몰입하지는 못했다. 작은 울림을 주기는 해도 커다란 울림까지 갖기에는 작가의 내공이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도. 글 잘 쓰는 아마추어 같다는 느낌.
진중한 울림을 줄 수 있는 좋은 작가로 부디 성장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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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건강법 - 개정판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민정 옮김 / 문학세계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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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건강법]으로 '아멜리 노통브'의 책은 두 권째 읽게 되었다. [적의 화장법]을 읽으면서는 그녀의 재기발랄함과 개성넘치는 필치에 반했고, [살인자의 건강법]을 읽는 동안에는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그녀만의 글쓰기 방식에 조금은 익숙해지는 기분이다. 또한 주인공의 이름을 통해 이미 소설의 모든 걸 함축적으로 감추고 있다는 것도. 우리나라에는 [적의 화장법]이 먼저 소개가 된 듯 하지만 [살인자의 건강법]은 그녀의 첫번째 책이다.

아멜리 노통브는 단어와 글쓰기 자체에 주목하고 즐긴다. [적의 화장법]의 '텍스토르 텍셀', [살인자의 건강법]의 '프레텍스타'라는 이름 안에 모두 'text'라는 단어를 품고 있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문장이 거의 없이 주고받는 대화로만 글의 90%이상이 채워지고 있고, 인정사정없이 쏟아 부으며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거침없는 논쟁 속에서 한 살인자의 위선을 벗겨내고(적의 화장법), 문학의 허위를 드러냄과 동시에 말년에 이른 대문호의 끔찍한 비밀까지도 만천하에 공개한다(살인자의 건강법). 그녀만의 반전도 빼놓을 수 없는 아멜리 노통브의 전매특허.

이제 살 날이 두달 정도 밖에 남지 않은 대문호 프레텍스타 타슈에게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한다. 그 중 엄선한 몇몇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게 되지만, 4명의 기자들은 그의 폭언과 궤변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을 친다. 그러다 한 여기자가 그와 인터뷰를 하게 되고, 처음부터 뭔가 심상치 않았던 기자는 살인을 저질렀던 대문호의 과거를 폭로한다는 게 대강의 줄거리. 하지만 아멜리 노통브에게 이런 줄거리는 지극히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의 책을 읽는 즐거움은 이야기보다는 촌철살인의 어휘 구사력과 독특한 상상력, 단어와 문장을 자유자재로 주무르는 놀라운 능력과 대화 속에 숨겨진 날카로운 비평을 눈여겨 봐야 한다는 것이다. (아, 물론 내가 읽은 건 번역서이니 한계가 있겠지만.)   

아마도 아멜리 노통브의 글을 읽고 난 후의 반응은 대략적으로 그녀의 개성에 반하거나 아니면 온갖 지식을 늘어놓으며 말장난을 하는 듯한 궤변에 눈살을 찌푸릴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그녀를 접해보기를 바란다. 정말 독특하다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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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
로스 킹 지음, 신영화 옮김 / 은나팔(현암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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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이 책은 팩트가 아니라는 점에서 현재 유행하고 있는 역사 팩트 소설과는 분명 다르다. 그렇다고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인문학서나 미켈란젤로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에 대한 담론만을 담고 있는 건 아니니 여느 미술책과도 다른 선상에 있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중심으로 비단 미켈란젤로 뿐만 아니라 당시 역사적 상황과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예술가들과 그 주변 인물들 등 소설이 아님에도 마치 소설처럼 풍부한 이야기가 아주 재미있게 담겨있다.

미켈란젤로는 원래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작업을 결코 원하지 않았다. 이미 '다비드'와 같은 걸작을 남긴 조각가로서 교황의 영묘를 제작하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대신 떠안게 된 천정화 작업을 오히려 음모로 여겼을 뿐이다.

이 책은 당시의 인물들을 남겨진 자료를 근거로 무척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미켈란젤로에게 천장화 작업을 맡긴 교황 율리우스 2세와 그와 적대적 혹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추기경들과 각 나라의 군주들,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라파엘로를 비롯한 위대한 예술가들이 당시에 얽히고설킨 관계는 무척 흥미있다.
그와 더불어 고된 천장화의 작업 과정, 천장화에 그려진 그림과 영향을 미친 다른 작품들, 미켈란젤로와 경쟁관계를 이루던 당시의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들까지 한장 한장 읽어나가는 동안 지금껏 그들의 예술이 얼마나 위대한가만을 봐왔던 닫혀진 예술이 아닌 붓터치 하나에 고심, 사랑, 시기, 출세욕까지 담아낸 생생한 재현은 그들을 살아있는 인간으로 보이게 만든다. 
그리고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살아있는 인간으로서 그들을 만끽하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게 되면 작품의 위대함을 칭송하는 여타 미술책보다 예술에의 커다란 감동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적인 묘사를 위해 무덤에서 시체를 파내고, 밀린 돈을 받기 위해 작업을 중단하고 전쟁터까지 쫓아가는 와중에도 작품에 대한 자부심으로 끝까지 자신의 일을 해내고 마는 예술가들. 아니, 인간들이기에 인류는 불후의 명작을 품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가 결코 한 개인의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힌 바티칸의 회랑을 빠져나와 시스티나 예배당으로 들어가 여러 줄의 긴 나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가 선지자 요나를 따라 부지불식간에 눈을 위로 치켜 뜬 수백만 명의 방문객들의 머리 위로 떠오르는 환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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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망스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슬픈 사랑 이야기
이명옥 지음 / 시공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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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미술책을 본다는 것은 비단 그림이나 조각 등의 예술에 관한 것들만 보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어떤 책보다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예술은 기본이요 인문학적 소양까지 덤으로 얹게 되는 것은 미술교양서를 보는 커다란 기쁨 중의 하나이다.
그런 면에서 이명옥은 참 좋은 작가이다. 그녀의 책을 읽다보면 이 분의 예술적인 심미안뿐만 아니라 어쩌면 이렇게도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폭넓은 교양을 갖고 계신지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로망스'는 말 그대로 사랑이야기이다. 첫번째 장을 펼치면 단테의 '신곡' 중 지옥 편에 등장해 수많은 예술가들의 영감을 자극한 '파울로와 프란체스카'의 이야기로 '로망스'는 시작된다. 살아서는 형수와 시동생 간의 치명적인 사랑으로, 죽어서는 지옥의 극한 고통속에서조차 결코 떨어지지 않고 서로의 사랑의 후회하지 않는 절대적인 사랑으로 기억되는 파울로와 프란체스카는 작가 스스로 '미친사랑'이라 정의내린 '로망스'에 가장 어울리는 커플이 아닐 수 없다.

[어떤 불길, 어떤 석탄도 아무로 모르는 은밀한 사랑처럼 뜨겁게 타오를 수는 없다네. 사랑하는 감정만이 진실하며 오직 시적인 영혼을 지닌 사람만이 사랑의 불꽃에 생을 사를 수 있으리니.]

파울로와 프란체스카는 서로의 마음을 숨기고 있던 중 렌슬롯과 귀네비에의 키스 장면이 묘사된 책을 읽다 자석처럼 이끌린 단 한번의 키스로 사랑이 불타올랐다. 두번째 장은 자연스럽게 렌슬롯과 귀네비에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귀네비에는 전설적인 영웅 '아더왕'의 아내였으며, 렌슬롯은 아더 왕이 가장 아낀 원탁의 기사였다. 사랑을 감추고 정략결혼을 해야 했던 슬픈사랑이야기는 비극적인 전설의 영웅이야기로 전환되고 이어진 세번째 장은 사랑의 영원한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의 원형이 되는 마법처럼 사랑에 취하고, 사랑의 묘약에 취한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여기까지 쭉 따라오다 보면 로망스는 관습이나 제도로도 막지 못하고 영웅조차도 속수무책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위대하고 절실한 감정임을 알 수 있다. 
마지막 네번째 장에 이르면 첫번째 장의 주인공이었던 프란체스카와 파울로를 '신곡'에서 절절하게 표현한 단테의 로망스가 펼쳐진다. 널리 알려진 대로 평생 베아트리체만을 사랑했던 단테를 통해 사랑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묘사한다.

[불행한 자여. 너는 정말 천치가 아닌가. 이렇게 미쳐 날뛰는 너의 끝없는 정열을 도대체 어쩌자는 것이냐. 나는 이제 기도라고는 그녀에게 바치는 기도밖에 모른다. 나의 공상 속에 떠오르는 것은 오직 그녀의 아리따운 모습뿐이다. 주위세계 모든 것이 오직 그녀와 관련되어서만 내 눈에 비치는 것이다.]

이명옥은 글을 아주 잘 쓰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녀의 글은 친근하다. 
예술을 볼 줄 아는 눈과 동서양과 각종 분야를 넘나드는 넓은 식견 그리고 쉬운 글쓰기로 채워진 그녀의 책을 보는 건 매번 즐겁다. 다만 너무 가벼운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은 들지만 한권의 책이 가진 무게야 각자 판단하기 나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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