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이순원 지음 / 뿔(웅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솔직히 촌스러웠다. 「나무」의 첫 느낌은 촌스러움이었다. 100년 이상을 산 할아버지나무와 이제 갓 8살이 된 손자나무인 작은 나무가 깊은 겨울잠을 자야 할 한겨울에 문득 잠에서 깨어나는 첫 장부터, 페이지를 채워나갈 나머지 이야기와 마지막 장을 짐작케 했다.

조그만 시골집. 마당에 자리 잡고 있는 커다란 밤나무인 할아버지나무는 현재 집주인의 아버지가 심은 나무이다. 그 사람은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게 나라를 빼앗겼을 때, 어린 13살의 나이에 자신보다 1살이 어린 신부와 결혼을 했다. 어렸지만 남다른 생각이 있었던 어린 신랑은 초가집과 함께 유일한 소유재산이었던 민둥산에서 긁어모은 밤 다섯 말을 겨우 내내 묻어두었다가 보릿고개가 한창일 봄에 꺼내어 산에 심었다. 사람들은 차라리 배가 고픈 지금 그 밤을 얼른 삶아먹으라 했지만 신랑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 해 두 해가 가고,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는 민둥산을 보고 사람들은 어린신랑을 향해 비아냥거렸지만 드디어 십년이 되었을 때, 민둥산에서 싹을 틔우고 가지와 잎을 낸 밤나무들은 제법 굵은 밤송이를 만들어 내었다. 할아버지나무는 홀로 집 마당에 떨어져 있다가 민둥산에 묻히지 않고, 나중에야 발견이 되어 집 마당에 묻힌 집주인에게 조금은 특별한 나무였다.

오랜 세월 묵묵히 집 마당을 지켜온 할아버지나무와 올해는 기필코 밤송이를 많이 만들어 알차게 익히겠다는 작은 나무가, 예정보다 이르게 깨어난 겨울을 지나 봄, 여름, 가을을 거쳐 가는 동안 조근조근 들려주는 이야기는 초반 안 읽어도 무슨 책인지 다 알겠다 콧방귀를 꼈던 촌스러움에서 결국은 빙그레 미소 짓게 하는 소박함으로 진화해간다.

할아버지나무의 연륜에서 묻어나는 지혜와 작은 나무의 치기 속에서 벌어지는 각종 소란과 대화는 겨울에서 시작해 나무와 꽃이 세상을 향해 움트기 시작하는 봄, 드디어 열매를 맺고 해초 냄새가 나는 사나운 바람 등 많은 시련을 겪었던 여름을 지나 작은 나무에게 처음으로 두 개의 밤송이를 꼭꼭 익힌 가을에서 다시 기나 긴 겨울잠을 자야하는 겨울까지, 촌스러울지는 모르지만 작은 나무가 할아버지나무가 될 때까지도 결코 변하지 않을 소박한 진리를 전한다.

화로에 던져 구워먹는 것보다 땅에 묻어 나무로 자라게 하는 것의 의미. 추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제때 꽃을 피워 열매는 맺는 매화나무의 기상. 열매를 맺느라 다른 나무보다 수명이 짧지만 온 정성을 다해 열매는 맺고 이 세상에 주고 가는 과실나무의 소중함. 당장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보다 뿌리를 깊게 하고 가지를 튼튼하게 해 잎을 많이 내는 것의 중요함이 어찌 꽃과 나무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 “...네가 아직 어린 나무이기 때문이지. 지금 열매 한 개를 더 맺고 덜 맺고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다음 더 많은 꽃과 열매를 맺기 위해 그렇게 하라는 것이지.”

소박하다. 더도 덜도 할 것 없이 착하고 소박한 책이다. 「어린왕자」나 「연어」의 울림에는 못 미칠지 몰라도 “작가로서 어떤 글을 썼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내 글에 몸을 바칠 푸른 나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을 썼으면 좋겠다.”고 말해 왔다던 작가의 바람대로 충분히 나무들에게 떳떳할 수 있는 글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착하게 읽어나가 보자. 어느새 마지막장이고, 조그만 장난에도 까르르 크게 웃는 시골 아이처럼 착해져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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